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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 여성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삶을 《글 쓰는 딸들》은 작가 저마다의 삶을 어머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룬다. 사회와 사회 내 기존 체제에 대한 은유로 가정과 가정 내 인물 관계가 자주 쓰이는 점을 생각하면 이 책의 서술은 이 세 여성작가와 이들 어머니의 삶이 자리한 20세기 초 기존 여성관과 이 여성관에 대한 저항과 갈등으로 읽을 수 있다. 아버지, 형제자매, 학우, 연인, 다른 작가와 그들의 작품 등 세 작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다른 많은 관계에도 '어머니'에만 집중한 까닭은 그 때문으로 보인다. 이 삶의 이야기는 그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의 작품과 기존의 전기의 적극적인 인용은 이 세 작가를 향한 저자의 애정을 엿보게 한다. 그 작품이 쓰여진 삶의 배경 또한 하나의 이야기로써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이 세 작가에 비해 이들의 어머니들이 다소 평이하게 다뤄진 점은 어쩔 수 없이 우려스럽다. 행동의 전후맥락과 사회적 분위기를 제시하기는 해도 이 어머니들을 뛰어난 작가적 재능을 가진 세 여성의 반동 인물로만 다뤄진 듯 읽히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대화에서 여동생 엘렌이 말 했듯 그 "엄마도 억울한 희생자"란 점을 생각하면, 이 어머니들의 삶을 좀 더 섬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글쓰는딸들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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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_ 창비출판사 지원 꽃길만 걷자, Good enough mother, 노주영님, 강은영님, 깨알북커
글 쓰는 딸들
20세기 프랑스 대표 작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세 여성과 그들 어머니의 삶을 재조명하며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 시절과 현재 우리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얼마나 소름끼치게 똑같은지. 내게 영향을 주는 이가 내 자녀 세대들에게도 또 영향을 줄 것인지. 엄마의 대물림이라는 말이 있다. 좋든 싫든 내가 받고 자란 사랑에 길들여진 내 안에 엄마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평상시엔 절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나의 자의식에 억눌려 항상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러다 어떤 발화점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튀어 나오는 그림자 같은 엄마의 모습. 내 아이 또한 나의 모습을 대물림할텐데...... 나는 어떤 모습의 엄마로 아이의 내면 속에 자리를 만들어 두어야 할까.
“내겐 어머니라는 낙원이 있었어요. 그 낙원은 불행, 사랑, 부당함, 증오, 이 모든 것이었죠.” _마르그리트 뒤라스
나의 모든 것, 어머니라는 큰 산이 우뚝......내 앞에 서 있는지, 아니면 뒤에 서 있는지 ..... 관계의 고리는 이 상징적인 낙원을 얼마만큼 포용하게 되었는지 글로 쓰는 일이 중요했다. 글로 쓰는 일은 머리도 가슴도 아닌 몸의 언어라고 말한다. 몸이 기억하는 몸짓들을 남기는 업, 이것은 우리가 여성으로서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개인사는 역사가 되어 모두에게 회자될 것이다.
그들은 딸을 사랑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세 사람은 저마다 딸이고, 유명 작가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다. 1871년에서 1914년 사이, 세기의 전환기에 태어난 세 사람은 주관이 뚜렷한 저항자라는 점 말고도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떤 한계나 표준을 넘어서는 어머니, 말하자면 어머니 이상의 어머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 어머니들은 군림하거나, 지나쳐서 넘치거나, 모든 것을 감싸서 끌어안으려 했다. 융합하거나, 지배하거나, 조종하려 했다. 그들은 딸을 사랑했다. 무척 사랑하거나,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했다. 9쪽
글 쓰는 딸들은 어머니를 떠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외딴 섬일 수 밖에 없던 어머니의 삶을 새로 발견하는 업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페미니즘 리부트 열풍에 다시 탑승하기 위해선 어머니와 화해하는 몸짓 언어인 글쓰기가 이어져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 * 깨알북커, 박인헤님
* 글 쓰는 딸들~ 어느 부분을 꼬집어 생각을 이끌어내기가 참으로 힘든 책이었다. 세 어머니와 그의 딸들의 관계를 보면, 세 어머니는 지극히 딸들을 사랑하면서 군림했고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야 직성이 풀렸고 섬세하기까지했지만 그 딸들은 그런 속박속에서 어머니들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갖은 노력이 엿보였다. 글을 쓰는것이 벗어나는 탈출구였다는것이 오로지 공부만으로 살지만 결국은 그 굴레와 속박을 이기지 못 해 던져버리고 자유를 찾게되는 모습 시대적인 배경도 성장함에 큰 작용을 하겠지만 어머니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은 엄청 크다는것을 책 전반적으로 느낄수 있었던것 같다.
발췌 P.89 그날밤 자정 무렵 거지여자는 몰래 달아나려다가 현관문이 삐거덕거리는 바람에 들키고 만다. 마리는 거리로 달려나가 여자를 가까스로 붙잡아 집으로 다시 데려온다. 아이를 낳았으면 끝까지 돌봐야 한다고 그것이 (적어도 부유한 나라에서는) 어머니로서 지켜야 할 도리라고 여자에게 가르친다.
