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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창비세계문학 29. 젤트빌라 사람들(Die Leute von Seldwyla)
"[서평] 창비세계문학 29. 젤트빌라 사람들(Die Leute von Seldwyla)" 내용보기
얼마 전, 출판사 <창비>에서 흥미로운 이벤트를 개최해 주셨다. 여러 시리즈의 '창비 세계문학' 책들 중에 랜덤으로 한 권을 발송해 주시면 해당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벤트였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큼은 누구나 평생 한 권 이상은 읽어봤을 것 같다' 하면 떠오르는 출판사인 창비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이라니, 부푼 마음으로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
"[서평] 창비세계문학 29. 젤트빌라 사람들(Die Leute von Seldwyla)" 내용보기

얼마 전, 출판사 <창비>에서 흥미로운 이벤트를 개최해 주셨다. 여러 시리즈의 '창비 세계문학' 책들 중에 랜덤으로 한 권을 발송해 주시면 해당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벤트였다.

'이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큼은 누구나 평생 한 권 이상은 읽어봤을 것 같다' 하면 떠오르는 출판사인 창비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이라니, 부푼 마음으로 책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책, <젤트빌라 사람들>.

'스위스의 괴테'라 평가받는 이 책의 저자,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

지금까지 접해온 유럽 문학작품 저자들의 고향은 주로 프랑스 혹은 독일, 북유럽 지역이었다. 생각해 보니 프랑스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3년 전에 여행을 다녀왔던 곳인 스위스 출신 작가의 작품은 한 번도 읽어본 경험이 없었다. 스위스가 독일어권에 속하긴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국가이기에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를 지녔고 따라서 각각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작품 또한 다를 것이다. 필자는 '스위스' 하면 가장 먼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떠오른다. 스위스 어느 곳을 가도 우리나라는 물론, 여타 유럽 도시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살아있는 자연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라켄의 정상에 올라가서 약 20분간 맡았던 공기를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처음 자연 그대로의 산소를 들이마시고는 내가 지금까지 숨 쉬어 온 공기는 본연의 공기가 아니었음을 깨달았고 잠시 동안 신선한 충격과 혼란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자연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에서 사는 스위스인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탄생한 문학 작품은 과연 어떠할지 궁금했고 기대되었다.

이 책은 '노벨레 연작선집'이다. 여기서 '노벨레'는 신기하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을 예술적 구성으로 간결하고 객관적인 묘사로 재현한 비교적 짧은 산문 또는 운문 작품을 의미한다.

두산백과 doopedia

총 2부로 구성되는 <젤트빌라 사람들>은 작가의 서언과 4편의 노벨레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노벨레는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될 수 있는 인간 본성과 사회 양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부터 차례대로 각각의 노벨레가 독자들에게 전하는 교훈을 소개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실제 사건에 근거하는 게 아니라면,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부질없는 모방이 될 것이다. 위대한 옛 작품들의 근거가 되는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그것이 인간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런 이야기들은 숫자는 많지 않지만 항상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나서 자기를 붙들어달라고 간청하는 법이다.

젤트빌라 사람들, 15쪽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

 
소제목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 노벨레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젤트빌라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이곳에는 서로를 누구보다 가장 증오하는 두 집안의 가장 마르티네와 만츠가 있다. 처음부터 이들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것은 아니었다. 평화롭던 마을과 가정에 갈등을 불어넣은 이는 젤트빌라 관청이었다. 관청 관계자들은 농부들에게 땅의 주인이 누군지 명확히 밝혀지기 전까지 관청에 소작료를 낼 것을 요구하며 설사 땅주인이 나타나더라도 소작료나 판매대금의 일부를 어떻게든 뜯어내려는 의도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관청 측의 독촉과 종용, 이로 인한 마르티와 만츠 간의 경쟁심과 불신이 모두 합쳐져 두 집안을 파탄의 길로 이끈 것이다. 생계 유지수단인 밭일만큼은 서로에게 질 수 없던 것이다. 누군가는 경계에 닿는 서로의 밭의 구역을 수평으로 나눌 것을 고집하고 다른 한 명은 수직으로 나눌 것을 주장한다. 이들은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서로가 서소를 거슬려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 친하게 지내던 마르티의 딸 브렌헨과 만츠의 아들 잘리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다. 서로의 외모와 어릴적의 추억에 이끌린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이. 이들의 이성은 서로의 가족이 그 누구보다 사이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이들의 감성은 이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먼저 무너진 집안은 만츠네였다. 우스운 꼴로 젤트빌라의 한 주점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만츠와 그의 부인은 젤트빌라 사람들의 비웃음거리, 장난감이 되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어려운 상황에 처한 마르티네. 마르티는 자신의 딸이 원수인 만츠의 자식과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격노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들키지 않으려 나름 노력했던 브렌헨과 잘리는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한다. 사랑이라는 감성에 매몰된 잘리는 그만 마르티를 사랑의 방해물이라 여기고는 쓰러뜨린다.

