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그 내용을 이끌어가는 인물과 함께 전개되는 사건들이 존재해야만 한다. 더욱이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협력과 갈등 관계라는 구성이 명확히 제시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그 내용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영화의 내용은 누군가가 남긴 기록을 근거로 해서 제작되기에, 제작 과정에서 그 의도를 명확하게 드러내어 주제로 표현하는 것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다만 해당 기록을 하나의 역사적 ‘사실(fact)’이라고 할 때, 작가나 연출가에 의해 그 기록을 둘러싼 합리적 상상력에 의한 ‘허구(fiction)’가 덧붙여져야만 풍성한 내용으로 완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소재로 한 모든 예술 작품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일종의 ‘사실에 기반한 허구(faction)’일 수밖에 없다고 하겠다.
완성된 영화에서 작가 혹은 연출자에 의해 첨가된 내용이 역사 기록의 본래 의도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때로는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지자면 ‘역사 기록’도 작성자의 의도에 따른 선택의 결과물이기에, 해당 기록의 집필 의도와 의미를 면밀하게 따지는 것이 요구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은 역사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해야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을 소설이나 영화의 극본으로 만들 때는 기록을 뒷밭침할 수 있는 작가의 합리적 상상력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영화관에서 공부하는 우리 역사’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는,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대상으로 그 내용과 의미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작업을 “영화를 통해 역사에게 말을 걸어볼 것이고, 영화 속에 담긴 역사의 진실과 의미를 찾아보는 여정이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지하듯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특정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제작되지만, ‘기록 영화(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반드시 작가 혹은 연출가의 상상력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그렇게 더해진 상상력은 해당 기록에 대한 나름의 해석 혹은 평가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사실(팩트/사료)과 허구(픽션)의 차이를 찾아내고 왜 다르게 표현했는지까지 알고가야 온전한 내 지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영화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이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는 역사에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저술했으며, “역사의 기록(팩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사극 영화나 드라마의 참맛을 알 수 있”기에 ‘사극 영화의 가이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시대 순서에 따라 가장 먼저 ‘삼국과 고려’를 다룬 영화 <황산벌>과 <평양성> 그리고 <쌍화점>에 대한 소개와 그러한 작품들이 역사와 어떻게 관련되고, 때로는 당대의 상황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저자의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하는 <순수의 시대>와 <관상> 그리고 <간신> 등의 작품이 소개되며, ‘전란과 이순신’은 물론 ‘광해’와 ‘인조와 병자호란’ 등의 항목으로 해당 시기를 다룬 영화와 함께 그와 관련된 역사를 친절하게 짚어가며 ‘영화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직 보지 못한 영화도 있었지만, 역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는 내용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이러한 주제를 통해 역사의 격변기라고 할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 결국 영화로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이와 함께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 <사도>라는 작품을 통해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영조와 사도세자’에 대해서 조망하기도 하며, <역린>과 <영원한 제국>을 토대로 개혁 군주로 평가되기도 하는 ‘정조’의 시대를 역사와 함께 영화적 상상력으로 덧붙여진 내용을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된 19세기의 ‘세도정치기(순조/헌종/철종)’의 혼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소개되는데, <자산어보>와 <군도:민란의 시대> 그리고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이 시기의 특징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인 <덕혜옹주>를 소개하는 ‘고종과 순종’의 항목으로 조선시대에 대한 영화 소개는 막을 내리게 되는데, 저자는 영화에 형상화된 덕혜옹주와 왕실의 인물들이 실제와 다르게 미화되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어지는 항목에서는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봉오동전투>와 <밀정>을 소개하고 있으며, ‘1930~40년대’는 <암살>과 <동주> 그리고 <군함도>를 중심으로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과 힘겨운 삶을 살아냈던 사람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영화의 내용과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어지는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제시되고, ‘산업화’를 거쳐 ‘급변하는 권력과 독재’라는 항목에서는 유신 정권의 몰락과 5공 정권의 수립 그리고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하는 <서울의 봄> 등의 작품들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서술하고 있다. <변호인> 등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 대해 성찰하고 있으며, 마지막 ‘전쟁과 평화’ 항목에서는 <연평해전>을 소개하면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을 강조하면서 마무리되고 있다.
아마도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이 책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들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영화에서 역사는 여전히 중요한 소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최근 관객 수 1670만 명을 넘겨 지금까지는 한국 영화사에서 2번째의 흥행 기록을 세운 <왕과 사는 남자> 역시 비운의 왕 ‘단종’과 그의 마지막을 지켜줬던 ‘엄흥도’를 중심으로 한 역사 사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와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긴 하지만,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그들이 펼치는 일상을 형상화한 내용들은 작가와 연출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원석을 골라 보석처럼 빛나는 작품을 만들어 낸’ 작가와 연출가의 몫이 있다고 하겠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서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아울러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 https://cafe.daum.net/Allwithbooks )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