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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마흔을 불혹이라고 불러온 이유는 그 나이에 정말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경지에 이르게 되어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가장 많은 유혹에 시달리는 나이가 마흔쯤에 시작되어서 경계하라는 뜻으로 그리 부른 것일 터이다. 지나온 나의 십 년을 돌아보니 그렇다. 고국에서 멀리 떠나 살면서 별로 하는 일 없이 책이나 읽고 시나 끄적거리면서 마치 세상을 달관한 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고한 척 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돈을 세고 명예를 추구하고 예쁜 여자들을 곁눈질하고 세상사를 뒤쫓고 있었다. 은둔자 나는 은둔자 산 속에 가만히 가부좌를 하고 별을 헤듯 돈을 센다 지적도를 보고 땅값을 계산한다 구약을 조금씩 읽으면서도 돈을 센다 돈은 나를 센다 나는 은둔자 험한 욕을 입에 담고는 반성하며 돈을 센다 이웃의 더한 속물, ‘참고로 그는 정치를 한단다’에게 쌍욕을 해대고 멀쩡한 낯으로 거리를 나서서 평온한 거리를 어지럽힌다 다시 한차례 증오를 불사르고 나서 멀쩡한 낯으로 강단에 오른다 가증이 오고 가소로움이 온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죄가 쌓이니 봄이 밀리듯 죄가 밀리니 씻을 길이 없다 나는 은둔자 나는 나의 죄를 사랑해야지 나는 나의 죄를 사랑해야지 나는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으니 사랑해야지 이런 사랑의 힘을 또 사랑해야지 사랑의 포대기는 크기도 하지 사랑의 골짜기는 첩첩도 하지 욕 뒤에 숨어 또 욕을 한다 물소리를 붙잡고 욕을 한다 나는 은둔자 도인이 돈이지 돈 앞에 가만히 가부좌를 하고 물소리를 센다 별을 헤아리기를 즐기는 손이라도 낮에는 생활을 도모하기 위해서 돈을 세어야 한다는 건, 인생을 살만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시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리 없다. 그러나 ‘불혹이 넘어 겨우 찾은/ 생활의 윤리’(「변기를 닦다」) 앞에서 시인은 흔들린다. 돈이 나를 셀 정도로 내 안에서 탐욕이 자라나고 그 탐욕은 정치인에게 퍼부어대는 쌍욕으로 발산된다. 위선을 정의로운 분노로 감추는 자신의 가증스럽고 가소로운 모습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괴롭다. 그 표리부동을 의식할 때마다 시인의 마음에는 죄가 쌓인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소한 일조차도 민감한 감각과 섬세한 영혼을 지닌 시인에게는 부끄러운 죄로 다가오는 것이다. 시인의 죄란 결국 죄의식의 산물인 셈이다. 그러니 시인의 죄는 씻을 길이 없다. 비록 은둔자처럼 살지라도 생활을 도모하기 위해서 세상과 교섭하는 한, 시인은 세상의 탐욕과 부정과 불의가 자신과 무관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따라서 그때마다 어김없이 죄의식에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똥 묻은 변기를 닦듯, 꽃밭의 진흙 묻은 바위를 닦듯, 시인은 세상에 묻어 있는 죄를 민감한 감각과 영혼으로 닦아서 자신의 마음 속으로 옮겨놓는다. 결국 시인의 죄란 세상의 죄를 자신의 죄로 옮겨 덜어내고자 하는 사랑의 발로였던 것이다. ‘나는 나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으니 사랑해야지’ 라는 시인의 거듭되는 다짐은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나온 것이겠다. 그리고 그러한 다짐에 힘입어 시인은 이제 돈 앞에 가부좌를 하고서도 다시 물소리를 셀 수 있게 된다. 오막살이 집 한 채 나의 가슴이 요정도로만 떨려서는 아무것도 흔들 수 없지만 저렇게 멀리 있는, 저녁빛 받는 연(蓮)잎이라든가 어둠에 박혀오는 별이라든가 하는 건 떨게 할 수 있으니 내려가는 물소리를 붙잡고서 같이 집이나 한 채 짓자고 앉아 있는 밤입니다 떨림 속에 집이 한 채 앉으면 시라고 해야 할지 사원이라고 해야 할지 꽃이라 해야 할지 아님 당신이라 해야 할지 여전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떨리지만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멀고 멀군요 이 떨림이 멈추기 전에 그 속에 집을 한 채 앉히는 일이 내 평생의 일인 줄 누가 알까요 시인이 마흔 무렵에 시작한 세상의 죄들을 자신의 죄로 옮겨 적는 일들은 그러나 정작 세상사에는 무용하다. 시인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이 지은 시들이 세상의 아무것도 흔들어 놓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라, 멀리 연못에 떠있는 연잎들과 어두운 하늘에 떠오른 별들은 시인이 지은 시들의 떨림에 공명하고 있다. 일찍이 나도 그러한 연잎들이나 별들 중 하나로서 그의 시들을 사랑했으나 그 떨림이 어쩐지 무뎌진 것 같다고 외면했었다. 그게 내 착각이며 실수였다는 걸 이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를 읽고 깨닫는다. 다시 돌아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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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근처