ㅡ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의 책임감이 여느날 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가난한 아이들을 많이 도와주고 보살폈던 마리는 자신의 아이에게 거지의 썩은 발처럼 어머니의 뇌도 썩었다는 핀잔을 듣기도했지만 거지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딸아이가 키울것이라는 핑계를 댔다. 아이를 낳았으면 책임을져야 한다. 그게 부모의 도리라고 믿었던 시대. 지금은 좀 자유로워지긴했으나 여전히 그 책임감은 존재를하고 엄마의 모성애는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는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감정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모성애가 잘못 된 사랑의 굴레로 소유물이 되거나 권위적인 지배로 흘러가지 않게 한 인격체의 존재로 잘 키워내야한다는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 꽃길만 걷자, 윤화숙님
세 딸과 그 어머니들 들어가며 글에서부터 권위주의적 빅마더에 대한 ‘진저리나는 구렁’이라는 평에서부터 나의 어린시절의 ‘나의 엄마’ 그리고 현재 엄마로서의 ‘빅마더’ 역할을 하고 있는 ‘나’가 떠올라 내가 이런 엄마일까봐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P.52 “부모에게 자식을 사랑하라고 해요.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부모 대신 아이를 차지해버린다고.” 등골이 오싹한 말이지만 일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
P.66 “아이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방식의 반응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런 어머니는 ‘기준이나 좌표의 역할,의지할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없다.” ?? 나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P.160 자아의 작은 분출 시몬은 ‘속박당하는’ 느낌이 드는 걸까? 어머니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다고, 어머니가 모든것을 통제하면서 자신을 그저 착한 아이라는 틀에 가둬두려 한다고 느끼는 걸까? 그래서 빈번히 격해지는 걸까? 조금이라도 부당하다고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시몬은 불꽃터럼 화르르 타오른다 ?-떼를 쓴다는 건 자아의 작은 분출이 아닐까?
P.212 비극적으로 천진한 어머니들이 있다. 아이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자신이 예쁜 인형을 얻었다고 믿는다. 이런 어머니들은 비극적으로 해악을 끼친다. 자신의 것을 잃을까봐 모든것을 통제하면서 삶과 맞서 싸운다. 이런 어머니들은 처절하게 패배한다. 삶이란 늘 달아나기 마련이니까. ? 팩트폭격
콜레트와 시도 P.296 모성을 유머에 녹여 담을 수 있을까? 육아 영역에서 활용되는 어조는 대개 천진하고 솔직하며, 반면 재치를 자랑하는 경우는 드물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머니강이 가치로 무장한 양육자 어머니, 안정감의 바탕인 확신과 좋은 사상을 아이에게 수유하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 너무 진지하기보다 재치있는 매력과 유머감각을 겸비한 육아가 아이도 엄마도 편안한 행복한 삶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지만 이는 참 어려운 일 같다. 과잉모성 넘치는 어머니가 아닌 조금은 가벼운 부족한 엄마가 되고 싶다.
P.341 어머니와의 융합속에서 성장한 딸이 청소년기에 이르러 독립을 모색할때 어머니와의 관계를 벗어나려면 생살을 잘라내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교육이란 은혜를 베풀고 그것에 감사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배은망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소피 카르캥이 심리학에 근거하여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명의 여성작가의 삶을 재해석한다. 딸로서 자라고 현재 엄마가 되어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내게 나와 엄마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내 딸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볼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엄마라는 존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엄마라는 존재가 왜 이리 힘든건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을 이 세작가의 어머니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P.265 콜레트의 글은 시몬에게 어떤 감정을 대리경험할 기회를 주곤했다. ? 어쩌면 이책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대리경험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어떠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잘 될사람은 잘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하며 ^_^ 자신의 어려움에 대한 돌파구로 글쓰기를 선택한 세 작가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귀한 이 책을 선물해준 인혜님께 큰 감사를??
* Good enough mother, 김혜정님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82p> 안마리 스트레테즈가 사춘기의 마르그리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데에는 이 인물을 둘러싼 소문도 영향을 미쳤다. 그 여자에게는 젊은 애인이 있었는데, 그 여자 때문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 여자가 애인인 자신을 따라 떠나는 대신, 딸들과 함께 남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의 일이었다. 83p> 거지 여자란 누구인가? 숲속에 사는 여자, 이가 들끓는 여자, 자기 아이를 먹일 수도 없을 수도 없을 만큼 가난한 여자다. 구걸하고, 소리지르고, 울부짖는 여자다. :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를 겪은 마르그리트에게 일생의 사랑을 버리고 딸들과 남은 안마리의 선택과 자기 자신도 구제하지 못하는 가난한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따라온 거지여자의 모성애란 너무나도 숭고한 것으로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마치 레미제라블의 팡틴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팔아 값을 치러야 했던 모성애와 같은 것으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마르그리트에게는 엄마라는 이름을 얻으려면 자신을 포기하고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95p>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아이의 선언은 자신을 바라 봐달라는 요청일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다는 걸 봐줘!'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줘, 당신이 나를 정말로 이해한 건 아냐.......' : 어린아이든 성숙한 작가든 글을 써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어쩌면 비슷한 결을 가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는 엄마에게 가장 먼저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길 원할 것 이고 어쩌면 그 아이가 커서 작가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엄마는 모든 작가의 첫 독자이다.
97p> 하나의 모범이 반드시 ’닮은꼴‘을 빚어내는 것도 아니고 ’모범적인 어머니가 반드시 ‘모범적인 딸’을 낳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 모범, 이를테면 거지 여자라던가 마리 도나디외처럼 ‘어머니 역할에 실패한 어머니’가 한 갈래 혹은 여러 갈래의 샛길을 가리켜 보임으로써 아이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해서 때로 미성숙함을 노출하고 그래서 부끄러움을 안겨주기도 하는 어머니로부터 딸은 오히려 어머니가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영향을 끌어낸다. 특별한 그 자신만의 목소리를 빚어내게 되는 것니다. : 아이는 어머니의 결함을 통해 성숙한다. 특히 딸들은 어머니의 결함에 많은 영향을 받지만, 그 결함이 결코 나쁘게 작용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 어쩌면 많은 엄마들에게 좀 더 자유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120p> 마르그리트는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결론 내린다. 아니, 엄마는 화내지 않을 거야. 이 남자는 중국인이지만 부자잖아, 중요한 건 그거거든. : 마르그리트가 가진 속물적인 생각을 엄마의 생각으로 맞추는 것이 흥미롭다. 중국인이지만 부자라는 것이 과연 엄마에게 하는 변명이었을까, 마르그리트 자신에게 하는 변명이었을까?
