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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한숨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연락 오는 제자들 중에는 노량진 고시원에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시험 합격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젊은이들은 취업을 준비하며 철이 들어가고 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다른 것처럼 제 빛깔과 향기로 스스로의 삶을 꾸려갈 힘을 얻는 일은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반영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은 사치스러운 일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스무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의 시 읽기는 사랑과 이별을 담은 청춘의 시 서른 편을 해석하여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준다.
신경림 시인의 작품이 수능 언어 영역 문제로 출제된 적이 있다. 가난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마저도 접어야 하는 젊은이의 고통스런 삶을 통해 소외된 삶을 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이들에 대한 연대 의식과 유대감을 보여주었다. 물질적 결핍이 일상의 소소한 감정까지 외면하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가난한 이들끼리 연대하여 힘을 보탤 때 가난을 넘어설 수 있는 신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였다. 불가피한 실연이더라도 쉽사리 잊히지 않는 어긋난 사랑으로 상심하며 지내는 이들이 많다. 시간이 약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는 피멍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상대를 등지고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은 처연하다. 끝난 사랑은 떠나고 홀로 남은 자에게 끝내지 못한 대상을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어 애틋함은 더하다. 상처는 나의 체질이라고 위로하는 시인의 시구는 다시 용기 내어 사랑할 수 있는 동기까지 앗아가 버릴 것 같아 안타깝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과 생활하며 격세지감을 느낄 때마다 예전에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며 당시의 일화를 들려주며 공감을 끌어내 보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 급속도로 변화한 시대에 정주하는 대신 변화에 부응하는 언행으로 시대를 호흡하며 살아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밋밋한 일상에 젖어 몸에 익은 대로 행동하고 만다. 성년으로 자리하여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 데는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할 과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정을 거르고 쉽게 넘어가려 했던 적이 떠올라 괴란쩍기만 하다. 영속하는 시간 속에 젊음과 결별하듯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추억 속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전송하면서 / 살고 있네.’ 라고 노래한 마종기 시인의 연작시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발견하고 유한한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야 할 당위성을 찾는다.
감각 없이 사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을 즐기는 시인은 시적 감수성으로 정서를 구체화하여 굳어진 가슴에 동력을 불어넣어준다. 부조리한 현실이지만 짓밟힌 풀들이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동적인 삶을 구가하는 자기 갱신을 담은 김수영 시인의 풀은 언제 봐도 희망적이다.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 토대 위에서 선택한 방법대로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는 열망을 형상화하는 일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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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는 지난번 봤던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와 함께 장석주 시인이 시인의 시선에서 본 시 모음이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가 삶과 죽음, 인생에 대한 시 30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는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내가 이제 청춘이 아닌지라(ㅋㅋ 웃프네) <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쯤 품고 산다>가 좀 더 와 닿긴 했다. 지난번 책을 통해 늙음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면, 이번엔 왠지 모르게 침울해졌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는 언제 읽어도 공허해져서인지. 시인인 저자가 아직도 시가 뭔지 모르겠다 한다. 하지만 시는 전적으로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나 역시 적극적으로 공감! 그리고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라는 말에도... 가장 첫 시가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어린 시절 봤을 때와 달리 왠지 모르게 더 마음 아프게 다가왔던. 한편 나는 그런 결핍과 극심한 가난을 경험해보지는 않아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돈이 주는 행복이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돈으로 인한 불편함만 겪지 않는 삶이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요즘 청춘들의 바닥에 대해 기사로 많이 접하곤 한다. 너무 일찍 극심한 사회의 경쟁 속에 내몰리며 자본에 찌들어 있는, 그렇게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 그리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기형도의 시, '빈집'. 이 시는 언제 읽어도 좋다. 정말 가슴이 아려오고 나 역시 빈집에 웅크리고 갇혀있는 것처럼 황폐해지는... 돌아오지 않는 지나간 사랑... 결코 그 순간은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어딘가 웅크리고 갇혀버려서. 사랑이 떠나버린 이후에도 사랑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오늘의 사랑은 어제의 사랑과는 달라져있겠지. 더 견고해질 수도 있고 더 흐려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 순간 그 당시의 그 느낌은 절대 다시 오지 않기에. 당시의 그 사랑은 그대로 영원하겠지만, 그러나 이제 내 곁을 떠났을 뿐, 아니 내가 떠나왔을까? 지나고 보면 하찮게 보이는 그 어떤 순간마저도 그 순간은 우주적 변동을 부를 수 있을 만큼. 그리고 그랬던 사랑일수록 지나고 나면 더 회환이 남게 되지는 않을까.
