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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여러사람의 보편적 존경을 유발시킬 수 있는, 그래서 '그 사람을 존경해'라고 말을 듣는 상대방에 따라 눈치를 보아가며 말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 대한 평가라면 그래도 괜찮다. 근데.. 사실 그런 사람은 우리 주변에 별로(어쩌면 거의) 없다. 그들은 대개 한 번도 같은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아주 '예전'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안전하고 조심스러운 방법을 선택한다. '평가'하지 않고 그냥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비슷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벋어버린 상태에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스로의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하거나 남들에게 뻔뻔스럽고 주제파악을 잘 못하는 어리석은, 그래서 싫은 사람이라는 뒷말을 듣기 싫어라하는 (스스로가 조심스럽고 성숙한 것이라 믿는) 성향을 가진 사람일 수록 이런 부분에 아주 예민하다.
그건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타인을 '평가'하는 여러 '싫은 사람'의 기준 중 그런 행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남들을 쉽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평가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왠지 말장난같기도 하고, 모순같기도 하다.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은 예전에 읽은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 과 매우 닮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스스로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모순을 가지고 역시 모순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삼십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 또 그와 비슷한 처지의 같은 또래 친구들이 주로 등장한다는 점, 나이나 처지를 초월한 남녀간의 사랑이 주요 소재가 되었다는 점 등이 두 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유.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오가는 가벼운 대화는 별로 즐겁지 않은 '느낌'을 주었다. 말장난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들의 삶에 대한 태도 역시 그랬다. '보통 다 이런걸까?'라고 생각하면 내 얄팍한 인간관계의 이면에 존재할지도 모를 나에 대한 남들의 '조소'에 대한 공포감으로 약간 아찔하기까지 했다. 이런 생각들은 단순히 나의 '뒤떨어진 감각'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
| 오랜만에 본 배수아 소설이었다. 내가 보았던 배수아 초기 작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등장인물이 능동적이라는 것이다. 한 때 배수아의 책을 찾아 읽던 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것도 저것도 뭔지 모를 때, 배수아의 책들을 찾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으며 물론 능동적이지도 않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나를 편안하게 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구차하지 않은 깔끔한 같은 것, 이유는 ‘그냥’과 ‘싫으니까’면 되고 왜 싫은 가는 ‘그냥’이면 되는.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도 살아가는 방식은 능동적이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특히 주인공인 '나'는 수의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야간 강좌를 듣고, 아프리카로 가기 원하며, 돈을 벌어서 동물 다큐 필름을 찍는 것 또한 꿈이다. 나는 "사람들은 연출을 신뢰한다"며 새의 선물에 나오는 여자 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진짜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나는 아직 서른세 살이다. 서른세 살밖에 안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듣고 싶은 음악도 많다. 아프리카의 석양도 보고 싶고 멸종하기 전에 알래스카의 고래도 보고 싶다. 이 세상 많은 것을 느끼고 싶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나'는 현재에 능동적으로 사는 것도 모자라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에 흐름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그 사람의 소설 속 인물도 변한다. 배수아의 인터뷰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여행에 대한 것이었다. 배수아의 여행관은 "뭐 하러요? 다시 되돌아 와야하잖아요. 피곤하기만 하죠 뭐." 이거 읽었을 때 엄청 충격이었다. (물론, 이건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건지도.) 