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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하는 것이지만, 늘
꾸준히 진보하는 것은 아니다. 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지금과 같은 진보의 시기는 아주 짧은 반면, 정체의 시기는 좀 길고, 퇴보의 시기는 아주 길었다. 역사에서 진보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면 제법 긴 정체와 아주 긴 퇴보의 시기를 견뎌낼
수밖에 없다.' (6쪽)
2016년
그리고 2017년, 촛불의 힘은 거대했고 또 위대했다. 그렇게 다시 진보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진보의
시대냐 아니냐는 생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이전 정권에 비해서는 분명 진보이다. 제대로 된 보수가
없기에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이 진보가 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벌써 수십 년째 겪어오고 있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이라면 그깟 이름이 뭐 중요하랴.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 다시 정체와 퇴보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촛불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내던 올 초, 창비학당에서는 '정치의
시대 - 2017 시민혁명을 위한 연속특강'을 마련했고, 그 때의 강연을 책으로 엮어 '정치의 시대' 시리즈로 내놓았다. 이 책은 마지막 강연을 했던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의 강연을 묶은 것으로, 2016년 촛불이 있기까지 역사의 현장에서 정치를 바꾸어왔던 시민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언제 들었는지도 헷갈릴 만큼 자주 길에서 촛불을 들어야 했다고 말하는 저자, 그는 주말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뻔질나게 촛불을
들어야 했던 이유는 의회정치나 대의민주정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한국에서 벌어졌던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시민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4.19혁명을 죽음 위에서 피어난 풀이라고 말한다. 3.15부정선거가
도화선이 되었지만, 국민들의 마음 속엔 한국전쟁기에 벌어진 수십만 명의 민간인 학살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1987년 6월항쟁 역시 1980년 5월 전남도청을 떠났던 사람들이 5월26일 밤에 품었던 질문인 '나라면
어땠을까?'를 가슴 속에 안고 살아온 이들이 다시 모였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에게 광장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월드컵 기간 중 일어난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일으킨 미군들이 무죄를
선고 받자 처음으로 시민들이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4년 노무현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은
기득권세력이 끌어내린 권력을 다시 돌려놓는 힘이 되기도 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들었던 촛불은
시위문화 자체를 바꿔놓았지만 대선도, 총선도 끝난 다음이어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 2016년 촛불은
4.13총선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변화의 힘이 이끌었다고 한교수는 진단한다. 그 힘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부터 온 것이며, 헬조선에 사는 흙수저라 자조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 변화의 주역이었다. 또한 2년반 동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품고 있었던 분노와 절망감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촛불이 켜진 이후 말 그대로 정치가 화두가 되었으며, 생활 속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되었다.
우리는 촛불의 결과로 이루어진 지금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더디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주역은 기성 정치인들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사실 또한 실감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때이다. 역사는 늘 꾸준히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진보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하면 긴 정체와 퇴보의 시간이 기다린다는 한교수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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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대학에 입학하며 서울로 향하는 나에게 부모님은 여러 가지 당부를 하셨다. 그런데 6월 항쟁에서는 시위의 방식이 달랐습니다. 박종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까만 리본을 달자, 10시에 멈춰서 묵념을 하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목숨 걸고 돌 던지고 백골단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10시에 맞춰서 묵념을 하려고 멈춰 섰을 때 경찰이 "당신 왜 서 있어?"하고 추궁해도 "추모도 못 하냐, 리본도 못 다냐"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한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니니 슬픔이라도 표시해야지 하고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홍구 선생님의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는 단기간에 확인되지 않지만 결국 광장의 힘, 모여든 국민들의 힘을 역사적 경험으로 보여준다. 이전에 민주주의를 곤고히 할 수 있었던 세 번의 노마크 찬스(87년 6월항쟁, 97년 외환위기, 04년 노대통령탄핵, p.70)를 허공에 날림으로 인해 반민주세력의 강한 반작용을 우리는 경험했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예전에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승만은 다리를 끊고 저 혼자 피란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김기춘, 우병우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호의 기관장, 항해사였다면 대한민국호는 진즉에 침몰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호가 어떻게 기우뚱하면서도 침목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왔을까요? 그 복원력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대한민국호가 무게중심이 여러분이기 때문입니다. (p.92)
* 이글은 창비사전서평단으로 선정되어 가제본을 읽고 작성한 글이며 원문은 http://caamp91.blog.me/221012438311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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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한 시민의 힘"
한홍구 교수는 2016-2017 촛불집회를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시민 혁명으로 부른다. 굴곡이 심한 한국 현대사에서 몇 차례의 시민혁명을 소개한다. 중고등학생들이 주측이 된 4.19 시민혁명, 6월 민주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등. 그러나 시민혁명이 곧바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을 기술한다. 기회가 왔음에도 기회를 놓쳤기에 민주주의의 완성이 더디었다고 말한다.