128p-129p>하지만 아이들이란 학대받는 아이들조차도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에게 집착하곤 한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스톡흘름 증후군은 가족 내부에도 만연하다. : 모두들 모성애에 대해서 말하지만, 사실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에게 가지는 사랑만큼 무한한 것이 있을까? 그렇기에 엄마는 그 사랑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 간혹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얼마 전 정인이 사건이 떠올랐다. 양모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엄마 품을 파고들었던 그 아이의 얼굴이 마음에 박혀 아프다.
130p> 사랑하는 아들의 탄생은 뒤라스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 어머니와 결별하는 전환점이 된다. 딸은 아들을 얻으면서 어머니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렇게 뒤라스는 어머니를 떠난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닌가? 딸은 어머니가 됨으로써 자신의 어머니를 노년을 향해 밀어내고, 또 그만큼 어머니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 아이러니한 일이다. 딸은 엄마가 됨으로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동시에 엄마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의 자녀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엄마 자신도 딸의 자녀에게 밀려나는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것 까지가 모성애가 아닌가 싶을 만큼 물러나는 과정까지 포함하여 딸을 사랑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155p> 프랑수아즈는 예쁘고 총명하며 지적욕구가 강한아이로 성장한다. 그는 할 수만 있었다면 공부하고 연구하는 삶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을 볼 수 도차 없었던 그 시절, 여자들에게 주어진 삶은 어머니가 되거나 수녀가 되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이 운명에 실망해서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딸을 지식인으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고 단련시켰을까? : 지금 우리의 딸들에게는 1900년대보다 많은 삶의 기회가 열려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여자이기에 가로막힌 삶들을 차별 없이 딸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딸들을 준비시키고 단련시킨다. 모든 준비와 단련과정들이 우리의 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길 바란다.
172p-173p> 아버지는 저녁에 퇴근할 때면 이따금 제비꽃 다발을 들고 와 어머니에게 내밀곤 한다. 그는 아내의 웃음을 끌어내고 아내에게 행복감을 안겨줄 줄 안다. 이런 모습만으로도 시몬이 아버지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충분하다. 어머니를 따뜻하게 미소 짖게 만들 줄 아는 사람, 어머니에게서 장난기 어린 눈빛을 끌어낼 줄 아는 사람은 아버지뿐이다. : 좋은 아버지, 좋은 어머니의 모습에는 아마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 할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기 이전에 먼저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어린 시몬에게도 어머니를 웃게 하는 아버지가 좋았으니 좋은 부부가 되는 것이 좋은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첫 단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185p>어머니는 딸들을 질투 섞인 눈으로 지켜본다. 딸들이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는 게 싫다. 달리 말하면 결국 딸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 품 안에 있을 때 너무 사랑스럽고, 아이가 엄마에게 주는 풍족함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자녀를 성장시켜서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 그 과정을 아름답게 해 냄으로 엄마도 한층 성숙한다.
234p> 시몬은 엘렌을 향해 미소를 짓는다. 동생은 자유를 얻기 위한 이 전쟁에서 시몬의 가장 든든한 동맹군이다. : 공공의 적인 어머니를 가진 이 자매의 끈끈함이란! 어머니의 결함은 자매를 더 끈끈하게 결합시켜주고 결과적으로 언젠가 다가올 어머니의 부재에서도 서로를 의지할 수 있게 한다. 어머니가 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자매와의 우애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훗날 어머니의 빈자리를 그나마 보듬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자매가 없는 것이 나에게는 늘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도 같다.
239p> 시몬은 예전에는 그처럼 강력했던 어머니가 이제는 남편에게 배신당한 가엾은 여자가 되어 살림에는 거의 손을 놓고 울음으로 밤을 지새우는 보습을 지켜보기가 고통스럽다. 여자는 이처럼 불행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 어머니이지만 같은 여자이기도 한 한 여자의 삶을 바라볼 때 어떤 한 가지 감정으로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 삶이 곧 내 것이 될 것만 같은 불안감과 공포가 몰려온다. 어머니의 고통은 외면하고 싶지만, 결국 나에게로 올 것임을 알기에 외면할 수가 없다.
240p> “맞아, 엄마도 억울한 희생자야.” 엘렌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자유로워지자, 그래야 해. 자유로워야 해, 푸페트, 신세 망치는 결혼을 해서는 안돼.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훌륭한 결혼이라고 부르는 걸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 한때는 절대 권력자 였고 자매의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는 엄마도 결국엔 희생자라는 사실을 결국 딸들은 깨닫는다. 그렇게 모녀관계는 다시 딸들이 가진 연민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딸이 엄마에 대해서 글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콜레트와 시도] 278p> 그렇지만 나는 사위님의 친절한 초대를 받아들이기 어렵군요. 어쨌거나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답니다. 사정이 있거든요. 내가 기르는 붉은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 것 같아요. : 붉은 선인장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딸을 위한 사위의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어머니라니, 얼마나 독립적이고 낭만적인가.... 하지만 이런 어머니의 모습에 딸은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딸아,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고 낭만이 있단다.
318p> 아이는 자신을 삼키려는 어머니를 포옹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이미 배불리 탐식하고 있는데, 그런 어머니에게 또 무엇을 준단 말인가? : 우리는 종종 아이에게 사랑은 많이 주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집어삼키는 사랑은 곧 아이를 배불리 탐식한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적절하다. 내 사랑은 과연 나를 배불리 탐식시키는 것인지 정말 아이에게 전해주는 사랑인지 돌아보는 지혜가 어머니들에게는 필요하다.
325p> 시도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딸을 마중 나가지 않은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적이 뛰어난 것과는 별개로 딸이 아주 조숙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처럼 영리한 아이를 애써 어린애로 대할 이유가 무엇인가? : 시도의 양육방식이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아마 요즘 시대였다면 시도는 육아 서적을 발간했을 정도로 많은 방면에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다. 영리한 아이에게 맞게 양육하는 여유로움이 콜레트에게는 약간의 서운함을 가져왔을지 모르지만, 하나의 인간으로 독립해나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양육방법이 아니었을까?
