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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학생자치회 아이들을 중심으로 학교 공간 재구조화 공모전을 열었다. 우리 학교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학교인데, 나름 교과교실제를 목표로 새로 지은 학교이기 때문에 구조가 독특하다. 기존의 일자형 교사(교실이 쭉 늘어서 있는 일자형 건물) 두 동이 시옷자 모형으로 붙어 있고, 그 획의 사이에 중앙 정원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있다. 급식소는 5층이라 전교생의 대이동이 벌어지고 각종 실습실과 특별실들이 시옷자의 획이 만나는 곳에 있다. 아이들이 한 교실에 머물지 않고 많은 교실을 수업에 따라 이동하므로 사물함은 복도의 한쪽 끝에 별도의 공간에 마련되어 있고(미국 영화에서처럼) 홈베이스라고 해서 아이들이 인터넷도 사용할 수 있고 다리를 좀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도 있다. 그런데도 워낙에 학생이 많다보니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쉽지 않고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요구사항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연 것이 학교 공간 재구조화 공모전이었는데, 그 공모전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중앙 정원에 요즘 버스 정류장에 설치하는 햇빛 가리개(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파라솔)를 몇 개 설치했다. 제출자 개인의 의견이었기 때문에 전교생들의 의견을 대변했다고 볼 수는 없는, 반쪽 짜리 공모전에서 배운 것은 학교 공간을 재구조화하는 것은 교사나 학생 일부의 생각만으로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막막함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면서 춘천에 있는 데미안 책방에 들렀을 때 마침 만난 책이 바로 이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였다. 이렇게 고민이 있을 때 그에 적절한 책을 만날 때마다 책과 나 사이에 운명이라는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다시 믿게 된다. 이 책을 읽기 전, '학교 공간은 왜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공간이 인간의 심리와 성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또 지금의 학교 공간은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도, 창의성 신장도 너무 어렵고 효율성에만 맞춰져 있으므로.'였다. 또,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가장 오래 있는 이들' 혹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 이들'이다. 막연하게 '학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길어야 12년을 학교에서 보내지만, 20대 후반에 임용이 되는 교사들은 30여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생만이 이 공간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머리말에 나오는 저자의 의도와 이런 내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거침없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은 공간 재구조화의 명확한 목적, 방법, 사례, 적용 방안이었다. 우선 재구조화의 목적을 이 책을 통해 살펴보면 이렇다. '학교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의 틀 안에서 아이들의 생각과 활동을 길들이기 위한 공간(p7)'이다.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려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공간이 사람의 성장, 생각, 시선에 영향을 주므로 결국 공간을 바꾸는 것이 사회를 바꾸는 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여섯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1~3부는 주로 초등의 사례라 직접적으로 우리 학교에 적용하기는 좀 어렵지만 공간 재구조화의 지향점과, 수업과의 연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4부는 중학교의 사례였기 때문에 특히 눈여겨 보았고, 5부에서는 학교 공간의 재구조화가 단지 학교 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역사회와 함께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데에까지 나가야 한다는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1부에서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한 목적에 따라 공간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공간에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며 유연하게 공간을 쓴다.'(p14)는 말이 이 일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 이 작업은 교육청에서 예산을 주며 학교를 선정하고, 우수 사례라고 뽑힌 것들을 보여주면 교사들이 적절히 학교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그럴 듯하게 만들어놓아도 그 공간은 만든 사람의 의도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의해 변형되게 마련이라 결국 그 시작 단계부터 사용자의 요구를 담아내지 않으면 겉모양만 그럴 듯한 예산 낭비가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을 멋지게 리모델링을 했을 때 어른들은 그 모양이 어찌되었든 도서관을 '책 읽는 공간'으로 인식하지만 아이들은 거기서 누워서 책보기, 친구와 이야기하기, 음악 듣기 등을 하는 휴식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즉, 학교 공간의 재구조화에 있어서 아이들(사용자)이 공간에 대해 어떤 바람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 내용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바람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것도 유용했다. 