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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을 봤는데 이번에는 창비에서 나온 책을 구매했다. 선정기준이 출판사마다 조금씩 다른것 같은데 창비만의 느낌이 있고 획일화되지 않은 표지가 새로웠다. 그리고 종이질이 좀 더 부드러워서 눈과 손이 모두 편안한것이 장점. e북이 아닌 종이책이 주는 맛이 있어 굳이 종이책을 사모으는 만큼 다양한 책의 질감과 구성을 보는 재미?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글을 부담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 중편소설로 120페이지정도니 앉은자리에서 볼 수 있는 책이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제목대로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개인의 삶과 죽음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 "이 고위급 인사들이 이반 일리치의 사망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린 생각은 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자신과 동료들의 자리 이동이나 승진에 대한 것이었다."p8 시작부터 감추고 싶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펼쳐보여준다. 타인의 죽음을, 타인의 불행을 정말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정말 행복한 삶일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사자의 마음과 같지는 않다. 누구나 자신의 이해득실을 한번쯤을 떠올려보며 생각을 하게된다. 감추고 싶은,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콕 집어 글로 표현해줄때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 나만 그런건 아니구나. 인간이란 참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 그리고 딱한 존재구나 묘한 위로를 받는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먼저 이야기하고 이반 일리치의 보통 삶을 다시 거슬러 조명한다. 이반 일리치는 중간쯤 되는, 똑똑하고 활달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예의바른 인물이었고(p24) 아주 부자는 아니면서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비스비슷하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로 명문가 사람들을 흉내내려고 사들이는 물품을 사면서 만족해하는 사람이었다.(p43) 이 묘사를 보면서 이반 일리치가 허세가 있는 사람이었네. 하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한 사람이었으니까. 중간쯤 되는 삶을 살고 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가진 여유있는 사람처럼 보이고자 나름 애썼다.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거나 비싼 것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가는 곳, 내가 누리는 것들이 조금씩은 특별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늘 기준보다 높은 곳을 바라봤다. 그래서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영화를 보고 박사장부부의 삶을 계속 생각했고 특히 조여정을 많이 생각했다. 아마 나도 조금 더 부가 축적되면 조여정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사람과 박사장부부와의 경계를 생각하며 모델로 삼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고민했다. 나는 예수님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낮아진 자의 모습보다는 뭐라도 손에 쥐고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며 품위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보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을 그저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 특히 조금 품위가 없는 (온몸에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응접실에 들어온 것 같은) 일 정도로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써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p83 이반 일리치는 사람들이 자신을 거짓으로 위로하고 있을 뿐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보면서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을 봤다. 자신 역시 그들처럼 품위를 지키려 적당한 위로를 건네고 적당한 권위를 내세웠으며 적당한 친절을 베풀었다. 공과 사는 명확히 구분하는 최고의 능력을 가졌으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공직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었다. 알 수 없는 병과 죽음을 부정하며 계속 힘들어하던 그는 마침내 자신이 잘못 살아온 걸까?에 이른다.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지위가 높은 관리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였던 그에게 누구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p84 죽음앞에서 이반 일리치가 원한것은 자신의 지위와 나이에 상관없이 그저 자신을 마음다해 위로해주고 울어주는 사람이었다. 다시 기생충으로 돌아가 박사장 부부가 강조했던 '선'이라는 것 그것이 뭐가 나쁜가? 나는 그들대신 억울해했다. 나도 그들처럼 살고 싶었기에. 그때와 지금 내가 대단히 달라지진 않았으나 이제는 알 것 같다. '선', '품위'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선'이라는 경계를 강조하면서 '품위'라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면서 마음속으론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던 그들의 진짜 가치관이 '선' 과 '품위' 너머에 단단히 자리잡혀있던 것을. 이해관계 속의 한 사람, 촘촘한 관계망속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나약한 모습 그대로 때론 잘난 모습 그대로 나를 표현하고 받아들여지는 것. 이반 일리치가 총애하던 '게라심'을 보면 그의 태도에 특별한 배려가 느껴진다기 보다는 삶의 마지막에서 고통받는 사람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하게 다른 태도를 찾을 수가 없지만 누군가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어떻게 하면 판에 박힌 위로가 아닌 그럴싸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여 공감하는 것이 늘 답이라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하는. 평소에 내가 내세우는 가치너머에 숨겨진 의도와 생각은 무엇인지 이반 일리치의 고통을 보면서 다시 떠오른 기생충의 박사장부부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파헤쳐 보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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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아이디어와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소설이 있는가하면, 이야기는 평범하나 읽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후자이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결론은 고루하다. 하지만 단조로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즐거운 이유는 현재도 공감되는 인간 보편의 뛰어난 심리묘사와 텍스트 그 자체다.
