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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그리고 난해함
"낯설음.....그리고 난해함" 내용보기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누군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더구나 그 수단이 소설이라는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설은 그냥 소설로, 자기나름의 이해방식을 가지고 작가와는 별반 상환없이 읽기도 한다. 따라서 소설은 작가에게서 독자로 옮아오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의도를 담게
"낯설음.....그리고 난해함" 내용보기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누군가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더구나 그 수단이 소설이라는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설은 그냥 소설로, 자기나름의 이해방식을 가지고 작가와는 별반 상환없이 읽기도 한다. 따라서 소설은 작가에게서 독자로 옮아오는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의도를 담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유리의 원작으로 내게 알려진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는 책 자체뿐 아니라 작가에 대한 낯설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철학서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죽음의 한 연구...사실 난 이 책을 철학 코너에서 찾기도 했었다. '난해함' 솔직히 이 책이 나에게 준 첫느낌은 난해함이었다. 소설이라는 것이 아무리 작가를 떠나 새로운 의도로 독자를 만난다고 해도 그것이 전혀 다른 것으로 화학변화를 할수는 없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말하고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고 찾아헤매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난해함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주인공이 유리를 찾아 든 날부터 시작해 유리에서의 40일은 그에게는 고행의 과정임과 동시에 해탈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타났던 끔찍한 '살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별한 까닭도 없이, 원한도 없이 주인공은 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그리고 살해하는 순간에도, 살해가 끝난 후에도 그는 어떤 주목할 만한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저 그때 살인에의 충동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종국에 가서는 그 자신의 죽음을 이끄는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살인장면에 대한 작가의 자연스런 진술을 보면서 혹 이 살해가 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공즉색, 색즉공...이미 없었던 것을 죽이는 거이 어찌 살해가 될 것인가. 유리의 다섯번째 촌장이 했던 말이 내가 오해를 하게끔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작품이 끝을 보이고 있는데도, 그리고 끝내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모든 글이 끝나버렸음에도 여전히 주인공의 행적이 꿈의 일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주인공의 죽음은 '유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촛불승은 주인공의 죽음과 함께 유리또한 죽을 것이라고 했다. 수도자들은 떠났고, 수도자들이 떠난 유리는 더이상 세속과 단절된 수도승들의 고행의 길이 아니라 촌민들이 다시 돌아와 삶의 보금자리를 꾸리게 되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유리의 활폐를 극복하게 되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의 죽음을 보시의 개념으로 파악하고 그쳐버리긴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김현씨가(평론가) 지적하고 있듯이 유리는 읍과 대칭을 이루며 서로의 질서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쌍둥이와도 같은 관계이다. 작품 전반의 핵심이 된다고 하는 물고기, 그 타원형의 형태가 갖는 의미가 유리와 읍사이에서도 여전히 성립된다. 그런데 유리가 죽는다면 그리고 촌민들의 고장으로 바뀌게 된다면 그 대칭은 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들 배타적이지 않는 대칭이 안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대칭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인가. 난해함이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다. 아울러 죽음의 한연구, 유리에 대한 나의 느낌과 의문역시 너무 많은 곳에 흩어져있고, 불투명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정리하기 버겁다. 어느 곳인자, 그 정체조차 파악할 수 없는 유리, 그것은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당의 모습. 눈뜨고 있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고행의 길이 아닌까한다.

[인상깊은구절]
"...해골 속에 뿌리내린 나무란 죽은 속에서의 생을 표상하는 비유이며, 불멸성이란 그래서 자기 자신이 죽음이면서 삶이 되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 자기의 불멸성은 인신의 상태에 이른 인간을 지칭함에 다름아니다...그 자기의 불멸성이 죽음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가능케하는 자리인 것이다. 짜라투스트라에 의해 전율로서 설파되었으며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들에 의해 열광적으로 신앙되었던 그 죽음의 제단 위에 선 인신을 죽음의 한 연구는 실재하는 주인공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주인공이 자신의 각본에 의해 냉정하게 자기를 죽임으로써 자신이 인신임을 입증한다. 그 완성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 김현씨의 평론 중에서-
r***8 2000.07.0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