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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해 꼼짝달싹 못할 때에는, 그것이 나중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지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반드시 무언가 얻은 것이 있을 겁니다. 그 당시에는 아무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110페이지)
이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나. 나중에 되돌아보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난 후에, 많은 것이 떠나간 후에, 사라진 후에야 알 수 있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럼 그렇게 지나간 시간과 많은 것은 어떻게 되찾아야 하는 건지 답이 없다. 아니, 그렇게 들렸다. 막연하게 하는 말은 내 입에서 맴도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인문학자까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암담했다. 너무 느긋하게, 아무런 불행도 겪어보지 않은 채로, 그냥 다 잘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좀 삐딱해졌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런 느낌도 잠깐이었다. 뭔가 위로와 토닥임을 건네는 듯한 그의 말에, 근거 없는 안도감까지 밀려오는 것처럼 잠시 멍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차근차근 말하는 투가 지루한 설득처럼 들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차분히 들을 수 있어서 진중하게 들리는 그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흔하디흔한 단어처럼 들리는 ‘마음’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 어떤 힘을 얘기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모습과 접목하려 하는지 기대됐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토대로 저자의 마음 이야기는 시작한다. ‘왜?’ 왜 굳이 그 두 책으로 마음의 힘을 꺼내려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강상중의 책을 끝까지 읽은 게 없어서 아쉬운 마음에 펼쳐 들고 싶었던 이유가 크다. 두 책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저자의 이 책으로 같이 얘기 나누는 듯한 느낌을 받을 듯하다. (아마 독서토론 하는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마음』이나 『마의 산』을 읽지 않았다고 해서 저자의 이야기를 소화하거나 공감하기에 무리가 되진 않는다. (책의 뒷부분에 두 책의 대략적인 줄거리가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다) 『마음』의 주인공 ‘나’(선생을 지칭하는 ‘나’와 선생의 유서를 받은 ‘나’)의 생각과 『마의 산』에서는 요양소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는 주인공 한스의 여정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야기의 토대로 삼는다. 답 없는 고민과 방황으로 세월을 보낸 것처럼 보이는 두 주인공의 삶을 비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혹은 모양에 관한 언급은, 잠깐 이렇게 돌아가도 괜찮다는 말을 대신하는 것으로 들린다. 저자 자신이 재일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와 고민이, 성장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러서 이런 삶의 자세를 만든 게 아닐까 추측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지금 그의 모습은 이런 말을 해도 좋을 것처럼 안정되어 보이니, 괜한 믿음에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 과거의 그러한 시간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삶의 연속성으로 해석된다. 그 의미를 담아 이야기를 계승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마음이란 것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건지에 대한 나름의 자기 이해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20페이지)
사람은 생물이기 때문에 죽어 버리면 당연히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그 끝나 버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받은 누군가가 있어서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주고, 그걸 떠맡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일이 계속된다면, 죽은 사람의 인생이 그냥 끝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영원이 되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계승됨으로써 그저 사라질 줄 알았던 누군가의 삶에, 다시 한 번 생명의 등불이 켜지는 것입니다. (166페이지)
『마음』과 『마의 산』 두 작품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100년 전의 두 청년이 마주한 현실과 지금 우리가 보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서, 유예(모라토리엄)의 시간을 인정하고 보듬게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가 걸어온 인생과 그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소설 속에서 ‘나’와 한스는 그 후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갔는지 말하진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이 덧붙여진다. 두 사람이 만나 대화하듯 풀어가는 소설 형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드러낸다. 과거의 그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항로가 불가능했을 거란 것. 소설 속 청년들이 평생 붙잡아 묻고 있던 질문과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의 길이 그들의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으로 저자의 말을 전한다.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방황하던 자신의 청년 시절에 버팀목이 되어준 두 소설과 함께 이야기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야기의 계승이야말로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거라고. 세대를 뛰어넘어 삶의 바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입버릇처럼 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불안은 친숙하고, 희망은 멀어진 단어이며, 대책 없는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좌절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손 내밀면 누군가 잡아줄 사람이 없다는 관계의 어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엇보다 돈이 우선시 되는 현실이 앞을 캄캄하게 만들기 일쑤다. 그런 세상에서 남들보다 다르게, 느리게 간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저자는 그 부분에 대해 충분히 걸어도 좋을 시간이라 말한다. 마음은 시대와 함께 있으며 마음 안에 자리한 시대의 질병과 고민을 치유하면서 가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때로는 삶을 리셋할 수도 있고, 지금 가진 것을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는 확신을 할 필요도 있음을 시사한다. 복수의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으니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그저 무의미한 달리기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것. 지금 그렇게 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의미 없는 개념에 끌려다니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다.
