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의 「동경」은 제15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현대문학》 1982년 4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소설은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을 잃고 정년 퇴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의 초여름 어느 하루 낮시간을 통해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년의 쓸쓸함과 죽은 아들에 대한 추억이 어느 하루 무덥고 나른한 오후에 펼쳐지고 있다. 아내는 쓸모가 없게 된 남은 밀가루로 나쁜 꿈을 모조리 잡아먹는 맥을 만든다. 이들 부부에게 삶이란 나쁜 꿈과도 같다. 동경은 옛사람들의 껴묻거리 중의 하나인 구리거울을 말한다. 오정희는 특유의 시적 문체로 그의 소설 안에서 현실과 기억, 꿈과 사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일상과 가정의 울타리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른이 아이의 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형식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서 동심의 의미를 헤아리고 있다는 점에서 유년기 회상의 현재화라 할 수 있다. 실체 없는 영혼의 목소리로 내화될 수밖에 없었던 자궁의 공간과 영원한 시간, 과거로서의 유년기는 아이의 삶을 일상의 눈으로 성찰하려는 화자의 태도에 의해 현재의 시간속에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거울은 자아성찰, 혹은 정체성 확인의 의미를 지닌다.거울은 이런 관습적 의미외에도 아들과의 동일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모에게 있어서 자식과의 동일시는 일종의 나르시즘이다. 그의 아들을 묻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비추어볼 대상을 잃었다. 또한 거울은 화자가 죽은 뒤에도 명석하게 빛날 틀니와 연관되어있는데 그것은 영로와 화자의 육체가 썩어 없어진 뒤에도 소멸하지 않을 흔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거울은 까마득한 미래에도 소멸하지 않을 영원한 과거이다. 존재와 부재 사이를 넘나드는 경험으로 일상적인 삶 중에서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ꡐ거울ꡑ이다. 거울 속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그 속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히 보이지만 나는 그에게 이를 수 없다. 그리고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이면 거울 속의 나는 사라지고 아무도 없다. 거울에 비친 영상은 눈앞에 있는 듯하나 멀고 닫혀진 세계다. 이처럼 거울은 죽음의 예감 같은 섬짓한 사라짐의 은유가 되곤 한다. 또한 거울은 옆집 아이의 만화경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옛사람들이 우주의 원리와 이치를 통해서 옆집 아이의 눈부신 생명력과 대조되는 아들의 짧았던 생과 자신의 멀지 않은 죽음을 바라보기이다. 그러나 아내와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든가 틀니가 홀로 무언가 말하려 한다는 결말은 자아와 타자 혹은 대상 사이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밑바닥에 죽음이 보일 듯한 거울은 어둠 저편으로 ꡐ열리는ꡑ 깊이를 알 수 없는 ꡐ문ꡑ이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거울의 문은 열리는 듯'하면서도 또한 ꡐ닫혀ꡑ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죽음이 그렇듯이. 삶이 그렇듯이. 서로 상이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지던 갈등 구조가 현재속에 통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언어적 갈등으로 이해되었으며 화자가 외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과 언어적 차원에서 겪는 불화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결말은 이러한 시공간구조가 아직 불완전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소설은 시간의 밝음에서 어둠으로 옮아가는 ꡐ불분명한 ꡑ 시간적 구조로 씌여졌다. 이 불분명함, 불투명함, 모호함은 무서운 전염성이 있다. 그것은 빛과 어둠, 이편과 저편, 현실과 꿈, 이승과 저승 의 시간적 공간적 경계를 불분명하게 한다. 즉ꡐ미래의 탄생ꡑ과 ꡐ미래의 죽음ꡑ이 동일한 문장 속에 묶여짐으로써 탄생과 죽음의 뗄 수 없는 표리관계를 말해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인상깊은구절] 땅 속에 묻혀 천년 세월을 산, 이제는 말끔히 녹을 닦아 낸 구리 거울을 보자 그는 자신이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옛사람인 듯 느껴졌었다. 관람객이 한 명도 없이 텅 빈 전시실에는 두꺼운 양탄자가 깔려 있어 자신의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었기 때문이라고, 어둡고 눅눅한 회랑을 걸어나오며 그는 잠깐 스쳐간 괴이한 기분에 대해 변명하였다.
아이는 마당에서 공처럼 뛰어다니며 거울을 비쳤다. 아내는 겁에 질려 마루로 올라왔다. 거울 빛은 마루턱에 늘어서 하얗고 단단하게 말라 가는 짐승들을 지나 재빠르게 아내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구겼다 편 은박지처럼 빈틈없이 주름살진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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