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핵심 소재는 1937년 “불과 6주 동안 이루어진 살육의 속도와 규모로 세계 전쟁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30만 명의 학살과 8만 명으로 추정되는 강간 희생자를 발생시킨 ‘난징 대학살’이다. 이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반세기 넘어 “인류사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잔혹하고 참담한 제노사이드”가 한중일(韓,中,日) 세 나라 사람들에게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를, 어떻게 사유되고 있는가를 불가능의 언어로 지펴내고 있다.
이 소설에는 영화감독 첸카이거, 배우 장궈룽, 『The rape of Nanking (난징 대능욕)』을 쓴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장 아리스’ 등 실존인물이 소설 속 인물로 등장한다. 어쩌면 이들을 통해 예술로써 삶의 실체를 증명하겠다는 직설적인 작가의 선언처럼 보인다. 특히 중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전통 악기인 얼후(二胡)의 연주자이자 재야 역사가인 워이커씽은 이러한 인간의 현실적 비극을 예술적 삶으로 살다 간 존재로 기능하며, 여타의 인물들도 상상의 이미지들을 그리며 표현할 길 없는 악으로서 인간의 구원을 말하려 한다.
워이커씽은 난징 대학살이 이뤄지던 순간에 일본군에게 강간당한 여인이 낳은 자식이다. 워이커씽의 기억은 어머니의 자살을 지워버려 무의식의 저 깊은 심연에 묻어버렸으나 그 고통이 신체를 떠나지 못한다. 이것은 《패왕별희》의 데이 역(役)을 했던 장궈룽이 배역의 영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음의 유혹을 저버리지 못했던 것과 그 궤를 같이하며, 죽음을 선택하여야만 했던 어머니에 대한 운명의 몰이해와 자신의 버려짐에 대한 수용할 수 없는 거부의 마음에 깃든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를 거니는 몽유의 세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의식은 장자(莊子)의 나비 환생 이야기로 이어져 가해자와 희생자의 경계가 사라진 공존으로 나아가는데, 이 지점에서 나의 감응(affects)은 냉정한 이성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고 해야겠다. 죽음과 삶의 경계가 흐려진 몽상적 현실이나, 가해자와 희생자가 동등한 선상에서 손을 맞잡는 상황, 오지 않은 죽음을 선택하는 정신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 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내 신체에 오롯이 새겨져 새로운 실천을 감행할 수 있는 지혜가 되는데 반항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은 중국계 미국인인 장 아리스가 『The rape of Nanking』의 집필을 위해 인간의 벼랑 끝, 벼랑의 심연에 놓여있는 학살이라는 역사를 들여다보려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죄의 장소로 다가가 인간에 내재하는 근원적 악을 드러내려는 소명의 걸음이나. 작중 화자인 베이징주재 특파원 ‘상우’의 고모할머니가 겪은 난징 위안소에서의 끔찍한 유린의 소슬한 기억들, 첸카이거의 어린시절 홍위병에 끌려가는 아버지를 짓누름으로써 빗나간 이데올로기에 열광했던 패륜의 기억들처럼 인간의 내재된 악에 대해 감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이를 예술이라는 미적 언어들을 통해 표현 불가능한 인간의 악, 그리고 삶과 공존하는 죽음을 말하려한다. 그것은 소설이 그리고 있는 일본의 그림자극인 노(能)나 모래사막 너머의 모래사막이라는 환영이 인간세계 선악의 불가피한 공존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이것이 환원되지는 않는 망상으로 여겨진다. 소설 속에는 난징 학살의 근원으로 일본 천황을 놓고, 이 초월적 존재인 신인(神人)에게 인간 세계의 일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그 신민인 일본인, 일본군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이 어처구니없는 모순을 태연히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을 가해자로, 죄악의 주체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 우경화된 일본인들의 야스쿠니 신사참배가 피 흘림에 대한 기쁨과 감격의 공간이 된, 전쟁의 참혹함이 깨끗이 지워지고 추앙의 장소, 신성한 진실의 장소가 된 이유로 연결된다. 희생자의 고통 앞에서 보이는 이 기이한 희열을 즐기는 일본인들의 희생자 코스프레가 가능한 까닭일 것이다. “사건의 주체인 학살자들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다는 것은 역사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이처럼 이들의 규명은 분명 중요하다.