그리하여 저자는 모라토리엄을 권한다. 두 소설 속 ‘나’와 한스가 머물렀던 공간과 시간. 한스가 아무 의무감 없이 몸과 마음을 뉘였던 요양소 같은 곳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서의 7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가 사람과 세상을 배울 수 있었던 최적의 시간과 장소가 아니었나 싶은... 너무 한가한 소리처럼,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충전의, 성장의 시간으로 자리할지도 모른다. 그런 시간도 필요함을, 가져도 좋음을 말한다. 남들에게 떠밀리듯 조급하게 가는 길이나 다른 이의 말에 휩쓸리는 시간들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저자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의 시선에, 남들의 말에 휩쓸려 살아가는 인생으로 머물지 모른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정작 나를 나로 살아가게 하는 건, 나 자신의 마음이 발휘하는 힘이 아닐 텐가. 그러니 나 자신을 위한 유예가 때로는 필요한 것임을 상기하게 한다.
그날 이후로 우리들은 어디를 어떻게 지나 지금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나는 또 버려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또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으로 쓸려와 버린 것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133페이지)
두 소설과 이 책 속의 또 다른 소설로 인생길에서 저절로 보일 수 있는, 메마른 우리 마음의 치유를 위한 힘을 끌어낸다. 저자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그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과 이어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 이야기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새겨 넣으면서도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을 권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고, 이어가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훗날의 언젠가, 누군가 읽고 계속 이어받아 가길 바란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내 안에서 머물고 우러나고 힘을 발휘하는 마음뿐이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 마음을 나누며 함께 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 위해 저자와 같은 목소리가 계속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눈으로 보이지 않은 마음의 작용과 용기를 다독이기에 충분한 멘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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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선 두 권의 책을 앞서 읽었어야만 했다. 하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다. ‘마의 산’은 제목은 익히 들어보았으나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나쓰메 소세키의 저서는 솔직히 그런 책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이 왜 나는 이 책을 접했던가! 이전에 읽은 저서들로부터 일종의 믿음을 얻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 일본 이름을 쓰고 일본 학교에 다니며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한국을 방문한 후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저자. 프로필을 볼 때마다 나는 딱히 고민할 것 없는 내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음을 느끼곤 했다. 존재 자체가 심오함이었던 저자에게서 쏟아지는 글은 성찰의 결과였다. 이번 작품 또한 다른 작품들의 연장선 상에서 받아들여도 좋으리라. 기존의 작품들에서는 보기 힘든, 전혀 다른 시도를 한 이번 작품을 나는 저자의 정체성에 기대어 받아들였다. 시작은 아들의 부재였다. 부모는 산에 묻으나 자녀는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슬픔은 통제 불가능한 괴물처럼 거대해져 일상을 짓눌렀다.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저 이론에 불과했다. 아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그리워하는 저자에게 오래전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음’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 스승과 제자의 기묘한 관계가 주를 이루는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불안과 마음, 어쩌면 본능에 충실한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스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저자에게 삶의 진실을 털어놓았고, 스승이 짊어지고 살아온 삶의 무게까지 이제는 제 것으로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만 하는 제자는 스승의 진심을 깨닫기엔 아직 너무도 어렸던...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저자가 처한 현실과 꼭 닮은 꼴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소설을 읽고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아들의 부재가 주는 혼돈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필수 과정과도 같았다. 전혀 다른 문화권, 다른 배경이 쓰인 작품인 ‘마의 산’이 등장한 건 조금 의외였다. 토마스 만은 작품을 통해 20세기 유럽을 바라보았다. 전운이 감돌던 불길한 시대는 소설 속 인물이 경험한 세상에 곧이곧대로 반영되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요양원에 모여든 사람들은 한 때 얼마나 부자였으며 어떠한 일에 종사했는지와 상관없이 오로지 죽음을 준비할 뿐이다. 눈으로 뒤덮여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이 곳은 평온을 가장한 긴장으로 한시도 자유롭지가 못하다. 이런 분위기로부터 탈출하려면 결국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한스 카스토르프는 마의 산에서 7년을 보낸 후 전쟁터로 보내진다. 