356p-357p> 전능했던 어머니가 별안간 허약해졌다는 점이 가브리엘에게는 약속 위반으로 비친다. 아이들은 현상의 진짜 원인을 규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부모가 10미터 아래로 추락해 있을 뿐이다. : 어른들 특히 부모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시련이 다가온다. 하지만 부모의 추락의 과정을 아이들은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아마 부모의 상황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어른이 된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부모의 추락에 아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을 부모들이 마음 아파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394p> 즉 어머니와 딸의 사랑도 연인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 요구한다고 얻어지는 사랑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우선 상대방을 향해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러고는 기다려야 한다. : 불같은 연애를 끝내고 부부의 연을 맺은 후에 아이에게는 한없이 당기기만 하는 사랑을 베푼다. 하지만 부모 자녀 간에도 밀당이 필요한 것일까?
408p> “내 사랑의 크기만큼 너를 껴안아 내 안에 품는다.”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면 죽음은 아주 아늑할 것이다. : 내 딸에게 언젠가 전해주고 싶을 만큼 가슴 찡한 구절이었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사랑했던 크기만큼 아늑하기를....
나에게는 ‘프랑스 아이처럼’ 이라는 육아서보다 더 유익한 육아서였다. 특히 딸을 가진 엄마들이 읽는다면 어쩌면 완벽한 엄마가 되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는 딸들을 통해 엄마로써의 결함이 모두 드러날지언정 그들이야 말로 우리에게 세 명의 훌륭한 작가를 배출해낸 위대한 어머니이다. *노주영님
*창비출판사 독서모임 지원도서입니다. #글쓰는딸들 #소피카르캥 #창비 #독서모임 #페미니즘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여성작가 #프랑스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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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게 최근 개인적인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글쓰기에 대한 기대나 막막함이 계속 교차하면서 글을 쓰고 싶은 열망만큼 매우 부담스럽게 글을 쓰는 중이라 20세기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3명과 그들의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쓴 <글 쓰는 딸들> 책 내용이 궁금했다. 어떤 어머니를 두었기에, 어떤 성장 과정이 있었기에 그녀들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한 글을 써냈던 걸까. 그리고 나도 글 쓰는 딸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삶을 현실 옆에 나란히 놓고, 점선의 형태로 끌고 가려는 욕망이랄까요? 하여간 신기하죠, 글쓰기룰 향한 이 욕망은......”(중략) 어째서 그 길이 필요했는가? 달아나기 위해서. 현실의 삶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에. 68쪽. (뒤라스 편) 하나의 모범이 반드시 ‘닮은 꼴’을 빚어내는 것도 아니고 ‘모범적인 어머니’가 반드시 ‘모범적인 딸’을 낳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모범, 이를테면 거지 여자라든가 마리 도나디외처럼 ‘어머니 역할에 실패한 어머니’가 한 갈래 혹은 여러 갈래의 샛길을 가리켜 보임으로써 아이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97쪽. (뒤라스 편) “딸을 향한 관심이 어머니를 사로잡아 잠식했다.” 투명성을 강요한다는 건, 아이에게서 그만의 비밀공간과 내밀한 영역을 빼앗는다는 건 얼마나 큰 폭력인가. 185쪽. (보부아르 편) 어머니와의 융합 속에서 성장한 딸이 청소년기에 이르러 독립을 모색할 때 어머니와의 관계를 벗어나려면 생살을 잘라내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교육이란 은혜를 베풀고 그것에 감사하는 일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배은망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41쪽. (콜레트 편) 이 책은 서술방식이 좀 독특한데, 저자 소피 카르캥이 세 작가의 기록을 총 망라하여 작가들과 어머니들과의 관계를 재현해낸 덕분에 저자의 해설이 들어간 다큐멘터리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떻게 하면 딸을 작가로 키울 수 있나’하는 지침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세 작가의 글을, 세계관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서라 할 수 있겠다. 뒤라스는 어린 시절 식민지 주거민으로 큰아들만 편애하는 어머니 밑에서 정서적 육체적 학대를 받았고, 보부아르는 감시하는 어머니의 지배 아래서 억압받으며 자랐다. 콜레트는 어머니의 넘치는 사랑 속에서 질식할 것 같았다. 그녀들은 어머니와 갈등하다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글쓰기로 현실을 벗어났다. 나는 ‘글 쓰는 딸’이고 싶은데, 책을 읽는 내내 작가들의 ‘엄마’를 중점적으로 책을 읽고 해석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지금의 나는 ‘글 쓰는 딸’ 보다는 ‘글 쓰는 엄마’의 포지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콜레트의 작품만 못 읽어봤는데 이 책을 보고 작가들의 책을 보면 작가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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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그저 단순히 '모녀관계'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다. 언제나 그렇듯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묘한 신경전도 '모녀' 사이에는 존재한다. 나도 딸이고, 여성이며, 나도 이제 어머니에 속한다. 나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역시 다르지 않았고, 지금 나와 딸의 관계도 비슷하겠지.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라는 문학 거장들의 숨은 삶과 과거의 경험, 그리고 그 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는, 그들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밖에. 딸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양육 태도나 관심 정도, 그리고 딸에 대한 언행은 고스란히 딸의 삶이 녹아난다. 특히 많은 굴곡을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은 성장 후 어른이 되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될 수밖에 없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마리 D. _양면적 사랑 그렇지만 마르그리트는 어머니와 거리를 벌릴 방법을 찾아냈다.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으면서 자기 품 안에 가둬놓으려 하는 어머니로부터 달아날 방법은 바로 글쓰기였다.(65-66쪽) 마르그리트는 들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자꾸 목이 멘다.(127) 이렇게 죽음 너머까지 이어진 어머니와 아들의 동맹 관계는 마르그리트에게 마지막 상처를 준다.(...) 이렇게 해서 뒤라스의 작품에 '사랑받지 못한 딸'이라는 주제가 자리 잡게 된다.(133쪽) 첫째 아들에 대한 편애와 딸에 대한 구속, 그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을 펼쳐나가기 위해 뒤라스가 선택했던 것은 '글'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또 다른 마음은 여전히 그런 어머니에게서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었겠지. 어머니의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어했고, 이후 어머니의 말년에는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도 또한 아들과 함께 묻히는 어머니에게서 결국은 "어머니에 대해 남아 있던 사랑마저 파괴되었다"(133쪽)고 말할 정도로, 그런 어머니로부터 결국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절한 사랑이고, 또한 슬프고도 아픈 상처 투성이의 사랑인지. 어쩌면 아기일 때 어머니와 분리되었던 잠재적 상처는 이후 삶의 생을 이어나가면서 알게모르게 깊은 상처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으로서 성장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사랑의 종류가 분명히 있고, 그 사랑을 제대로 받을 수 있어야만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텐데. 사랑은 그래서 이렇게 소중한 것일텐데.