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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을 때 어느 순간 글에 나를 대입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상관없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인물이 처한 상황과 쉽게 바꿀 수 없는 환경을 경험했을 때 모든 이야기는 내 것이 된다. 소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에 가려 다른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독자는 비평가가 아니기에 그저 작가가 원하는 바를 읽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쩌면 그게 더 나은 독서 일지도 모른다. 모든 책의 마지막에는 독자가 있으니까.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읽으면서 여성 독자이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입장에서 소설 속 인물이 놓인 어려움이 고스란히 내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주혜는 장편소설 『자두』에서도 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림자 노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돌봄의 주체인 여성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전히 차별적인 여성의 지위에 대해 들려준다. 첫 단편집에서 수록된 9편의 단편에서도 여성의 삶을 다룬다.
가족 안에서 딸, 아내, 어머니라는 자격을 부여받은 여성의 위치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불편하다. 세 자매가 아버지의 사십구재를 치르고 모인 「오늘의 할 일」에서 자매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세 딸을 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온 아들로 이어진다. 어린 동생을 향한 자매의 감정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건 오빠를 두고 아들 하나를 더 낳기 위해 딸 셋을 낳은 엄마가 생각나서다. 엄마는 내 밑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우리 자매에게도 남동생을 돌봄과 동시에 미움의 대상이었다. 아들만 대우를 받았던 시대는 지났지만 많은 여성이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간다.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엄마 되기를 강요받는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해부학자 ‘녕’과 결혼한 산부인과 의사 ‘규’도 다르지 않다. 산부인과 의사이기에 낙태를 선택할 수 없었다. ‘규’는‘원’을 출산 후 엄마라는 자신의 존재와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집을 떠나 아프리카 난민 봉사활동에 전념한다. 친정엄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열여섯 ‘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을 때에도 곁에 없었다. ‘원’의 죽음을 두고 ‘녕’이 ‘규’를 비난하는 건 옳은 것일까. 누가 엄마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는가.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에서 한 번 더 묻는 질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시작된 시점, 아이들을 통해 맺어진 세 엄마의 우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통해 엄마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나’,‘수라 언니’,‘미예’는 엄마라는 이유로 친해졌다. 기혼 여성이 학부모로 만나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친밀 그 이상을 지닌다. 셋 역시 그러했다. 팬데믹의 상황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미예를 위로하는 자리가 코로나 확진으로 이어졌다. ‘수라 언니’의 확진으로 밀접 접촉자인 나’와 ‘미예’는 물론 가족까지 검사를 받는다. 가족 일부가 확진되고 치료를 위해 생활치료센터로 떠나거나 자가 격리를 한다. 코로나 확진의 모든 책임은 엄마에게도 쏟아진다. 아이를 키우는 고충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맘충이나 유한부인이라 비난을 받아야 했다. 3년 차인 현재 그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누구나 걸릴 수 있다는 걸 알지만 3년 전으로 돌아가면 사회 전반의 시선이 소설과 다르지 않다.
무엇이 자꾸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까? 우릴 자꾸 고립시키고, 왜 저러고 사나 싶게 만들고, 경멸하기 좋은 얼굴로 변모시키고, 끊임없는 자기 증명의 압박을 가하는 이 병의 이름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재난의 한복판에서 천근만근이 되어버린 아이를 업고 달리는 (그러나 달리지 못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는 걸까? 이 바이러스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 (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120~121쪽)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가장의 역할도 맡았다.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속 주인공 ‘은정’이 그러했다. 자궁 적출을 위한 수술대 위에 오른 몸에서 유체이탈한 영혼이 지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는 쓸쓸하다. 결혼하지 않은 않고 일하는 여성을 향한 온간 소문과 추문은 한결같다는 게 창피할 정도다.
이주혜가 보여준 소설 속 인물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실재하기에 생생하게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엄마와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제시하는 「봄의 왈츠」는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반갑다. 봄이 여자친구인 ‘나’에게 세 명의 엄마를 소개한다. 혼자 봄이를 낳은 선남, 선남의 오랜 친구 리온, 리온의 연인 미호는 모두 봄의 엄마다. 그들은 각자 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무시와 학대를 받았다. 선남, 리온 , 미호는 봄의 가족으로 자신이 잘 하는 일로 봄을 돌보며 봄의 엄마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 오래전 한 어린 사람을 이 세상에 환대해주어 내가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여자들을 만나서,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다만 봄을 한번 와락 안아주었다. (「봄의 왈츠」, 243쪽)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속 ‘나’와 ‘온’과 ‘율’도 다르지 않다. 이혼한 ‘나’가 딸인 ‘율’에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알려주지 못하는 부분을 나의 친구인 ‘온’이 채워준다. 과거 ‘나’와 ‘온’이 각자의 엄마에게서 받지 못하 애정과 사랑을 ‘율’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자신이 알지 못한 엄마의 상실과 외로움을 알게 된다.
이주혜의 단편집은 여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여성으로 사는 일은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따뜻한 배려와 연대에 대해 말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수 있는 다정한 시선, 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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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의 단편을 기대한다. 그가 번역한 책과 장편 <자두>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성의 연대와 환대를, 표제작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에서 만난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김혜진의 이런 추천평도 너무 좋다.