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두 작품 간의 연결은 한 인물은 여전히 스승에 대한 갈망에 떨고 있고, 다른 인물은 혼란스러웠던 시절을 뒤로 했을 때 이루어진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건 직, 간접적으로 죽음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두 인물은 마음이 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설정된 연령대로 인해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일방적으로 교훈을 제공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될 수도 있었지만, 오래도록 외면해온 다보스 결핵 요양소로 손자 히페를 데려 가는 한스의 모습에서 우린 ‘치유’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병이 낫기 위해선 그 병을 직시해야만 한다. 오래도록 마음속을 떠돌고 있던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그 감정들을 선사한 장소를 바라보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기 힘든 시대다. 우리는 소설 ‘병신과 머저리’의 등장인물들보다도 어쩌면 더 원인을 알 수 없는 내상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내 상처를 대신 짊어져줄 사람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경쟁 일변도 속에서는 자신이 아프다는 것조차도 드러내어선 안 된다. 내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상대는 거대한 괴물로 돌변해 나를 잡아먹는다. 바람과 달리 나는 무너지고야 말 것이라는 현실을 너무도 잘 알아서 우리는 차라리 침묵하길 택한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 순간조차도 나에게는 ‘마음’이 존재한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다루기 힘든 질풍노도와도 같은 마음은 결국 내가 다스려야만 하는 영역에 속한 무언가다. 혼란스러운 시대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것은 철저히 내 몫이다. 어찌 보면 다행이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조차 남에게 의존해야만 한다면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기 힘들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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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어 나온 강상중의 신작 <마음의 힘>. 추천사에서 ‘강상중의 힘 3부작’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는데, 마지막 권만 읽은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나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준 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더욱 전작에 대한 기대가 커지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가장 많이 남은 이야기는 바로 ‘대안이 없다’라는 것이다. 산업화와 세계화는 사람들의 삶을 극도로 밀접하게 만들어주었다. 미국에 있는 친구와 쉽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문화의 경계가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획일화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자고 제안을 한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의 지나치게 획일화되다 보니 나만의 개성이라는 것을 쉽게 찾기 힘들다. 도리어 남들만큼 하고 살아가는 데도 숨이 가빠오는 그런 세상이랄까? 심지어 하루가 지나기 전에도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에는 어디쯤이 나의 목표인지 확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에게는 점점 다른 선택지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고, 무한경쟁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너무나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과 에세이가 교차되는 구성으로 흘러가는 <마음의 힘>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속의 주인공들의 만남을 이루어낸 소설 <속 마음> 그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결함을 마음이 없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없는 시대가 되기까지 그 시작이 바로 100년 전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던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 시대를 살아간 평범한 하지만 소외된 주인공들의 시간을 새로운 소설 속에서 흘러가게 만든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산시로>이지만, <마음> 역시 꽤 여러 번 읽어보기도 했고, 고독한 지식인의 내면을 그려내는 면에서는 산시로와 꽤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라는 소설이 나에게 무척 낯설다는 것이다. 다행히 작가는 그런 부분을 충분히 인식하고, 책소개를 더해주고 있어서 조금은 버벅거리기는 했지만 얼추 따라갈 수는 있었다. 미리 그 소설을 읽어보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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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 - 강상중 지음
마음이라는 말 보다 사전에도 없다는 '진정성'이 더 자주 들리는 요즘, 마음이 뭘까, 도대체 마음의 힘이 뭔지 궁금했다. 마음 그 자체에는 긍정적인 의미도, 부정적인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혹은 이해해왔던 '마음'은 그저 '본심'에 가까웠다. 강상중 교수님의 소설 '마음'은 내게 '도끼'와 같은 책이었다. 얼어붙었던 마음,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웃해야하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깨뜨려주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시작으로 전작들을 찾아보고 출판사에서 1시간이 채 안되는 짧은 강연 CD(작품 [살아가는 힘]부록)를 보고 신간을 기다려왔다. 소설 '마음'이 일부를 깨뜨렸다면 뭔가 좀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소설 마음이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오마주로 쓴 책이라면 신간 [마음의 힘]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두 작품의 [ 그 후]를 창작하고 부연 설명을 곁들인 책이다. 나처럼 전작 소설만으로는 부족했던 이들이라면 읽으면서 교수님의 의도와 그 마음을 어떻게 사용해야 '힘'이 되는지를 알게 해준 작품이다. 두 소설 모두 100여년 전 1차세계대전 시대의 이야기다. 