이 사람 뭐냐 라고 생각했었는데. 배수아가 독일을 갔다지. 수년을 공항에서 일하면서도 한번도 하지 않았던 여행을 떠난 것이다. 공무원도 그만두고. 사람은 변하고 그 소설 속 인물도 변한다.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도 변한다. 그가 말하는 섹스에 관한 생각도 변하였다. ‘철수’에 나오는 ‘나’는 남자들이 왜 섹스에 집착하는 지 이해할 수 없으며,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에 남자가 원하면 섹스 파트너가 되어준다. 불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같은 말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삶의 모습만큼이나 섹스에 관한 것도 이 소설에서는 능동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무런 감정도 책임도 과장도 미화도 없는 진짜 섹스"를 원하며 "섹스가 끝난 다음에 굳이 쫓아내지 않아도 자기 와이프가 기다리는 집으로 얼른 사라져주는 그런 건실한 사람"을 원한다. 남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 단지 섹스가 필요할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돈을 주고 섹스 파트너를 사는 것도 무관하다. "길이라도 괜찮고 교진이라도 상관없다. 아, 어쩌면 2PAC이라도 상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 남자가 그리운 밤"에 말이다. 어차피 '나'에게 있어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섹스에 명분은 필요없다. 사랑하지 않는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며 출산율은 떨어져 간다. 동거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결혼은 미친 짓'이라 부르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구시대의 것으로 촌스러운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까지 생겨난다. (사실 친구가 이런 소리를 했을 때 깜짝 놀랬던 생각이 난다. 어쩌면 당연하게 가질 수 있는 생각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게 말해서 가족 제도 자체가 싫은 것이다. 결국 그 거대한 가족 이데올로기 속에서 파생되기 마련인 남녀관계도 싫은 것이다." '나'는 이 세계가 "법과 제도로 통제되고 있"으며 그것들은 "인간의 본성과 어긋나게 어거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언제 파괴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어거지로 만들어진 결혼이라는 제도가 무너져내리고 있는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하지? 단지 같이 있고 싶어서? 그냥 살면 되잖아. 아이들을 낳아야 하니까? 사생아가 어때서? 법이 그렇다고? 그럼 법을 없애면 되잖아. 사람이 만든 법인데, 세상을 너 마음대로 사느냐구? 그래, 난 마음대로 살고 싶어.” 이게 ‘나’의 생각이다. ‘나’의 생각에 반박하기 위해서는 결혼을 왜 하는지 말 해야 한다. 물론 단지 같이 있고 싶어서라는 이유는 사절이다. 이문열은 ‘레테의 연가’에서 ‘사랑은 그저 사랑으로만 있으면 안되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사회제도와 도덕률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는 사랑은 없는가.’를 말한다. 주장은 같으나 이유는 다르다. 이문열의 말은 뽀샤시 사진같은 느낌이며 배수아의 말은 깨진 유리같은 느낌이다. 배수아에게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며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나간 다음에는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다. “결혼은 나약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가지기 위해서 버려야 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혼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으면 단 한 명의 섹스 파트너에게 합법적인 독점권을 인정해 주며 살아야 한다. 가정의 운영이라는 무임노동, 원하지 않는 새로운 친척들간의 관계, 성문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관습적으로, 그러나 무시 못 할 강도의 제약을 가지고 강요되는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무임노동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는 것이고, 친척들간의 관계는 ‘내’가 직장에서 하듯이 ‘내’가 뭔가를 얻기 위한 전략적 관계로 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한 명의 섹스 파트너에 대한 문제는 일부일처제라는 결혼제도에서 비롯되는데 그것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적으로 일부일처제가 과연 정당한 제도인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현실의 안위 때문에 그것을 선택한다면 비겁자에 지나지 않는다.” 원시에 일부일처제는 없었을 것이고, 다부다처제가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소유와 지배의 개념과 함께 생겨난 일부일처제는 사람을 물질로 보고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에서 시작된다. 