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파시즘. 어떻게 파시즘이 부드러울 수 있을까 의문을 불러 일으키는 제목이다. 하지만 그 부조화안에서, 나는 파시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쓴 약을 삼키기 쉽게 하기 위해 설탕으로 겉을 둘러싼 것을 당의정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파시즘을 당의정에 비유한다면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약은 먹고나면 아픈 곳이 나아서 몸에 좋지만 파시즘은 삼키고 나면 치유가 어렵다는 점이다.
파시즘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책은 파시즘의 여러 얼굴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꼼꼼히 설명해 준 뒤, 아직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는 파시즘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이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파시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주지 않을 때, 아이가 버릇없이 굴때, 누군가 부적절한 일을 했으때 우리는 말한다. "하여간에 맞아야 알아 들어요." 왜 이성적으로 해결할 생각이 먼저 들지 않을까. 폭력이 실제적으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언어적 폭력이 먼저 행해지는 걸까. 우리는 어떤 일을 이루어 낼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상대보다 우월한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제약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 설사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소수를 억누를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부터 배워왔던 자유 민주주의의 이념에는. 그러나 우리는 설탕의 맛에 고분고분하게 길들여져서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과연 파시즘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있었을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있을때 우리는 왜 항상 그 난국을 헤쳐나갈 영웅만을 기다려 왔을까. 왜 뛰어난 지도자가 홀연히 등장해 우리를 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기만을 간절히 바래왔을까. 과연 우리는 그것이 파시즘의 모습이었는지를 알았을까.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프랑코는 버터와 소형 승용차라는 삶의 질의 향상을 설탕으로 사용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곳곳이 파시즘에 중독되었었다. 과거형일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그 과녁이며 우리들은 파시즘이라는 독화살로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다. 어떠한 독이든 중독된 사람에겐 해독제가 필요하다. 해독제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중독되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 모두 양심의 병원에 물어보자. 우리가 중독되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인상깊은구절] '부드러운 파시즘' 체제의 극치가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다. 그러나 이 신드롬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다. 그건 조선일보와 같은 군사독재 옹호 세력의 공격적인 켐페인에 의해 전부는 아닐 망정 대부분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로 이 옹호 세력 때문에 국가보안법 하나도 개폐하질 못한다. 왜? 이들이 여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일부 좌파,진보적 지식인들의 행태다. 이 분들은 조선일보라는 군사독재의 가장 강력한 옹호 세력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으로 군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분들은 조선일보를 상대로 기고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걸 자신의 '사회적 책무'라고 주장하시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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