그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선택한 것은 그 때와 지금 현재의 분위기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서라고 말한다. 다름아닌 마음이 쇠락하고 상실되는 때인 것이다. 나쓰메소세키의 작품속 화자인 '나'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딱히 '꿈'이라던가 '열정'은 갖고 있지 않다. 학교 교육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고 졸업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하게 만난 '선생'에게 매력을 느낀다. 진짜 선생도 아니고 선생이라고 부를만한 직업도 없지만 분명 그에게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우고 있고 그렇게 밖에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집에 무작정 찾아가 공부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점점 더 그의 과거,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를 다녔으면서도 직업을 갖지 않고 삶의 의욕 없이 살게 된 까닭을 알려달라며 조른다. 선생은 그에게 진지한 사람이냐고, 믿어도 되겠냐고 확답을 받고 '나'가 위독한 아버지를 보러 고향집에 간 사이 유서와 같은 편지를 보내고 자살한다. 원작 소설은 그 편지를 읽으면서 끝이난다. 또 다른 소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한스'라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나'처럼 뚜렷한 목적이나 꿈이 없는 사람이다. 결핵으로 요양중인 사촌 병문안을 간 곳에서 자신의 병을 알게되고 7년간 요양하며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에게 '선생'이 있다면 '한스'에게는 '요양원 친구들'이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을 비교하며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힘'을 풀어서 설명해준다. 그 두사람이 우연찮게 일본에서 해후하는 내용을 담은 [그 후]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각자 1차세계대전과 벗들을 상실하면서 얻어진 공허함을 견디며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 바로 마음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마음의 힘은 특별한게 아니라 오히려 '평범'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평범은 보통보다 조금 못한, 특출나지 못하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어느것을 해도 나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다시말해 삶은 계속해서 시련이 다가오고 그 상황도 제각각인데 요즘 우리사회는 오로지 한 가지 대안만이 정답이라고 강요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비난하고 스스로 그 고통속에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평범한 이들은 다양한 어려움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힘'으로 잘 적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터득할 수 있기에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일정시간 현실에서 떨어져서 살아갈 수 있는 '시기 혹은 장소'가 필요하며 그런 자신을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상대는 '선생'이 될 수도 있고 요양원에서 만난 '환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이어가려고 하는 의지 역시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
참고문헌과 역자의 말을 제외하면 200페이지가 안되는 분량을 아껴가며 읽었을만큼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참 중요했다. 읽고서 '마음의 힘'이 무엇인지, 어떻게 기르고 그 힘을 어떻게 현실에 끌어들여야 하는지 깨달았지만 이것을 읽지 않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마치 내가 전달자가 된 것처럼-누구도 바라지 않았는데 홀로 고민했다. 부족한 필력을 탓한들 의미없을테니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현재 힘들다면 혹은 당장 내일부터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가고자'한다면 꼭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책을 읽고나면 분명 그대도 [살아야하는 이유]와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힘]을 찾아읽을 테고 비로서 '마음의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 구절 :
'위대한 평범'에는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쉽게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140쪽
사람은 생물이기 때문에 죽어 버리면 당연히 그걸로 끝입니다. 하지만 그 끝나 버린 인생에 관한 이야기 를 다른 이에게 전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 주고, 그걸 떠 맡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일이 계속된다면, 죽음 사람의 인생이 그냥 끝났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166쪽
진지하기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 속에서 고민하는 힘이 자라납니다. 이 고민하는 힘이야말로 '마음의 힘' 의 원천입니다. 187쪽
추천도서 : [살아야 하는 이유 / 강상중] [고민하는 힘 / 강상중 ] [마음 / 강상중] [마의 산 / 토마스 만] [마음 / 나쓰메 소세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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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소설 속 등장인물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속 마음'이라는 저자의 소설과 저자의 에세이가 교차되며 씌여진 글이다. 두 소설 모두 읽어보지 못했고 어떤 내용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 이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을까, 의심스러웠지만 저자가 잘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그 두작품을 읽고 저자의 '마음의 힘'을 읽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저자는 "'마음'이라는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이고 또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걸어왔는가, '그리고, 그 후로' 어떻게 살아갈 건가 하는 나름의 자기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라고 말하며 '마음의 힘을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보자며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책을 읽기전 '마음의 힘'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본다. 