더 이상 투쟁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안정된 상황을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혼제도는 존속되어 왔다. 결혼제도가 사라진다면 그 후엔 무엇이 있을까? 동거라는 것이 있으니 크게 달라지는 모습은 없을 것 같다. 이혼이라는 것도 없어질 것이고, 육아는 가족보다는 국가의 몫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육아에 대한 책임감이 약화될 것 같다는 생각은 꽤 강하게 드는데,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떤 모습이 될 지는 알 수가 없다. 내가 권장하는 것은 아이를 낳지 말라. 는 거다. 당신의 유전자를 번식시켜야 하는가? 사회적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내와 남편을 만들고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 인류가 종말하면 어떤가. 한 종의 생물이 사라짐으로써 수 많은 새로운, 사라졌던 생물군이 나타날 것이다. (지금 결혼이 마치 상품을 구입하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결혼은 전략이고, 비즈니스”다. 결혼은 이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생활방식처럼 섹스를 넘어선 동반자와, 아이는 당신이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성취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 뿐이다. 당신의 삶의 목표가 가족을 이루는 것이라면... 할 말 없다. <이 사람 소설을 읽고 나면 생각이 극단으로 간다. 참,,,) '나'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수 많은 선택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언제부터 결혼은 필수가 되었을까? 위에서 언급했듯이 결혼을 하게 되면 단 한명의 섹스파트너에게 독점권을 주어야 한다. ‘나’와는 무관한 듯 (‘나’는 사랑을 부정하니까.)하지만 결혼 이후의 다음 사랑은 없어야 하는가? 결혼 이후의 사랑을 우리는 불륜이라고 말한다. 불륜이란 무엇인가? 도덕적이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사는 것이 불륜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후자가 더욱 우리가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위해 결혼제도는 없어져야만 하는 것이 된다. 소설의 후반 진숙이 이민 할 것임을 밝히며 말한다 "돈을 모은다면 야간 대학이라도 다녀봐야지, 뭔가 길이 있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턴가 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 내가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어." 도. 대. 체. 이게 뭔가? 계몽소설인가. 맘에 안 든다. ‘나’는 서른 셋의 여자이며 친구들 또한 같은 나이의 미혼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서른 셋의 여자의 평균은 아마 결혼을 하였고, 아이가 하나, 혹은 둘이 있고, 그 아이는 학교를 다니기 전일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나’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연애에 빠져서 설탕물 속을 헤매는 파리가 되기 싫다”는 인물이지 않은가. 게다가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하는 인물이기에 괜찮다. “그것은 脫戀愛主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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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품 중 가장 최악의 평을 받고 있는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에게 과감히 별 다섯개를 주었다. 나와 너무 다른 주인공 유경에게 끊임없는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다. 너무나 소설적인 인물. 하지만 현실적인 인물. 내가 아직 현실의 환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인가? 아니다. 아니야. 배수아씨를 살펴보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 어딘가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사랑에 대한 염세적인 시선, 가족에 대한 경멸, 독설로 가득한 유경. 그녀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녀처럼 탈 연애주의를 표방할 필요도, 고독한 독신녀로 남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가 이 소설에 과감히 별 다섯개를 줄 만큼 멋지게 여기고 있는 이유는, 도전과 자기애로 가득한 유경이 보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열렬한 긍정 때문이다. 100%의 긍정은 아니다. 하지만 긍정하고 싶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나도 그래. 나도 내 미래와 인생을 긍정하고 싶다. 열렬히 Yes, yes! 라고. 자신을 위해 살 것. 자신을 위해 살 것. [인상깊은구절] 나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교육을 받았고 가족들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으며 이제 내 앞에는 오직 내 힘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내 문제들이 다가올 뿐이다. 포르노 영화에 출연하든 백화점에서 옷을 훔치든 아니면 아프리카에 가든 내가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아직 감옥에 간 적도 없고 빚지지 않고 살아왔다. 그렇다면 내 인생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야 할 것인가? 그래, 분명 보랏빛 인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열렬하게 Yes, yes! |