스무 살이어서 청춘이 아니라 방황하기에 청춘이라고 한다. 시를 가까이하면 조금은 청춘에 가까워지는 거 같다. 감성과 사유를 자극하면서 왠지 뭔가 일탈하는 느낌도 들게 하고... 훗~ 열망의 실체에 보다 다가가기 위해서, 그리고 고갈된 어휘력을 보다 넓히기 위해서라도 시를 자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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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쿵'하고 와 닿았던 책이다. 어렸을때부터 혼자 알아서 하던 스타일이라 본의 아니게 '애늙은이'라는 말도 가끔 들었던 내가 이제와서 보니 '조금 더 어리광도 부릴껄 그랬나',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껄 그랬나'하는 생각들이 가끔 들때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더욱 공감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장석주 시인이 고른 30여개의 사랑, 이별, 청춘에 대한 시가 담겨있다. 시를 메인에 풀어놓고, 그 시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도 풀어나가고, 시에 대한 해석도 담겨 있고, 또 다른 시를 인용해서 풀기도 하고, 시의 저자들의 약력도 간단히 소개되고 있다. 제목이 끌려서 시작하긴 했지만 시를 평소에 읽었던 것이 아니라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다행히 제일 처음 등장하는 '가난한 사랑노래'에 공감할 수 있고, 조용히 읊조릴 수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어떤 시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어떤 시는 작가의 해석이나 이야기를 통해 이해가 되었고, 어떤 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등 재밌는 부분도 있고, 개인적으로 난해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 시를 평소에 가끔이라도 읽었더라면 조금은 더 많이 공감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시'라고 해서 꼭 그 의미를 파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데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의미 파악을 자꾸 하려고 했던 것이 재미를 반감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마다 어떤 글을 보고 느껴지는 것이 다르듯 '시'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아마 평소에 시를 읽는 사람이거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또는 있는 그대로의 느낌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느꼈던 감정보다는 더 많은 것을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가 있고, 작가의 이야기가 있고, 또 다른 인용시들이 있고 구성은 괜찮은 것 같다. 중간중간에 예쁜 일러스트 그림에 담겨있는 짧막한 문장도 정말 좋다. 순서에 상관없이 끌리는데로 원하는 부분부터 골라서 읽어도 될 것 같고, 한번에 다 읽기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다시 펼쳐서 읽어야 할 것 같다. 분명 펼칠때마다 느낌이 다른 책이 될 것 같다. 흐른 시간만큼 나는 또 변해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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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는 곧잘 시를 읽었다. 친구들끼리 필명도 만들어 부르면서 시를 쓰기도 했다. 그나이에 멀 안다고 그랬는지는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웃기기도 한데. 무서울것도, 두려울것도 없던 그때라서 가능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시에 담긴 뜻을 잘 헤아리지 못했어도 시를 좋아했었던 나였지만, 나이가 한살한살 먹어가다보니 생각이 달라져버렸다. 나이에 맞게 시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할꺼 같은 그런 생각들로 시를 더 멀리 해버렸다. 너무 어려서부터 나는 나의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왔다. 하고싶은것도, 사고싶은것도, 싫은것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그저 착한아이로 자라왔다. 나까지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될꺼 같다는 생각을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왜그랬을까 ? 누군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나에 희생을 고마워 하지도 않는데...나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 나에 삶자체가 무의미하게 변해버렸다. 대체 무엇때문에 그렇게 살아왔는지 ..... 그런 감정일때 이책을 만났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 감수성 풍부한 시인들의 시, 이책을 읽고나면 부질없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좀 진정이 될련지 이책으로 위로, 다독임을 받고 싶었다. 시를 마흔해가 넘도록 읽고, 쓰는 시인임에도 시가 뭔지 모른다고 말하는 장석주시인, 구구절절 시라고 뭐라고 가르치려 들지 않으려는 시인에게 나도 모르게 호감이 간다. 30명의 시인의 시를 소개하면서, 거기에 장석주시인께서 덧붙여 그시를 해설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혀 어렵지 않게 시를 만날수가 있다. 시가 어렵게 느끼져지는 까닭이 바로 그 시속에 담겨져있는 작가의 메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읽기에 어렵게 느껴지는것 같다. 꼭 작가의 뜻을 헤아릴필요가 있나 , 내가 읽고 느끼는 그대로를 생각하면 되는건데 ....서른편의 시가 물론 다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건 아니지만 그 시들이 시간이 좀 지나서 읽으면 또 다르게 느껴질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현재의 상황과, 경험해 따라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차이가 있기에 조금더 곁에두고 시간이 흐른뒤에 읽어도 충분히 좋을듯 하다. 