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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네트워크는 마법이나 텔레파시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세계 신경망의 연결을 위해 대륙과 대륙을 잇는 거대한 해저 케이블이 깔려 있고, 누군가는 케이블의 유지보수를 위해 잠수하고 체크한다. 대륙간 광케이블망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방 PC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물리적 기반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유지보수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보화 사회. 정보가 곧 가치이며 미래라는 아름다운 포장은 현실 네트워크 노동자들의 삶을 은폐함으로써 성립한다. 인류의 유산인 피라미드는 파라오가 직접 짓지 않았고, 한국의 산업화를 견인해 낸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와 정주영이 깔지 않았다. 정보화 사회의 근간인 네트워크 인프라의 주인공 또한 통신사가 아닌 네트워크 노동자이지만, 그들의 공로와 가치는 금전적으로도 사회적 위치로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네트워크 인프라라는 정보사회의 빛나는 공로는 네트워크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들 대신 통신사와 통신사를 소유한 자본이 가져갔다. 그리고 소외된 역사의 주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 처우만을 얻었다.
<땅딛고 싸우기>는 그 네트워크 노동자들의 삶을 향하는 기록이다. 지나가다 언뜻 들었을 듯 말듯 한 인터넷 설치 기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의 네트워크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의 불안에 시달렸고, A/S하러 들어간 집에서 온갖 멸시를 받았다. 씨앤앰 사태라 불리는 대량해고와 이에 맞선 연대와 싸움이 한겨울 광화문 전광판 위에 두 사람을 올리기까지의 이야기를 책은 다룬다.
이윤추구가 제1목표인 사모펀드가 케이블TV 운용사인 씨앤앰을 인수하면서 벌어진 대량해고 사태를 다룬 책은 ‘씨앤앰 사태’ 라는 특정한 사건을 바라보고 있지만 사건 그 이상의 배경, 체제의 한계와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보화 사회의 근간인 네트워크 인프라마저도 사모펀드의 매매차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네트워크의 공공성 또한 금융자본주의의 이익보다 낮은 우선순위로 자리한다는 숨은 논리를 드러낸다.
네트워크 노동자들의 싸움을 집요하게 찾아다닌 기자의 발품과 현장의 인터뷰는 그래서 네트워크 공공성이 위협받는 거시적인 흐름에 대한 인터뷰가 되었다. 정보인프라의 공로자인 네트워크 노동자들이 소외받는 현실과 네트워크 공공성의 위협이 다른 문제가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씨앤앰 사태가 나름의 매듭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 노동의 간접고용 문제는 계속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네트워크 공공성 문제는 지금도 이윤에 목말라하는 기업구조 덕분에 위협받고 있다. 네트워크 공공성 이슈를 이론과 정책으로만 바라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문제들을 책은 노동현장의 관점으로 기록하고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고의 단초를 제공한다.
네트워크 구조의 기초가 ISO 7단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을 깔고 잇는 것에 있다는 것. 그리고 정보사회의 반석인 그 기초작업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인터넷 시대를 이해하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땅딛고 싸우기> 가 보여주는 네트워크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래서 노동현장의 기록을 넘어서 인터넷 시대에 사이버스페이스와 현실세계의 접점이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구성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 된다. 자본과 노동, 공익과 사익이 맞닿는 현실의 모든 이슈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의 기저에도 동일한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정보화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땅딛고 싸우기>는 그래서 사회/노동 카테고리의 책이지만 동시에 인터넷/네트워크 분류에도 들어가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