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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저자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를 읽고 뜻밖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으레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리라 예상했는데 고전을 어떠한 관점으로 읽느냐에 따라 어느 책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자의 마지막 강의를 담은 <담론>을 읽으니 왜 공부하는가를 이야기하는 첫장부터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1부 [고전에서 읽는 세계 인식]과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나뉘어 있다. 1부의 첫 강의 제목은 [가장 먼 여행]이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뜻밖에도 공부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저자는 오랜 경험에서 터득한 강의에 대한 경험을 말한다. 강의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가르침을 통해 깨우침이 일어나는 대칭적 관계라는 점과 설득과 주입이 아니라 공감이 이루어지는 장이라고 한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음모'라고 합니다. 음모라는 수사가 다소 불온하게 들리지만 근본은 공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정작 불온한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소외구조 그 자체입니다. 그러한 현실에서 음모는 든든한 공감의 진지입니다. 소외 구조에 저항하는 인간적 소통입니다. 글자 그대로 소외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실이 공감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p)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은 신선한 충격이자 깨달음이다. ... 책은 2~3년 전의 생각이고, 강의는 어제 저녁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 자연히 오래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계몽주의 프레임을 허물어야 합니다. 계몽주의는 상상력을 봉쇄하는 노인 권력입니다. 생생불식生生不息,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溫故온고보다 창신創新이 여러분의 본령입니다. 그리고 강의라는 프레임도 허물어야 합니다. ... 개념과 논리 중심의 선형적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의 파편입니다.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리고 인연들이 모여 면이 되고 장場이 됩니다. 들뢰즈는 장을 배치(agencement)라고 합니다. ... 계몽주의의 모범과 강의 프레임은 이 모든 자유와 가능성을 봉쇄합니다. ... (15-16p)
공부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부 工夫의 한자어를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으로 풀이한 후 그래서 공부란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이고,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공부를 구도라 했고, 구도에 따르는 고행의 총화가 공부라고 한다. 인류가 쌓아온 지적 유산인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이 창조적 실천입니다. (19p)
저자는 '우리가 일생 동안 하는 여행 중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한다. 이것은 낡은 생각을 깨고 오래된 인식틀을 바꾸는 것이 공부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또 만난다. 생각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이 머리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전두엽의 변연계에서 형성되는 이미지를 생각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하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20p)
앞에서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했는데 공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 남아 있다. 발은 삶의 현장을 뜻한다.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20p)
마지막으로 강의에서 진행하는 모든 담론의 중심에 '관계'를 둔다는 것과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이진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강의는 가슴의 공존과 관용을 넘어 변화와 탈주로 이어질 것입니다. 존재로부터 관계로 나아가는 탈근대 담론에 관하여 논의할 것입니다. 당연히 '관계'가 강의의 중심 개념이 될 것입니다. 이 '관계'를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담론의 중심에 두고 나와 세계, 아픔과 기쁨, 사실과 진실,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자기 개조와 연대, 그리고 변화와 창조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21p)
그리고 변방이 창조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아니 기존의 콤플렉스를 하나씩 벗어버리는 일이 변화와 창조의 장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첫 장 '가장 먼 여행'만 소개하는 나의 부족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전체 내용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리뷰는 다음 언젠가로 넘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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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고전은 한문이 많아 어렵고 지루하며 무엇보다 현대 사회에 안 맞는다는 선입관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독서가들이 왜 읽고 쓰는지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러던 중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이웃님의 리뷰를 읽고 나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용기를 내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강의한 내용을 풀어 쓴 것이라 한다. 저자는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당면 과제의 뜻을 강론한 것"이라 일반적인 고전 연구서와 다르기에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란 부제를 달았다고 설명한다.
서론에서 저자는 우리가 고전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관점이라고 말한다.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 독법의 전 과정에서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 부분을 읽고 그동안 막연하게 여겨온 동양 고전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이 현재적 관점 없이 학습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데 원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은 <시경>, <서경>, <초사>와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 그리고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이다. 중심을 이루는 내용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이다. 이때는 고대국가가 건설되던 시기로 주나라가 무너지고 진나라로 통일되기까지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춘추시대의 12제후국과 전국시대의 7국의 형태로 중원이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사라진 시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거대 담론이 피어나고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 등의 사상가가 출현한 시기에 해당한다.