수락산 서편 흰 바위들에 저녁칯 놓인다 무당은 점보러 들어가고 길은 엉거주춤 무안한 길이다 저 바위를 흘러내 리는 비단결은 두루두루 감아두었다가 사랑이라도 묻어두 는 데 쓰것다 사랑에 골병든 관절이라도 묻어두는 데 요긴 히 쓰것다 서울 북부 점집도 많은 수락산 서편 흰 바위들, 드물게 지나는 이참에도 내 맘이 어던지 귓바퀴도 커다란 꽃이 되어서들 점쟁이 이목으로 들여다보네
아, 언젠가 블로그 지인이 올려줘서 본 적있다. 그 수락산 입구 버티고 선 돌에 쓰인 글귀. 점집이 밀집한 산터라 그런 것인지 예수천국 불신지옥..였던가? 그리 써있었던 기억..그게 무슨무슨 점집..이란 글보다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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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풍경으로 들어가 가슴을 내어 말리다.
묵집의 표정들은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 묵집의 표정은 그리하여 모두 호젓하기만 하구려 -<묵집에서>,전문.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간다
언 내(川) 건너며 듣는 얼음 부서지는 소리들 새 시(詩) 같은,
어깨에 한짐 가져봄직하여 다 잊고 골짜기에서 한철 얼어서 남직도 하여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오는 이 또 있을까? 꽝꽝 언 시 한짐 지고 기다리는 마음 생각느니, -<동지(冬至)>,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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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과거에 집착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나이든 것이다. 비로소 삶의 이치에 눈을 떴는데, 안타깝게도 철이 들었을 때 우리 인간에게 남은 시간이란 그리 많지가 않다. 고작 마흔 여섯. 여든을 넘어선 인간의 수명을 고려할 때 이제 겨우 절반을 살았다고 볼 수 있는 저자는 오래도록 시를 쓴 탓인지 늙어 있었다. 가장 자주 그리고 강렬하게 그의 시로부터 내가 엿보았던 바는 바로 ‘죽음’이었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이 고약한 실체를 어느 누가 반기겠느냐만, 저자는 기꺼이 이 소재를 끌어안았다. 급기야 타인의 죽음 아닌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 담대하게 기술하고 있었으니, 그 차분함은 내게 지독히도 낯선 것이었다. 발가락 끝에서 구름이 피어오릅니다 여전히 나는 말을 할 줄 알아서 섭섭한 이름들을 떠오르는 대로 부릅니다 민들레여 까마귀여 어버이여 형과 아우여 꺼지던 모닥불이여...... 끙끙거리면서 내장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눈빛은 친정집으로 아주 가는 여자처럼 처량이 눈을 빠져나갔습니다 가끔 세상에 놀라 가슴을 빠져나가지 못한 호흡들이 있었는데 어느새 굳어져 여러 가지 씨앗들도, 구근들도 되었습니다 어느 먼 훗날 새로 편 화투판 같은 봄날을 맞아 돋아날 것입니다 피투성이인 영혼을 여럿 모셨으니 피기둥처럼 피어나는 칸나도 있겠지요 아랫배에 모은 두 손은 더욱 낮고 동정했던 맘도 질투했던 맘도 함께 진물로 흐릅니다 무너진 뼈끝마다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릅니다 백골이 진토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그 순간 우리에게 그리움이 있을까? 미처 부르지 못한 이들이 육체의 바스라짐과 함께 산산히 부서지는,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저자의 이 시로부터 느껴지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소박 맞아 친정집으로 내몰리는 영자처럼 처량한 눈빛을 하고 있다곤 하나, 그는 제 육신이 씨앗들도 되고 구근들도 되며 칸나도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마침내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이 제게도 올 것이라며 오히려 죽음으로부터 희망을 읊는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특정 종교에 기대지 아니하고도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건 그러나 동시에 고무적이다. 