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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 동물이 내 엄마라는 걸 알았다. / p.9 이 책은 박서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한때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꽤 읽었던 적이 있었다. 정용준 작가님의 <내가 말하고 있잖아>, 구병모 작가님의 <네 이웃의 식탁>, 문지혁 작가님의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되면 조금씩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읽었던 원소윤 작가님의 <꽤 낙천적인 아이>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번에 신작으로 발간 소식을 듣고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별이라는 인물이다. 별이는 자신을 돌보는 조 단장과 함께 숲 가꾸기를 주로 하는 영림원으로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다나라는 이름의 동물 종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탈출한 다나가 자신의 엄마라는 것을 확신한다. 별이는 다나와 사육사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고, 다나의 과보호를 떠나 인간의 세계에 오게 된 것이다. 증오로 가득찬 별이는 다나를 죽이겠다는 생각으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방제단에 참여하기로 한다. 술술 읽혀졌던 작품이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작가의 필력에 따라 난이도 차이가 꽤 크다고 느껴졌다. 읽으면서 도저히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너무나 피부로 와닿는 지점들이 많아서 읽는 속도가 꽤 빨랐다. 스토리 자체도 어렵지 않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완독까지 대략 세 시간 정도 소요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별이의 위치다. 조 단장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딱히 조 단장이 두 사람을 눈에 보이게 차별하지는 않지만 은연 중에 조 단장의 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별이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씩 읽으면서 이러한 의문들이 내내 맴돌았다. 과연 현재 주류의 공동체가 결혼이민자, 성 소수자, 장애인 등의 약자들의 피부에 와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일방적으로 만드는 공동체가 아니었을까. 두 번째는 별이가 겪었던 다나의 양육 방법이다. 다나 입장에서는 별이가 자신들을 해치는 인간들로부터 지키는 방법으로서 했던 행동이지만 별이에게는 오히려 폭력으로 와닿는 듯했다. 그러면서 보호대를 제거한 침대에서 떨어져 사망한 아이와 보호대 사이에 끼어 사망한 아이의 뉴스 보도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묘하게 다나가 별이에게 대했던 양육과 오버랩되었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방법도, 결과도, 그 어떤 것도 정답이라는 게 없지 않을까. 그밖에도 다나를 여론 몰이로 이용하는 정치, 소나무에게 해가 되는 약품들을 살포하는 탁상 정책, 현익으로부터 드러나는 인간의 무의식적 우월감 등 철학적이거나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많은 사람들과 생각의 장을 마련한다면 더욱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몇 줄로 끝날 정도로 심플하지만 읽는 내내 머릿속은 무거웠다. 이 느낌 또한 나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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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다나>를 읽고 박서영 작가의 힘과 생각에 신뢰를 갖게 되었다. 미지의 생물과 인간이 만났을 때 겪는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생물 최상위에 있는 인간. 인간에게 옹호될 수도, 배척될 수도 있는 미지의 것은 어떻게 파멸되는가에 대한 과정이 적나라하게 쓰여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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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는 후자이다. 소설은 난데없이 '자신'의 어머니가 '짐승'이라고 고백하며 시작한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처럼 도발적인 도입이다. 어떤 은유적 표현이 담겨 있을까, 하고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짐승'이라는 표현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표현 그대로 '짐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제 '짐승'이다. 이 무논리적 도입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소설이 페이지가 거듭되고 좌측으로 넘어간 페이지가 도톰하게 잡히기 시작하면 '오호라'하고 작가가 전개하려고 하던 설정의 가닥이 잡힌다. 그 뒤로 소설은 '영화'처럼 흥미진진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소설은 '소나무 해충'을 옮겨 다니는 '다나'라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다. '다나'는 '해충'을 옮겨 다닌다. '소나무 에이즈'로 알려진 '소나무재선충병'을 옮겨 다니는 존재다. 