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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질병들이 사람의 이름을 갖고 있다. 주로는 그 병을 처음 기술했거나(스티글러의 법칙에 따라 그런 경우는 거의 없음이 밝혀졌지만), 그 병을 앓았던 사람의 이름이다. 어떻게 해서 그 이름들이 붙여졌으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역사를 가지게 되었는지, 어찌 보면 쉽게 가질 수 있는 궁금증이다. 그 궁금증을 종합적으로 풀어내려고 한 시도가 별로 없었다는 게 오히려 더 신기하다. 다우어 드라이스마는 바로 그 궁금증에서 출발해서 열두 가지의 사람의 이름을 가진 병들과 그 사람들을 추적하고 있다. 그 병들은 그냥 병들이 아니라 주로 마음의 병들이다.
아주 익숙한 이름들이 있다. 파킨슨병, 브로카 영역, 투렛 증후군, 알츠하이머병, 아스페르거 증후군. 대체로 그것들이 사람의 이름에서 온 것이라는 것도 잘 알려져 있는 질병이며, 이름들이다.
그에 반해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도 있다. 보네 증후군, 게이지 행렬(게이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잭슨 간질, 코르사코프 증후군(역시 알코올 중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브로드만 영역, 클레랑보 증후군, 카프그라 증후군(올리버 색스의 책에서 접하긴 했지만).
이런 추적은 우선 지적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런 질병이 실제로 늘어나는 것인지, 그런 진단만이 늘어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현대에 들어서 분명히 늘어나고 있는 마음의 병들이 도대체 어떤 유래를 가지고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지적 여행일 수 밖에 없다.
인류와 함께 했을 것이 거의 분명한 질병들임에도 왜 그 때에야, 왜 그 사람에 의해서야 처음 기술되고(여기서 ‘처음’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애매모호한 것이지만), 또 어떻게 그 사람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살피는 것은, 또한 과학 또는 의학의 어떤 중요한 측면을 보는 것 같은 은밀한 느낌도 갖게 된다.
드라이스마는 그럼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쓰고 있지만, 정작 더 중요시하는 것은 그 ‘발견’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어쩌면 처음 기술된 이후 왜곡되거나 확장되거나, 또는 축소되면서 다시 불려지는 상황 자체가 더 흥미롭고 과학사적으로, 의학사적으로 중요한 것이란 얘기다. 또한 그 질병들의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 역시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 역사는 간단히 말해 정신의학과 신경학의 줄다리기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시기에는 그 사람의 정신적인 타락이나 부모의 영향 등으로 설명하던 것이 어떤 물질적 기반을 갖는 것으로 설명하게 된다. 그러다 다시 돌아가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한 질병을 보는 관점, 아니 모든 질병을 모든 관점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을 이 열두 가지 사람의 이름을 가지게 된 질병의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는 과학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과거에는 그런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인 프로토콜조차 없었지만, 그런 것을 기본적으로 교육받는 지금에도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드라이스마는 마지막 장에서 ‘카르단의 고리(Cardan’s rings)’를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연구자는 카르단의 고리에 있는 배의 나침반처럼 시간 속에 매달려 있다. 그는 가장 적합해 보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그 시기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를 선택하고,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지는 논거에 호소하고, 그가 동시대인과 공유하고 있고 따라서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수십 가지 관습에 의존한다. 기존의 견해를 거스르는 입장을 취하고 자기 주위의 동향으로부터 독자적으로 떨어져 있으려 분투할 때조차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시대의 통찰에 의해 나침반과 함께 휩쓸려 갈 것이다.” (358쪽)
그러나 그 한계를 의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나만 옳다고, 내가 본 것만이, 내가 들은 것만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한 그는 끝까지 시대의 한계 속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자신의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서 살아갈 것이다. 적어도 내 시대의 통찰 속에서라도 허우적대기 위해서는 그걸 늘 인식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