물론 그 전제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동등한 관계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p27)'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바람을 단순히 설문을 통해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의 일부 즉 수업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기억하기, 관찰하기, 상상하기, 사랑하기라는 네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수업의 목표는 명확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학교는 단지 학습의 현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의 공간이라는 것을 공감하고 인식하는 것'(p42)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아이디어들이 제법 있다. 뭔가 예산이 많이 드는 거창한 사업도 있지만, 교사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면, 훨씬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저예산 아이디어도 있다. 그리고 대체 왜 이모양인가에 대한 질문도 생겼다. 1. 우리 학교 학생이 거의 천 명이 되는데, 보건실 크기가 다른 학교와 똑같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여학교라 신체적 안정을 취해야 할 경우가 비교적 더 많은데도 보건실 침대가 겨우 4~5개라면 이것은 인권 침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침상이 많아져서 관리가 어렵다면 인력을 확충할 일이지 인력이 없어서 침상을 늘리지 않는다는 것은 선후가 바뀐 일이다. 2. 운동장 스탠드의 꼭대기층 뒤로 플라스틱 차양막으로 가려진 흙밭이 좀 있는데, 거기에 벽돌을 깔아 길을 만든다거나, 흙을 조금 평평하게 다져서 꽃도 심고 시 공원처럼 꾸민다거나, 누구나 낙서를 할 수 있게 칠판을 달아준다면? 3. 서울 삼양초등학교 사례를 참고해, 학교 인근의 안전지도를 제작한다. 학교 신문 동아리 아이들을 투입해도 좋고 학생회 아이들 또는 지원자를 받아도 좋겠다. 결과물은 시청으로 보낸다. 4. 학교가 큰 만큼 1층 로비도 넓다. 그런데 바닥이 온통 대리석이라 사시사철 춥고 발시리고 축축하다. 홀로 앉아있는 평화의 소녀상도 아마 그럴 거다. 이건 이번에 이사 들어온 우리집 꾸미면서 얻은 아이디어인데, 천장에 방향 조정이 가능한 LED등을 여러 개 벽을 따라 또는 간헐적으로 불규칙적으로 시공한다. 개당 시공비가 3만 원밖에 하지 않는다. 혹은, 천장에서 1미터 정도 전등갓이 내려오는 식탁등을 너댓 개 달고 그 아래에 테이블을 놓으면 로비가 카페처럼 되지 않을까. 스피커를 연결해 로비에서만 들리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화분도 커다란 걸로 몇 개 더 갖다놓으면 학교에 들어오는 이들의 마음이 좀 더 편안해 지지 않을까. 5. 등굣길 학교 울타리 주변에 그림을 그리거나 꽃을 심을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선도위원회에서 징계를 받은 아이들에게 쓸데없이 청소를 시키기보다 꽃을 심게 하고 그 앞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지속적으로 돌보게 해 주면 어떨까. 6. 요즘 만화방은 예전과 달리 누워서 쉴 수 있도록 벌집같이 인테리어를 해 둔 곳이 많다. 어차피 지속적으로 붙박이로 생활하는 교실이 없어지고 대학교처럼 오며가며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게 늘어난다면, 공강이나 쉬는 시간에 이왕이면 푹 쉴 수 있도록 학교 안에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면 어떨까. 여고니까 그 안에서 성적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날 것도 없고, 청결만 좀 유지가 되면 좋을 것 같은데. 7. 경남 사천의 '용남중학교'는 교무실이 마치 카페같다. 벽도 붉은 벽돌로 바꾸었고 천장을 높여서 철근구조를 노출시키고 노란색 조명등을 달아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학교를 누구보다 오래 사용하는 실사용자인 교사들에 대한 배려였다. 교사가 즐거워야 학교가 행복하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역시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 사이의 소통이 활성화되어 교사들이 사생활이 없어진다는 우스개소리도 나온다고 한다. 8. 중앙 정원 바닥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보면 어떨까. 단순히 흰 페인트 정도면 충분히 놀이터가 될 것 같은데. 무언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있는 것을 조금 바꾸고 그 안에 아이들과 교사들이 진짜 어떤 것을 원하는지 녹여내는 것이 학교 공간 재구조화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공간을 바꾸니 공간이 사람을 바꾸었다"(p193)던 말이 새학기를 앞두고 또다른 변화를 꿈꾸는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고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들이 단순히 우리 학교의 내부 공간을 바꾸는 것을 넘어서 우리 지역을 향해, 우리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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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으면 똥통 같은데서 책을 읽고 싶겠어요?"
초등학교 3학년 큰 아들과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들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황당했다. 독서에는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든 책을 읽히려고 온갖 논리로 설명하고 설득했건만 아이는 단호하다. '기승전 독서'로 귀결되는 꼰대같은 엄마의 말이 정말 듣기 싫었는가보다 생각하니 좀 허탈하기도 했다. '책 읽기 싫으니까 하다하다 장소 핑계를 대는구나', '농부가 밭을 탓하면 이미 글러먹은게지' 하고 반 포기하려는데...
