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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학년도에 1년 동안 CCCTIM 경기남부모임에서 함께 읽어왔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기는 하지만 분량이 많고 수준이 높은 편이라 혼자 읽기는 꽤나 힘들었을 테다. 결국 우리 모임도 11장 인가 까지 함께 읽고 나머지는 개인적으로 읽기로 했다. 집중해야 읽을 수 있기에 방학이 되어서야 정자세로 나머지를 읽어냈다. '终于(중국어로 정말 기다렸던 일이 완성 되었을 때 감격에 차서 하는 말, '드디어')' 다 읽었다. 뿌듯하다. 책거리라도 해야 할 듯하다.
신학자 혹은 구약에 관심 있는 평신도라면 즐겁게 읽고 신앙 생활에 유익을 얻을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자고 제안한 선생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 책을 읽어보셨고 지금도 가끔 꺼내볼 만큼 자신의 신앙 생활에 의미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특히 2014년 이해 안가는 참사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들이 반응하는 방식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자의적으로 적용해도 괜찮은지 의문을 가지고 계셨다. 개인적으로는 윤리학을 중심으로 학제적 접근을 하는 윤리교육과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윤리학 맥락 속에서 구약이 말하는 윤리는 어떤 방향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지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책은 두껍지만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구약은 과거 이스라엘 만의 윤리이므로 폐기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현대 윤리 쟁점들에도 적용할 의미와 방법이 있는가'하는 것이다. 당연히 저자는 후자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책 말미에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신학자들 간 합리적인 논쟁들을 함께 방대하게 제시하고 있다. 논쟁들을 읽으며 일부 무신론자 학자가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더 열심히 구약을 읽고 파헤쳐서 난점을 찾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일단 놀랐다.
이 책을 다 읽고 저자 입장에 설득 당한 신앙인은 구약을 무시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구약도 인격신이자 실재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언약한 말씀으로 여기며 그를 인정했던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와 신약 사도들이 구약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안다면 말이다. 저자는 하나님은 인간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 그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 삶을 통해 유비적으로 이야기 속에서 패러다임으로 보여주고 있다. 문자 그대로 율법주의, 근본주의적으로까지 지킬 부담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당시 사회상과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에 적용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일단 저자는 책 앞부분에서 그러한 이스라엘 사회상과 패러다임 읽기를 시도한다. 왜 이스라엘 백성도 아닌 현대 기독교인이 구약 이야기 속에 담긴 패러다임을 자신의 윤리적 삶에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1부와 3부에서 학문적으로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과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이 거주하는 땅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 자신의 생활 속에서, 다시 말해 둘러싼 자연과 개인 생활과 가정 생활과 경제 생활, 나아가 법과, 정치 운용 등에 있어서까지 한 방향성을 향해 있다. 특히 '땅' 개념과 관련하여 사랑과 정의를 추구해야한다는 요청은 구약에 숱하게 등장하고 있다. 매우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야기인 듯해보이는데 현대 사회에서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서 모임 중에 많은 토론이 오갔다. 한국 대형 교회를 위시한 일부(?, 정치, 경제적) 기득권층이 어떻게 자신의 기반을 마련해왔으며 지금 유지하고 있는지 근현대사를 통해 전해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역시나 제2부였다. 사회 정의에 관심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소주제만 읽어보아도 솔깃할 테다.
이 부분들에서 저자가 구약을 통해 동일하게 읽어내고 있는 패러다임은 아래와 같다. 만약,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경전인 구약을 현대인이 자신의 윤리적 삶에 적용하려면 아래와 같은 방식이어야 하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큰 패러다임을 읽고 달라진 현대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과 정의가 우리 정치, 경제, 사회문화, 가정, 개인적 삶에서 실현되고 있는지 보면 된다. 만약 고통당하는 약자가 있다면 원인을 제거해주도록 관심 갖고 시도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신앙인이다.
현대 윤리 쟁점에 어떻게 적용하고 구체적인 장면에서 개인적으로 어떻게 움직여야할지는 또 많은 고민을 불러오는 복잡한 문제다. 교육정책운동 공부를 하다보면 어떤 운동이 '성경적인가'에 대한 질문에 자주 부딪친다. '비폭력', '평화'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다보면 타이밍 맞는 운동 전략을 짜기가 훨씬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 '좋은교사운동 교육정책아카데미 캠프"에서는 알린스키,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접하고 일부를 함께 읽었다. 아마도 좋은 취지 자체가 퇴색되지 않는 지혜롭고 착한 방법을 때마다 찾아나가기란 앞으로도 참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어떤 운동가도 '정답'을 찾기는 힘들 테다. 어쨌거나 저자는 아래와 같이 정치 참여를 해야 하고 권위자에게 발언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2015-2016년 화두가 노동, 진로가 되고 있다. 자꾸 그런 책이 나에게 오고 컨텐츠들을 내가 찾아보게도 된다. 좋은교사운동에서 다른 단체와 연계하여 '쉼이 있는 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쉼과 안식에 관한 많은 논의가 오갔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저런 책을 찾아 읽었다. "일삶구원": http://blog.yes24.com/document/7781434 이나 "피로사회": http://blog.yes24.com/document/7652643 같은 책들이 생각난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노동을 인간도 기뻐하도록 태어났다고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해석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했던 교만은 타락을 가져왔는데 모든 분야가 타락했으니 노동도 타락했다. 하나님은 인간 노동이 고통에 휩싸이리라고 저주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은 자는 노동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하면 우리는 노동에서도 구속(원) 되고 있는가?? 근대에 경제적 노력과 성공이 곧 하나님의 축복을 가리킨다던 기독교 안에서의 분위기가 신자유주의와 피로사회를 불러오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요즘 한병철, "시간의 향기"를 읽고 있는데 마지막 장 '사색적 삶'은 흥미롭다. 대학원에서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http://blog.yes24.com/document/4382146 을 읽을 때도 성찰했던 내용이지만 근대 노동을 찬미하기 이전 고대- 중세까지만 해도 비교적 사색적 삶을 노동(에 지배당하는 삶)보다 더 높게 쳐주었다. 구약에 대해 말하자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이삭을 남겨두거나 노예에게도 안식과 쉼,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줄 정도의 여유와 잉여로움이 있었다. 근현대를 거쳐오면서 잃어버린 지점은 무엇일까. 하이데거는 (다소 범신론적 의미가 강하긴 하지만) 저작에서 '신', '의미',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병철도 현대인이 어떤 구심점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속화된 삶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 공허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 거의 마지막 부분에 수록한 이 도표는 인격신인 하나님이 실재하고 삼위일체 예수님을 영접한 신앙인이라면 아래와 같은 이유로 구약이 가진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삶 속에서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듯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말씀은 그런 내게도 주신 말씀이다. 우리가 고대 이스라엘 백성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에서 있었던 일들과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유비 관계라고 생각해서, 그 시대에 보여주신 패러다임을 읽고 현대 윤리적 삶에 적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책을 구입한 후 간발의 차로 2015년 개정판이 나왔다. ㅠ_ㅠ... 이제는 2006년 판에 서평을 쓰기보다 2015년 판에 서평을 쓰는 일이 더 의미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올린다. 저자 자신도 이 분야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토론하며 이야기를 덧붙여가고 있던데 개정판은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