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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사무라이 사회를 관찰하다 저: 박상휘 출판사: 창비 출판일: 2018년 10월1일 책 제목에서 대략적인 내용을 짐작했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다뤘다. 조선통신사 관련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제일교포 3세인 박상휘씨가 이 책을 썼다. 오늘날 새롭게 일본에 건너가는 한국인과는 달리 그 이전부터 일본에서 살아왔던 제일교포에게 한일관계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조선왕조와 일본 막부 사이에 있었던 조선통신사의 존재는 매우 관심이 많았던 주제였을 것 같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공으로부터 시작된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는 제한된 국가와의 외교관계를 성립시켰다. 조선과 류큐가 그 대상이었고 특히 조선통신사의 존재는 막부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매우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막부는 이러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절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조선왕조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막대한 피해를 겪었고, 일본의 재침 가능성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선통신사를 통해서 일본을 방문한 조선의 관리와 선비들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기록들은 갈수록 그 내용이 심화되었고 일본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조선왕조는 자신들을 침략한 도요토미를 멸문시키고 막부를 수립한 도쿠가와 막부에 큰 반감을 가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전국시대의 참혹한 상황 등을 거친 직후의 일본의 모습은 주자학에 경도된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있어서는 변방의 오랑캐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에 의하여 전란이 사라진 평화시대가 계속 되면서 일본에서도 문학과 학문에 대한 수요 그리고 발전이 거듭되었다. 막부가 주자학을 정권 차원에서 독려하기도 했지만, 일본에서는 조선왕조에서 주자학이 교조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과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한적이지만 네델란드와의 무역을 실시했고 그 시대 동남아 지역까지 진출하여 상거래를 했다. 조선으로부터 유입된 도자기 기술은 일본에서 융성했고 다량의 도기가 유럽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의 지식인에게 있어서 허용되지 않는 야만의 습속을 가지고 있는 무가 중심이며, 세습직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 융성한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과의 접촉을 차단당한 일본과 중국 사이의 중계거래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던 조선은 이후 일본이 직접 중국과 무역을 하고 그로 인해서 자국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주자학에 경도된 기득권은 세상의 움직임을 읽는 것도 국부를 형성하는 것도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조선왕조는 가난해졌고 국력은 피폐해져 갔다. 우리는 그 이후의 역사의 전개를 잘 알고 있다. 조선통신사 사절이 일본을 방문한 시기는 드물게도 한일간 관계가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다. 야만의 오랑캐로 일본인을 폄하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학문적 문학적 교양이 높아지는 일본인과 감정적 유대의식을 쌓기도 했다. 다만 그러한 과정이 이후 중단되고 오늘날까지 문제가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요즘에 범람하는 가벼운 역사책에 비할 수 없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학문적 연구를 통해서 완성된 노작이다.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다른 책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역사관련 책 중에서 이렇게 잘 정리되고 노력한 책들이 더욱 많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책 몇 권을 짜깁기해서 만들어진 조악한 책들이 너무 범람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문의 저자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화합과 충돌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인간적 교류를 쌓아 나가는 것이 평화적 공존을 위해서 제일 소중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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