변화와 개혁을 열망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이 오늘의 상황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당시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이 "부국강병이 최고의 목표가 되고 무한경쟁 체제라는 점"에서 "우리는 당시의 담론을 통하여 오늘날의 상황에 대한 비판적 전망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동양 고전 강독을 통해 일관되게 다루는 화두는 '관계론'이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존재론'이라면, 동양 사회의 구성 원리는 상생을 중시하는 '관계론'이라 보고 고전의 예시문안을 통해 독창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런 관계론은 신자유주의와 급속한 과학 발전으로 인간적 가치를 잃고 위기를 느끼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근대사 이래로 세계의 중심이 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관점과 대안을 모색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 저자는 동양학에 대한 관점을 실천적 관점에 두는 일이야말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말하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 가장 관심을 갖고 있던 동양 사상은 노자의 자연주의이다. '<노자>의 도와 자연' 강의에서 저자는 중국 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 사상이 두 축을 이룬다고 한다. 그리고 동양 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 <노자>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한다. 유가 사상이 서구와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주의라고 하면, 노장 사상의 핵심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지향하며 '천지인天地人'의 기본 질서를 존중하는 데 있다. 이러한 노자 사상은 인위적 규제가 오히려 혼란과 불의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 기본 입장인데 이것은 오늘날 해체론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만나고 해체론의 의미를 노장 사상을 통해 알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과거의 사상이 현대의 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미래는 오래된 과거'라는 말의 뜻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양 사상을 특수한 것, 전근대적인 것, 그리고 때로는 저급한 것으로 규정하는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 서구인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서구인과 서구 문명의 눈으로 동양과 동양 문명을 바라보는 내게도 해당한다는 걸 깨달았다.
애초에 한문 때문에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에도 불구하고 한문에 얽매이지 않고 쉽고 재미있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어렵게만 여겨온 동양 고전에 한 발 다가갈 수 있게 돼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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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맹자, 주역 등에 대해 내 생각을 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세 살짜리 아이가 할아버지에게 인생을 논하는 당돌함과 세상 모르는 용기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닌 것 같고, 그것에 대해 논하는 것도 나와는 상관 없는 다른 세상일들일 뿐이었다.
지금의 책들, 인문학의 기원은 고전일 것이고, 그 고전을 읽다보면 살아가는 해법들, 세상의 이치들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블로그 친구분들과 함께 혼자서는 시작 못했을 고전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한 권이고 심지어 고전이라기 보다 고전 독법책을 읽어 놓고 이렇게 호들갑인가 싶지만, 시작이 어려웠는데 시작했고 하나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이 다른 책보다 확실히 큰 것 같다.
고전을 시작함에 있어 무슨 책을 읽어야하나 망설였는데 이 <강의>라는 책을 통해서 각 고전들이 이야기하는 바, 그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고 고민해야할 부분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고민했던 것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찾은 답은 '고전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찾는 것, 단 내가 속해있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읽어내고 그 속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이었다 . 즉, '내가 되고 싶은 것에 가까워지되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할 것을 찾아 수행하자.' 이다.
이는, 일고십 모임의 질문과도 연결되었다.