| 30대 초반 독신 여성인 유경. 그의 주위에는 잔소리꾼에다 수다쟁이인 어머니와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친지들, 쿨한 척을 하지만 사실은 남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귀찮아할뿐인 사촌, 육체관계를 위한 연애를 강요하는 상사, 기회주의적인 면을 부드러움으로 위장한 직장 동료가 포진해 있다. 이런 유경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할 친구들은 또 어떤가. 우아한 불평 투성이인 미라, 가볍고 질투심 많은 진숙, 철저한 손익관계를 따지는 서란, 멍청할정도로 이상주의자은 자연은 틈만 나면 서로를 감시하며 헐뜯기에 바쁘다. 찐득찐득하고 감정소모적인 인간 관계와 연애에 질려버린 유경은 급기야는 脫戀愛主義를 선언한다. 연애에서 늘 성공하려면 연애를 벗어나 있으라고 충고하는 유경.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연애에 <성공>한 것일까? 이는 일견 맞는 말로도 들린다. 사실 어떤 일이든 비껴나서 보면 가볍게 넘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방법은 문제를 회피했다는 소리를 면하기 어렵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상처받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가 아닌가. 유경의 탈연애주의 주장이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독자로서 안타까웠다. 인간 관계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위해 타인에게 냉소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요 근래 많아졌기에 이 작품도 시대 상황을 잘 드러냈다고 볼 수 있으나 왠지 걱정되고 속이 상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나는 아직도 축축한 관계를 원하나보다. |
| 도발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책을 구입했다. 우선 이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라 어떤 선입견도 없었다. 책 날개의 작가 사진과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라는 광고 카피가 이 작가의 에세이란 정보로 카피를 잘 쓰는 젊은 작가의 책이란 정도만 가지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책인지 모르겠다. 페미니즘도 아니고 냉소주의도 아니고 뚜렷한 무엇도 없다. 그러면서도 극단적으로 날카롭다. 문장은 전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카피의 나열들 같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짧고 감각적인 카피를 연결해 이어붙인 이야기 같다. 이 소설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지극히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물과 공격적이고 편협하게 세상을 보는 시각.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유경부터 화장실에서 잠시 만난 여자까지 하나같이 전형적이다. 능력있는 40대의 호남형 바람둥이, 쿨하고 능력 있지만 결국은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는 30대의 사촌,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나 부잣집 가정교사로 들어와 그집 딸과 연애하다 결국에는 헤어지는 주인공의 연인. 1960년대부터의 드라마,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지겹게 보아온 캐릭터들에서 2000년대식 변주(이정도도 변주라고 불러주어야 할까?)만 있을 뿐이다. 장소는 계속 압구정동 청담동으로 이동하지만 그들의 모습과 생각은 <젊은 느티나무>라는 옛날 소설의 주인공들보다도 바래 보인다.(정말 책 발행날짜를 뒤져보기도 했다.) 거기다 여자들의 캐릭터도 어쩌면 그렇게 주변적이고 정형적인가. 주인공 유경의 친구들은 남성중심의 사회에 희생된 비극의 주인공, 마녀, 철부지 등등으로 그려져 있다. 마치 남자들이 여자들을 그려낼 때 보는 상징화 된 모습 그대로이다. 작가는 분명히 여성일 텐데 왜 그렇게 독신 여자들의 왜곡된 모습만을 그대로 차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 안에서 좀더 극대화 시키려는 의도인지. 식구들의 구성도 전형적이기 그지없다. 남성우월주의의 오빠와 남동생. 공교롭게도 하나는 엘리트이고 하나는 백수이다. 거기다 자식에게는 무조건 헌신적인 어머니와 결혼지상주의의 여동생. 마치 페미니스트의 적들을 표본화 해놓은 듯 하다.(이건 사족이겠지만 혹시 다른 형제들의 이름도 유경이란 이름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대사의 느낌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분명히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각 인물들은 똑같은 말투로 자신들의 똑똑한 생각들을 피력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다른 생각을 뱉어내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투에 낙차가 없다. 