몽환적인 일러스트가 시를 읽는 분위기를 풍겨주는것 같아서 좋고, 작가의 해설에 따라 시를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이 아니더라도 이책을 한번쯤 읽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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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감성이 부러울 때가 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시인들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읊어내는 시를 보고 나서야 내 안에도 존재하는 시의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 내가 그것을 먼저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내가 시인이 되었겠지? 부럽고도 아쉬우면서도 여러 감성이 교차한다. 장석주 시인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인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에 귀기울여보고 싶어서였다. 행간에서 어떤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을지 기대를 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시인은 궤도에서 이탈해 우주를 떠도는 혜성, 늦여름의 매미, 가을의 숲을 보고 뜻없이 짖는 개다. (5쪽) 그가 말한 시인에 대한 글이 먼저 나를 사로잡았다. 장석주 시인은 아직도 시가 뭔지 모른다고 한다. 시는 전적으로 무의식에서 솟구치는 우연의 산물이기에 심오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인이 시를 잘 모른다고 하니 왠지모를 안도감같은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살면서 시를 읽지 않아도 아무 문제는 없지만, 감수성과 취향의 세계가 풍성해져서 결과적으로 삶이 윤택해진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의 문장들은 시인 장석주가 『톱클래스』라는 월간지에 연재했던 글들 중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이 책에는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시작으로 고영민의 「오늘 한 일이라곤 그저 빗속에 군자란 화분을 내놓은 것이 전부」를 마지막으로 총 30편의 시를 소개해준다. 먼저 시의 전편을 읽으며 그 시 자체를 음미해본다. 그 다음으로는 시인 장석주의 시 해설이 이어진다.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편이 식재료라면, 각각의 시를 잘 꺼내 다듬고 요리해서 독자의 앞에 한 상 음식으로 차려낸 것은 장석주의 몫이다.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시를 맛보는 시간이다. 제대로 요리할 줄 모르는 식재료를 완성된 요리 형태로 맛있게 먹어보는 시간이다.
눈에 익은 시인보다 낯선 시인이 많은 것은 내가 시인에 대해 잘 모르고 시를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일테다. 낯선 느낌으로 시작해서 익숙한 듯 하다가 다시 낯선 느낌으로 마무리한다. 시인으로서 다른 시인의 시를 소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반 독자들이 시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오는 부분이 각각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어느 시인의 시가 가슴을 툭 치며 마음을 울릴 것이며, 누군가는 장석주 시인의 해설을 보고 공감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시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느 부분에서인가 휘감아도는 감상에 빠지게 되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느끼는 나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를 읽으며 여전히 시는 시인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왜 이런 시를 진작 알아보지 못했는지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렇기에 시인들의 다양한 소리를 접해볼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이 책에 수록된 시만을 읽으라고 했다면 어쩌면 자꾸 뒤로 미루다가 결국 여전히 읽지 못한 상태로 남겨두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나같은 독자에게 필요한 책이다. 요즘들어 누군가가 골라준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의 개인적인 생각이 술술 풀려있을 때, 결국 나도 나만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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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나의 맘을 끌어 안은 책...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청춘에게'....캬~~~멋있지 않은가... 솔직히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글들을 읽던 시절에도 시의 양은 그다지 많진 않았던 듯하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에나 잠깐 좋아했을까... 시의 깊이와 이해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쉬운(?) 글 위주로 읽었던게 사실이다. 그래서 간만에 접하게 되는 시에 대한 설렘이 컸다. 그것도 시인 장석주가 고른 시 30편이라고하니... 그 기대가 남달랐던 듯 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보니 그가 기고했던 시에 대한 칼럼들 중 선별해 놓은 모음집이었다. 시 위주로 그의 개인적인 감상 위주의 글일 것이라 기대했었는데...그 기대에서 벗어나서 조금 의외였긴 했지만...평론으로 읽는 시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몇몇편의 시들은 내가 이해하고 기억하는 내용과는 다른 방면으로 해석되어지는 신선함이 있었고,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던 시들은 장석주 시인의 해석을 도움받아 조금이나마 이해에 가까울 수 있었다. 