자연의 일부가 되어 비로소 육체에 얽매이지 않는 삶이 가능해지리라는, 그에게 ‘하관’은 소멸이 아닌 생성이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새출발이 꼭 과거와의 단절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다. 주로 그가 노래한 것은 자연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말린 고사리, 다소 을씨년스러울지도 모를 겨울의 시금치밭 그리고 붉게 익어가는 석류와 노을 등. 소소한 광경이라 할 수 있지만 도시민인 내 눈엔 정겹기 그지없다. 또 어머니 품은 어떠한가. 언제 떠올려도 그리운 그 이름은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의 울음터’. 무슨 이유를 대며 울어도 너른 가슴을, 포근한 품을 내어주실 당신을 어느 누가 사랑치 않으리. 새로이 시작하되 아름다운 이 요소들은 고스란히 끌어안고 시작하는, 그것은 멘땅에 하는 헤딩이 아닌 발전적인 시작이다. 모든 것이 영근, 한 단계 위에서 하는 출발 말이다. 하지만 발목을 잡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죄의식이다. 스스로를 훨훨 날도록 만들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이 죄의식이 수시로 그에게 반성을 요한다. 나의 죄를 사랑해야지, 나의 죄를 사랑해야지, 숱하게 반복해 외쳐보고 수시로 내면을 들여다보며 윤리를 떠올린들 달라지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시를 지우고 그 빈 자리에 앉아 덜덜 떤다. 생과 사를 하나로 잇는 고귀한 작업이 그럼 그리 쉬울 리가 없다. 비워야 또다시 채울 수 있으며, 이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나야 비로소 찬란하게 빛날 수 있다. 끊임없이 내뱉는 그의 물음은 스스로를 비우기 위한 행위이다.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라야 종결도, 시작도 이룰 수 있음을 아는, 그는 늙었다기보단 영근 사람이었다. 아직은 중간까지도 가지 못한 내 삶이 그를 따라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할까. 한없이 뒤쳐진 이 자리에 서서, 그래도 나는 되뇌인다. 그리워할 게 많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다 놓고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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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54 시와 무게 ― 뺨에 서쪽을 빛내다 장석남 글 창비 펴냄, 2010.8.20. 이 나라는 재미있습니다. 저마다 재미있게 살아가니 재미있습니다. 재미없구나 싶어 쓸쓸한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이런 사람들한테 재미보따리를 안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2000년대에 버스삯이 50원쯤 하는가 하고 읊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달세로 이천만 원을 내면서 가난한 살림이라고 읊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옥탑방도 반지하도 어떻게 생긴 줄 모르고 이런 이름은 처음 들었다는 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배고파서 북녘을 떠난 이들을 두고 밥이 없으면 라면을 끓여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 말린 고사리 두어 뭉치 더 담아서 / 이름난 백화점 봉지에 넣어서 / 사랑스런 분에게 주었다 치자 / 또 받았다 치자 .. (말린 고사리) 나도 잘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나도 잘 몰라서 잘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나는 자동차를 몰 줄 모르고, 자동차 이름을 볼 줄 모릅니다. 손전화 기계를 쓰지만 손전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며, 비밀번호 단추를 눌러 들어가는 아파트에 놀러갈 적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겪으며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2004년이었는데 국립국어원에서 한글문화학교 강사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첫날에는 양복을 입고 강의를 갔다가 아무래도 내 삶하고 도무지 안 맞는다 싶어 이튿날부터는 내 여느 차림새대로 반바지에 민소매옷을 입고 자전거를 몰고 갔습니다. 양복을 입고 국립국어원 건물을 들어가니 척 거수경례를 합니다. 왜 왔느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반바지에 민소매에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니 문간에서 붙잡고 밖으로 잡아끕니다. 왜 왔느냐고 묻지 않기는 똑같으나, 사람을 ‘미친놈’으로 다룹니다. 