브렌헨은 잘리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들은 주변에 마르티를 치료해 줄 의료인을 찾을 것을 부탁하고는 도망친다. 도망치다 한 바이올린장이를 만나 그의 꾐에 속아 넘어갈 뻔 하지만 바이올린장이와 그의 무리에서 벗어난다. 바이올린장이는 마르티와 만츠로 인해 피해를 봤다는 자이자 마르티보다 브렌헨과 잘리의 사랑을 더 먼저 알게 된 사람으로 자신의 원수들의 자식들의 사랑을 저주한다.

막다른 길에 다다른 둘은 정신없이 걷고 뛰어가다 눈에 들어온 건초선에 몸을 싣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풍기문란과 무분별한 열정'의 상징으로 신문 기사에 실리게 된다.


'감성에 눈이 멀어 이성을 잃지 말자'

'현실의 벽을 뛰어 넘는 사랑의 끝은 영화나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마냥 달콤하진 않다'

 

「정의로운 빗 제조공 세사람」

 

이 노벨레를 읽기를 마치고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정직하고 우직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인생에서 뜻밖의 우연이 운명을 바꿀 상황들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는 것'이다.

장인의 부인은 매일같이 식탁에 자우어크라우트 한 접시만 놓아주고 장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생선이야!"

만약 어떤 도제가 감히 "죄송하지만, 자우어크라우트인데요!"라고 말하면 그 즉시 해고되어 겨울날 방랑길을 떠나야만 했다.

젤트빌라 사람들, 105쪽

한 빗 공방의 장인 밑에서 일하는 도제 3명이 등장한다. 이들 중 첫번째 도제인 욥스트는 강한 생활력으로 악착같이 공방에서 버틴 자이다. 자신만이 이런 고된 생활을 잘 버텨냈음에 뿌듯해하며 지내던 도중, 프리돌린이라는 새로운 도제가 고용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다가 둘 모두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장인과 장인 부인에게 감히 어떠한 일체의 반항도 하지 않는 온순한 성격을 지녔음을 깨닫고는, 다시 말해 서로 별반 차이 없는 사람임을 깨닫고는 긴장을 푼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도제 디트리히는 나머지 둘의 상당한 견제를 받는다. 그는 욥스트와 프리돌린이 상상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디트리히가 이 힘든 도제 생활을 금방 포기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디트리히 역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는 이들 중 한 명만이 공방에서 일할 수 있다는, 나머지 두 명은 다른 일을 찾아 거리로 내쫓겨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장인의 공지가 있었다. 생계유지를 위한 비슷한 처지인 도제 3명의 경쟁률 3:1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가진 자' 장인이 짜놓은 판에 놓인 말이 되어, 젤트빌라 관중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달리는 도제들. '을들의 경쟁'에서 최후의 승자는 뜻밖의 인물, 디트리히였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도제들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여인 취스가 가장 먼저 탈락하길 바란 인물이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이 경기에서 가장 먼저 도착지에 들어와 승리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의미의 승리, 취스를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취스는 디트리히를 막기 위해 그를 방해했다. 이러한 취스의 선택은 그녀의 소망과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디트리히가 도제 카드를 포기하고 취스라는 카드를 손에 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름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결단일까?

이 사실도 모른 채 경쟁하던 욥스트와 프리돌린. 그들은 취스를 디트리히에게 빼앗겼기에 이 싸움에서 졌다. 충격에 휩싸인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배금주의를 겨냥해 탄생한 노벨레인 만큼, 돈을 가진 자의 횡포에 속수막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글 중간중간에 19세기에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로 인해 수공업의 가치가 평가절하된 것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도 느껴졌다. 기계의 등장으로 인해 도제들이 그동안 닦아오고 익혀온 기술과 인간의 손길이 닿은 제품의 가치가 현저히 낮아졌음에 대한 탄식이 엿보인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

 
처음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조건만을 보고 호감을 가졌지만 실속이 없어 실망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겉모습이나 기타 조건들이 부족해 보였지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

그는 자신을 무리하게 상승시킨 운명의 경솔한 거짓말을 어떻게 책망하고 또 자책할 수 있었을까?

젤트빌라 사람들, 186쪽

 

현대의 '페르소나' 개념과 이 이야기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되고 싶은 나'의 모습과 이미지를 나에게 투영하는 것, 즉 '가면'을 말한다.

백작이 아니지만 백작이 되어버린 주인공 슈트라핀스키는 가난한 청년이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며 방랑하던 그는 시종의 장난질에 그만 백작이라는 가짜 지위를 얻게 된다. 그의 수려한 외모는 그가 백작임을 더 잘 증명해주는 듯 했다. 그가 한 지방의 백작이라는 사실을 듣고 온 고급관료는 자신의 아름다운 딸 네트헨을 그에게 소개한다. 네트헨과 슈트라핀스키는 서로를 마주한 순간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고 사랑에 빠진다.


