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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소설들은 뭔가 큰 "한 방"이 있거나 아니면 작품들 행간에서 시베리아의 추위라던가 러시아 귀족들이 막 춤추고 즐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안나까레리나와 전쟁과 평화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에 역행하고자 했던 귀족들의 생활에 대한 성찰이, 닥터 지바고에서는 정치 혼란 속에서 한 사람이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수용소 군도에서는 말 그대로 수용소의 말도 안되는 비참함 등등. 본작품에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미친 과학자"의 이미지를 가진 주인공 의사가 등장한다. 그는 공산당에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서 다른 당원들과는 달리 풍족한 생활을 하며 진료를 한다. 그는 개에다가 인간의 뇌하수체와 성기 - 왜 굳이 성기까지 이식하는 것으로 설정을 했을까, 작가는 아마 성적인 부분을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뭔가 더 적나라한 성에 대한 소비에트 사회를 살아가던 자로서의 담론을 제기하고 싶었던게 아니었을까 싶다 - 를 이식하는 수술을 하는데 그 후 그 개는 점점 사람이 되어간다. 공산주의 사회에 적응해 가면서 주인공의 신변을 위협할 정도로의 사람이. 결국 주인공은 다시 사람이 된 개를 사람으로 돌리는 수술을 하고만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다시 개로 환원시킨다는 것이다. 아마 작가가 개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결말이었다면, 공산당으로부터 고초를 겪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적응(?)해 가는 개를 주인공이 배척해야만 하는 상황을 설정함으로서 속칭 소비에트, 볼셰비키 공산주의를 살짝 돌려까기를 한 것이 되어 버렸다. 다시 개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 소비에트에 반대되는 개념을 직접 보여주진 않지만 굳이 길에서 살던 주인없는 "개"로 설정한 걸 보면 작가 스스로는 모든 이념에 대한 회의를 길지 않은 이 작품에 졸여낸 것 같이 느껴졌다. " '개'가 아니라면 '개'를 인공적으로 바꿔낸 후의 '인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