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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하다. 맞다, 긍정의 의미이니 다짐하는 게 순리인데,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하자라니…… ’마음이나 뜻을 굳게 가다듬어 정하다.‘는 의미로 따져봤을 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비하는 마음가짐이니 이런 뜻은 아니었을 테고. 그렇다면 ‘이미 한 일이나 앞으로 할 일에 틀림이 없음을 단단히 강조하거나 확인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으니, 과거 무엇을 다짐한 적이 있어 상처라도 받았을까? 제목을 읽고서 문득 드는 마음이라 헤집어 본다. 박소란 시인은 이곳의 시들을 다 읽기 위해선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하루에 다섯 편씩만 읽었다고 말한다. 그것도 간신히. 자주 슬픈 일이 출몰했고, 자주 한숨을 쉬었고, 자주 입술을 깨물었으며, 자주 창밖 먼 곳을 건너다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하다, 나도. 시를 읽는 일이 그리 편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한 편, 한 편마다 몰아넣어 가둔 고통이 절실히 느껴져서이다. 그러니 나도 뭔가 아는 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도 싶지만, 그럴수록 무엇 하나 제대로 말해내지 못하고 있다. 고통은 어디에 어떻게 머무는지, 시간이 휩쓴 뒤에도 왜 그 자리는 더욱 선연해만 지는지에 대해, 알 길은 없으나, 그냥 읽어나가기로 한다. 시는 읽는 일이므로, 시는 낭송하는 일이므로. ‘슬픔은’ 양말에 난 구멍 같아서, 들키고 싶지도 않으므로.
아무렇지 않은 척 고요해진 척…… 슬픔을 들킨다면 사람들은 곤란해할 거야 나는 부끄러워질 거야
내가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흔들지 몸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두지……
내가 나에게 슬픔을 숨길 수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척 내가 나를 속일 수 있을 때까지 괜찮아진 척 - ‘슬픔은 이제’의 일부
시인은 슬픔과 함께 살아온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담담하게 들려주는가, 그리 생각하게도 한다, 마치 고통은 아무렇지 않은 척. 고통은 그 순간 희미하다, 아니 분명하다, 시를 읽다 보면.
바람을 뭉쳐서 벽돌을 만든다면 그것으로 집을 짓는다면
저렇게 투명하고 아름답겠구나
여럿의 마음을 잇대어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오래도록 지은 집……
그 집에서 여러 해 머물며 지냈습니다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바람 벽돌로 지은 우리 집 안녕히 계세요 - ‘이사’의 일부
이 시도 슬픔의 언어로,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혼잣말: 시인에게 우리가 알 수 없던 매우 슬픈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물론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오래도록 지은 집’과 같은 구절은 매우 정다워서 노곤해서 몸을 누이고 싶지마는, 그토록 마음에 들어오래 머물던 집을 기어이 떠나야 한다니,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안녕히’라고 맺는 인사를 던지다니. 시인에게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내린다 차갑고 포근하게 세상을 덮는다 ……
말하는 것만으로도 얼마쯤 용서받는 기분이 드니까 눈밭에 나가 용서받지 못한 일을 늘어놓고 싶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 ‘눈 오는 날의 결심’의 일부
슬픔을 외면할 수 없다면 자신을 위로하고 싶어서라도 다들 무어라 변명의 말 한마디쯤 할 것이다. 잘못이 나에게 있다면 용서를 구할 것이고. 그래야 그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고, 있는 힘껏 살아갈 도리도 찾아 내는 것 아닐까? 그럼으로써 용서받는 기분이 드는 일이니, 용서를 구하는 ‘아무 말’이라도 하며 사는 게 인생이다 싶다고, 작가에게 그리 권하고 싶어진다. 더구나 ‘쓰겠습니다. 살아가겠습니다.’ 단 두 줄의 ‘시인의 말’이 퍽 인상적임도 말해줘야 한다, 공감하고 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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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 시인의 시는 존재다. 모든 생명이 공감할 수 있는, 특히 인간들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해 시를 쓴다. 모든 존재가 느끼는 감정을 시로 풀어낸다. 그것이 어쩌면 유병록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병록 시인을 평가한 박소란 시인님의 말에 따르면,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꽤나 슬픈 고통이 입술을 깨물었다고 한다. 박소란 시인님의 말이 가장 알맞은 말이다. 존재는 반복된다. 우리가 태어나고, 죽고, 그 시간대에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당신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생명은 끝났다. “밤마다 / 길들여지지 않은 염소가 길들여지지 않을 염소를 낳는다.” - 『염소를 기르는 밤2』(p.17) 길들여지지 않은 염소가 길들여지지 않을 염소를 낳는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번복하고, 실수하는 짓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항상 살아가며 실수를 낳는다. 그리고 그 실수가 줄어들 때 쯤, 우린 또 다시 실수한다. 그는 우리,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병록 시인의 시는 전체적으로 존재였다. 존재했기에 위로할 수 있는, 모든 인간들이 입술을 깨무는 그런 시들이었다. 어쩌면 유병록 시인은, 우리 모두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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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록시인의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의 리뷰입니다. 이 시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 골랐는데 생각보다 시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 한음절 한음절 곱씹으며 읽고 있습니다. 아직 읽는 도중이라 완벽하게 느낀점을 쓸 순 없지만 읽은 시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를 적어 보겠습니다. 불끄고 누우면/ 어둠의 완력이 천천히 그러나 완강하게 위와 아래를 벗기고/ 속옷까지 내리는 느낌// 꼼짝할 수 없어서/ 무서워서// 눈도뜨지 못한 채/어둠이 물러가고 아침이 오기만 기다릴 떄// 차갑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젖은 천으로 내몸을 닦는 느낌// 무서워서/ 숨 쉬는 것도 버거울 때// 어둠은/ 눈동자에 머물던 풍경을 지우려 감은 눈을 다시 쓸어내리고/ 세상의 소리를 막으려 두 귀를 감싸고/ 누구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도록 입을 덮어버리고// 정갈한 옷을 다시 입히는 느낌/ 내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 무력한 나는/누가/차가운 침묵을 물리치고 와서/ 두려움을 멀리 내쫓으며 와서/내 머리맡으로 와서/ 어둠의 팔목을 비틀며// 눈을 뜨렴/나쁜꿈을 꾸었구나/ 괜찮아/이제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아/토닥여주길 기다리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더 어두워진다// 기다림이 차가워진다/대낮의 기억이 어두워진다/모든 게 얼어버린다// 그랬을 것이다/너는 그 차가운 어둠 속에서 기다렸을 것이다/ 그 작고 어린 게/ 기다리다가// 어둠처럼 차가워졌을 것이다/그랬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