뭔가 강한 결의같은 것만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차근차근 글을 읽다보니 굳고 강한것만을 떠올렸던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되었다. "지금 사는 삶이 그리 힘들다면 리셋하는 게 좋지않나"(67)라는 말에서 한참을 멈춰 있게 되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다면, 집단 따돌림으로 학교 생활이 힘들다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면 차라리 그 공간을 떠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면 어떤가 라는 말이 그저 현실을 회피하라는 말이 아니라 현실을 버텨낼 수 있는 강한 마음의 힘을 갖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에 신부님이 쓴 책을 읽으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더욱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면 용서의 마음이 생겨날 때까지 잠시 그 사람과 거리를 두라는 말에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지만 나 자신의 현실에서 그 체험의 놀라운 결과를 느꼈던 것처럼 저자가 이야기하는 '마음의 힘'을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의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복수의 선택지를 상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며 또 하나의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 그러니까 "아무리 의지가 강해도 다른 선택지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취약하고 유약한 사람이라도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강하다"라는 말을 떠올려본다면 지금 내가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현실이 나의 전체이며 결과의 마침표가 아니라는 것도 생각해보게 된다. 삶을 리셋한다는 것이 완전한 백지상태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한 걸음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마음의 힘을 키운다는 것은 그 한 걸음을 더욱 힘차게 내딛을 수 있는,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을 말하고 있음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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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미학의 대가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꼽는다. 그는 모든 문명을 거절하고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2년 넘게 살았다. 그 곳에서 스스로 경작하며 생활했다. 어떻게 보면 고작 2년 기간 동안이었다. 그가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실제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 사람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책으로 나온 그의 삶과 철학은 그 후에 무위 대표로 떠올리게 되었다. 난 윌든을 읽었지만 사람들이 칭송할 정도로 대단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는 못했다. 강상중 작가의 <마음의 힘>을 이야기하지 않고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강상중 책을 읽을 때 마다 나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사상을 느낀다.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 삶을 살다 한국에 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삶을 살아간다. 평생 그 굴레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어느 곳에 끼지 못했지만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았던 소로와 닮았다. 강상중 책을 읽을 때 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만 알면 된다. 그가 쓴 거의 모든 책은 이 두 작가의 사상이나 글이나 책에서 출발한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자신이 할 이야기를 두 사상가의 - 소세키는 소설가지만 - 목소리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생각을 곁들인다. 매 책마다 두 사상가를 끌어들이지만 매번 다른 책을 끌어들여 말한다. 단,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 강상중이 하는 이야기는 내가 볼 때 두 가지 중요한 중요인자가 있다. 하나는 자이니치로 삶을 살아가며 경계인으로 느끼는 감정이다. 또 하나는 사랑하는 아들의 자살이다. 이 두가지를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골국 우려내듯이 주구장창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강상중이 하는 이야기가 좋다. 그렇기에 매번 이렇게 그가 발표한 책을 찾아 읽는다. 전작주의다. 어딘지 음울하고 읋조리듯이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 귀기울여 듣는다. 한편으로는 나도 그렇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오로지 홀로. 현재 그 어느곳에서 속해있지 않다. 회사를 다니지도 않는다. 의외로 투자를 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만난다. 내 경우는 그렇지도 않다. 굳이 만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일부러 내가 막 사람들에게 연락해서 만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자주 경계인이 될 때가 많다. 좋게 표현할 때는 누구 편도 속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나를 만날때 경계하지 않는다. 반대로 누구 편도 아니라 중요한 결정(?)은 전혀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된다. 강상중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것처럼 나도 굳이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지만 나 혼자 열심히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열심히 떠들고 있다.