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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라는 단편을 타이틀로 아홉명의 여성 소설가의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 사랑해요' 라는 글이 박힌 엽서가 책 사이에 끼워있는걸 보니 엄마 생신선물로 구입했던 책인가본데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엄마의 생신선물로는 책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엄마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 중에 은희경작가의 이름이 반가워서였을까, 이왕이면 여러작가의 글이 한꺼번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걸지도. 무튼 어떤 이유로 이 책을 구입했었고 지난 몇년동안 관심도 없었다가 얼마전에 무심코 꺼내들었다.
마음속의 우울함을 들추기도 따뜻해지기도 글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매일 한편씩 읽어나갈때마다 작가들을 향해 늘 혼자 질문을 하게되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지금은 어떻게 되었냐고. |
| 이제는 너무나 낯익은 이름이 되어버린 전경린, 은희경, 송혜근의 주옥같은 단편들을 읽는 재미와 조금은 낯설지만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작가들의 깔끔한 글들이 잘 읽힌다는 장점을 공유하며 한 권을 책을 묶여 있다. 특히 전경린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연애소설을 잘 쓴다는 평가처럼 이성간의 사랑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간의 사랑을 특유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단어로 너무나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송혜근의 소설은 또 얼마나 세련되고 아름다운가? 정말 엔틱 숍에서 갓 튀어나온 듯 많은 이야기를 지닌 신비한 여주인공 캐릭터는 소설을 읽는다기 보다 구하기 힘든 진귀한 잡지 속 화보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말더듬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은희경씨의 작품또한 그녀 특유의 삐딱한 시선과 함께 나또한 서늘한 겨울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운 수다같은 치자꽃 필 무렵이나 비바람부는 장마철에 읽으면 너무나 어울릴만한 패랭이 꽃 한 송이. 아이엠에프 경제 위기 이후 더욱 가속화된 가정의 해체를 다룬 비닐 봉지 하나 새처럼 길을 잃다. 자식을 잃고 번민하는 아픔을 그린, x 또 학계를 비판하면서도 아름다운 능안을 보여준 능안에서 살다. 마지막으로 재기발랄한 신세대 작가의 우리들의 작문 교실까지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 예쁘고 착한 책이다. |
| 이 책에서 알지 못했던 여러명의 여성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사랑을 날카롭게 얘기하며, 진정한 사랑을 말해주며, 삶의 애환을 말해준다. 전경린 은희경씨의 이야기를 다시 읽는 즐거움도 있었고, 6명의 뜻밖의 작가들의 글을 읽는 기분은 무언가를 공짜를 얻는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여성작가들의 글들은 남다른 느낌이 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같이 고민하고 용서하고 포용하는 삶을 살아온 동지애가 느껴진다. 8명의 작가들이 서로 다른 얘기들을 전해주고는 있지만 여성의 아픔을 대변해주고, 사랑에 상처받고 치유 되는 과정들의 느낌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수필만 고집하다가 잡은 책이라서 그런지 애착이 가는 책이다. 남성들 보다는 20대 후반의 여성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기획하면서 ‘느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 넣은 짙은 연두색은 이 책의 내용과 의도를 살리는 훌륭한 디자인이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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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을 갖춘 작품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 지상에서 문학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최근 베스트셀러를 이루고 있는 책의 대부분이 작품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문인들의 아쉬움을 토로했다고도 한다. 독자들의 선택을 낮게 평가하지 말라는 평론가의 소리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작품집은 아쉬움을 토로한, 동인을 이루고 있는, 몇몇의 여류작가들이 엮은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성에는 틀림없는 자신을 할 터이다.