그런데 난징 능욕의 결과인 태생적 선악의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워이커씽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내재적 선악의 공존으로 연결 짓는 데에 나는 환원될 수 없는 모래사막의 환영처럼 저항감을 외면할 수 없다. 내재적 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써 용서와 화해의 구실로 삼으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인 워이커씽의 오랜 친구인 일본인 아오키란 인물을 통해 한국의 판소리와 최승희의 춤을 일본문화의 원형과 연결하며 삼국의 불가피한 영혼의 얽힘을 은근히 내비칠 때에는 거북함마저 느끼게 된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란히 세움으로써 용서와 화해의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위 문장처럼 가해자, 가해 집단의 자기 악의 직시와 진정한 사죄가 전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용서가 되는 것인지, 그것이 인간 본질에 대한 동류로서의 겸허한 인정과 비례하는 것인지 나는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등장하거나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 인물들은 지속하여 자살하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
다시 말해 불가피하게 내재된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저버리는 행위로서, 반복되는 인간의 참담한 잔인성이 정화될 수 있는 것인가, 에는 회의를 저버릴 수 없다. 문학, 즉 언어의 예술이기에 이러한 묘사가 인간 영혼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수긍할 수 있겠지만. 왠지 의도와 이야기가 서로 흡착하지 못하고 분리되어 겉돌고 있는 억지 느낌 또한 지울 수가 없다.
소설은 마치 여느 예술 비평의 한 문장처럼 첸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 왕자웨이의 《동사서독》을 통해 “인간 삶에 고인 비극적 서정과 인간 실존 확인의 불가능성을 역류하려는 의지”를 녹여내기도 하고, 군국주의자이자 천황주의자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금각사』 로부터 “진실을 분재(盆栽)한 거짓 이미지, 인간 생명의 존엄을 훼손하는 마조히즘적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읽어내어, 뒤틀린 인간 정신, 내재된 악의 현현을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에 흡수하여 미적 체감의 감각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분명 이 소설의 문장 개별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지적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구조적 서걱거림, 파악될 수밖에 없을 만큼 결코 새롭지 않은 주제인 또 하나의 인류 악과 그 동행에 관한 이야기임에 나는 감응의 문장을 써낼 수 없다. 어쩌면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예술과 현실 적 삶의 경계가 지워진 삶을 살다가 간 《패왕별희》의 배우 ‘장궈룽(張國榮)’의 언뜻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거북함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현실의 날것들, 무수한 부정적 현상이 예술인 삶에 틈입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불편함이 내게 어떤 방어기제를 작동케 했던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인간 개체가 지닌 근원적 악과 집단 악의 실체를, 그리고 그 불가능한 해결의 실마리를 사유 하는 시간이라 할 것이다.
#발없는새 #정찬 #난징대학살 #일본군국주의 #천황주의 #장자 #문화대혁명 #위안부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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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선생님의 책(서평집)에 소설가 정찬을 좋아한다는 언급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원래는 정희진 선생님이 정찬의 작품 중에서 강력하게 추천한 <완전한 영혼>부터 읽으려고 했는데, 서점에 들렀을 때 이 책을 먼저 발견해 이 책부터 읽었다. 정희진 선생님이 추천하는 작가의 책인 만큼 내용이 무겁고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뜻밖에도 영화배우 장국영과 영화 <패왕별희>, <아비정전> 등의 이야기로 시작되어 금방 흥미가 동했다.