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_지배하는 사랑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는 자신을 완벽히 통제하는 사람이다. 해산 자리에서든 잠자리에서든 결코 자제력을 잃는 법이 없다!(158쪽) 자유! 자유! 시몬은 발에 날개가 돋은 느낌이다. 오늘 아침 몸이 얼마나 가벼운지 날아오를 것 같다. 이렇게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249쪽) 전화기를 내려놓은 시몬은 별안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울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자세로 한참 오열한다.(266쪽)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딸들을 본인의 방식대로 통제하려는, 어쩌면 완벽주의자의 모습이길 원했던 사람이 프랑수아즈일 것이다. 딸들에게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일 수 없을 지경을 만들어놓았으니 어린 시절 시몬은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시몬은 어린 시절 가세가 기울면서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까지 받는다. 아마도 어린 시절 적절한 부모, 특히 어머니의 보살핌과 관심, 따뜻한 사랑이 있었다면 이런 상처는 쉽게 아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런 어머니의 부재는 받아들이기 힘든 과정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은 어머니이니까. 콜레트와 시도 _융합하는 사랑 (...) 말하자면 여자로서 어머니는 나 때문에 저무는 계절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한 송이 꽃이 시들어야 다른 꽃송이가 피어난다. 이것이 시도의 신조다.(298쪽) 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데 당황한 시도가 집착을 보이고 불안해할수록, 가브리엘은 더 강하게 반항하며 멀어져가는 것이다.(351쪽)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도 물론 어머니와 딸은 글쓰기를 통해 이어진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어느 때는 매일 소식을 주고받는다.(371쪽) 어머니에게 있어서 딸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자신만만하며 자신의 생각 안에서 딸의 모든 것을 통제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런 어머니 안에서 어머니를 전부인 듯 그 완벽성에 매혹되었다가, 그 안에서 딸은 어떻게해서든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을 친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이런 것인가보다. 어떻게든 딸을 자신의 품에 넣고 좌우로 흔든다. 또한 딸은 그런 어머니로부터 끊임없는 탈출을 꿈꾸며 어머니로부터 멀어진다. 그렇게 또 하나의 어른이 되고 성장하는 것일테지. 하지만 결국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콜레트는 글을 쓰게 된다. 어머니란 존재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러하니, 모녀관계라는 말 속의 숨은 뜻과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볼 수밖에. 그러니 어찌 이분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꾸 끌리는 이야기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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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명의 딸들과 그녀들의 어머니에 관해 쓰여져 있다. 딸들에게 있어 어머니의 존재란 무엇일까? 대게 이 책 속에서 묘사되는 어머니들은 엄격하고, 딸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며 자신의 양육방식을 되돌아 보는 것보다는 "어쩌다 딸과 사이가 멀어진걸까? 난 열심히 했는데." 라고 생각한다. 모든 딸과 어머니들의 사이가 가깝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나도 딸로서 어머니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살아왔다. 물론 현재까지도. 한편으로 그 어머니들은 누가봐도 열심히 살고 그녀들의 관점에서는 최고의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생계를 이어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의 딸들은 생각해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어쩌면 딸들이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에는 어머니들이 있었기 떄문이다. 고난과 역경이 많이 첨가 되어 있더라도 말이다. 11p. 이들 세 딸은 어린 시절에는 전능한 어머니에게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있다가 성난 사춘기를 보내고, 성년이 되어서는 한사코 어머니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 사랑에 대해, 대게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인 터라, 각자 글을 썼다. 멈추지 않았기에, 배움이 있고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글쓰기는 만약 딸들이 어머니에게 순종적인 딸로만 남아 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이 책은 도서 출판사 창비에게 제품제공을 받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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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들이란 학대받는 아이들조차도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p.128)
*흔히 주장하기를 아이들은 어른만큼 물질적인 것에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가난은 다른 여러 형태로 아이들의 불안을 키운다. (p.203)
*어머니 시도는 편지에 이렇게 써 보내곤 했다. “내 사랑의 크기만큼 너를 껴안아 내 안에 품는다.”(p.408)
서구 문학사를 주름잡았던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그리고 콜레트. 세 명의 글쓰기에는 저마다 ‘어머니’의 존재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어머니들은 제각기 자식을 지극히 사랑했고, 아동학대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인 만큼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식들을 얽매고, 속박하기도 했습니다. <글 쓰는 딸들>은 작가 개개인에 대한 충실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전기傳記가 3부작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은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작가들이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지, 또 거기에 어떻게 모녀 관계가 얽혀 있는지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그들의 삶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인물에 관심을 갖게 하다, 성공적인 전기들의 특징 전기를 쓰는 일은 논문처럼 자료들을 세밀하게 분석하여 이를 기반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소설처럼 극적인 서사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어렵습니다. 자료가 부실하면 소개하고자 하는 인물의 역사를 왜곡해버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내용이 서사적이지 못하면 이번에는 독자들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지 힘들어지죠. 그렇기에 책에서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일생을 충실하게 담아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처음에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 책, 시중에 나오는 소설들보다도 훨씬 극적이면서, 잘 쓴 연구서적만큼이나 구성이 알찼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그녀들의 삶 저자는 세 작가들의 일대기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행동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프로이트의 견해를 인용하기도 하고, 교육에 대한 현대적인 관점으로 인물들의 내적 심리를 분석하기도 하고, 또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인물들을 둘러싼 사회상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개개인의 삶을 재연하는 일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 책은 서구 문학사의 주축인 세 작가에 대한 전기지만, 아동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교육 지침서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정신분석학 서적으로 다양하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갑니다.