한평생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 이도 순식간에 전락해버릴 수 있음을 슈트라핀스키라는 인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외부의 잡음 또는 내면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한평생을 올곧게 산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처음에 네트헨은 슈트라핀스키의 지위와 외모에 이끌렸다. 그러나 자의이든, 타의이든 어느 순간부터 가면을 쓰게 된 그를 관대한 마음으로 받아준 네트헨의 모습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슈트라핀스키가 비록 백작은 아니지만 일생을 완전히 거짓되게 살아온 자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었을까? 거짓이 탄로난 이후에 자책하고 진심으로 성찰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감동받은 것일까?

'사람을 보는 안목'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누군가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흔적이 보인다 말한다. 누군가는 타인의 얼굴에서 삶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름대로의 기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기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소한 겪어보기 전에 확실한 것은 없다.

한 유명한 영어 속담이 떠오른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자기 행운의 개척자」


자기 행운은 자기가 개척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얻으려는 대박은 오래 가지 못한다. 주체적인 삶의 태도야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른 자세임을 깨닳아야 한다.


요즘 Apple TV+에서 방영중이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웹드라마 작품인 '파친코'에서 결국에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파친코'에서 한 할머니는 자신의 뿌리, 즉 한국에 있는 자신의 고향 땅을 포기하지 않는다. 땅을 포기하고 문서에 서명만 하면 얻게 되는 막대한 금전적 대가에도 결국 그녀는 뿌리를 택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어디 출신인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뿌리를 찾는다. 이 노벨레도 뿌리를 지키느냐, 뿌리를 포기하는 대신 원하는 바를 얻느냐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타인에게서 자신과의 공통점, 즉 교집합을 발견하려는 인간의 본성 또한 잘 드러나있다.


 이 노벨레에서의 이발사인 주인공은 편법, 일종의 신분세탁으로 부유한 노인의 아들이 되려 한다. 엄밀히 편법이긴 하지만 주인공과 노인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젤트빌라에서 '캐비스' 가문의 마지막 후손이다. 그는 캐비스 가문과 연관된, 캐비스 성씨를 기억하는 부유한 노인의 머리를 다듬어줌으로써 그의 눈에 들게 된다.


노인은 자신의 뒤를 이어줄 혈연관계 후계자가 필요했다. 주인공은 행운의 상징, 부가 필요했다. 둘의 이해관계는 딱 맞아떨어졌다.

주인공은 젊은이라고는 이제 자신 밖에 남지 않은 가문 대신, 노인의 가문에 편입되어 자신의 이름에서 '캐비스'를 지우기만 한다면 그 엄청난 부를 상속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일은 아주 감쪽 같고 순식간에, 급속도로 전개되었다.

노인과의 계약 덕분에 얻은 젊은이의 행운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금새 이 일에 흥미를 못 느끼고 싫증이 난 노인에게 내쫓겨난 신세가 된 것이다. 그는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 일했다. 남에게 기댐으로써 쟁취하고자 했던 행운을, 주인공은 그 족쇄에서 스스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얻게 되었다. 거짓 가면에서 벗어나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옴으로써 비로소 행운이 시작된 것이다.

 

각각의 노벨레가 뚜렷한 특색을 지니고 있고 문장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준다. 노벨레 속 인물들이 저지른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지혜롭고 현명한 길을 가길 바라는 저자 켈러의 뜻이 담겨 있는 듯 하다.

 

창비세계문학의 탄생 배경에는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꿈꾸는 진심과 간절함이 담겨져 있다. 자본주의의 전지구화와 경제, 상업이 우선시되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보게 만듦으로써 인간성이 상실되지 않은 삶을 선물해주고자 탄생하게 된 <창비세계문학>. 마치 차가운 두뇌만이 아닌, 따뜻한 마음과 정신도 잊지 않길 당부하는 듯 하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과거에 문학을 가까이하지 않았었다. 성공을 위해 달렸고 성공을 향한 궤도 중 한 부분인 대입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토록 꿈꿔왔던 목표를 이룬 순간과 그 이후의 짧은 기간 동안은 나름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에게서 성공에 갈증이 난 사람처럼 또다른 성공을 위한 길을 찾으며 전투적인 자세로 삶을 임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전투적으로 삶을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부치는 일이다. 대개 완벽주의 성향과 동반되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 붙이며 경주마처럼 앞을 보고 달리려만 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이룬 순간에 희열을 느꼈지만 역시나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공허함과 허탈함에 내내 시달리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이런 시기에 우연히 접한 문학의 세계는 지금은 나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인생의 스승이 되었다. 힘든 순간마다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잠시나마 숨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문학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을 refresh 하고 싶을 때마다 문학의 세계에 노크하곤 한다. 세계의 여러 대문호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장들과 이야기, 이것에서 얻게되는 영감과 교훈, 그리고 위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지다. 세상에 많고 많은 문학작품들 중 선택되어 우리말로 번역되었기에 접할 수 있는 세계문학과 앞으로도 가까이 지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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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8 2022.04.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