다나의 흔적은 '살림'과 마을을 파괴한다. '외지'에서 온 인종(?)에 대해 '짐승'이라는 비유를 하고 그들이 사회의 악을 옮기는 나쁜 것이라 표현한다. 그들은 곧 '재난'이고, '침입자'이며, '짐승',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심지어 그의 핏줄마저 그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둔다. 다나의 '딸'은 스스로가 '다나'의 '딸'이라는 것을 숨긴다. 그것이 결국 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며 그로인해 '보통의 사회구성원'이라는 이름표를 얻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처럼 핏줄에 대한 '증오감'을 키워간다. 도서에서 '다나'는 끝까지, '짐승'으로 묘사되지만 생물학에서 교배를 통해 생식이 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으려면 '종' 혹은 '목'이 가까워야 한다. 현재 알려진 과학 기준으로 '인간'과 안정적으로 교배해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동물은 없다. 이는 확인된 사례도 없거니와 현대 생물학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소설' '다나'에서는 외국에서 포획한 '다나'라는 짐승을 대한민국 동물원에서 기르며 시작된다. 인간은 분명 아니라고 하지만 '다나'를 담당하는 '동물원 사육사'와 '다나'와의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이 나오게 된다. 과연 다나는 '짐승'이었을까. 여기에 대한 표현은 명확하다. 소설에서 '다나'에 대한 언급으로 '짐승'만이 유일하게 사용될 뿐이다. 이에 대해 인류, 인종에 대한 그 어떠한 표현방법도 없다. 단지 짐작만할 뿐이다. '다나'는 과연 '짐승'이었을까. '다나'와 '사육사'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다나의 과보호 속에서 꽤 심적, 육체적 상처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다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나의 아이에게 했던 꽤 잔인한 폭력은 '외부'에서 '자식'을 보호하고자 했던 잘못된 모성애의 일부라고 굳이 이해해 볼 수 있다. 어쨌건 다나의 딸은 다나를 벗어나 '사회'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녀는 반인반수임에도 '반쪽'의 피를 부정하고 철저하게 '인간'이 되고자 노력한다. 스스로 자신이 인간과 어떻게 다른지를 매순간 느끼고 어떤 경우에는 질투한다. 사회에 악을 끼치는 '다나'에 대한 증오감도 함께 커진다. '다나'를 직접 죽이고 싶다는 욕망은 점차 커진다. 스스로도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감'에 철저하게 '세뇌'되며 그 절대악을 처단하기 위해 가장 앞서 나간다. 소설의 후반부에 들어서면 '다나'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 근거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커져버린 '증오감'은 이제 근거가 없어도 저절로 작동된다. 정치와 사회가 만들어낸 증오의 대상에 완전히 세뇌된 채, 자신의 어머니를 '짐승'으로 취급하며 직접 사냥하러 다니는 '딸'의 이야기에서 자칫 '허무맹랑한 소재'일 수 있는 글이 꽤 현재 우리의 어떤 모습을 닮고 있다는 동질감을 가지게 한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이어지며 읽고 있는 독자로 하여금 다시 묻는다. '자, 이제 과연 누가 짐승이었는가' 해충을 옮긴다고 믿어졌던 '다나'였는가, 아니면 근거조차 없는 희미한 공포를 증오로 증폭시키고, 그 증오를 정의로 소비하던 우리 사회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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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의 후반부까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존재인지, 짐승인지 인간인지 분류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숲을 태운 뒤의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어느 집단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다나의 핏줄을 지닌 존재로서 끝내 완전한 인간의 범주에 속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정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응원하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유한한 삶 속에서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세월이 지나 죽음으로 끝날 삶이라면 누군가를 향한 복수와 결핍을 삶의 이유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미 정해져 버린 핏줄과 환경 같은 ‘과거의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보다, 내가 유일하게 지켜낼 수 있는 ‘나’에게 더 관심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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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다나라는 짐승과 인간 사이의 생명체로, 주인공은 다나와 같이 짐승은 아니다. 