톨스토이를 처음 접할 때 단연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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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쉽게 읽혔지만 내용은 무겁고 긴 여운을 주고 있다. 한 번 읽은 후 다시 천천히 생각하며 읽었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84p)” 게라심의 말대로 죽음은 피할 수 없는데 남의 일인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이야기의 초반, 이반 일리치 죽음에 대한 주변의 반응을 보며 나의 주변 관계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성공, 안정, 명예만을 추구하다가 병에 걸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죽음의 과정이 생생해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쓴 글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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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1828-1910)의 중편 소설이다. 창비의 세계 문학시리즈를 읽고 소개한다. 잘 나가던 판사 ‘이반 일리치’의 부고가 동료들에게 전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동료 판사들은 잠시 숙연해 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발생할 인사 이동, 승진에 관해 머리를 굴려보느라 분주하다. 이반 일리치는 학벌, 성격, 관계, 결혼 등 다방면에서 괜찮은 평판을 받아온 사람이다.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행복감 속에 집 꾸미기에 여념이 없던 그는 몸소 시범을 보이다 사다리에서 떨어진다. 이후 원인 모를 옆구리 통증이 생기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질병의 고통, 사람들의 영혼 없는 위로, 외로움, 죽음의 공포에 그는 너무 괴롭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잘못된 것이면 어떻하지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자기에게만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산다. 소설 속 이반 일리치의 동료들에게서 이런 모순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그의 부고를 들은 친구들은 “죽은 게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끼며, ‘어쩌겠어, 죽었는데. 하지만 난 이렇게 살아 있쟎아.’라고 생각한다. 또한 “예의상 어쩔 수 없이 추도식에 가서”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한다고 반응한다. (p.10) 빈소에서도 그들은 어서 그 자리를 떠서 카드놀이에 가겠다는 생각 뿐이다. “죽음은 이반 일리치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일 뿐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는 듯”(p.19) 한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며 나에게도 일어날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기보다, 당장 오늘의 카드놀이에 낄 수 있느냐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의 가벼움을 작가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작품은 찰나의 기쁨만 추구하며 살아온 자들이 ‘고통’ 앞에 보이는 미숙함을 보여준다. 이반 일리치는 평생 “인생의 문제를 심각하지 않고 가볍고 적당하게”(p.32)대하며, “불유쾌한 상황을 벗어나”(p.35)고자 했다. 부부간 갈등을 대면하여 해결하기 보다, 일과 카드놀이로의 회피가 그의 방식이었다. ‘불편한 상황’을 늘 피해왔기 때문일까. 그는 병상에서 불안, 외로움, 공포의 감정에 괴로워 떨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누군가 같이 울어주기를”(p.84)바라면서도, 동료가 찾아오자 심각하고 엄한 표정을 짓고 만다. 위로하는 자도 미숙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반 일치리를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사람들의 진정성 없는 위로’였다. 걱정하지 말라며 “가볍게 농담처럼”(p.61) 건네거나, “안정을 취하고 치료만 잘하면 좋아질 것”(p.82)이라고 하는 뻔한 거짓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 끼치도록 끔찍하고 싫었다”(p.82).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 느껴본 만큼 이해하기 마련이다. 질병, 고통, 죽음 등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기고 살았을 동료나 가족들은 위로 자체가 낯선 이들인듯 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의 생의 마지막을 더 괴롭게 만든다. 이반 일리치의 투병 과정은 타인의 평판 및 외적 요소 위에 만들어진 삶의 허상을 드러낸다. 이반 일리치는 상사 및 고위층의 기준 및 평가에 맞추며 만족을 얻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의무에 해당되는 일은 철저히 해내는”(p.25) 사람이었는데, 그 의무는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판단하는 모든 것”(p.25)을 의미했다. 그를 설명하는 외적 요소들은 여러가지다. 수석판사, 누구든 잡아넣을 수 있는 권력, 법정에서 받는 존경, 연봉, 부자처럼 보이는 좋은 집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그의 일부 속성이지만, 그 사람 존재 자체는 아니다. 가령, 누군가를 구속하는 힘은 판사에게 주어지는 권한일 뿐, 이반일리치 자체는 아니다. 판사 역할이 종료되면 회수되는 것일 뿐이다. 지위, 역할, 소득 등 외적 요소를 통해 정체성을 만들어가면, 그 외형이 사라질 때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듯 느낄 듯 하다. 이것이 이반 일리치가 병상에서 더욱 괴로웠던 이유가 아닐까.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130년전 쓰여진 소설인데도, 등장 인물들의 심리나 행동이 마치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담아낸 듯 크게 공감을 일으킨다. 또한 분량이 길지 않은 중편이지만 러시아의 대문호가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이 겹겹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가벼운 단상 및 감정을 기술하는 책에 치우친 독자들에게 더욱 추천한다. 묵직한 통찰을 담은 고전 문학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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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다 드디어 읽게 되었다. 사실 페이지도 그리 많지 않아 도전했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곱씹고 곱씹어 3번은 다시 읽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내용구조는 사실 단순하다. 