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경주를 세 번 가보았다. 첫번째는 중학교 3학년 때 수학 여행을 갔을 때이고, 두번째는 10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직장을 얻게 되었을 때, 아직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전 가쁜한 마음으로 경주를 다녀왔다. 그리고 세번째가 2년 전이다. 세 번 갔을 때마다 경주에 대한 느낌은 매번 달랐다. 물론 그 때의 상황이 달랐고, 세월의 더께에 따른 내 인식의 차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고도를 보고 느끼는 장엄함이다. 도시의 중심에 거대한 봉황의 알처럼 누워있는 고분들을 보는 느낌은 여느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숭고함과 장엄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난 내가 세 번이나 간 경주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저자는 몇 년간 경주에 기거하며 직접 둘러보고 공부도 했겠지만 내가 경주를 방문하며 알아본 것은 기껏 유적지마다 입구에 써 놓은 안내문이 전부였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고도를 순례하다보면 어느새 천 년의 세월을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경주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역사적 고증과 저자의 상상력을 풀어쓴 역사에세이다.사진 작가 강운구님의 빼어난 사진은 경주를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어 준다.
경주, 그 곳에는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 한국 역사 최초로 여왕이 탄생한 곳도 신라이다. 대부분의 경주 시민들은 어린 아이서부터 할머니까지 역사의 도시에서 산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왕릉에서 뒹글고 자란 아이가 고고학자가 되고, 역사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역사의 도시 한가운데로 유적을 훼손하면서까지 고속철도를 만들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1500여년동안 지켜온 문화유적지를 얄팍한 경제 논리와 순간의 편리함으로 대치하기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유럽의 어느 나라가 유적지를 훼손하면서 이런 일을 하는가? 이 책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리 민족문화와 예술의 원형은 신라시대에 확립되었다. 경주는 한국의 정치, 사상, 종교, 예술 등 민족문화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경주를 지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일이다. 다시 경주에 가서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신하를 모아 친히 정사와 형벌의 잘잘못을 물어듣고, 반찬의 가짓수도 줄이며 민심을 살폈다고 하는 왕의 엄격함과 넉넉함을 느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