"주권자인 시민에 반하는 권력에 반대의사를 던진 것이 촛불 혁명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시민들이 촛불을 든 것은 주권자인 시민을 무시한 권력 남용 때문이었다. 권력을 남용한 전임 대통령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아야했다. 자신의 수족이었던 측근의 배신은 시민의 힘 때문이었다. 부마항쟁에서 김재규는 시민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었던 것은 시민의 힘을 본 정치인이었다. 시민과 동떨어진 섬에 살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뒤늦게 시민의 의중을 깨닫게 되고 결국 시민과 등져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을 느꼈기때문에 탄핵 표를 던진 것이다.
"살아 남은 자의 슬픔"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성공은 살아 남은 자의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공수부대 앞에 나약하게 죽음을 당한 광주 시민들의 정신은 살아 남은 자들의 슬픔에서 다시 불이 점화되었다. 숭고한 희생 정신을 이어 받은 살아 남은 자들은 슬픔을 노래했고 슬픔을 승화시켰다. 시민의 힘이었다!
21세기 정치는 시민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 주권은 시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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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에서 즐거운 감동을 보았다. 작가 유시민과 역사가이자 학자 한홍구교수님의 글을 보며 미묘한 차이를 느껴본다. 가장 가깝게는 1980.5.26. 그 새벽.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인가하고 스스로를 생각해보게 한다. 한홍구교수님의 책을 보며 선택과 그 길의 결과에 대해 책임이라는 것을 절실히 생각하게 한다. 역사의 물줄기에서 세 번의 노마크 찬스라는 말에 엄청 공감한다. 골을 넣지 못해 퇴보한 아이러니에 대해서도 마음 아프게 공감한다. 이름없는 시민들의 힘을 높이 평가하는 시선에 감동했다. 뼈아픈 교훈 속에서 새로운 아니 더 나은 길을 열 수 있는 시간이 열려있다. 그래서 문재인정부에 대해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진실과 정의를 위해 건강한 미래로의 발전을 위해 나아갈 교두보의 역할을 간절히 바라본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의 힘이 꽃이 온전히 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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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광화문과 시청을 가득 메웠던 200만의 인파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불거져 나온 것입니다. 박근혜와 최순실, 또는
그들과 결탁한 세력은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작년과 올해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농단
사건 “덕분에”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이지 모든 일에는 반대급부가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국민참여의 새 시대를 열어젖힌 것은 아무래도 국민들의 참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의민주제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공분하고 공노하고 공감 해야함을 일깨워준 것이지요. 이제는 국민 모두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홍구 교수의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민주화의 흐름이 어떻게 질곡을
견뎌내고 세차게 나아가는지를 짚어 주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쟁취하는데 이렇게까지 고난이
많았다면 과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할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끈질기게 잘 싸워왔고 그 분투의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선
세대가 이뤄놓은 것들을 보라. 앞으로 이뤄 나가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니
광장으로!’
그러고 보면 광장은 현대 민주사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 광장에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광장에 모이는 순간 우리는 그 공간에 빚을 지는 것입니다. 1980년의 전남도청 앞 광장이 그랬고, 26년이 흐른 서울시청
앞과 광화문이 그랬습니다. 평상시에는 타이어와 노면이 부딪히는 소리,
경적 소리, 침묵과 지나침의 공간이었다면 시민들이 일제히 모이는 순간 돌변하는 마법의 공간이
됩니다. 합창과 웃음소리, 행진, 남녀노소의 손에 들린 촛불, 열망,
긴장, 외침…… 회색 빛 도시는 이처럼 역동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자는 광장과 촛불의 기원을 되돌아보는 시간여행의 안내자가 됩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생채기로 남은 부분들 또한 빼먹지 않으면서 유려하게 이끌어갑니다. 4.19혁명과 유신의 종결, 또 다른 군부독재와 잊지 못할 광주의 저항. 역사의 굴레 속에서
개인의 역할에 대한 상상도 빼먹지 않고 말이지요.