판사로서 남부럽지 않게 성공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이 원인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서서히 죽어가는 와중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물어보지만, 고통만 따른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시작이 제 3자 타인의 시점으로 이반일리치가 어떤사람이고,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사회적 타의적 입장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통보되고 그에 대한 동료 판사들의 태도가 서서히 들어남에 따라 인간의 모순적이고 본능적인 본연의 모습을 비춘다. 동료인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대해 애도의 마음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한 보직 이동 등 자신의 득과 실을 먼저 계산하게 되며, 또한 그를 조문을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그를 애도하기 위해 조문하는 것인지, 단순히 같은 법률적 업계의 동료로서 의무감으로 가는 것인지, 또한 자신이 카드놀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가는것인지를 알수없는 심정이다. 2장에서 부터는 타의로 본 시각이 아닌 이반일리치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을 다 읽게 되면 1장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설의 톤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책은 매우 단순한 서사구조다. 타인이 보는 나의 삶과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이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에 즉 1장에서는 타인이 보는 이반일리치의 삶에 대해 표현되는 것이고 2장부터는 이반일리치의 시점에서 삶이 표현되고 해석된다. 죽음으로 현실에 바라보는 부재중인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날카롭게 꼬집는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시류에 민감하고 출세에 집착하지만 그렇다고 속물이거나 비도덕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며 사회적 품위?지위를 걱도가 노력하며 살아가는 현대적인물이다. 그러나 질병을 고치기위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건이 이반 일리치가 살아낸 실제 삶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이반 일리치의 삶은 조금 다르다. 그의 죽음에 대하는 동료들과 아내, 친지들 ,게다가 의사들의 태도에서 이반 일리치의 진정 인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거나 애도하지않는다. 이반일리치는 즉 자신의 착오? 즉 사회의 일반적인 삶의 기준대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며, 그 기준에 그가치로 평가하려하니 괴로운것이고, 인간적 삶의 새로운 감촉을 얻은 뒤, 이반 일리치는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톨스토이 책을 많이 보지 않았지만, 인생의 의미를 묻고 또 되물으며, 곱씹게 만든다. 바로 인생은 무엇인가? 죽음을 핲둔 한 인간에게 삶의 의미를 되묻게 하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하고 고민할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삶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고독은 없어진지 오래고 무엇이든 검색만 하면 나온다. 인생은 무엇인가? 고민을 통해 해답을 얻어야 할 일들을 우리는 무의식에 인터넷부터 뒤지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사는가라는 질문보다 살아가는 일 자체 또는 도식화된는 자체에 어쩌면 몰입이 되어있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현대 삶은, 이제 삶은 무언인가?를 질문하고 고민하기 보다는 어떻게 삶을 유지하고 구성할것인가 질문만이 중요하고 그저 열심히 먕목적으로 삶에 투신하는 것만이 가장 뛰어난 삶으로 여겨진다. 누구보다 인생자체에 집요하고 열정적으로 고민했던 톨스토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어쩌면 육체적 삶을 그저 유지만 하기위한 투쟁이 아닌 도덕적으로 좀더 행복해질수 있는 가치있는 인생에 투쟁을 해야되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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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삶과 죽음의 모체> 어떻게 살아야할 지에 무게가 많이 실렸다. 육체는 쇠락하지만 정신적 깨달음을 더 묻게 된다. 인생의 헛됨, 공허함의 공포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암시한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반은 유능한 판사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지만 귀족가문 출신의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순조롭지 못하다. 일리치는 자신이 일에 더 집중하며 지내다 불치병에 걸린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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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중심으로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고통을 탐구하게 한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을 그리워한 이반. 이 책은 삶의 소중함과 현재의 행복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며,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관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 삶의 말미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허위와 진실을 집요하게 응시한 중편소설입니다. 사회적 성공과 체면에 매달려 살아온 한 인간이 죽음을 앞두고 겪는 내면의 붕괴와 각성을 절제된 문체로 그려냅니다. 일상의 안락함 속에 숨겨진 공허함을 날카롭게 드러내며, 무엇이 진정한 삶이었는지를 독자에게 되묻게 합니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재와 죽음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고전으로, 읽은 후 오래도록 사유를 남기는 작품입니다. |
| 아이 논술 학원 도서로 구입했습니다. 다소 어려운 문학 분야라서 아이 혼자서 읽기에는 어려웠겠지만 논술 학원 도서라서 끝까지 읽고 독후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주말 동안 읽고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초고학년~중학생들에게까지도 추천하는 도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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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거리가 먼 리더였다. 많은 유투브 채널에서 이 작품을 소개해줘서 읽게 되었는데...(하와이 대저택 / 고명환TV 등) 고전은 어려울거라는 편견을 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삶과 죽음! 어떤 인생시 성공한, 행복한 삶인가...? 허영심과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삶과 진정한 행복으로의 삶이 무엇인가 고민하게 해주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