이주혜의 소설은 독자를 단번에 타인의 삶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문장을 지표 삼아 누군가의 마음을 오래 거닐게 한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의 내면을 산책하는 일과 다름없음을 깨닫게 한다. 사랑하고 보살피는 여성들, 혼돈의 순간을 넘어서는 여성들,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서로를 책임지는 여성들. 마침내 비밀스러운 생의 의미를 발견해내는 이들. 이주혜 작가는 문학의 언어가 얼마나 진실하게 존재의 내면에 가닿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 아홉편의 소설을 통해 만나는 것이 허구의 인물들만은 아니라고 말해야겠다. 지극히 문학적인 방식의 이 산책은 책을 덮은 후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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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추천으로 함께 이 책을 읽어보았다. 이주혜의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는데 정말 좋았던 작품도 있었고 정말 별로였던 작품도 있었기에 몇 개를 소개해주려고 한다.
하기에 앞서 일단 이주혜 작가의 특징을 좀 나열해보려 한다. 아니, 이 단편집 속 이주혜 작가의 특징이라고 해야하나? 일단 대부분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몇 개의 단편 소설을 제외하고 제 3자가 이야기를 전해주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이러한 패턴이 반복되다보니 소설들이 모두 비슷한 느낌이 들어 약간 지루했다. 또한 이름들이 내 머릿속에 익혀지지 않았다. 소설들의 밀도가 매우 높아 집중력있게 읽지 않으면 이름들과 더불어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자잘한 상징들도 많이 숨겨져 있어서 유추하며 읽는 재미는 있지만 단편이다보니 단편들마다 크게 각인되는 상징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집중력을 키우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책을 추천하고 싶다...^^
서론은 이쯤하고 짧게 리뷰해보겠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은 세 개다 「여름감기」,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그 시계는 밤새 한 번 윙크한다」
그 중에 가장 앞에 있는 「여름감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여름감기에는 '오종'이라는 주인공이 소설을 전개한다. 오종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나 평화롭던 어느 날, 아내의 직장 후배인 '제이'가 오종의 일상에 '불편한 침입자'가 된다. 제이는 누가봐도 별로인 남편과 함께 살며 온갖 불행을 다 겪고 있다. 아내는 그런 제이를 안쓰러워하며 제이가 폭력을 당하는 등의 일을 오종에게 자주 전해주었다. 오종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싸구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76쪽)고 말한다. 현실이지만 그저 가십거리가 미디어 장난 같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또 대화를 하는 주제가 대부분 제이와 제이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오종은 그들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제이의 남편도 아니고 그냥 제이를. 왜 우리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그런 애가 굴러들어와 부정적인 생각과 말을 생성하게 하느냔 입장이다. 그런데 오종의 집에 제이가 들어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그 사실을 안 지금, 오종은 산책 후 씻고 나와 알몸의 상태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이게 진짜 소설의 내용이다. 다 이야기한 것은 아니고 일부분이다. 궁금하면 꼬옥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은 조금 역겹다. 왜냐하면 오종이 철저히 남성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가해자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우리 집안은 제이 집안과 비교해 훨씬 좋은 집안이라며 위선자 위치에 있는 것을 안심하고 피해자인 제이에게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반면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 열분을 토하는 아내를 무시하는 태도도 보인다. 젠더 감수성도 부족하고 공감능력도 부족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은 꼬옥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기 자신을 보고 스스로 위안을 얻으며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이 불편하다고 느끼겠지만 이 불편함이 과연 어디서 오는가 깊게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는 반전이 있는 여성주연의 인생이야기, 그리고 로맨스 이야기다. 표제작인 만큼 작품성있는 소설이다. 천천히 음미하며 이 소설을 즐겼으면 좋겠다. 「그 시계는 밤새 한 번 윙크한다」는 엄마인 '나'와 딸 그리고 '나'의 친구가 주조연이다. 이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 관광하는 여행기 소설로도 읽힌다. 이들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상징들을 찾아보고 현실적인 모녀사이를 느껴보길 바란다.
별로라고 생각했던 작품은 「꽃을 그려요」와 「봄의 왈츠」이다. 「꽃을 그려요」는 다른 소설들보다 분량이 적다. 그래서인지 전하고 싶은 내용은 담아내기에는 조금 설득력이 부족했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은 성추행 피해자였던 소년이 가해자에게 상해를 가하게 되자 가해자로 전락해린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 소년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 테러를 당하고 또 다른 피해를 입게 된다. 이 이야기에는 '오주'라는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이 인물은 소설의 플롯을 진행시키기 위해 억지로 등장시킨 인물 같았다. 나에게는 호환이 안 되는 인물로 느껴졌는데 직접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다. 「봄의 왈츠」는 '은수'라는 인물이 '봄'이라는 애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서 '봄'의 출생스토리를 듣는 구조다. 봄은 아들이고 은수는 여성이다. 어머님이 아프다고 해서 병실에 갔는데 어머니가 3명이나 있어 놀라지만 그녀들의 공동육아연대 이야기를 듣고 그 역경 속에서 잘 자라준 아들이자 나(은수)의 애인인 '봄'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스토리다. 역시나 중간 부분에 어머니로 나오는 선남, 리온, 미호의 이야기가 주된 서사인데, 결국 아들을 키우게 된 거라 여성연대가 진짜 여성연대가 맞는가에 대한 작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딸을 키웠다면 내가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라난 아들이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소설의 정서가 촌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소설 속의 어머니 3명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는 알겠다. 이해는 하겠는데 결론이 너무 이상했다.
앞서 말했던 이주혜의 소설은 밀도가 굉장히 높다. 이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면서도 글을 매우 잘 쓴다는 말이기도 하다. 단어들의 짜임새가 높아 소설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다양한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좋은 단편들도 많으니 꼭 여러 감정들을 느끼고 감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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