흥미로운 소재나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단순하지 않은 구성과 심도 있는 주제는 그들의 자존심을 세울만 하다. 다양한 세대의 작가인 만큼 문체에도 세대차이를 보인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고요한 글쓰기이다. [인상깊은구절] 남편과 못살겠다고, 부디 매맞지 않고 조용히 이혼할 수 있는 길을 알려 달라고 여자는 손수건을 꼬깃거리며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여자가 준비해 온 편지를 읽는다. '여보, 베발 술 좀 고만 드시고 우리 고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착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갖고 사십시다. 사랑하는 당신 아내가' 그 대목에서 여자는 목이 맨다. 사랑한다니? 비장하기가, 폭우 속에서 발표하는 역사적 독트린 같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여자들은 왜 울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마취를 거는 순간, 고양된 순교자적 희생 정신 때문일 거다. 써금써금하다 못해 삼출물이 누렇게 흘러나오면서도 무슨 인사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끝에 사랑한다는 토를 다는 부부를 보면 웃음이 난다. 사랑한다는 말이 정말 주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지겨워서, L은 젖은 걸레를 깔고 앉은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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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여럿의 동인이 함께 묶어낸 책이란 선입관을 가지고 선택한 책이지만 각각의 글이 가진 향기와 색깔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소설이란것이 허구하는 인생사의 굴절된 표현이라지만 글속에서 보여지는 작가들의 자전적인 속삼임이 가슴에 와 맺힌다. 특히나 이글들은 여성작가가 보여주는 섬세하고 잔잔한 심리묘사와 흔들림없는 시선속을 느낄수 있게 해주었다.
내게 아주 생소한 작가의 글 하나...조민희씨의 "우리들의 작문교실" 은 독특하고 신선한 성장소설이었다. 어른들이 단순하다고만 생각하는 어린시절...그 어린시절의 나역시 주인공 말라깽이 비행접시만큼이나 복잡하고 절망적인 감정속에 허우적댔던 기억을 가졌었다는걸..절망이 나의 온 세계를 암흑으로 만들었었다는 사실을..내게 되새겨주는 소설이었다.. 소중한것을 버림으로써 사랑에 대한 증명을 해야하는..아픈 결정은 역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라는 것을...어렵게 배우는 그시절..누구가에게 있는 그시절의 감성을 너무나 깔끔하게 처리해낸 글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아저씨는 누군가 내게 해줬어야 할 말들을 곧잘 해 주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뭐랬냐면, '그래, 좋아. 조금만 더 참고 견디면 누군가를 맘껏 미워할 수 있는 나이가 될거야. 하지만 아직은 안돼. 누군가를 힘껏 좋아해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미워할수 없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어쨌든 내 맘에 쏙 드는 말이었다. 누가 내게 그렇게 말해주길 오래도록 기다려온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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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중편 부분 수상이라는 동일한 경력을 지닌 여성 작가들의 작품집 『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함이 평균 이상으로 조화를 이룬 그런 작품집은 아니다.일종의 계모임처럼 자신들의 창작 의욕을 북돋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닌가, 싶은 장난기 섞인 엿봄이 가능한 작품집.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은희경의「내 고향에는 이제 눈이 내리지 않는다」. 위악과 성가신 꼬투리 가득한 성장기를 가진 내가 겪은 통과 의례의 질곡. 말더듬는 나와 친구 상국, 그리고 사라진 아버지와 도망치듯 고향을 등진 어머니. 그 어머니에게 묻혀 도시로 스며든 내가 통과한 그것. 어쩌면 내가 통과한 시절이 아니라 나를 통과한 시절에 대한 짧은 기록과 같은 것.
박자경의「비닐 봉지 하나 새처럼 길을 가다」. 사는 게 피곤하다. 일촉즉발의 위기 없어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분출직전의 울분이 가득하다. 익명으로 시선 고정한 인형처럼 띄엄띄엄,또는 떠듬떠듬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희극과 비극을 바이킹처럼 거듭 오고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송혜근의 「거울이 놓인 방」. 여자의 일생. 아이를 낳지 못해 끝난 첫 번째 결혼, 그리고 전처 소생의 딸이 있는 두 번째의 결혼. 그 두 번째 남편의 외도 사실과 그와의 사별. 이제 남은 건 피가 섞이지 않은 모녀. 그렇게 남은 아귀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 모녀는 유일하게 그녀를 그녀이게 만들어 주었던 드레스룸, 겨울이 놓인 방에서 대화한다.
송우혜의「치자꽃 필 무렵」. 간병인 소개 업체의 소장인 당숙모와 실장인 나. 유유상종의 사람살이에 대한 비아냥 가득한 사회적 접근. 분명한 실체 가지고 사회를 나누는 계통적 연대와 그 연대의 고리를 잘도 포착해 사업을 확장시키는 당숙모. 하지만 당숙모의 그 실속 이전의 또다른 연대 의식은 간병인들의 사소한 비리를 두둔한다.