나는 그러나 그녀가 인간이라기에도 부르기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평균의 성인 여성보다 훨 작은 키에 흰 피부에 주근깨의 동양인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곧 다른 생명체와만 같다. 이는 다나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와 상반된다. 인간인줄 알았던 존재가 실은 동물이었다. 인간성을 잃은 인간 아버지와, 누구보다도 주인공을 사랑한, 모성애가 진득한 다나인 어머니. 주인공은 어머니가 동물원에서 탈출했단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으러 떠난다. 그 여정을 자연스레 합류해 따라가게 하는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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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는 적이다. 조 단장과 나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다. 나는 내 엄마를 증오한다. 그 적개심의 크기는 내가 한때 품었던 사랑의 크기와 같다. 내 엄마는 짐승이다. 그러나 나는 조 단장 아래에서 사람으로 키워졌다. 내가 발화하는 사람의 언어를 엄마는 결코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귀나 기울여 줄까? 어떤 딸은 엄마에 대한 분노를 먹으며 자란다. 나는 엄마와 다르다는 믿음이 비로소 나를 자유롭게 한다.” p83. 나는 책을 읽을 때 늘 작가의 말을 먼저 읽는 습관이 있다. 작가의 어떠한 마음으로 이 글을 시작했고 여정을 걸었는지 먼저 알고 시작하면 첫 문장을 읽는데 겸손해진다. 박서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작품에 대해 너무도 명확하게 말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고. 책을 읽는 내내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나를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가장 아프게 했던 존재. 그가 바로 엄마였다. ‘보호’라는 울타리는 ‘학대’라는 이름으로 ‘나’를 옭아매었고, 짐승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결국 짐승으로서의 존재를 부정하고,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기를 원한다. 온전한 ‘인간’이 되려면 나의 뿌리이자 내게 짐승의 피를 이어준 엄마를 없애야만 한다. 세상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는, 해충이자, 병이자, 악마라 일컫는 다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만이 엄마인 다나가 세상에 퍼뜨린 죄에 대한 속죄이며, ‘나’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라 믿음으로. 하지만 그 믿음이 완전히 부서지는 순간, ‘나’의 절망감은 한 없이 가라앉는다. 마침내 마주한 엄마는 오랜 세월 증오한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고, 자신은 끝내 인간의 딸이 될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인간도 다나도 아닌 이형의 존재로서 스스로를 재정의하게 된다. “나는 다나와 달랐다.” “나는 다나의 딸이지만 다나와 같은 짐승은 아니다.” 계속된 존재의 부정은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서 선언하는 데에 이른다. 작가는 처음부터 너무 명확하게 작품의 주제를 던져놓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더 많은 생각할 거리가 생겨나는 소설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박서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찾아보니 출간작이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문장 하나하나를, 중지 손가락에 굳은 살이 다 생기도록 짙은 연필심을 꾹꾹 눌러 쓰는 작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그려낼 다음의 삶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도서제공 #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 #박서영 #다나 #청소년추천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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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다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표지와는 반대로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경북의 한 동물원에서 동물 한 마리가 탈출했다. 나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 동물이 내 엄마라는 걸 알았다." 동물원에서 한 동물이 탈출했는데, 그게 엄마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이 소설에서 '다나'는 다나섬에서 발견된 인간과 매우 흡사하지만 인간은 아닌 동물이다. 인간의 침입으로 병원균에 면역이 없던 다나들은 금세 멸종위기종이 되었고, 여러나라가 희귀종이 된 다나를 수입해온다. 우리나라도 암컷 다나 한 마리를 들여오지만, 다나가 소나무를 100% 감염시켜서 죽이는 '소나무등벌레병'의 매개체임이 발견된다. 이로 인해 신비한 구경거리였던 다나는 순식간에 유해동물이 된다. 한편, 다나의 담당 사육사는 다나를 임신시키고 그것이 두려워 강원도 법송군 연리재에 다나를 버리고 도망간다. 이 때 연리재에서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 별이다. 