또 무엇보다 좋았던건 새로운 시인들과 그들의 시를 접할 수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시인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그래서 시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은, 또 그닥 유명하지 않은(나에게) 시인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다만 시가 인쇄된 부분의 종이와 글씨가 너무 눈이 아팠다. 시보다 평론이 우선이라 그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나는 시도 편안하게 즐기고 싶은데...바탕색과 글씨가 너무 눈이 아프게(눈부시게) 인쇄되어있어 읽는동안 불편했다. 조금더 글씨가 선명하게 보였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어떤 시를 읽고, 그 시를 또 어떻게 읽을것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 시를 감상하는 법은 개개인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이런방법으로 읽을 수도 있구나...안내해 주는 책. 조금 어려운 듯하면서 재미있고, 사이사이 시인과의 개인적인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친근함을 주는 책. 그리고 낯선시인들에 대해 간략하나마 소개해주는 책. 그래서일까... 처음보는 낯선 시인들도 반갑게 다가오는 것은... 시 한번 읽고, 평론한줄 읽고, 시 다시읽고... 그러고나니...시가 다시보인다. 시인이 다시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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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를 접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책을 읽어보기 전에 그 질문을 먼저 떠올려본다. 기억조차 나지않을 만큼 참~ 오래되었다 싶다. 저자는 시를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을 가르는 차이는 모자를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 정도로 사소한 것일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시를 읽지 않는 삶보다 시를 읽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견줘 감정이 화사해지고, 감수성과 취향의 세계가 풍성해지기에 결과적으로 삶이 윤택해진다고 말한다. 요즘 나의 책 읽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자의 의도나 주인공의 생각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쓰여진 활자 그대로만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 탓에 책이 전하고자하는 감동, 지혜 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자 장석주의 '시인의 시 읽기' 시리즈가 행간을 읽는 법을 배우고, 감수성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데 도움을 줄 듯 싶었다.
시란 무엇일까? 노벨상을 받은 바 있는 옥타비오 파스가 쓴 『활과 리라』를 인용하자.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 시의 기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시적 행위는 본래 혁명적인 것이지만 정신의 수련으로서 내면적 해방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는 이 세계를 드러내면서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 시는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다." 나는 시가 앎이고 구원이며, 시가 다른 세계를 창조한다고 선뜻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가 "선택받은 자들의 빵이자 저주받은 양식"이라는 말에는 금세 공감한다. (본문 6p)
이 책에서는 '1장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2장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에 가장 젊은 날, 3장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더 먼저 일어난다'로 구성하여 각 장마다 10편씩의 시를 수록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이자 시인인 장석주의 시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다. 시를 읽어본지 오래된 탓인지 낯선 시를 읽고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장석주 시인의 해설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 수록된 불과 30편 밖에 되지 않은 시들을 끝까지 읽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장석주 시인의 해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해석을 하고, 행간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처럼 시 읽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장석주 시인의 해설은 시를 향해가는 하나의 길을 안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를 읽고 싶지만 어떤 시를 읽으면 좋을지 모르는 이들에게도 장석주 시인이 특별히 선택한 30편의 시 또한 특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 시인만의 매력, 시인이 시를 통해 전하려는 의도 등을 담아낸 저자의 해설은 또 다른 시인과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는 '시인이란 본질에서 약자의 편'(18p)이라고 표현했다. 그러기에 시는 독자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이기에 상처받고 절망하고 또 아파하기 한다. 짧지만 그 속에 담겨진 행간에 이러한 자신의 삶을 대입시킨다면, 공감하게 되고 또 위로받고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이영광의 '두부' 中)