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리뷰를 통해, 책을 통해. 가끔은 강의를 통해. 쓰고보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는 것이다.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심각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이번 <마음의 힘>은 나쓰메 소세키는 - 책은 마음 - 변함없지만 막스 베버 대신에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 중요한 모티브다. <마음>책의 가와데 이쿠로와 <마의 산>책의 주인공인 한스 카스토르프가 등장한다. 두 명이 몇 십년이 지나 같은 공간에서 만나 서로 옛날 경험을 갖고 이야기한다. 그 후에 다시 강상중이 부연설명을 하는 스타일이다. 고백하자면 이전 책에 비해 이번 책은 다소 다가오는 울림은 적었다. 마음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한다. 현대인들은 마음 병이 크다고 한다. 과연 현대에 와서 마음이 더 아픈 것일까. 내가 볼 때 그것은 아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다. 다만 예전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알지 못했던 것을 인지하고 깨달으면서 마음이 아파다는 표현을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닐까. 자기 중심이 없는 현대인이 아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전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자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마음이 더 아프다. 이니시에이션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전수라는 표현이다. 마음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단어다. 마음은 전달하는 것이다. 마음은 알아주는 것보다는 - 그러면 참 좋겠지만 불가능하니 -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한다. 전달해야 상대방이 알아챈다. 전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니 마음이 아프다. 마음을 전달하는 것도 알아주는 것도 참 힘들다. 내 맘같지 않으니 힘들다. 에고, 자꾸 글이 어긋난다. 마음이 무겁다. 매 책마다 200페이지 정도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부피는 되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데도 정확히 자신이 할 말만 한다. 굳이 필요없는 말을 더 늘려하지 않고 담백하고 꼭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런 문체때문에 강상중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내 문체가 담백하고 짧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서(라고 썼는데 맞나?). 특정 작가의 책을 연속적으로 읽다보면 어느 순간 하는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강상중의 <마음의 힘>은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다른 책이 비해 좀 덜했다. 까칠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다소 낯선 스타일이라서. 친절한 핑크팬더의 한 마디 : 마음은 전달하는 것 함께 읽을 책 http://blog.naver.com/ljb1202/205261317 ![]() http://blog.naver.com/ljb1202/187066629 ![]() http://blog.naver.com/ljb1202/2200892895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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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주인공이 만나 대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두 소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살펴보자.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마음’을 잘 담아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세 개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1부에서는 선생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시작되며 왕래를 하며 오가는 대화를 담아내고 있고, 2부에서는 몸이 아픈 아버지와 대학을 졸업한 내가 고향에서 같이 살며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고 마지막 3부에서는 선생님이 자살하기 전 자신의 과거를 ‘나’에게 적어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고민을 했던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 물음의 첫째는 ‘타인과의 관계’는 과연 인간에게 필수적인가? 라는 생각이었다.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은 혼자서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면에서 생각해본다면 타인이라는 존재는 필수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감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에서도 모두 타인의 존재 없이는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런데, 두 번째 물음 ‘타인과의 관계’가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가? 라는 물음에서는 답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197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용어가 있다. 바로 ‘히키코모리’ 이다. 이는 틀어박히다라는 듯의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인데, 일본에서 등장해 1990년대 말부터 한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최소한의 인간관계만 유지하고, 최소한의 동선으로 바깥 세계와 관계하며 집에서만 틀어박히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병리적 현상으로 단순히 그들이 특이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 기피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높아진 취업의 벽 앞에 우리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한 없이 바닥을 치는 가운데 우리를 지켜주고 돌봐주었던 이들이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타인으로 변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적어도 한쪽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거나 기분이 나쁠 경우 이는 더 이상 ‘이롭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왜 작품의 제목의 '마'의 산인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마'는 죽음과 병마에 붙잡혀 절망하는 상태,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지루함을 달랠 소일거리만 찾아헤매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었다. 