<질문>
1. 노자에서 '백성개위 아자연'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백성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p.296)' 실제로는 노자의 정치론입니다만, 이 부분에서 신뢰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관계론을 이야기 하고 계시니 신뢰의 이야기가 나올 수 없겠지요.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신뢰가 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난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다. 항상 두렵고 걱정이 많고 내 결정을 의심한다. 결정장애인가 싶고 그렇다.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어 결론을 내리는 것도 못한다. 항상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들 중에 내 생각을 살짝 보태고 결론은 다른 사람들이 내리게 하는 편이다. 이런 나보고 토스의 여왕이라고 별명 붙여준 이도 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가 넓은 시야로 상황을 파악하는 지혜를 기르고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만 된다면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공을 양보하는 것은 내가 잘하는 일이니까 신뢰로운 사람이 될 기본 자질은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내가 나를 신뢰할 수 있도록, 넓은 시야를 기르자'고 이 점을 계속 생각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2. 묵자에서 신영복 선생님께서 언급하셨습니다. "사상은 개인에 앞서서 반드시 '사상적 과제'가 먼저 존재합니다. '누구의' 사상이기에 앞서 반드시 '무엇'에 관한 사상이게 마련입니다.(p.363)"
우리가 고전을 읽는 건, 저자의 사상 혹은 그 시대에 부유했던 사상의 가르침을 알고 깨달아 우물 밖으로 나가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질문을 여러 가지로 구분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아도 좋을 듯 하고, 이 책 <강의>에 나온 여러 사상들 중 자신에게만 해당할 수 있는 사상, 자신이 부합해 들어가는 (마음에 드는 사상이 아님), 혹은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사상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나는 무엇이기에, 한 사상의 무엇에 녹아 들 수 있을까? 가 제 논의의 초점이라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인관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캐릭터를 바꿔서 나서서 돕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말자고 스스로 선언했다. 나의 사람에 대한 과잉 관심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좀 힘든 일이 생기니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막막했다. 힘든 일보다 혼자 감당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 날 더 힘들게 하고 있음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상황이 힘들겠다고 주위에서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또 블로그에 하소연까지 해서 힘나는 메시지를 받으니 절망적인 상황이 조금은 나아 보였다. 결국 난 사람에 의해 힘을 얻는 존재이구나, 혼자 다 하겠다고 했던 오만에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 대해 논한 <논어>에 많은 관심이 간다. 공자의 삶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단 <논어>에서 얘기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논어 파트에서 p.167 루쉰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루쉰은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었는데 일본 유학 시절 중국 청년이 러시아 첩자라는 혐의로 일본인들에게 뭇매를 맞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였다고 한다. 건장하지만 우매한 조국 청년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우매한 대중의 각성이 더욱 시급한 중국의 과제라 결론을 내려서 였다고 한다. '무쇠 방에 갇혀 죽어가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는' 중국인의 각성을 위하여 치열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한 번씩 의로운 이들을 보면 그들의 어떤 면이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지 궁금해 진다. 혼자 편하게 살면 될 것을 말이다.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닌 존재이기에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지혜로운 이들은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p.166 子曰 德不孤 必有隣 p.169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어요. 운동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중과의 접촉 국면을 확대하는 것, 그 과정을 민주적으로 이끌어가는 것 그리고 주민과의 정치 목적에 대한 합의를 모든 실천의 바탕으로 삼는 것, 이러한 것들이 모두 덕불고 필요린의 원리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로서의 덕이 사업 수행에 뛰어난 방법론으로서 검증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강의>를 통해 아주 얕게나마 주요 동양 사상들을 접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고, 읽는 동안에 배우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다. 다만, 이리 글로 쓰니 아직도 내가 부족한 것이 많구나 다시 반성하게 된다.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읽어야할 책이다. '신뢰로우면서 함께 하고픈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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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상을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이해 그들을 바라봄으로 어떻게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를 배운다면 그 지혜는 이 세상을 살아내는데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훗날 나를 보고 살아낼 후손들을 위함이 아닐까 인간에 대한 끝없는 고민은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이에 더해지는 수많은 향신료와 조미료들은 누군가의 입엔 맞게, 또는 맞지 않게 만들기에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어떤 맛을 내며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선택은 수많은 고민끝에 나로인해 선택되어야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안에서의 담론들은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이 조미료는 어떤 맛인지 이 향신료는 어떤 향이 나는지 알려주는 누군가에게는 쉐프로, 누군가에게는 선생님으로 누군가에게는 꿈, 소망이 될 수 있음을 그냥 자극적인 어떠한 맛이 아니라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내가되기를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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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인생책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꼭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쉬운대로 동영상으로 선생님의 강의를 봤는데 강의 자체가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뺄 이야기가 전혀 없이 그대로 받아적어도 훌륭한 책이 될 것 같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 담론이다. 