여기서 소설이 주는 큰 재미 하나를 상실해 버린다. 이게 뭔가? 역사 소설에서도 이렇게 똑같은 어투로 얘기하진 않는다. 덧붙여 전혀 현실감 없는 호칭,(세상에 누가 친구를 '유경'이라고 부르나? '유경아'라고 부르지. 거기다 동갑내기 사촌까지도 '유경' 이라고 부르다니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것일까?), 주인공의 공격적인 시선으로 말미암아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간다면 나는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다. 도대체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쿨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이 소설은 쿨하지 않다. 속으로는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세상에 대해 곤두서 있으면서 겉으로만 냉담한 척 아닌 척 하는 것이 무슨 쿨인가? 이 책을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이 작가가 왜 그리 유명해졌는지도 궁금하다. 설마 다른 책들도 이러하다면 정말 실망스러울 것이다. 마치 1980년대 남자들을 대상으로 한 펄프 픽션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들이 유경이라는 악밖에 남지 않은 여자의 눈에 투영된 모습 같다. 읽으면서 계속 머리가 쭈볏거리는 피곤함을 느꼈다. 대상없는 공격, 끝이 없는 정신 소모, 그리고 공감대가 형성 안되는 인물들. 정말 피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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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글은 작년, <철수>를 처음으로 읽었다. <철수>는 뭐랄까? 오만한 작가들이 흔히 그러하듯 자신의 글에 도취되어 쓴 듯한 느낌이 거북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작가 자신만의 세계를 담은 작품 같았다. 그런 혼자만의 공간을 넌즈시 보여주며 세상과 자신은 분명 다르다고 선을 긋는 작가들. 배수아의 첫느낌은 그랬다. 아니 <철수>는 그랬다. 지적 허영에 빠져있거나 자아도취에 빠져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 이렇듯 배수아와의 첫 만남은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의 글은 중독성이 있는 것일까? <철수>를 읽고서 맘에 들지 않아, 맘에 들지 않아.... 중얼대면서도 나는 어느새 그녀의 책을 또 펼치고 있었다.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를 읽었다. 그 작품을 읽고서 그녀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배수아. 이 여자 뭐지? 오만한 척 하는거야? 아님 정말 남다른거야?
세 번째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를 읽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이 얼마나 인터넷 소설틱한 제목인지. 이 얼마나 청소년기 풋사랑스러운 발언인지. 그러나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마치 거울처럼 이 시대를 비추어 담은 책이었다. 감히 말하고 싶다. 비로소 배수아를 알게 한 책이라고. 배수아의 글은 그녀의 모습과 닮았다. 표정이 걷힌 얼굴에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듯한 냉소적인 눈빛. 그녀의 글이 바로 그러하다. 그녀가 글 속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적나라하고 냉정하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세상 그대로를 투영시킨다. 이 책을 읽는동안 잠시 잠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올랐다. 뭐랄까? 인간의 내면에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들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기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던. 그래서 왠지 불편했던.
이 책,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그녀의 문체도 마음에 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배수아식(?) 소설을 짓기에 가장 어울리는 문체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삼십대 독신녀들의 사랑, 결혼, 일, 친구, 타인의 시선을 담고 있다. 나? 삼십대다. 독신녀냐고? 음.... 독신주의자는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지금 상황은 독신녀나 하등 다를게 없지. 그렇지 뭐. 그래서일까? 책 속의 그녀들 모두가 공감이 갔다. 왠지 표독스러운 그녀들이 나같기도 하고 내 친구들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여자들이란 참 말이 많고 분란을 쉬 일으킨다. (여어~ 그렇다고 날보고 뭐라 하진 말라고. 나도 이런 여자니 말이야) 오죽하면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는 말이 있을까? (점입가경이군.) 혹시, 당신도 뒷담화가 무서워 화장실 가는 것이 꺼려진 일이 있는가? 이 책에서의 그녀들이 딱 그러하다. 그네들의 뒷담화가 어찌나 진솔하며 어찌나 냉정하던지. 그런 여자들의 심리 묘사가 너무나도 잘 된 작품이다.