결국 카스토르프는 생동감이 넘치는 삶에 대한 긍정을 7년의 세월 끝에 찾기는 했다. 그것이 요아힘의 경우 온전한 자기 의지라면, 카스토르프의 경우 외부의 상황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보지만 어쨌든 그는 그 의미를 찾았고, 움켜쥐었다. 그 깨달음을 안은 그를 뒤로 하고 토마스 만은 슬쩍 뒤로 빠진다. 그가 의미를 찾아낸 것 만으로, 그의 병이나 죽음이나 그 밖의 생의 자잘한 굴곡들은 논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 소설에서 비춰지는 주인공을 특징짓는 단어는 “평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위대한 평범’이다. 이때의 평범은 ‘지표적인 평균치’가 아니라 “폭넓은 선택지 중에서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고른다”는 의미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도 하고 내 자신을 타인에게 투사시키기도 한다 관점을 바꾸면 미래가 바뀐다" 말처럼 일상적인 생각의 틀을 깨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게 만들어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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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이야기로 "마음의 힘"을 읽으라는 저자의 당부로 시작된 이 책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삶은 연속된 좌절점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좌절이라는 점을 한 발 한 발 딛고 넘어가는 중에 극복이라는 힘을 얻게 되지만 그 길은 결코 짧지 않다. 많은 좌절을 경험했을 때 만나는 것이 극복일까. 아니면 극복을 하다보는 좌절이 넘어갔을 까. 아무렇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그러나 좌절은 결코 인생의 마지막 정점에 이를 때까지 쫓아 다닌다.
저자는 수많은 인생들을 보면서 자신과 같은 질문과 과정을 겪고 있음을 보면서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요하다. 삶이란 결코 녹녹하지 않다. 어려운 돌밭을 홀로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 먼저 개척한 후에 부른 것이 인생이 아니다. 철저히 혼자만의 힘으로 개척한 후에 인생의 문을 닫는다. 한번 갔던 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방통로이다. 그게 인생이다. 연습도 할 수 없는 연속된 과정이 인생이다. 그 인생을 누구나 걷고 있다. 어느 누구도 거절할 수 없다. 가야만 한다. 주저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인생은 가게 되어 있다. 가는 인생, 가야만 하는 인생에 가장 큰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은 마음이다. 가고 싶지 않고 멈추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답이다.
멈출 수 없는 인생의 답을 알고도 거부할 수 있을까. 거부한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이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인생이다. 그 인생론을 강상중은 마음의 힘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한다. 두 청년이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인생에 의미를 찾아 가는 것이 색다르다. 저자는 고전의 "마음"과 "마의 산"을 통해 인생론을 현대인들이 읽을 수 있는 시야에서 펼쳐간다. 자신이 고민했던 인생을 고전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인생은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말한다.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인생의 의미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잃고 살아가기에 허무하기 그지 없다. 그렇지만 의미를 아는 인생은 많지 않다. 많지 않는 인생들에게 우리는 마음이라는 힘을 통해 더욱 진지한 인생의 길을 걷는 이들을 보게 만든다.
이 책을 통해 오랫만에 인생론을 통한 인생을 보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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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2세로 『고민하는 힘』과『살아야 하는 이유』를
통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불안한 우리 시대를 깊이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물으며 희망을 전해주던 강상중
작가가 고민 시리즈의 3부작과도 같은 『마음의 힘』을 냈다. 과거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계승하는 것에서 살아가는 힘을 말하는 이번 책의 설정이 조금은 특이하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마음』과 토마스 만의 소설『마의 산』에 등장하는 두 청년이 시간이 흐른 뒤 만난다는 설정으로 가상의 대화를 통해 그들은 시대의 공격으로부터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살아갈 힘을 얻었는지에 관해 저자의 해석을 덧붙여 새로이 써 내려간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과거’를 해석하는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글로 배웠던 경험을 떠올려봐도 과거에 집착하거나 회상하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들은 바꿀 수 없기에 과감히 놓아버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현재만을 의식한 채 순간을
살아가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과거’ 속에는 분명 우리를 지탱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기억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 확실하게 존재하는 과거로 눈을 돌리고 그리하여 ‘마음의 힘’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선택한 것이다.