이윽고 내가 그곳에 ‘우리 말 강의’를 하는 사람인 줄 깨닫고는 미안하다며 굽신굽신합니다. 방송국에서도 이런 일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방송국에 일이 있어 그때에도 늘 내 차림새대로 반바지에 민소매에 자전거에 고무신을 꿰고 갔더니 건물 지킴이가 붙잡습니다. 방송국 일꾼이 승강기를 타고 문간으로 마중을 나오고서야 비로소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아버지의 사진틀을 갈았다 / 수염을 깎은 듯 미소도 조금 바뀌었다 / 이발소를 데리고 가던 아버지의 손가락 마디가 두엇 없던 손을 생각한다 / 언 몸을 금세 녹여주던 이발소의 연탄난로도 생각한다 .. (입춘)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지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도 고무신 차림새는 눈길을 받습니다. 마을에서 흙일을 하는 할매와 할배가 아니라면 아무도 고무신을 발에 꿰지 않습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도 면소재지나 읍내로 볼일 보러 갈 적에는 아주 말끔하게 차려입습니다. 할배는 까만 구두를 신습니다. 할매도 고운 차림새로 꾸밉니다. 마을에서 여느 때에 마주치던 모습이 아니기에, 군내버스나 읍내에서 마주쳐도 한동안 누구인지 못 알아보곤 합니다. 시골 읍내 저잣마실을 가면, 외려 나더러 ‘그 고무신 어디서 샀느냐?’고 묻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 읍내에 지난주에 새 옷집이 커다랗게 문을 열었습니다. 달포쯤 앞서도 커다란 옷집이 문을 열었어요. 지난해에도 커다란 옷집이 자그마치 3층 건물로 새로 열었습니다. 옷집들이 이 두멧시골에 어떻게 새로 문을 열까 아리송하지만, 시골 어르신이든 시골 젊은이이든 시골 어린이이든, 상표가 붙은 비싼 옷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장만해서 입는구나 싶어요. .. 마른 빨래는 방안으로 던지고 / 덜 마른 빨래들을 처마 아래 건다 .. (처서) 장석남 님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창비,2010)를 읽습니다. 뺨에 서녘을 빛낸다니 무슨 말인가 궁금합니다. 동녘이나 남녘은 안 빛낼는지 궁금합니다. 무언가 깊은 뜻을 담고 쓴 말이지 싶지만,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게 있게 들려주는 시요 노래일 텐데,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어 말리면 잘 마릅니다. 빨래는 햇볕과 바람을 먹으며 곧 마릅니다. 한여름에는 십 분이나 이십 분만에 보송보송 마르기까지 합니다. 한여름에 빨래가 다 말랐어도 부러 한참 그대로 두며 뒤집습니다. 구석구석 오래오래 햇볕을 머금으면서 좋은 냄새가 감돌기를 바랍니다. 그래, 나는 빨래는 좀 압니다. 두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어 탁탁 털어 눈부신 햇볕을 쬐며 빨랫줄에 너는 빨래는 좀 압니다. 큰아이를 낳고서 세이레를 치를 적까지 날마다 기저귀를 쉰넉 장씩 빨았고, 백일이 될 무렵에는 마흔두 장씩 빨았으며, 돌이 될 무렵에는 스물넉 장씩 빨았습니다. 기저귀 빨래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똥이 묻은 기저귀이든 오줌만 묻은 기저귀이든 똑같습니다. 졸려서 두 눈이 감기더라도 밤똥을 눈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고 잠을 안 깨우면서 밑을 씻겨 다시 기저귀를 채워서 눕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느라 두어 시간쯤 자장노래를 부를 수 있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너덧 시간을 걸을 수 있습니다. 깜깜한 밤에도 쌀을 씻어 불릴 수 있고 밥물을 맞춰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불을 안 켜도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들 옷을 갈아입힐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도 옷을 갤 수 있고, 아이들 이불깃을 여밀 수 있습니다. 참말,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시를 씁니다. 참으로, 누구나 살아가는 대로 시를 읽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며 즐겁게 노래합니다. 기쁘게 살아가며 기쁘게 춤춥니다. 슬프게 살아가며 슬프게 이야기합니다. 아프게 살아가며 아프게 글을 씁니다. 무게란 무엇일까요. 삶은 어떤 무게일까요. 시 한 줄 무게는 얼마나 될까요. 시집 한 권은 어떤 무게를 담을까요. 장석남 님은 장석남 님대로 아름다운 삶빛과 삶노래를 고운 가락에 실어 즐겁게 불렀으리라 생각합니다. 4347.4.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집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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