또 하나 내가 깊이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현실과 꼭 닮은 이야기라서 그러했다. 이 사회,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라고 하지? 그 중 하나가 소위 말하는 '결혼의 조건' 아닐까? '사랑만으론 못 살아. 사람을 살게 하는 건 돈이지. 그러니 결국 바닥을 드러낼 사랑을 보고 시집을 가느니 얼마나 빵빵한지를 보고 가는게 현명하지 않겠어?'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면 팔자를 고친다' 속물주의에 찌들 찌든 배우자 사냥의 대표적인 슬로건들....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들, 이런 사고들.... 역겹다. 이리 말하면 마치 나는 가질만큼 가진 사람이라 돈 아쉬운 줄 몰라 그런다고 하겠지? 아니 어쩌면 너무 없이 자란데서 길러진 자격지심이 아니냐 할런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 젊음이들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바라보는 시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경의 사촌 '금성' 의 배우자의 자격요건들을 보는 내내 현시대의 단상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여담이지만, 난 좀 더 훌륭한 배우자를 선택하려는 젊은 눈이 못마땅하다는게 아니다. 단지 오로지 돈, 돈. '돈 이상은 아이 돈 노' 라는 그런 눈이 싫은 것이다. 이리도 수용할 수 없는 이야기에 왜 매력을 느꼈냐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그 치들의 속을 훤히 볼 수 있어서. 또 그것이 정당하고 타당할 수 있다는 설득이 재미있었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현시대 젊은이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살필 수 있어 즐거웠던 책이다. 배수아가 이것을 단지 보고하고자 했다면, 고발하고자 하는 글을 썼다면 매력 절감, 가치 하락이었을지도. 그러나 문학적인 기품이 살아있다. 8개의 프롤로그로 들어가는 이야기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있어 배수아가 겉멋들린 작가에서 글을 쓸 줄 아는 작가로 바뀌었다면. 그야말로 환골탈태요! 뭐랄까? 배수아는 오만하다. 그러면서 신랄하고 또 영리하다. 배수아에게 관심이 간다. 그녀의 작품을 더 읽어 볼 작정이다. |
| 사람의 첫사랑,에서 그녀가 품어내던 그 섬뜩한 냉소를 기억한다. 타협하지 않으며 이해를 구하지 않고 설득을 하려는 것도 아닌. 누구에게 기대려 하지도 않고 누군가가 기대오게 하지도 않는. 어지럽게 얽혀있는 모든 관계망들 속에서 홀로 오롯하게 선 유아독존. 염세적 허무주의라기 보단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냉소의 가시들로 촘촘한 그녀의 언어는 서슬퍼런 날을 세우고 심장을 찌른다. 문학이라는 고정관념의 무거운 외투입기를 거부한 채 한껏 가볍게 벗어젖혀 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그녀의 문장은 그렇기에 새롭다 할만하다. 하지만 그 신선함이란게 날카로운 메스로 매끄러운 피부를 가르기라도 하는 것 처럼, 어느 정도 자학의 고통을 수반한 비릿한 핏빛을 띤 신선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때문에 그녀의 글을 읽는 일은, 아프다. 유쾌하지만은 않고 마음이 잘근잘근 씹히듯 불편하다는 거다. 책이란 무릇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 한다,던 카프카의 말에 따르자면 그녀야말로 정말 충실한 글쓰기를 하고있는 셈일런지.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당신이 싫습니다'라는 앤서링 머신의 차가운 기계음에서 느껴지는 완고한 거부, 자유로운 삶을 통한 진정한 자아찾기라는 빛깔 좋은 허울 뒤의 그 고된 허망함, 타인에 의해 결코 상처받지 않고자 하는 애처롭기 그지없는 극도의 자기보호 본능들. 탈연애주의를 외치며 사랑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가차없이 비웃는 그녀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당당하여 아름답다기 보다는 한없이 쓸쓸하다. 왠일인지 그는, 행복해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씁쓸한건 그녀의 모습에 나와 우리의 모습들이 바로 엇비슷하게 겹쳐져 보이는 일. 그렇게 기를 쓰며 지뢰밭을 피해다녀 지켜낸 당신과 나의 삶은 과연 행복한지. 인생이란 결국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 하나를 얻는대신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 진보와 후퇴의 문제와는 그저 별개의. 그러니 이렇게 호들갑스러울 필요는 없다는 것. 나는 이제 당신의 위선과 나의 위선이 지겹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은게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든 끊임없이 소통을 원하고 있는게 아닌가. 나를 향한, 그리고 당신을 향한. |