극적인 다큐멘터리, 탁월한 내레이션 또한 저자는 오늘날 다큐멘터리처럼 멀리서 작가들의 삶을 서술하다가 어느 순간 작가들에게 빙의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드러내곤 합니다. 이러한 완급 조절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개개인의 일생이 마치 하나의 연극을 보는 것처럼 극적으로 느껴집니다. 전기나 고전 번역서 중에는 각각 집필자, 번역자가 대상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허균의 글을 번역한 책에서 역자가 ‘오늘날 관점에서 봐도 얼마나 놀라운 책인가!’ 하고 혼자 감탄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영화에 집중하던 찰나에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었을 때처럼 집중도가 확 떨어져 버리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서술자의 개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어디까지나 작가들의 일대기를 다루는 데에 집중하고자 하는 목적이 보이며, 상술한 장점들이 맞물려 서술자가 옆자리 관객이 아닌 작품의 내레이션으로서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가 다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저자가 딸과의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부분이 등장합니다만, 딸의 입장이 아닌 저자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다른 영역에 비해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상이 있었습니다.
요컨대, 상술했듯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려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전기를 쓰는 사람은 인물의 인생을 왜곡해서는 안 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되 독자들이 이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재미있게 글을 써야 합니다. 서구 문학에 관심이 거의 없던 제가 책을 다 읽은 후, 겉표지에 그려진 콜레트의 <암고양이> 광고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책이 저에게는 전기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한 걸작으로 남은 모양입니다.
(*이 서평은 창비 <글 쓰는 딸들> 서평단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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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다룬 책들을 많이 읽게 되었다. 에이드리엔 브로더의 <와일드 게임>, 우사미 린의 <엄마>에 이어 소피 카르캥의 <글 쓰는 딸들>까지. 모두 딸의 입장에서 엄마에 대해 서술한 책이지만, 엄마의 스타일은 모두 제각각이다. <와일드 게임>의 엄마는 무신경하고, <엄마>의 엄마는 우울하다면 <글 쓰는 딸들>의 엄마는 강압적이다. 분명 딸들을 사랑하긴 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군림하려 든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1870년대에서 1910년대를 살아간 세 여류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시몬 드 보부아르,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와 그들의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사실을 기반으로 각각의 인물에 이입해 '논픽션같은 픽션'을 쓴 셈인데,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이 세 인물들이 서로의 책을 읽고 감탄하는 등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는데다 모두 '군림하는 제왕같은 엄마'를 두었다는 공통점까지 있어서 흥미로웠다.
먼저 <연인>, <태평양을 막는 제방> 등으로 유명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엄마는 실용적이고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편애하는 큰아들과 함께 어린 마르그리트를 때리기도 하는 엄마였다.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인도차이나(베트남)에서 자란 6살의 마르그리트가 현지 아이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도 '조용히 하고 그냥 넘어가'라며, 어린 마르그리트의 놀란 마음을 보듬어 주기는 커녕 그 입을 막는 데에만 급급했던,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딸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을 갖고 모든 걸 알고 통제하려 들었다. 결국 말년엔 여러 엄마들이 그렇듯,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유일한 사람인 딸에게 의지하게 되지만.
그들이 살던 당시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걸음마를 뗀 수준이었기에, '아이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이다'라는 류의 사고방식은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 작가의 어머니는 모두 공통적으로 딸들에게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갖고, 딸들의 모든 것을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어머니를 둔 세 딸들은 자신만의 도피처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뒤라스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를 이렇게 묘사했다.
낙원이면서 불행일 수 있고, 사랑이면서 증오일 수 있다니. 뒤라스에게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군림하려 했던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저렇게 다채로운, 모든 것이었기에 그녀에게 어머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한편, <제 2의 성>으로 당시 페미니즘을 선도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어머니 역시 딸을 눈 밖에 내놓질 못하고, 딸의 모든 걸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엄마였다. 보부아르가 저서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딸을 향한 관심이 어머니를 사로잡아 잠식했다(185면)"고 언급할 정도로. 시몬의 경우 어릴 때부터 호불호가 확실해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되면 악을 쓰는 아이였지만, 그만큼 총명하고 영특했다. 그랬기에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다 청소년기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가난은 시몬에게 '한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특히 사회적으로 높은 곳에 있다가 추락한 부모님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시몬은 점점 더 부모님에게 반항하며 자유분방한 영혼이 되어 가고, 예전엔 한없이 크고 높게만 보였던 부모님이 이제는 나이들어 가는 노인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육체를 거의 죄악시했던 엄마 때문에 자신을 꾸미지도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던 보부아르가 나중에는 그 속박과 굴레를 걷어차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어릴 때부터 영특해서 '남성형 두뇌'를 가진 걸로 인정받아 부모님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 왔던 그녀였기에, 그 기대를 벗어 던져 버린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결국 보부아르는 자신의 알을 깨고 비상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 알을 만들어준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만약 보부아르의 어머니가 '시몬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사람은 없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독립성을 인정받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우리 딸도 나와는 독립적인 존재이고, 내가 무엇을 원하든 간에 그걸 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내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군림하면서도 섬세한 어머니'를 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세 작가들의 작품 중 읽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읽고 싶어지는데, 나는 특히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서정시(278면)'라는 콜레트의 <여명>을 읽어보고 싶어 책을 주문했다. <여명>에는 딸을 보러 오라는 사위의 초대에 '딸을 사랑하지만, 키우는 선인장이 곧 꽃을 피울텐데 지금 보지 않으면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며 거절하는 어머니가 나온다. 이어 콜레트는 이렇게 썼다.