현재는 ‘희망’이 없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새로움과 발전이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처럼 주어진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성장 동력은 바닥이 났고, 빈부의 격차와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익숙함에 밀린 새로움에 관한 생각들은
사회적 안전망조차 보장되지 않는 불안의 시대 속에서 생매장 당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보장은
어느 시대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실패에 따른 리스크가 개인이 복구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어서
모두가 같은 조건을 달고 한 곳만을 향해 달리는 불안한 사회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나 비슷한 수준이다. 저자는 그런 불안한 젊은이들에게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의 방정식을 좇아 단 하나의 높은 이상을 꿈꾸고,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끝장이라며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일단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 보고 그게 잘 안되면 몇 번이고 뻔뻔하게
방향을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마음의
풍요라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얼마나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있느냐를 척도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것이 그가 소설 『마의 산』에서 한스 카스트로프에게 발견한 ‘위대한 평범함’이었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대안이 없을 때이다. 어떤
일이건 정답은 하나가 아니지만, 우리는 상식적으로 좋다고 하는 것 말고 나에게 알맞은 그 무언가를 찾아내지
못해 불안하다. 그럴수록 사회에서 인정받는 보편적 가치관에 쉽게 물들어 이상할 정도로 획일화된 생각으로
삶을 살게 된다. 점차 그 이외의 것들에 관해 생각해 보는 상상력은 줄어들고, 단 하나의 가치관이 무너졌을 때 도망칠 곳이 없다는 생각이 극단적인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저자는 바로 그 점이 가장 무서운 점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버리고
떠나도 인생은 계속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쥐고 있는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자신을 부정하곤 한다. 우리에겐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을 현실이라고
보지 않고, ‘또 하나의 현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위대한 평범’에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소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면서도 쉽게 ‘물들지 않는’태도를 꼽는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흡수하지만
‘세뇌되지 않는’것이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 생산성이나 합리성 같은 것과는 인연이 없는 세계에 풍덩 뛰어드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이는 마음의 성장기이며 충전 기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복잡한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나와 세상의 지배적인 가치관과 다른 자신만의 가치관을 찾아 나가는
데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부모이자 교육자인 저자가 모리토리엄을 권하는 이유이다. 나 또한
‘모라토리엄’ 기간을 거치며 한 사람의 가치나 시간의 의미가 ‘생산성’만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물론
저자 또한 소설 속 두 인물처럼 선택을 유예하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권하기는 하지만, 결국엔
앞선 경험을 가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선택이 중요하다.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 내 결정에 대한 가치는 뒤이어 따라오는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두 고전 속 인물인 한스 카스토르프와 가와데 이쿠로는 ‘마음을 잃기 시작한 시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자기 나름의 ‘마음의 힘’을 쥐어짜서 ‘진지하게’살았던 젊은이들이다. 진지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고민하는 힘이 자라난다. 이 고민하는 힘이야말로 ‘마음의 힘’의 원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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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교수의 책 <마음의 힘>은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 나츠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을 향해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그 원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나간다. 세계화의 진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획일화된 가치관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오로지 효율과 목표성취에만 높은 가치를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처없이 헤매여 보거나, 자신의 선택에 대해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미덕을 완전히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아쉬워하고 있는 작가는 시대와 마음의 문제, 마음의 실질을 키우기 위한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마의 산>과 <마음>의 '그 후'를 이어나간다. <단 하나의 가치관밖에 갖지못한 사람이 그 가치관이 무너진다면 도망칠 곳이 없다> 인류는 유성생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급격한 기후변화에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에도 그 일부는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사회는 진학, 취직, 연애, 생활방식 등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획일화된 가치관을 갖게되었다. 일본과 세계의 시대변화에 대해 그 흐름을 담담하고 진지하게 분석하고 있으며, 청춘들과 독자들을 향해 작가만의 진지한 이야기는 책의 분량이 짧음을 아쉽게 만든다. 소설<마의 산>, <마음>과 강상중교수가 이야기하는 <그 후>를 비교해보며 읽을 수 있고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고 전달하는 '삼각의 유사'는 비단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힘>전체에 담겨있으니 비록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문학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렇게 큰 별에서, 나의 평범함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고 현실에 대해 번뇌할 수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세상살이의 힘듦에 고민해 본적이 있는 독자라면, 획일화된 가치관으로 세계를 살아가기 힘들어하는 청춘들이 있다면, <마음의 힘>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는 시대와 마음의 고찰을 통해 큰 울림으로 위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