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어떤 이의 눈에는 아주 작은 숲이 되지만, 어떤 이는 하나의 우주라고 이야기한다. 작고 평범한 이야기에, 삶의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에 맘이 간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살다보면, 해는 뜨고 지는 지, 별은 반짝이는 지, 바람은 불어오는 지, 새들은 지저귀는 지.... 모두 잊고만 지내게 되는 우리의 모습. 빨리 진도가 나가고 재미가 있는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은 그런 걸 주지 않는다. 맘을 여유롭게 하여 자연과 함께하는 김용택님의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우리다 보면, 나도 강가에서, 솔숲에서 걷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자신 안에 들어있는 고요하고 단순하고 그러나 풍요한 맘의 평화를 찾고 싶은 사람은 잔잔하게 묻어나는 고운 이야기들에 취해보길 바란다.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야 이 솔숲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어렴풋하게 그 솔숲을 상상할 수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읽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자연과 만날 수 있으리... [인상깊은구절] 빨리 걸으면 십 분도 걸리 지않는다. 그러나 그 숲은 내게 작은 숲이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과 평탄한 길이 있는 이 길은 내게 하나의 우주다. 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이 솔숲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이따금 아이들과 이 숲에 들어 글쓰기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하지만, 나는 이 솔숲에 아무하고나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 솔숲의 어여쁨을 잘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 보아야 이 솔숲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에게는 설명이 안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 어느 숲길보다 가난해 보이고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이 작은 숲길을 좋아한다. 이 길은 내 가슴에 그려진 나의 길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사랑해야 할 지 아는 이가 있드면 나는 그이와 함께 올 봄에 이 숲에 들리라. 세상을 살 줄 아는 이가 있다면 나는 이 숲에 그이와 함게 들 것이다. |
|
작은 글들의 모음을 읽었다. 받음부터가 따뜻한 책이었다.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내게 위로를 안겨주기 위해 친구가 건네 준 책.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용택 시인의 산문집이었다. 섬진강... 그의 시들을 읽으며 외우며 얼마나 가슴설레였던가.. 잊고 있었던 시의 느낌들이 다시 삶에 되살아나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난 삶의 각박함 속에 치여 살아가면서 그의 시가 있었다는 걸, 그의 글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낼 수는 없어 틈틈이 펼쳐들고 읽었다. 편안했다. 하지만 오래 남았다. 짧은 글들이었지만 휘리릭 읽어제낄 수도 없었다. 오랜만에 찾은 강언덕길을 한걸음에 휘달아 지나칠 수 없이 오래 오래 걷고 느끼듯이 그의 글들은 읽고나서 잠시 책을 덮고 마음에 담아두고 가만히 느끼다가 다시 책을 펼쳐들곤 해야 했다. 그가 거닐었다는 강가, 그가 이야기하는 진메 마을, 진메 마을 사람들, 섬진강변, 아이들. 가만히 눈을 감고 마음속에 그려보기도 하였다.
