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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요일" 앱에서 매일 이 시인 저 시인의 시 한두 편씩을 필사하다가, <공복 산책>을 옮겨 적은 후 다음 시가 궁금해져 구입한 조온윤 시인의 [햇볕 쬐기]. 시에 잘 쓰고 못 쓰고가 어디 있을까. 그 날 그 때 내 마음에 닿은 시가 좋은 시지. 그럼에도 한 권을 다 읽고도 다음 시가 또 궁금하다면, 그건 정말 나랑 맞는 나에게 좋은 시인. 나희덕 시인의 해설은 또 어떻고. 어쨌든 시를 읽을 때만큼은 "나의 부족함이 너의 간절함"이었음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시간이라 참 좋다. 이제는 다그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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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시집을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여러 시집 중 별 생각 없이 하나 고른 것이었는데, 덕분에 올 여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어떻게 읽어야 하나 두려움도 있었는데, 강의를 진행해주시던 분께서 100%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와닿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고 말슴해주셔서 조금의 용기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고, 실제로 이해가 안 돼서 넘어간 부분도 조금 있었지만 100% 이해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시의 주제가 참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웠다.
특히, 나 혼자 읽은 게 아니라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눠서 완성되는 시 경험이었다. 네 명이서 읽었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시나 구절이 다 다른 것도 인상 깊었고, 같은 시에서 다른 구절에 밑줄을 긋고 서로의 해석을 공유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나는 1부의 '묵시'에서 '혼자가 되어야 외롭지 않은 혼자가 있습니다'라는 구절을 뽑았는데 공감해주셔서 위안이 되었고, '원주율' 시에서 어떤 분은 '모두가 조금씩만 아파주면 / 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를 뽑으셨는데, 나는 같은 시 하단의 '상냥한 사람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라는 구절이 좋았다. 특히 최근들어 상냥함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가장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아래 구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시집의 전체를 살펴보면,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만 상냥해질 수 있다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원주율'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도 '돌고/돌아서/나의 차례였다'라는 점에서, 서로에게 상냥해진다면 마치 원처럼 결국은 그 상냥함이 나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이 외에도 '중심잡기'는 나 혼자 읽을 때는 이해가 다 되지는 않아서 빠르게 넘겼는데 같이 이야기 나누며 '그런데/새벽에 비가 왔었나요?'의 문구를 이해하고 모두 다 '오오오~' 하면서 감동했다.
이 시 외에도 가장 좋았던 시를 뽑자면 '단체관람'과 '콘크리트 산책법'이 선명히 기억난다. 힘들고 외로워도, 그럼에도 괜찮다. 그림자가 있고, 손을 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걸어갈 수 있다.
압축된 언어가 내게로 와 풀어져 쏟아질 때 오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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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아니라 나무의 그림자가 우거져 있었다 우는 건 새가 아니라 새의 마음이었다 숲으로 가 숲을 보는 대신 눈을 감고 숲의 고요를 떠올렸다 잠을 자려다 문득 내가 원하는 건 잠이 아니라 잠 속의 산책이 아닐까 행복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p. 20 |
| 창비에서 나온 조온윤 시인의 햇볕쬐기 리뷰입니다 설명에 나온 "“지극한 선량함”(나희덕, 해설)은 체념과 위악으로 가파르게 흐르기 쉬운 마음을 단단히 붙든다. 고립이 일상이 된 지금, 『햇볕 쬐기』는 타인의 온기를 잊지 않길 바라는 가장 순하고 정한 진심으로 내놓은 시집일 것이다." 이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따뜻한 시집이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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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이번(이번이라고 해야 할지 지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2022년 12월 이후를 가리키는 의미다. 이미 3월 중순이니 '지난'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이라고 쓴다) 겨울 내내 '윈터 스톰'이 어마어마했다. 지난 번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땐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따뜻한 LA에 38년만에 눈이,그것도 폭설이 내렸을 정도였다. 캘리포니아만 해도 남한의 일곱 배 정도의 면적인데, 남가주 북가주 할 거 없이 겨울 폭풍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2월 말부터 계속된 폭풍이 여전한데,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눈이었고 지금은 비라는 점이다. 홍수로 잠긴 마을을과 바람에 꺾인 거목들을 보면서 기후위기의 전초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내내 내리는 박정대 시인의 시집을 연일 퍼풋는 폭설 뉴스와 함께 했다면, 연일 계속되는 비 소식과 함께 조온윤의 시집을 읽었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이 시집의 제목이 '햇볕 쬐기'인데, 이 시집을 읽는 동안 내게 가장 간절한 게 햇볕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 시집의 1부엔 시집의 제목에 부합하는 시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시들에 더 몰입되고 그 시들이 더 와닿았던 건 이런 나의 사적인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 또한 말하고 싶다. 같은 작품이라도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나 환경, 나이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시집의 1부에 배치된 시들에 즉각 반응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땐 이것이 일종의 트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괄호.