서민들의 밥상에도 수비게 올라오는 두부지만 질긴 가죽도 없고, 단단한 뼈도 없이 흐물흐물한 두부를 노래하는 시는 드물다. 두부를 노래하는 시가 드물기에 이 시는 이색적이다. 두부는 각을 잡고 모가 나 있지만, 속이 무르고 한없이 나약하다. 외부에서 오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각이 허물어지고, 여지없이 형체가 으스러진다. 두부는 드잡이의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아무 저항 없이 속수무책으로 포식자에게 먹히는 피식자다. 시인은 두부가 되려면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 존재성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본래적인 자기가 되기 위한 엄숙한 의례가 있어야 함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다. (본문 198,199p)
이 바람의 몸속엔 한 방울의 물기도 없다
없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면 메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는다 없는 사랑이 가득 차오르면 바보처럼 자주 웃는다 (이경임의 '바람 한 줄기' 中)
물은 메마름을 적시고 생명은 회귀한다. 사랑은 물과 같다. 메마른 가슴을 적셔 생명의 약동을 가져온다. 웃음은 마음의 경직에 대한 반동이다. 증오와 공포와 역겨움 따위가 마음이 경직을 하는 원인이 되었을 테다. 그 눌려서 주눅이든 마음이 웃음으로 말미암아 펴진다. 웃음이야말로 증오와 공포와 역겨움을 이겨낸 생명의 가장 큰 약동이 아닌가! (본문 310p)
시를 잘 모르지만 읽을 때 조금이나마 생각했던 의도와 저자의 해설이 닮아있을 때, 혹은 너무도 달랐을 때 마저도 시를 읽는 즐거움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다를 때는 다른 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닮았을 때는 더욱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음에 마음이 풍성해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앞서 인용했던 '시는 앎이고 구원이며 힘이고 포기이다'라는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공감이 된다. 이는 바로 장석주 시인의 해설이 '시'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직은 나만의 생각으로 행간을 읽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장석주 시인의 '시인의 시 읽기'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누구나 가슴에 벼랑 하나를 품고 산다>를 틈틈히 읽다보면 오롯이 나만의 생각으로 '시'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그렇다면 곧 내게 시가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날도 머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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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다니는 작은 수첩 첫 페이지에 적어놓고 들여다보는 시가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입니다.
그렇기에 장석주 시인이 고른 30편의 시가 담긴 이 책을 보자마자 설레임으로 기다렸지요.
책띠에 적힌 글귀 "사랑을 아는 나이 비로소 시를 읽다"
p.5"...분명한 사실은 시를 읽지 않는 삶보다 시를 읽는 삶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는 점이다."
시인은 시를 찾는 사람의 곁에만 자리한다는 말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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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7일 새벽 3시 30분경...
장소는 서울 종로2가 파고다극장...
그 새벽의 심야극장에서 한쓸쓸한 영혼이 이세상의 모든 번민과 고뇌를
훌훌 털어버리고 마치 학이 되어 날아가듯 저하늘 위로 날개를 훨훨저어
날아갔던 것이다.
그 슬픈 영혼의 이름은 기형도...
중앙일보 문화부기자로 일하면서 기사들도 시적으로 썼던 그...
그렇게 맑은 영혼과 초롱초롱하고 순수한 눈동자를 가졌던 그가
이리도 허망하게 떠날줄이야...
스물아홉나이에 뇌졸중이라니...
안타까움만 들뿐이네...
네 저는 장석주시인께서 저술하시고 <21세기북스출판사>에서 출간된
이책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에 나온 30분의 시인들이 쓰신
30편의 시들 잘감상했습니다.
근데, 저는 이 시들중에서 이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라는 시를 다시
한번더 읽고서 쓸쓸함을 금할 수 없었고 또 기형도시인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니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형도시인이 허망하게 우리들곁을 떠난지 두달이 지난후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출간되기도
했으니... 그시집이 나온거라도 보고갔으면...
안타까운 생각만 들뿐이었습니다.
저는 일찌기 이 <입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집을 구입해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라는 시에
수록된 그의 대표작인 <빈집>이라는 시를 찬찬히 읽고서 그 사랑을
잃은 후의 공허함과 절망의 몸짓에 더욱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시를 다시한번더 읊어보았습니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다시한번더 이시를 찬찬히 음미해보니 너무나도 애잔하고 슬펐습니다.
김수영, 신경림, 기형도, 김용택, 류근, 마종기, 이병률...
이분들은 제가 다 존경하는 시인분들이십니다... 이 기라성같은 한국 대표시인분들의 주옥같은 시를 만나고 또 장석주 시인이 느낀 감상의 편린들도 찬찬히 읽을 수 있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글고, 김광석의 명곡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래는 류근시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인데 김광석의 대표곡중
하나로 지금도 널리 불리우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별의 슬픔을
참으로 가슴아프게 그린 작품인데 그러한 류근시인의 <반가사유>라는
시를 만날 수 있어 넘 좋았습니다.