이 책의 저자는 '나는 그런 여인의 딸이다'라는 부분에서 어머니가 그리워졌다고 했다. 나 역시 마음 따뜻한 어머니에 대한 콜레트의 절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모녀관계 역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혹은 구속) 때문에, 사랑만이 넘쳐나는 그런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었다. 어머니의 소유욕은 콜레트가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그 흔적을 남겼다. 콜레트를 지배하는 대상이 어머니에서 남편으로 바뀌었을 뿐. 심지어 남편은 콜레트에게 변변한 외투 하나 사 주지 않을 정도로 구두쇠다. 결국 그녀의 결혼생활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돈을 벌기 위해 <클로딘> 시리즈를 써야 했을 정도로. 결과적으로 콜레트 부부는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지만, '글쓰기 강제노역자'였던 콜레트는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났음에도 평생 자신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하게 된다. 딸에 대한 어머니의 소유욕은 평생 딸에게 영향을 미친다. 딸이 성인이 된 이후라도. 나도 이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세 사람과 그들의 모녀관계가 심리학을 기반으로 해석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엄마가 딸을 보호해 주지 못할 때, 딸이 엄마의 엄마가 된다'거나 '한 개인의 자질이나 소명은 때로 한 세대, 나아가 두 세대 이전에 뿌리를 두기도 한다. 딸들은 자기 어머니를 대신해 복수에 나설 줄 안다'는 등의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동시에 모녀관계는 좀 특별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우리 딸에게 어떤 엄마가 될 수 있는가,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일단 절대로 '딸을 소유하고 딸 위에 군림하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딸을 낳은 사람인 건 맞지만, 나에게서 탯줄이 끊긴 순간 딸은 나와는 별개의 인격체,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딸을 보호한답시고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 드는 것도 반드시 역효과를 낳는다. 벌써부터 아이를 사회에 내보낼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명심해야 할 부분들이기도 하다. '군림하는 엄마'가 '글 쓰는 딸들'을 낳았긴 했지만, 엄마들이 군림하지 않았다면 그 딸들이 글을 쓰진 않았을지언정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것이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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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딸들은 일종의 소설의 형태로 쓰인 전기로, 작가의 생애를 포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모녀관계가 주로 얽힌 유년기~생애전반부~개별적인 주요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작가에 대해 상세히 알고싶다면 조금 적절치않은 선택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세 모녀의 애착관계와 그 관계형성이 작가의 글쓰기에 끼친 영향을 중점적으로 다룬 글쓴이의 의도가 흥미로웠고 재미있게 읽었다.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 셋 모두 그리 잘알지 못하는 작가들이라 글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웠는데, 이 책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초반부 작가의 생애와 자연스럽게 엮어 소설처럼 씀으로써 쉬이 그 삶의 큰줄기를 따라갈수 있게 도왔다. ??뒤라스가 여성의 열정, 광기, 지성을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분이다. 그가 어머니의 간헐적이고 단속적인 사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한 덕분이다. ??그렇다, 시몬은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쓸 것이다. 어머니는 결함투성이였고, 강철 같은 의지를 넘어 독선적이었고, 그의 사랑은 넘치다 못해 어긋났지만, 시몬으로 하여금 자유를 향해 나아가게 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그 결함과 비타협성과 무절제한 사랑이다. 읽다보면 내가 평가하는게 우습지만 뒤로갈수록 그나마 나은 어머니다 싶은데, 콜레트의 모친 시도는 어떻게보면 나름 존경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프롤로그에도 언급되는 시도의 편지와 그에 덧붙이는 훗날의 콜레트의 문장. 다들 꼭 콜레트의 산문 [선인장의 편지]를 읽어봤음 좋겠는데, 자식에게 이런 경의를 받는 부모라면 인생이 후회스럽지 않을 것 같은 기분. 책을 읽으면서 작가들의 작품도 궁금해져 내친김에 찾아읽어보기도 했는데, 아 콜레트 진짜너무짱좋다. 100년전 파리를 휩쓸었다는게 넘나이해가고요, 초기작 후기작 둘다 읽었는데 둘다 좋아서 딴작품도 더 구입해서 읽어야지. 제발 다른 작품들도 빨리 번역되었으면?? 개인적으로 순수와 비순수 너무 좋았다. 클로딘 시리즈 너무 톡톡튀고 재기발랄해서 좋았는데 영화 콜레트까지 보고나니 하 이건 착취인데 망할,,,싶기도 하고. 어쨌든 전기를 통해 작가에 대한 흥미를 갖게되어 책과 영화 여러매체를 통해 한걸음두걸음 더 가까이 가게되어 좋았다. 책은 결국 어머니와 딸의 관계, 작가의 긴 생애 중 한토막만을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옮긴이의 말마따나 ??딸의 글쓰기의 출발점으로서 어머니가 한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로를 더듬어나갈 하나의 실타래 역할을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작가를 깊게 알기 전, 첫만남으로서 좋은 선택이었다. 이 책을 통해 작가들의 글쓰기의 첫 시작을 엿보는 경험은 흥미로웠고, 이후 그들의 원숙한 작품세계를 접하기위한 발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해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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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프랑스 대표 여성 작가들인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의 삶을 그려낸 책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았음에도 어린 시절에는 전능한 어머니에게 매혹되어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있다가 성난 사춘기를 보내고, 성년이 되어서는 한사코 어머니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면서 그 사랑에 대해, 대개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인 터라, 각자 글을 썼다. . . 이 세 사람은 습관, 자라는 환경, 읽은 책, 동성애 경험 등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세 사람 모두 '빅 마더'와 마주한 상황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피난처를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 . 이 어머니 이상의 어머니들은 세 작가가 글쓰기를 꿈꾸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을뿐더러, 나아가 그들 각자의 고유한 문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 "부모에게 자식을 사랑하라고 해요.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부모 대신 아이를 차지해버린다고." 