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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무척이나 친숙하다. 아마 어렸을 때,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축약판으로 펴낸 책들을 보아서 일 게다. 세계문학전집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이름으로 펴낸 책들은
꼭 읽어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그러기에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혹은 내용이나 의미가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않은 체 그냥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책들은 그 책에 대해 잘 안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고, 혹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이미 어렸을 때 읽은 책인데 하고 옆으로 비켜서지 않았나 싶다. 그렇지만 그런 책들에 대한 내용이나,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면 의외로 아는 것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분명히 알고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 막상 아는 것이 없는 셈이다. 돈키호테 역시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내가 언제인지 몰라도 과연 이 책을 읽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만큼 알고 있다는 것이 예전에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새삼스럽게 이 책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그러다 언젠가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어렵게 읽기 시작했다.
에스빠냐의 대문호 미겔 데 세르반떼스가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돈끼호떼’라는 제목으로 펴낸
1권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중세 기사소설에
심취하여 마침내 정신이 이상해진 시골영감이 이웃의 착한 농부 ‘싼초 빤사’를 꼬여 하인으로 삼아 출정한 세상에서 많은 모험을 벌이지만, 고향의
친구들에게 속아 집으로 돌아온다.
'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돈 끼호떼'란 이름의 2권 역시 1권과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된다. 이발사와 신부, 그리고 가정부와 조카 딸, 심지어 싼초의 아내까지 나서서 말리지만 돈 끼호떼와 싼초 빤사는 세 번째 출정을 감행한다. 그러나 모험이 계속 될수록 돈 끼호떼는 차츰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하인
싼초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어찌 보면 2편의
내용전개는 돈 끼호떼가 아니라 싼초가 주인공이 된 듯하다. 결국에는 마을신부와 이발사가 짜고 다른 방랑기사를
내세워 돈 끼호떼와 결투를 하게 한다. 그리고 결투에서 돈 끼호떼가 지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만 얼마
안 있어 제 정신으로 임종을 맞으면서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1권
680쪽, 2권 880쪽, 합하여 1,500쪽이 넘는 소설이 끝난 것이다.
현실과 자신이 읽었던 기사소설 속을 혼동하며
왔다갔다하는 돈끼호떼, 그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영주가 될 수도 있다는
욕심에 그를 따르는 싼초 빤사, 그들이 벌이는 모험은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돈끼호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 미겔 데 세르반떼스를 우선 알아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세르반떼스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르네상스 말기의 문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귀국도중 해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포로가 되어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는 그는, 당시 에스빠냐에서 유행하고 있는 기사 이야기의 인기를 타도하기
위하여 그 패러디에서 출발한 것이 [돈끼호떼]라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내면을 이상주의자 돈끼호떼와 현실주의자이며 물질주의자인 싼초 빤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창조해 낸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이 지닌 역설을 성공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그는 세계적인 문학가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권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무너지면서 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도 희미해진다.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가가 의도했던 바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작가에 대한 '앎'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신영복선생님은 독서를 텍스트를 읽고, 저자를 읽고, 나를 읽는 삼독(三讀)이라 했지 않나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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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미 안다. 돈 끼호테가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풍차와 결투하고 온갖 기행을 일삼은 캐릭터인 것은 안다. 전 연령을 커버하는 축약본도 워낙 많이 나온 상태고. 우리에게 늘 그는 자유의 상징, 굴레를 벗어나려는 인간의 상징으로 늘 기억되고 있다. 작품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더라도.
그는 그야말로 단순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노인네다. 기사소설에 너무 심취해 있다. 별 관련 없는 사람까지 사건에 끌어들여 온갖 헤코지를 한다. 그러나 그는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부하고 그것을 인생의 힘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세상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다. 이 작품을 읽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아무리 세상이 답답해도 그처럼 기행을 할 수도 없다. 우리를 제약하고 있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눈을 감는 돈 끼호테. 그는 세상에 뭔가 자국이라도 내고 싶었을 것인데... 우리도 역시 현실을 살아가면서 일탈을 생각해 볼 때가 있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