인간과 다나 사이에 태어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유년기를 다나와 둘이서만 연리재에서 지낸 별이는 바깥 세상을 궁금해한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인간을 증오하게 된 다나는 나가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별이를 끔찍하게 학대한다. 사랑하지만 두려운, 애틋하지만 증오스러운 엄마. 어느날 밤, 별이는 결국 다나에게서 달아나고 얼마 안 가서 다나는 다시 동물원에 잡혀간다. 그렇게 서른이 될 때까지 인간으로 살아온 별이가 엄마의 동물원 탈출 소식을 들으며 소설이 시작된다. 주인공 별이가 계속해서 엄마인 다나와 자신을 다르다고 되뇌이고 설득하려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등장인물 모두가 누군가에게 속하고 싶어하지만 제대로 대화를 하고 의미가 통하는 이들은 하나도 안 나온 것 같다. 별이와 다나가 그렇고, 별이와 조씨도, 조씨와 원지도, 현익과 그의 가족도... '나'로서 자유롭게 존재하지도, 사랑하는 존재에게 사랑 받지도 못한다. 정말 고독하고 외로운 이야기지만, 결말까지 읽으니 왠지 후련한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법송군 근처에 와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다나가 탈출한 동물원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었을 때다. 별이가 고작 이정도만 이동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을 때, 어쩐지 내 마음도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 드는 부모님을 볼 때,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 키오스크 쓰는 것도 어려워하고 한 번 든 생각은 바꾸지 않는 고집쟁이가 되어버린 부모님. 그리고 그들과 나를 겹쳐 볼 때, 닮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도 그대로 닮아버린 나를 발견했을 때 느끼는 감정들. 책을 덮고 나서도 이런 것들이 자꾸만 떠올라서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다나#박서영#민음사 #오늘의젊은작가#한국소설 #오늘의젊은독자단#서평단#서평#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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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 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경험하고서도, 본인의 30여 년의 삶을 한때 사랑했던 엄마를 부정하고 증오하며 살해할 결심을 하면서도 자신이 '인간'으로 소속되길 바라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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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사람과 같은 모습이지만 사람은 아닌 짐승 '다나'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종'인 '나'의 시선을 통해 우리 사회의 경계와 혐오를 다루는 이야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력 강한 소설이었다. 멸종위기종이자 전염병을 옮기는 침입종으로 분류된 다나가 동물원을 탈출하면서 그녀의 추격전이 시작된다. 스스로를 ‘다나의 딸이지만 짐승은 아니'라고 정의하며 인간 세계에 편입하려 애쓰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의 울타리는 언제나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고, 결국 나의 뿌리이자 생태계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 다나를 죽여 이 굴레를 끝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가장 사람다운 방식으로 죽일 것이다. 무엇을? 산을 좀먹는 짐승 한 마리를.”(126p)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54번째 작품 <다나>를 통해 박서영이라는 낯선 이름을 만났다. 소설 속 다나는 인간과 똑같이 생겼지만 유전적으로 다르다는 이유로 짐승 취급을 받는다. 겉모습은 같아도 본질이 다르다는 명분은 어떻게 폭력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는가. 짐승과 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유전자인가, 아니면 타인을 대하는 태도인가. 소수자를 밀어내며 유지되는 사회의 민낯이 아프게 다가온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다나>는 혐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붙잡아야 할 것은 세련된 인간의 논리가 아닌 타자의 고통을 감각하는 날 것의 마음임을 증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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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무슨 책 읽을지 고민이 될 때 믿고 읽는 민음사 오젊작 동물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인간 아이 이야기라니 너무 흥미로워서 읽게 되었어요. 소나무를 죽이는 해충을 옮기고 다니는 다나 나무를 지키는 일을 하는 다나의 딸 인간의 착취와 돌봄 이중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책입니다 그저 잡혀와 자유를 얻고싶었던 다나에게 죄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