| 33살의 독신여성,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어느 정도 쌓았고 쓰디쓴 연애경험도 한두 건도 있었던,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것 같은 여자. 그러나 작가가 후기에 써두었듯, 이 책의 인물들은 {동시대 한국 여성의 대표성이 없다}. 그 나이또래의 내 주변사람들을 볼 때, 역시 이 소설 속의 유경은 확실히 특이하고도 도드라진, 그야말로 '소설적인' 존재였다. 편견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온 유경. 전통적인 가치관인 결혼이데올로기도 가족이데올로기도 거부한 채 탈연애주의를 선언하고 언젠가 아프리카에 건너가 수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사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여성들이 꿈꾸는 일종의 {독신유토피아}그 자체였다. 이 땅의 독신여성이라면 한번쯤 꿈꿔볼 수 있는 어떤 이상형 같은.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결코 이 작품의 주인공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유토피아(UTOPIA)란 바로 '아무 곳에도 없는 곳' 이었기에. 이 책의 주인공은 독신생활의 함정과 고독을 알고 있다. 젊음을 지내오며 몸소 체득한 경험과 지혜가 있으며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용기도 고집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용기와 고독 모두가 '있음직한'이라기 보다는, '있었으면 좋겠을' 어떤 이상형의 전형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기엔 주인공의 개성은, 너무 특이하다 못해 현실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가족과 결혼이데올로기를 쉽게 거부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성적욕구를 내세우며 언젠가 아프리카에 건너가겠다는 생각을 할 독신여성이 대체 얼마나 될까. 또한, 반면 갖가지 개성을 가진 유경의 친구들 역시, 이건 너무나 전형적이고 뻔하다는 느낌이다. 분명 이 시대 여성들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끼워 넣은 인물들이었겠지만, 너무 전형적이고 딱딱하다. 일견 보기에, 이상형의 인물을 가운데에 두고, 그 주변에 뻔한 인물들은 여기저기서 적당히 오려내어 병풍처럼 둘러서 붙인 느낌. 작가가 {동시대 한국 여성의 대표성이 없다}고 했던 것은, 아예 '있을법한'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이상과 상상을 휘갈긴 망상록을 쓰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제목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대내외적으로 결혼압박을 받는 이 땅의 모든 미혼여성들이 내지르는 하나의 절규라고 생각한다. 부모로부터, 친척들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듣는 결혼에의 압박에 대해, 그녀들이 히스테릭하게 내지르는 '나 좀 내버려 둬!'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는 읽는 내내 후련하거나 시원하긴 커녕, 오히려 내내 갑갑하고 슬펐다. 당당하게 {탈연애주의}를 선언하는 유경의 모습에서조차 결혼과 연애와 독신에 대한 편집증적인 강박증 같은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결론은 용감한 여전사 같다기 보다는, 그만큼 그녀가 얼마나 결혼과 가족 등의 전통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번민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탈연애주의를 선택할지언정, 나는 그녀가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소설 속에선 가능할지 몰라도, 소설 밖의 현실을 사는 독신여성들에게 [탈연애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성에 대한 담론차원을 넘어서, 그 이론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비현실적인 결론이나마 꿈꾸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 땅의 독신여성들은 얼마나 서글픈가. 이 책은 그녀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헌사일지도 모른다. 비현실적일지언정, 마음속에나마 언제든 그릴 수 있는 유토피아란, 분명 그 자체로도 가치있으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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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결혼제도, 가부장적 제도, 사고방식과 문화는 늘 여자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어떤 구속이나 올가미로도 붙잡아 두려하고 귀찮게 한다. 이 책은 그 구속에의 과감한 도전이며 당당한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속이 후련해지는 건 왜일까? 나 스스로도 떨쳐버리지 못한 현실과 주위의 굴레, 남자와 결혼이라는 결혼 적령기 무렵의 고민거리를 새삼 생각하게 했다. 이 책에서 마지막 반전이 참 멋있었다. 여자도 자유로울 수 있음을, 탈 연애주의의 이상을 품을 수 있음을 과감히 보여준다.
책의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사랑하지 않는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 아무런 감정도 책임도 과장도 미화도 없는 진짜 섹스····」이 구절에서 유경의 심경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 같다. 아련한 첫사랑이자 추억속의 남자 교진이든, 유부남에 직장상사에 거드름을 피우고 프라이드 강한 남자 길이든, 순진 무구한 소년같은 2PAC이든 유경에게는 이제 더 이상 상관이 없는 것이다. 더 이상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일체 포기한 상태, 그 자체로의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라는 독백이 스스럼없이 뿜어나온다.