등골이 오싹한 말이지만 일면의 진실이 담겨 있다. 그의 논리에서는 근본적인 진실. 애정결핍인 아이, 애정을 갈망하는 아이는 욕망하는 타인이 볼 때 활짝 열린 문이다. 타인이 나이가 훨씬 많더라도 다르지 않다. . p52 <2장 말할 수 없는 비밀> . . . ? 유년의 마르그리트에게 트라우마가 새겨질만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이 일을 비밀로 하고자 했다. 어머니에게 침묵을 강요당한 어린 마르그리트는 이중의 고통과 폭력을 당한 셈이다. 그 사건의 폭력의 희생자임에 동시에, 책임자라는 의식을 갖게 된다. . . 나중에 뒤라스가 이 '범죄 현장'에 대해 쓴 글에는 "그 현장은 저절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함께 자라났고, 한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라고 적혀 있었다. 비밀이라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장 예쁘게 치장된 최악의 말이다. . . 모든 기본적인 관계의 형성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발생한다. 특히,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는 아이일 경우, 가정 외에서 타인에게 마음을 뺏기기 쉽다. 즉, 애정결핍. 가정으로부터 발생한 결핍 현상을 타인으로부터 채우려 한다. 서로를 가장 신뢰하고,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하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닌, 그 부모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체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린 이런 불상사를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여야 한다. . . ?? 콜레트는 눈을 감는다. 어머니 시도는 편지에 이렇게 써보내곤 했다. "내 사랑의 크기만큼 너를 껴안아 내 안에 품는다." 손을 잡아주는 이가 있다면 죽음은 아주 아늑할 것이다. . p408 <영원한 분리> . .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까지 세 작가는 모두 어머니들의 과한 집착과도 같은 사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와 삶이 이 책에 담겨있다. 딸을 무척 사랑하거나, 과도하게 사랑하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을 했으므로, 공통점이 생긴 세 작가의 이야기는 안타까우면서도 놀라웠다. . . 어머니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위해 글을 썼던 것일까. 아니면 글을 통하여 자신의 과거를 비추면서, 어머니께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일까. 나는 이걸 한 가지 방면으로만 보기 보다는 여러가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녀들이 추구하는 삶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지, 정답은 없겠지만 '빅 마더'를 둔 세 사람의 삶과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어머니와 그녀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책 :)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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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딸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 시몬 드 보부아르, 가브리엘 시도니 콜레트 세 작가의 핵심적인 전기를 담아 놓은 책이다. 세 작가의 전기에서는 작가의 삶을 걷게 된 이유와 함께 작품의 탄생을 보여주고 있다. 뒤라스는 ‘성마르고 편파적이며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에 난폭한 어머니’, 보부아르는 ‘권위적인 성격과 그 지배력과 권력의지가 강하다 못해 강압적인 어머니’, 콜레트는 ‘딱한 처지의 미혼모들을 돌본 강하고 용감했지만 끊임없이 딸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집요할 만큼 답장을 재촉하며 딸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한 어머니’ 밑에서 각자 ‘양면적 사랑’과 ‘지배하는 사랑’, ‘융합하는 사랑’을 경험하면서 세상을 향해 태어났다. 사랑의 극단을 세 가지 형태로 보여주면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 딸을 향한 어머니의 모성애가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세 작가의 삶은 각자 다른 형태의 사랑을 주는 어머니에게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다르지만, 분명 같은 것을 쫓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달랐지만 무섭고도 집요하게 닮아 있다. 이는 뒤라스와 보부아르, 콜레트의 삶을 구분해서 읽을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구분 보다는 어떤 공통된 목표를 좇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세 작가에게 ‘글쓰기’는 하나의 탈출통로, 즉 어머니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한 수단이며 동시에 자신을 만들어준 과거와 어머니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존재했다. 당대에는 어머니의 지극하지만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 아이들, 특히 딸을 즐겁게도 했지만 괴롭게 했다(이 사랑이 그들에게는 그리움과 지옥이 뒤섞인 감정으로 남았겠지만, 우리에겐 최고의 작가와 작품을 선물해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강압적인 집착으로 이름을 바꾸고 딸 곁을 맴도는 것은 ‘사춘기’ 부터이다. 자신의 세계를 꿈꾸고 만들기 시작할 때, 어머니의 거대한 사랑이 딸을 품다 못해 잡아먹어 딸들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하려고 발버둥치고, 결국엔 어머니의 사랑은 부정으로 남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세 작가를 상담하는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심리학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웃기게도 나의 어머니는 세 작가의 어머니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비교했다. 당대를 살던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어머니는 그들의 어머니와 닮아 있었고, 나 또한 글쓰기가 하나의 탈출통로, 즉 어머니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한 수많은 수단 중 하나로 존재했다. 처음에는 세 작가의 삶을 구분하기 위해 메모를 하며 읽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에 와서는 한 사람의 삶을 읽는 것처럼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었다. 그들은 아프고 치열했지만 분명 그 안에서 ‘글쓰기’과 ‘책’으로 또 다른 삶을 꿈꾸고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아프고 치열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웠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 쪽을 읽고 나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도대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물었고, 모든 것이 변한 세상에 와서도 그들과 닮은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신비로웠다. 그들의 삶이 녹아든 이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뒤라스, 보부아르, 콜레트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