베이징에서 중국 특파원으로 일하는 '나'는 장국영이 호텔에서 투신했다는 연락을 받고 중국인 친구 워이커씽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 워이커씽을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노인 정도로만 알았던 '나'는 그가 장국영뿐 아니라 첸카이거, 매염방과도 친분이 있고, 영화를 비롯한 문화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렇게 워이커씽과 술잔을 기울이며 배우 이야기, 영화 이야기, 음악 이야기 등등을 나누던 '나'는 자연스럽게 워이커씽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
워이커씽은 중일전쟁 때 난징을 침략한 일본 군인이 민간인 여성을 강간한 결과로 태어난 아이였다. 일본군의 아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고, 그를 키워준 외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맹인 악사만이 그를 도왔다. 맹인 악사에게 음악을 배워 연주자로 살게 된 워이커씽은 자신이 태어난 계기인 난징대학살과 중일전쟁에 관심이 많았다. 재야 역사학자로도 이름을 알리게 된 워이커씽은 어느 날 한 심포지엄에서 난징대학살을 연구하는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아이리스 장을 만난다.
워이커씽은 난징대학살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아이리스 장의 열의에 감동해 적극적으로 돕는다. 몇 년 후 아이리스 장의 책이 출간되고, 그의 바람대로 세계적으로 난징대학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그러나 일본 극우 세력의 비난과 공격을 견디다 못한 아이리스 장이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워이커씽은 시간이 흘러도 전쟁 범죄를 저지른 세력은 건재하며 반성은 요원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이 소설에는 난징대학살 외에도 히로시마 원폭, 일본군 성노예제, 문화대혁명 등의 사건이 언급된다. 이 사건들은 (가공의 인물인) 워이커씽과 '나', (실존했던/하는 인물인) 최승희, 매염방, 아이리스 장, 첸카이거 등의 생애와 연결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역사와 무관한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의 이력이나 저작, 창작물을 통해 각자의 삶에 드리워진 역사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또한 <발 없는 새>라는 제목과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 아이리스 장의 일화를 각각 소설 앞, 뒤에 배치함으로써, 역사가 빚어낸 폭력이 얼마나 무겁게 개인을 짓누르는지, 그리고 개인이 폭력의 역사를 끊기란 얼마나 어려운지(죽음으로도 불가능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정희진 선생님의 추천으로 본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서 신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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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우면서도 끔찍한 존재이오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꾸어야 하니까 말이오 삶의 많은 시간을 몽유의 상태, 다중인격의 상태로 살아야 하는 거요" 이것은 대단히 희귀한 현상 입니다 이런 희귀함은 한 인간을 신으로 섬기는 일본인의 희귀함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43 그가 고백하기를, 천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목숨,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 가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살인이 어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난징학살의 근원은 천왕입니다 천황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에게 인간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천황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천황의 신민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모순은 일본인은 태연히 받아들입니다 44 그분은 얼굴이 뜨거워진 나에게 예술가가 무엇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대답을 못하자 그분은 자유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무척 낯설게 들렸습니다 자유가 예술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 몰랐으니까요 58 데이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배우의 내면에는 실재하오 유령처럼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데이를 유령이라고 할 수 없소 유령이 사람의 내면에 깊이 박힌 상처가 물질화된 존재라면 데이는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미학적 생명체이기 때문이오 데이라는 생명체는 영혼이 가시투성이 임에도 아름답소 영혼 전체가 운명의 물결이 되어 사랑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오 그런 생명체가 내면에 스며들었다면 캄캄한 가슴속에 따뜻한 불이 켜진 느낌이 들지 않겠소 85 배우는, 그가 진정한 배우라면 완전한 변신을 꿈꾸기 마련이오 86 ㅡ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한번은 놀이터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내 옆으로 비둘기 한마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잘걷지도 않고 조류인지라 놀래서 날아갈 줄 알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길래 찬찬히 보고 있자니 발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다친건지 동료에게 물어뜯긴건지 발가락이 하나 없는 모양이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습니다. 저러다가 밥도 잘 못먹고 더 야위어가겠구나, 그게 동물의 세계이겠거니 하면서 말이죠. 사실 제가 발가락이 맘대로 잘 움직여 지지않고 불편했는데 동질감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근데 아무것도 안하고 와 버린 탓일까요, 이제는 엄지 손가락 마저 무슨일이 있는지 폰으로 이렇게 글자쓰기도 힘들고 버거워졌습니다. 다시는 날아오를 수 없게되버린 그 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