김지수의「패랭이꽃 한 송이」. 남편의 사업의 부도와 야반도주 끝에 당도한 시골마을. 태풍이 덮친 마을의 살풀경함과 갑작스런 도망으로 경황이 없는 순지의 심적 혼란. 순지가 기거하게 된 집의 노인과 그의 병신 아들. 기형인 세상과 기형에 압도되는 사람이 있을 뿐 기형은 없다, 라는 사실로 말미암아 사소한 곳에서 희망을 피우려 하는 순지가 외려 눈물겹다.
전경린의 「목조 마네킨 헥트로와 안드로마케」. 짧은 소설의 서두를 한참 지나고 나서야 한 번 읽은 적이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금주와 이한. 과거에 사랑했으나 불투명한 이유로 헤어졌던 이들이 일정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 다시 만난다. 그리고 옛 사랑의 좌절에는 이한의 동성애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었음이 드러난다. 이제는 한물간 아이템이 되어버린 동성애를 다루지만 그 서러워 보이는 문체만은 전경린답다. 그 덕에
두 번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정희의「X」. 아들 율을 잃고 미끄럼을 타고 내리듯 삶을 성큼 건너 뛰어버린 듯한 중년의 부부. 아들의 죽음을 기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 자신들의 생의 좌표에 점처럼 찍힌 아들의 죽음. 결말 부분에 느닷없이 등장하는 미르와 그 미르를 통해 아들의 뒤를 밟는 부인,그리고 그러한 부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듯 홀로 사념하는 남편의 묘사가 어설프다.
윤명제의 「능안에서 살다」. 사람 사는 내력은 왜 이리도 뻔하고, 그마저도 쇠락의 느낌 강한 것일까. 이혼 내지는 별거 중인 내가 살고 있는 능안의 집. 그 집에서의 내 남은 생애. 동력을 발생시키는 첫량과 그것을 통해 움직임의 힘 부여받는 뒤따르는 량사이의 고리가 헐거워 조금씩 속도를 줄여가다가 멈추어 버릴 것 같은 생. 그 생을 살핀다.
조민희의 「우리들의 작문교실」. 작품집 내부의 다른 사람들보다 십년 정도 젊은 작가의 글. 나와 위니, 롤러 블레이드와 제제. 초등학생이라는 주인공의 시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고 해도 주인공인 나의 말투가 영 어색하다. 어린 나이의 작가가 그보다 더 눈높이를 낮추어 쓰고자 한 성장소설.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으로 쓰여진 소설에는 나의 출생의 배경,친구 위니, 롤러타고 다니는 나의 비행접시라는 별명, 소설가 아저씨,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목소리를 잃은 소년 제제 등의 장치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치들이 절묘하게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동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에 발목이 묶여 버린 형국. 어느 쪽으로든 더 기울어졌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일상을 들여다보는 데에 딱히 남과 다른 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듯 자연스럽게 쓰여진 글들이다. 마치 신춘문예 작품집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평이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은희경과 전경린은 예외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사소한 일상과 소설 속의 특이체험, 이라는 경계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은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도 하다. 완성도 높은 책만을 고집한다면 읽지 않는 게 좋다. [인상깊은구절] 기묘하게 공허해 보였다. 밤과 낮 사이의 망각의 벽이 뒤로 물러서고 젖빛 아침이 오면, 호객을 위한 현숙막과 간판들은 글자를 드러내고 가게들은 물건을 아케이드 앞에 줄줄 겹쳐 내놓겠지만 그 시각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좀 채로 실감할 수 없었다. 시간은 마치 다른 세계 속으로 잠적한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흐름이 박탈된 광물질의 세계로. |
| 표제작인 은희경씨의 작품은 기대한 것만큼 흥미롭진 않았다. 오히려 가장 재밌었던 것은 '우리들의 작문교실'이었었는데 이 작가가 공지영씨의 '미미의 일기'같은 장편동화를 써 본다면 멋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은희경이 '우리들의 작문교실'을 썼다면 어땠을까. 주인공이 '새의 선물'의 진희처럼 영악해져서 위니를 마구 울리고 아저씨를 조종해보려 했을까? 소설이 흥미롭지 않으니 혼자 쓸데없는 상상까지 해본다. 송혜근씨의 '거울이 놓인 방'은 그녀의 소설집에서 읽었을 때는 괜찮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이 소설집 안에 있으니 오히려 확 튈 정도였다. 전경린씨도 조금 실망이었다. 동성애란 소재도 약간 식상한데 줄거리도 지나치게 몸을 사린다. 전생 얘기를 하는 작가의 말은 멋졌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