또한, 김수영시인의 풀, 김용택시인의 선운사동백꽃, 신경림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 마종기시인의 연가9 등의 시들도 장석주시인의
친절한 해설과함께 즐감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시집은 바쁘게 살아가야하는 이시기에 잠시 내려놓고
삶의 뒤안길을 되돌아보고싶거나 젊은 날의 떨림의 추억속으로
다시금 침잠하고싶은 분들이라면 꼭한번 읽어보시라고 권유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매일 한편의 시를 찬찬히 읽게된다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저는 이번 장석주시인의 명저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청춘에게>를
읽고나서 제 어린시절에 가슴을 흔들어놓았던 시인들의 작품들을
시간날때마다 찾아서 그 무한한 시세계로 빠져들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고은, 도종환, 안도현,
정호승, 황지우, 하이네, 릴케, 롱펠로우, 프로스트...
이 분들과 함께 시의 세계로 푹빠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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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물론 시란 것이 대체로 함축적인 언어로 써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시에 대한 독자들 잠재의식 가운데 자리 잡은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시를 읽어주는 ‘친절한’ 작업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이 책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청춘에게』가 바로 그처럼 시를 읽어주는 책이다. 저자 역시 시인이면서 본인이 선별한 서른 편의 시를 ‘친절하게(?)’ 읽어주고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청춘’을 일차적 독자층으로 겨냥하고 있으며, 책 소개에서도 “시인 장석주가 고른 사랑과 이별, 청춘의 시 30”이라 설명하고 있으니, 서른 편의 시들이 대체로 청춘의 시기 겪게 되는 사랑, 이별, 우정,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청춘의 고뇌 들을 다루고 있는 시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앞에서 이러한 시들을 저자가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말하며, 옆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저자의 시 읽기는 친절한 해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설’이란 단어는 ‘무엇의 내용이나 의미 따위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함’이라 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기 쉽게 풀어서’가 중요하다. 그리고 애초부터 시를 풀어주는 주된 이유 자체가 독자들의 시 울렁증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쉬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 읽기는 쉽지 않다. 시인의 시 읽기는 시를 쉽게 이야기해준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시를 통한 세상 읽기라고 해야 할 듯싶다. 그렇기에 단순한 시에 대한 해설로서의 ‘시 읽기’가 아닌, ‘인문학적 시 읽기’라고 해야 옳을 듯싶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당초 <시인의 시 읽기>는 <시인의 시 읽어주기>가 아닌 <시 읽기>임을 기억해야 한다. 애당초 시인은 시를 우리에게 쉽게 풀어주려는 마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문제가 있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도리어 이 책은 소장하며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작가의 통찰력이 멋스럽다. 시를 읽는다기보다는 시를 통해, 세상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시라는 텍스트(text)를 단순히 해설하고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존재하는 시를 통한 또 하나의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텍스트 이야기를 이왕 했으니,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보자. 시인은 서른 편의 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며, 꼭 그 시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각 시를 잉태하여 세상에 출산한 시인들이 과연 그 시를 어떻게 잉태하게 되었는지의 콘텍스트(context)에 대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때론 저자가 각 시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사항을 통해, 그 콘텍스트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론, 저자가 시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친분관계가 없거나 정보가 없는 경우 역시 제법 되는데, 이런 경우에는 그 시인의 또 다른 시들을 통해, 시인의 콘텍스트를 유추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 역시 참 좋다. 어쩌면, 이 부분이야말로 시와 시인에 대해 독자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각설하고, <시인의 시 읽기>가 어쩌면 시를 더 어렵게 하는 머리 아픈 책이 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에 대해 심도 깊은 접근을 하고 있는 좋은 책이기도 하다. 물론 판단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아울러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텍스트로 사용된 시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 역시 절대적일 수 없음도 당연하다. 시란 시인의 손을 떠나면, 시인의 것이 아닌 독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라기는 불확실한 미래로 향해 나아가며 힘겨워할 청춘들이 시에 함축된 비의들을 발견하며, 힘겨운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서른 편의 시들 모두가 좋지만, 그 가운데 특별히 가슴에 와 닿는 시 한 편 소개하며 마친다.
두부 이영광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비록 연약한 두부라 할지라도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하며, 여전히 삶 속에서 비록 물러터진 내면을 숨기고 있다 할지라도 각을 세우고 살아야만 하는 세상살이가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네 세상살이라면, 어쩌겠나! 비록 심사가 뒤틀려도, 또 다시 그 세상을 향해 넥타이 단단히 졸라매고 부딪칠밖에. 우리 모두, 그리고 특별히, 청춘들이 이렇게 나아갈 때, 시 한편이 그들의 삶에 위로가 되어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