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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을 입고서 항시 자각하고 경계하라..
"이 옷을 입고서 항시 자각하고 경계하라.." 내용보기
tv와는 친하지 않지만 어쩌다 사극을 보면 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입은 옷을 보고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신분은 모른다 해도 적어도 왕이나 왕위계승권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가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는 각기 신분에 걸맞은 옷과 장식이 정해져 있었다. 평상시 입는 옷과 그들이 일정한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 달랐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
"이 옷을 입고서 항시 자각하고 경계하라.." 내용보기

tv와는 친하지 않지만 어쩌다 사극을 보면 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입은 옷을 보고서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신분은 모른다 해도 적어도 왕이나 왕위계승권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가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는 각기 신분에 걸맞은 옷과 장식이 정해져 있었다. 평상시 입는 옷과 그들이 일정한 의례에 착용하는 복식이 달랐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와 권위를 지닌 옷이 바로 면복(冕服) 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곤룡포도 면복의 일종인 셈이다. 면복이란 면관을 쓸 때 착용하는 복식이라고 한다. 면은 바로 면관을 의미하며, 복은 거기에 달리는 여러 부속품을 말한다.

 

면복은 각종 의례 때마다 입는 복식을 달리하여 총 6가지의 종류(육면복)가 있었다고 한다. 면복제도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런 제도의 도입은 유교식 국가의례와 신분제도의 완성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후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유명무실해졌으나 위진남북조 시대에 체계화되기 시작하여 당나라에 이르러서는 제도적으로 완성되었지만, 면복의 함의까지 포함된 완성은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채택한 송나라 때였다고 한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육면복중 곤면복만 남게 되면서 이후로 면복은 곧 곤면복을 가리키게 되었고, 착용할 수 있는 사람도 황실의 일원으로 한정되었으나, 청나라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고 제도 자체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유사에 그 명칭이 보이고, 고려사에 상세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고대사회에서부터 면복을 착용했다고 볼 수가 있다. 다만 고려사회에서는 왕이나 왕세자뿐만 아니라 신하들도 면복을 입었으나, 조선시대 들어 군주계승권을 지닌 사람만 입을 수 있도록 범위가 축소된 것을 보면, 면복이 절대적 군주권을 상징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면복의 구성은 머리에 쓰는 면관, 무릎을 가리는 폐슬, 하의와 상의, 그리고 그 사이에 입는 중단, 혁대와 대대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구성품은 일정한 양식과 각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각 부속품의 모양과 색깔 그리고 무늬의 종류는 면복을 입는 사람의 신분을 표시했다고 한다. 면관에서 신분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류와 옷에 표현하는 무늬였다. 류란 면관의 앞과 뒤에 드리워져 있는 끈에 꿴 구슬을 말하며, 황제는 각각 12개의 구슬이 꿰진 12줄의 류를 달았고, 왕은 9, 왕세자는 8, 왕세손은 7류 면관을 썼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공민왕과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과 순종이 12류 면관을 썼으며, 그 외의 고려와 조선 왕들은 모두 9류 면관을 착용했다고 한다. 또한 면복의 상의와 하의에는 열두종류의 무늬, 12장문을 새겼으나, 표현할 수 있는 무늬의 종류 역시 신분에 따라 달랐다. 12장문이란 일(), (), 성신(星辰), (), (), (), 화충(華蟲), 종이(宗彛), (), 분미(粉米), (), ()을 말하며, 이는 면복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동아시아의 세계관과 정치관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2류 면관을 사용시는 12장 무늬를 모두 사용하지만, 9류 면관은 일, , 성신을 제외한 9장을, 그리고 8류 면관은 화부터 불까지 7장을 표현했다고 한다.

 

면복은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무늬와 색깔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들도 달랐는데 여기에는 또 다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면관의 앞뒤로는 류를 늘어뜨리고, 양 옆에는 충이를 늘어뜨린 이유는 옳지 않은 것은 보지 말고, 옳지 않은 말은 귀담아 듣지 말라는 것이지만, 그것은 옳고 그름을 지나치게 구별하지 말고 두루 다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가져야 함을 은연중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었던 12장문의 삼신 즉 해와 달과 별을 상징하는 일(), (), 성신(星辰)은 백성의 삶을 밝게 밝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면복의 전면에 표시되는 용()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사고와 대처가 필요함을, 그리고 후면에 표시되는 산()은 백성이 우러러볼 수 있는 어짊과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12장문은 각기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황제 혹은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면복의 형상과 색깔은 동양사상의 근원인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랐다. 면관의 판이 앞부분은 둥글고 뒷부분이 모가 난 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고방식을 형상화한 것이며, 12장문을 그릴 때 상의에는 그림을 그리고 하의에는 수를 놓은 것은 바로 음양의 원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홀수와 짝수에 연결되는 천지음양의 관념이 상의와 하상에 무늬를 나눠 배치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면복은 실용적인 옷이 아니엇다. 그렇지만 면복은 제사를 올릴 때 공경의 표시로 착용했고, 책례나 관례, 혼례와 같은 의례시 반드시 착용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면복을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군주와 군주계승권자에 한정 되었다. 따라서 군주가 아닌 사람이 면복을 착용하고 행하는 의례는 차기 군주권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으며, 백성을 보살피고 다스리는 책임을 느끼게 해주는 다시 말해 권력자의 자세에 영향을 끼치는 경건한 옷이기도 했다.

 

우리가 tv의 사극 등을 보면서 의례적으로 보아 넘겼던 면복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처럼 전통시대 우리 조상들은 복식에서도 항상 지도자는 권위와 책임을 자각하고 자신을 경계해야 함을 표현했다. 시대가 바뀌어 면복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면복이 지녔던 의미마저도 필요 없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혹 면복을 입히면 항시 자각하고 경계 할려나..

k*****1 2015.07.03. 신고 공감 7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