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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시를 오랜 시간 계속 읽고 있다는 게 좋다. 내 마음을 붙잡는 구절이 계속 있다는 게, 이 시인이 쓴 시에 내가 여전히 가 닿을 줄 안다는 게 좋다. 마음이 놓인다. 세상의 어느 대목은 줄기차게 바뀌고 있어도, 세상의 또 어느 대목은 바뀌지 않고도 여전히 꿋꿋한 것 같아서, 내가 여러 차례 흔들렸으면서도 뿌리까지 아주 잃은 것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시집, 많이 얇은 편이다. 얇다는 건 분량이 적다는 것이고 실린 편수가 적다는 뜻이다. 특히 3부의 ‘식물도감’은 한 편의 시로서는 긴 분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 무수한 꽃들을 불러 모아 놓기는 하였지만, 아쉽다. 뭔가 덜 받은 것만 같다.
시인이 젊었을 때 쓴 시를 내가 젊었을 때 읽었던 느낌과, 이제 나이 들었다고 할 만한 때에 쓴 시인의 시를 나이 들었다고 할 만한 내가 읽는 느낌의 차이는 꽤 크다는 것을 알겠다. 어찌된 게 이 시인의 시를 읽는 일에서는 내가 나이를 못 먹은 것만 같다. 옛적에 받았던 감흥이 자꾸 기억을 헤집는다. 그때 읽었던 비슷한 글이 이 시집에는 어디쯤 있나…… 평소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데 이럴 때만, 보고 싶은 걸 찾지 못해 서글플 때만 못 먹고도 늘어난 나이 탓을 하게 된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작가가 시로 요약한 누군가의 생이다. 어머니와 고모들과 동료 시인. 애틋하다. 이 또한 기록으로 생을 기억하고 남기는 방식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내가 시를 계속 읽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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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안도현 시인의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는 한 권의 시집이었습니다. 시인의 시들을 생각하면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인상이 강한 시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신작 시집에 실린 시들은 매우 강하게 연마를 거듭하여 단단함이 겹겹이 쌓인 시어들이 가득한 시집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소 유한 이미지의 언어들을 버리고 직설적이면서도 강한 느낌의 시어를 선택함으로써 독자가 뚜렷하게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한편으로 강한 주제를 도드라지게 표출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안도현 시인이 가진 이미지의 활용이라는 장점은 기본적으로 시 전반에 잘 깔려 있었고 그럼으로써 더욱 진화한 시를 대중에게 보여주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강하지만 둔탁하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없는 시인 자신의 언어가 무기가 되어 시를 만들었다는 느낌이라 매우 신선하게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읽을 수 있었고 이런 모습들이 시인을 더욱 발전시키고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매우 만족스럽게 읽은 한 권,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이며 안도현 시인의 새로운 모습을 느끼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하는 시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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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 사기 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그릇은 나를 얻었다//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바랄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연못을 들이다 : ····· 누구나 흉중에 언덕과 골짜기와 연못의 심상이 있을 겁니다만 그동안 고심이 깊어 나한테 그 어떤 선물 한번 하지 않고 살았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받아 내 호흡으로 삼을 수 있다면 세상의 풍문에 귀를 닫고 실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게 찰랑거릴 수 있다면 나는 그걸 연못의 감정이라고 부를까 해요 귀띔: 길가에 핀 꽃을 꺾지 마라/꽃을 꺾었거든 손에서 버리지 마라/누가 꽃을 버렸다 해도 손가락질하지 마라 장마 : 창턱으로 뛰어든 빗방울의 발자국 몇 개나 되나 헤아려 보자/ 천둥 번개 치면 소나기를 한 천오백 근 끊어 와 볶는 중이라고 하자/ 침묵은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비명이거나 울음 같은 것/ 가끔은 시누대숲의 습도를 재며 밥 먹는 직업이 없나 궁리해보고/ 저녁에 저어새 무리가 기착지를 묻거든 줄포만 가는 이정표를 보여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