책을 읽는 시간만큼은 난 인공과 도시로부터의 벗어난 맑고 깨끗하고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너무나도 따뜻하고 그리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가끔씩은 잊혀졌던 삶의 느낌들이 되살아나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그만큼 내 삶은 그가 말하는 산과 들과 강의 냄새가,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김용택씨의 글은 언제 읽어도 참 맛깔스럽다. 진국이면서도 깔끔하다. 게다가 시간이 갈 수록 더 맑아지는 것 같다. 그의 글 속을 헤매다 보면 어찌 이런 심성이 남아 있을까 의아할 정도다. 마지막에 그의 친구 김훈은 삶은 여전히 아날로그라는 말이 또 유난히 김용택의 글과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지털 시대라고는 하지만 삶은 여전히 아날로그다. 우리에게 맞지 않는 디지털을 이용하고 살아내면서 너무나도 아날로그적인 우리들은 아니 나는 삶의 밑바탕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 삶의 공허함과 불안정은 그런 하릴없는 몸부림의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김용택 다시 그의 글을 통해서 난 다시 흙의 냄새를 사람의 냄새를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냄새를 다시 맡았다. 마냥 고맙고 마냥 훈훈하다. 일련번호가 아닌 삶의 장단과 높낮이를 말장단으로 그려내는 산문들 속에서 난 오랜만에 웃음지을 수 있었다. 세상이 변해가고 그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게 인간의 생존원칙이라지만 그래도 우리네 인간에게는 변하지 말고 고이 간직하고 나누어야 할 우리네 정서와 내음이 있는 것 같다. 그 정서를 그 내음을 다른 이에게도 나누어주고 싶을 때 꼭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용택이의 글들은 용택이네 엄마의 언어작용과 닮아 있다. 그것은 삶과 긴밀히 사귀는 언어의건강함이다. 용택이의 문장 속에서 삶은 말에 기대어 있지 않고, 말이 삶에 기대어 있다. 거기에는 관념의 조작이 없고 기발한 이미지나 남을 놀래키려는 수사학적 장치가 없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그의 기쁨과 슬픔은 농업공동체적인 삶의 질감과 그 아름다움, 그리고 그 공동체적인 삶을 파괴하는 사회경제적인 해체작용 사이에 끼여 있다. 그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더 이상 미래사회의 전망이나 구성원리로서 무력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일은 아주 쉽다. 그리고 그 “무력”은 아마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끝끝내 단념하지 못할 한바탕의 운명인 것이다. 산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라야 옳을 것이다. 삶은 영원히 아날로그인 것이다. |
|
그동안 우리에게 예쁜 시를 전달해주던 기용택 시인이 수필집을 하나 전달해 주었습니다. 벌써 50이랍니다. 동글동글한 꼭 차돌같이 생긴 그의 외모는 50이란 숫자를 무색하게 만듭니다. 섬진강 강변 마암분교에서 저학년 반을 맏고 계시는 김용택 선생님, 시인, 수필가. 그의 인생 얘기를 들어보고 있노라면 어딘지도 모를 그 촌구석 삶조차 낭만적인 것이 되어버립니다. 30분이나 걸어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아침마다 시인만의 산책로를 거닐고, 새로 얼굴을 내민 야생화와 인사도 나누는 삶. 그런 풍요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가끔 오는 서울에서는 꼭 길을 잃는다며 촌놈 용택이라 그의 친구분은 부르지만, 어찌 된 것이 촌놈 용택이라는 이름이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메모지를 들고 자꾸만 적고 싶어지는 책. [인상깊은구절] 나무는 누가 옮기지만 않으면 태어난 그 자리에서 죽을 때까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산다. 그러면서도 나무는 세상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낸다. 나무는 여행을 다니지도 않고 그 어떤 치장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것들을 부른다. |
|
김용택 시인이 그려내는 진메마을은 우리 나라 사람 모두의 고향마을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때문에 그의 글은 누구에게나 아련한 그리움을, 비슷하지만 모두 다른 그런 그리움을 준다. 그래서 사랑받는다. 나 또한 그를 사랑하는 사람 중의 하나가 될 듯하다.
그의 시나 산문은 정감있고, 투박한 '촌놈'으로서의 김용택의 모습이 잔잔히 나타난다. 그 모습이 좋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는가 싶다. <인생>은 그가 잔잔히 써내려간 또 다른 산문집이다. 다시 재미있게 읽었다. 또 다른 그리움을 새기면서.
허나, 한 가지 아쉬움을 담아 보자면, 약간 질리는 맛은 있다. 언제나 그것이 그것.. 그리움만으로 살기엔 세상에 아직은 아름다운 것이 많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그 자신의 세계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많은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평생 동안 강을 보며 살았다. 강물을 따라왔던 것들은 눈부셨고, 강물을 따라 가버린 것들도 눈부셨다. 아침 강물은 얼마나 반짝이고 저문 물은 얼마나 바빴던고. 그러면서 세월을 깊어지고 내 인생의 머리 위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렸다.인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