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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물리학 ,양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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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처음 출간된 하이젠베르그의 강의록이다. 철학의 기본적 문제인 존재의 의미를 양자론을 통해 바라본 과학철학서라고 할 것이다. 전체 11장으로 구성되었다. 물리학자나 수학자들이 동시에 철학자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마 물질이나 존재의 궁극을 공부하다보니 철학과 연결이 되나보다 생각했었다. 이 책을 보니 왜 물리학과 철학이 근접할 수밖에 없는지 명확해졌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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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처음 출간된 하이젠베르그의 강의록이다. 철학의 기본적 문제인 존재의 의미를 양자론을 통해 바라본 과학철학서라고 할 것이다. 전체 11장으로 구성되었다.


물리학자나 수학자들이 동시에 철학자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마 물질이나 존재의 궁극을 공부하다보니 철학과 연결이 되나보다 생각했었다. 이 책을 보니 왜 물리학과 철학이 근접할 수밖에 없는지 명확해졌다. 특히 20세기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발표되면서 시공時空과 물질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되면서 현대물리학의 존재론적 철학의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양자론이 확립된 이후 과학의 가장 큰 변화는 고전철학 고전물리학에서 법칙처럼 생각되어온 인과율과 결정론의 붕괴라고 할 것이다. 과학적 인식의 대상과 관찰자의 관계가 항상 일정하지는 않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변화였으며, 관찰자의 의지가 대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해 아인슈타인조차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로 비판적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저자는 원자물리의 기원을 언급하면서 고대 그리스철학의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만물의 궁극적 원리는 대립자간의 투쟁과정’이라는 학설이 오늘날의 현대물리학과 매우 유사함을 설명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운동인데 그 기본단위는 불로서 불이 물질인 동시에 운동을 일으키는 힘이라 주장했다. 여기서 불을 에너지로 바꿔쓴다면 곧 현대물리학의 관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어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주장하여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고 기본적인 단위가 원자임을 주장하고 원자들 사이에는 빈공간이 있어 운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이후로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의 궁극적인 존재를 밝히기 위해 이천년이 넘게 연구를 거듭하여 왔다.


근대이후의 과학자들은 고대철학자들과는 달리 경험과학을 통하여, 탐구와 실험을 통한 검증을 가지고 궁극적인 존재 즉 자연현상의 법칙을 추구해왔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질의 이원성을 사유와 연장이라는 개념으로 확립시켰고 뉴튼은 신과 인간정신 없이도 이 세계를 기술할 수 있다는 신념을 법칙화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적 근대적 가정들은 양자론의 등장과 그에 따른 코펜하겐 해석으로 모두 근거를 잃게 되었다.  근대철학이 추구해온 인식과 존재의 문제 역시 절대시간 절대공간의 문제와 함께 양자세계에서 그 의미를 잃고 말았다.


다시 말하면 고전철학 근대철학 근대과학에서 논의되는, 진리와 세계에 대한 모든 개념은 더 이상 그 근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무한성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자연세계가 관찰자의 인식과 독립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부분적으로만 옳다.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의 등장은 철학자나 과학자가 일상생활의 경험세계에서 고전물리학이 취해온 개념들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데 경종을 울렸다.”(p.152)


그러나 물론 양자론의 코펜하겐해석에 반대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즉 고전물리학의 실체개념,유물론적 존재론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객관적 실제세계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인데 역설적이지만 아인슈타인도 이에 속한다.

저자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부과학자들의 주장이 무의함을 비판하는 동시에 과학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지적을 한다. 과학자는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이념을 신봉하여 자신의 사유방법론을 특정한 철학안에 제한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하며 “오늘날 정치적 교조나 사회적 행동이념만이 거의 종교적으로 맹신될 수밖에 없는 그런 국가가 있다면 문제상황은 마찬가지”(p.167) 라고 했는데 마치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북한을 보고있는 듯 하다.


양자론의 물질구조에서는 19세기에 나온 또 하나의 이원론인 물질과 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질은 힘을 만들고 힘은 물질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이 발전하면서 물질과 에너지는 동일 개념으로 파악되었다. 가장 작은 단위라고 알았던 원자는 다시 핵과 전자로 나눠지고 원자의 내부는 텅 비어있으며 핵은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로 나눠지는데 이것이 곧 물질의 궁극적인 단위는 아니라고 한다.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소립자의 존재가 결론을 유보하게 한다. 그런데 이 소립자들은 자체가 어떤 작용력이나 에너지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물질과 에너지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의 결합가능성을 말하고 있는데 이건 아마도 요즘 최재천교수가 주장하는 통섭과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다음장에서는 언어와 실재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마치 소쉬르와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다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론적으로 양자론의 언어는 과학언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시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유사할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두루뭉술한 표현 은유적 표현 어떻게도 생각되는 표현들이 바로 양자론의 언어라는 말인가?  아마 그럴 지도.


마지막 장에서는 물리학이 인간의 사유방식에 미친 영향을 논하고 있는데 이성의 진보뿐 아니라 과학기술상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적 정치적 긴장을 줄이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의 철학적 정신을 수용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하이젠베르그가 말하는 철학적 정신이란 무엇일까. 상보성의 원리이고 용인과 개방적 사고일 것이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이 바로 객관을 외치며 독선에 빠지지 말고 계속 변화하라는 주문인 듯 하다.


신을 포함하여 진리의 객관적 존재를 전제한 철학이나 과학은 더 이상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양자론, 입자이면서 파동도 되는 존재의 이중성과 가변성을 밝힌 불확정성의 원리, 절대적 시공간은 없다는 상대성이론. 이제 철학의 제문제는 현대과학의 발전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철학에서 파생된 과학이 지금은 철학을 끌어안는 형국이다. 위대한 과학자는 종교인처럼 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순수함과 엄숙함이 함께 느껴진다.

 

하이젠베르그가  유학이나 도교를 공부했을까? 불교를 알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이렇게 동양사상과 겹치는 이야기가 많을까. 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하나이면서 전체고 전체인동시에 하나고......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 더오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읽은지 오래지만 다시한번 볼까나.

 

k****n 2009.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