선생님의 경험과 사고가 집대성되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읽기 쉽지 않은데 고전의 인용이 많은 탓이다. 이미 선생님의 다른 책을 많이 읽었어서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감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많은 2부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선생님의 유머를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부분이다. 기억하고 곱씹어 보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다. 무조건 사서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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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하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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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필요하다고 하셔서 구입하게된 책입니다. 더 이상 교단에 서지 않으시는 작가님께서 교단에서 하셨던 이야기와 더불어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인간성찰, 인간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님 만의 글을 풀어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인문학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읽고난 뒤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네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 |
| 자기계발서나 자존감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다보면 아 하고 깨들음을 얻은것처럼 보이는데.. 조금 시간 지나면..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럴까, 아는데도 힘들고 상처받고 지치는거지 하면서 아 어쩌라고.. 할때가 있다. 그런데 이책은 마치 할아버지가 인생은 그런거란다 하면서 낮은 목소리로 따뜻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것 같은 글이다. 겸손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그러면서도 큰 깨달음을 주는 글이다. 1부는 다소 어렵고 난해했지만 2부부터는 아주 재미있게.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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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라는 것을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은 초보 독서러. 나에게는 아직 무겁고 어려운 책. 실제로 책이 두꺼움. 많은 내용을 넣어고, 어려운 가운데 공감되는 내용도 종종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워. 근데 왜 좋아? 신기해서 오랜 독서 경험을 쌓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책은 나한테 좋은책. 삼년후엔 지금보단 더 많은 내용이 들어오겠지. 더 많이 끄덕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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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은 고전 동양 철학에 관한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 받아 찾아보게 된 책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을 때 선생님의 담백한 문체로 진심을 담아 써내려간 글이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내 자신을 마주한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데, 담론 역시 그런 기대를 넘어 내 자신에 대한 철저한 깊은 반성을 하게 됐다.
선생님이 말한 묵자의 금언, 無鑑於水(무감어수)는 ‘거울에 비추어 보지 말라는 뜻이다. 거울에 비추어 보면 본인의 외모만 보이지만 남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보면 자신의 인간적 품성이 드러난다. 묵자의 무감어수를 통해 그 동안 내 주변을 스쳐지나갔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좋아하거나 싫어했던 일부 사람들을 통해 내 자신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깨우쳤다. 싫은 사람을 보며 ’저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지‘했던 다짐은 오간데 없고, 싫어했던 그 사람처럼 다른 사람에게 같은 언행을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공자와 노자보다 우리에게 덜 친숙했던 묵자의 사상이 내 삶에 많은 울림을 줄 것이란 생각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운이었다. 그리고 묵자와 예수가 만났을지도 모를 그 지점은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기도 했다.
2000년도 넘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고전중에서도 동양의 고전 철학은 늘 난해하고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쉽게 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동양 문화권에 속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 내면에 동양 철학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동양 고전이 주는 울림은 서양의 고전 철학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서양의 그리스 철학, 그리스 신화 등보다는 우리는 동양의 고전을 먼저 익히고 깨우쳐야 하는 게 맞는 순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고전은 인류가 지금까지 자연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대하여 공부한 것이고, 고전 공부는 인류가 쌓아 온 성과를 물려받고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와 대화하고 동시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일인데, 미래는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첫 페이지에 가장 먼 여행에 대한 부분은 세계를 인식하는 우선순위에 대해 성찰하게 했다.
“머리에 가슴까지의 여행’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서 시작해야 하며, 우리의 생각이 갇혀 있는 틀을 깨뜨리는 탈 문맥이라는 것. 이것은 세계 인식틀의 전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가슴은 세계를 조직하고 진리를 재구성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에 두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은 진리와 주체를 재구성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 다음 남은 가장 먼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다. 발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장이며 그 현장의 삶이며 그것은 우리의 삶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발은 가슴의 공존과 관용을 뛰어넘는 소통과 변화이며 탈주와 유목주의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의 존재론 패러다임에서 관계론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존재에서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석과가 새싹으로 나무로 그리고 숲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숲은 공존이며 생명이며 변화와 창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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