"도서실이 좀 넓었으면 좋겠어요. 누울수도 있었으면 좋겠고, 컴퓨터도 할 수 있으면 좋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책보다가 좀 자유롭게요. 지금은 너무 좁고 불편해요. 도저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들어요."
아이가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의 작은학교인데다 시설이 오래되고 부족해 교육 환경이 많이 낙후돼 있다. 비좁은 도서실은 책을 쌓아둔 공간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부족해 많은 책들이 각 교실에 분산되어 있는 상태다.
"맞다 맞아. 엄마라도 너희 학교 도서실에서는 책 읽을 생각이 안들 것 같아. 도서실을 멋지게 바꾸면 책 읽을거야?"
공간 혁신으로 교육을 바꾸자
공간은 사람의 심리와 정서, 상호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형태가 경직되면 운영하는 방식은 경직되고, 형태가 다양하고 개방적이면 운영방식도 훨씬 유연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거의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네모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네모난 교실, 네모난 책상, 네모난 의자, 네모난 운동장, 네모난 놀이터.. 네모난 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곳이 학교라는 공간 아닐까. 표준화되고 획일화 된 학교 교육과정은 아이들에게 네모난 모양 말고 다른 모양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육을 바꾸는 이야기다. 건축가, 교사, 놀이터 디자이너 등이 공동집필한 책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는 학교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꽃피우는 공간이 되기 위해 바꾸고 혁신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제시한다.
"아이들은 교문에서 시작해 운동장, 중앙 현관, 계단과 복도를 지나 교실에 다다른다. 아이들이 학교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학습, 운동, 휴식 등 어른들이 정한 목적에 따라 공간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공간에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며 유연하게 공간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공간은 마치 이러한 움직임에 맞춰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기체 같다." (14쪽)
학교 공간은 아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파놉티콘'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하게 관계를 맺고 배우며 성장하는 삶터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아이들을 학교 공간 변화의 중심에 놓았을 때 어떤 발상의 전환과 교육 현장의 혁신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 이전에 오랫동안 교육을 지배해왔던 낡은 사고와 관행들을 혁파해 나가는 것이다. 건물 이전에 사람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교육의 주인이 학생이라면 당연히 학교 공간의 주인도 학생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눈 높이로, 아이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아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학교 공간을 바꿔 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창의적이고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꿈을 담은 교실' '꿈을 담은 놀이터', 광주 극락초등학교의 '어디든 놀이터 사업',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 도서실을 북까페처럼 변화시키기, 교무실과 교장실을 열린 구조로 바꾼 사례, 딱딱한 교문과 학교 외벽을 바꾼 사례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교실, 도서관, 운동장, 놀이터, 복도, 현관, 교문 등 아이들의 숨결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들의 시각에서 탈바꿈할 수 있다.
다른 각도, 새로운 시선에서 관찰하고 사유하면 하나의 용도만 갖고 있던 익숙한 공간도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공간 주권'을 되돌려 준다는 의미다. 학교 공간의 주인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적 사고로 교육에 접근하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디자인'이란 문제의 본질을 포착하고 거기에 새로운 조화와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환기시키며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 더 행복하게 바꿔나가는 것이다.
학교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의미다. 디자인을 '과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외형적인 결과물 보다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예컨대,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마을주민, 교육청과 지자체 등 지역사회가 협력하고 협업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조응하지 못하는 공교육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분리된 '고립된 섬'이 아닌 마을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의 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학교 혁신은 학교 담장안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지역의 자원을 연계하고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의논하면서 학교 수준에서는 대응하기 힘든 문제들을 협력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학교 공간 혁신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변화는 개별 실 단위의 내부 공간을 바꾸는데에만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변화의 궁극적인 지향은 마을을 향해 열린 학교, 그리고 학교를 품은 마을이 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라는 경계를 허물고 마을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학교를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필요하다." (224쪽)
학교와 마을이 함께 크는 공간 만들기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학교는 더 이상 학교만의 학교가 아니다. 지역 교육력 강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 속의 학교'는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구유출로 점점 더 고령화, 과소화되고 있는 농촌 시골의 현실에서 학교의 위상은 더욱 중요하다. 내가 사는 마을의, 내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 초등학교가 그렇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학생수와 정주인구가 늘어나면서 폐교 위기를 넘겼으나 학교 앞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있다. 우선은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협력하는 학교 공간 바꾸기 사업을 구상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학교와 마을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가야 한다.
고민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명쾌해지는 느낌이다.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의 교육적 가치와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곧 이 책을 함께 읽은 다른 학부모들과 작은 토론회를 열 것이다. 충분히 가치있으면서도 함께 하는 과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