역사가 건조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시간 아래 인식론적 단절이 생겨나기 때문인데, 그러한
난점을 영리하게 극복하는 저자의 재치에 감탄했습니다.
이 책은 망원동에서 행해졌던
실제 강연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논문이나 역사책처럼 딱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쉽게 잘 읽힙니다. 구어를 사용해서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함께 하고 있다는, 시공간 초월의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장만 펼친다면 저 먼 곳에서 오고 간 생각들을 함께 나누고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강연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책의 형식이 민주주의라는 정신과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닐까. 형식과 주제의
기묘한 결합이라는 미학적 성취도 놓치지 않았군, 하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건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논의가 담겨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정된 시간 동안 이뤄지는
강의의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시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심층적인 서술은 불가능했겠지만, 이미 역사에 조예가 깊은 독자에게는 저만큼 큰 흡인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유신의 심장을 저격한 김재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루머들이 많은데,
숱한 낭설에도 불구하고 그가 부마항쟁의 불길함을 감지하고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마지막 간언을 했다고 보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자세한 논쟁과 검증의 과정은 역사의 요체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디테일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조금은 아쉬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범국민적 열망이 5월의 훈풍처럼 감돌고 있습니다. 혁명 아닌 혁명, 새로운 시대에 대한 요구를 동력 삼은 잔잔한 바람이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지 사뭇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촛불을 통해서 드러난 바와 같이 개인의 주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도래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구하고 바라기만 하는 소극적 정치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해서 공권력을 견제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 대한민국이 되길 바랍니다. 성단이 모여서 은하가 되고, 은하가 우주를 이루듯이 제 아무리 미소한
발걸음 하나라도 작은 움직임이 운집하면 거대한 목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광장이라는 작은 우주는 모두의
꿈틀대는 의지로부터 생겨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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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에서 <정치의 시대> 사전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정치의 시대> 시리즈 중에 랜덤으로
한홍구 교수님께서 강의하신 것을 글로 옮겨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동안 한홍구 교수님의 강연을 몇 차례 들은 경험이 있어서인지 마치 음성 지원되는 듯 느껴지며 책이 아주 빠르게 잘 읽혔습니다.
한국현대사에서 시민이 힘을 발휘한 사례들을 들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시민의 힘에 대해 설명을 잘 해주고 있어 한국현대사의 핵심적인 사건과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박근혜 퇴진(탄핵) 촉구 시국대회까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5월 26일 밤 8시 32분 나는 남았을까?’ 특히 이 부분을 읽을 때 제가 광주에 가서 보았던 5월 영령들이 떠올라서 자연스레 눈물이 났습니다. ㅠㅠ 촛불집회야말로 대의민주주의의 모순을 바로잡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방법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촛불, 이것이야말로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류 그 자체입니다. 그 현장에 여러분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p.7
역사가 그런 것입니다. 망치는 놈 따로 있고 구한다고 죽어라 길바닥에서 촛불 드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지요. 역사가 망하지 않고 흘러온 건 촛불 드는 사람들이 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p.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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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를 읽고 환상은 현실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환상이었던 박정희는 현실이 되어 박근혜로 실현되었다. 아비는 총알으로 쓰러졌고, 자식은 판결로 내려졌다. 총알은 국민이 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총을 불러왔다. 하지만 판결은 국민에 의해 쓰여졌다. 이런 드라마적 정치 서사를 보노라면 칼 마르크스의 명언,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역사는 묻는다. "무엇이 비극이고, 무엇이 희극일까?" '정치의 시대’는 역사가 건넨 물음에 대한 한홍구의 답변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일어서고 사라진 수많은 이름들을 꺼내며 ‘이것은 희극이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나는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너무나 많이 속았다. 이것도 민주주의라면 국민의 참징하고 3당을 합당하던 이들에게, 잊혀진 민주주의를 애타게 찾으며 ‘타는 목마름’을 노래하던 김지하에게,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죽인 노무현 탄핵의 국회의 의사봉에게 속아왔다. 그렇기에 한홍구의 민주주의도, 광장도 믿지 않는다. 나의 불신이 부디 틀리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