유경은 이제 단지 자신을 둘러싼 한국의 고정관념과 사고방식에서의 탈피뿐 아니라 자기 내부의 자기를 옭아맨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리라. 늘 꿈꾸어 오던 일탈의 아프리카, 낯설지만 자유로운 곳! 야생의 상태에 던져져 자연의 모습으로의 꿈을 이루려 하는 것이리라! [인상깊은구절] 그렇다면 사람들은 결혼을 왜 하지? 우리 부모는 왜 했지?단지 같이 있고 싶어서?그냥 같이 살면 되잖아. 아이들을 낳아야 하니까?사생아가 어때서?법이 그렇다고?그럼 법을 없애면 되잖아. 사람이 만든 법인데, 세상을 너 마음대로 사느냐고?그래, 난 마음대로 살고 싶어. 남들 하는 대로 살고 싶지는 않아. 아, 난 그래서 결혼 안 해. 남자가 필요하다면 같이 자겠어.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남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아. 난 그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동물을 학대하는 짓보다 더 이상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절대로. 나는 언제나 우리 가족이 싫었다. 그들은 이렇듯 내가 가장 혐오하는 사상으로 중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형제들은 제각기 비슷한 생각을 가진 배우자와 결혼함으로써 비슷한 사상을 가진 아이들을 길러내어 그들의 그런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것이다. 내가 좀 과격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어떤 방법으로든표현해 본적이 없다.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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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의 소설은 항상 "당혹"스럽다. 이 단어 외에는 달리 그녀의 글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그런 단어가 있다면 "당당함,대단함" 정도일 것이다. "붉은손 클럽"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상한 매력에 이끌렸다. 다른 어느 작가의 글에서도 그녀의 특유한 글에서 느낀 감정을 느낀적이 없었다. 요즈음은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여자들이 직업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독신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여성들도 늘어나게 된 것이 사실이다. 나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독신"이란 의미는 어떻게 보면 환상이라 말할수 있다. 막연한 생각일 뿐이다. 가사노동에서의 해방, 출산과 양육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을수 있는 길이 "독신"이라고 불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배수아는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는 책을 통해 정말 실제적인 독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것들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다. 독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게 경제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섹스에 대한 자유로움이었다. 그럼 섹스에 대한 자유로움은 무엇인가? 배수아는 이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섹스에 명분은 필요없다. 사랑하지 않은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나는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고독도 동시에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일 고독하다면 그것을 말없이 견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리광에 불과하다"
물론 그녀의 글 전부가 다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그건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거다. 내가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책 속의 사람과 사람들끼리 커다란 갈등이 없었다는 것이다.
인위적이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물론 독신을 주장하는 주인공 유경과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서 간혹 서로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으로 인해 마찰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갈등으로까지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글에 갈등이 없다면 시시하게 느껴질수도 있을수 있으나 이 글은 그런 갈등없이도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책을 놓을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지 않나싶다. 물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수의사가 되고 싶어 직장에 다니며 야간대학에 다니는 주인공 유경은 평범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만의 영원한 독신을 꿈꾼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녀를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독신을 꿈꾸는 여성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나는 독신을 선택한다는 것은 고독도 동시에 선택한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만일 고독하다면 그것을 말없이 견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리광에 불과하다 가소로운 웃음이 나온다. 내가 대학을 갓 졸업했거나 한다면 이런 나 자신에게 좀더 관대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알지 않는가. '아이 참, 왜 내 눈에 차는 남자가 없는거지? 운명처럼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하지 않을 거야'하면서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면, 독신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낫다. 독신 어리광은 '우리 남편은 왜 언제나 양말을 세탁기 앞에 얌전하게 벗어놓는지 모르겠어요. 세탁기 안에다 넣어만 준다면 내가 훨씬 행복할텐데....'하는 주부 어리광이나 '짧고 부담 없고 멋진 연애에 빠지고 싶어 잉'하는 사십대 기혼 남자의 어리광만큼 끔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