이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와 그 이후의 배치된 시들은 사뭇 비슷하지만 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다. 1부가 햇볕에 대해서라면 2부부터는 그림자, 밤, 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시인이 의식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시인이 숨겨둔 것, 혹은 좀더 꼼꼼하게 읽어야 보이는 것들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1부는 정확히 시집의 제목과 부합하지만, 나는 어쩐지 2부부터가 시인의 진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번째로 이 시집을 읽을 때 가장 좋았던 건 「백야행」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의 소설의 시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시이기도 한데, 이 시집이 가지는 상반된 이미지, 시인이 괄호속에 숨겨 놓은 시인의 마음이 비교적 명료하게 표현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가령,
낮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들/ 밤에는 돌아올까 밤에도/ 밤에도 불을 켣는 사람 같고
혹은
환한 빛에 관한일이라면 잘 알 수 있다/ 빛은 눈을 뜨게 하지만/ 눈을 멀게도 하지/ 빛은 눈을감게 하지만 손을 더듬어/ 다른 손을 찾게도 한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꿈에서는/ 그 손이 빛이었구나/ 그 빛을 잡아보려고 우리는 오래도 헤매었구나/ 강물 속에 빠져 있는 하얀 달을 건져내러/ 우리는 물가로/ 이불 속으로/ 첨벙거리는 잠 속으로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상반되는 이미지나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인은 밤과 같은 시간에서 Secret Sunshine, 그러니까 密陽을 구하거나 찾는 것일테고, 삶의 어느 한 순간(그것이 비록 찰나라 할지라도), '내가 버린 시간들이 쌓'(p.118)인 '수챗구멍'에서 그 빛을 발견했다고 볼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구도求道'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의 한 달만에 비도 바람도 없는 날이다. 이젠 정말 겨울이 끝난 걸까?
매일 빠짐없이 햇볕 쬐기 근면하고 성실하기 버스에 승차할 땐 기사님께 인사를하고 걸을 땐 벨을 누르지 않아도 열리는 마음이 되며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은 감정으로 인간을 위할 줄도 아는 것 혹은
자기희생 거기까지 가닿을 순 없더라도 내가 믿는신이 넘어지는 나를 붙잡아줄 것처럼 눈 감고 길 걸어보기 헛디디게 되더라도 누구의 탓이라고도 생각 않기......
그런데 새벽에 비가 왔었나요?
눈을 떠보니 곁에는 낯선 사람들이 있고 겨드랑이가 따뜻했던 이유는 그들의 손이 거기 있었기 때문
- 조온윤, 「중심 잡기」 부분
이 시의 제목이 '햇볕 쬐기'가 아니라 '중심 잡기'인 이유, 그러나 시인이 이 시집의 제목은 '햇볕 쬐기'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무엇을 (먼저) 볼지는 독자의 선택이지만, 결국은 양쪽을 다봐야 시인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데, 시인이 내내 생각하는 것, 그의 마음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密陽'(물론 이 역시 비유이다)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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