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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휴식을 취할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을 매우 불편해하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이 공에게서 보여진다. 휴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데는 남들에게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만연한 사회적 풍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나 스스로를 온전하게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는 항상 순위를 매기고 남들과 비교하는 사회적 풍조에 꽤나 익숙하다. 이러한 방식의 비교와 우열 가리기가 잘못되었다고 외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릴적부터 그런 문화에 나도 모르게 스며든 나머지 이제 와서야 의미 없는 이의를 제기하게 된다.
K-고등학생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법한 글귀인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널 도와주리라'. 간절하고 간절했던 여럿 대입 준비생들의 심금을 울렸던 문장이다. 내가 한 선택에 따른 결과,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주체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개입하는 것'이라니, 꽤나 신선한 발상이다. 그 누구보다 간절하다고 '생각'만 하고 '기도'만 하면 안된다. 세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는 자에게 기회를 준다. 세상이 개입할 기회를 얻기 위해 그에 걸맞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과 결과의 연속적인 반복이지 않을까? 중요하지 않다고, 가볍게 여겼던 선택이 나중에 가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구조는 바뀌지 않고 사람들의 목소리만 모여들었다가 흩어졌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행정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어느 곳도 없을테지만. 지독하고 끈질기게 우리 사회에 찰싹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는 악순환, 악습. 충분히 예측, 예상이 가능함에도 선제적인 조치를 미루다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제서야 고치고 수습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게으르고 어리석은 대처인가?
'부작용이 없으면 작용도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씁쓸하다. 뭐든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릴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에도. 세상 만물의 작용에는 항상 부작용도 수반된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임에도.
왜 이 책의 제목이 '트로츠키와 야생란'인지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며 유추해보는 재미가 돋보이는 책. 자꾸만 펼쳐보게 될 정도로 흡입력과 몰입도가 엄청난 책.
※ 이 리뷰는 출판사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트로츠키와야생란 #이장욱 #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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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팔 때 제일 어려운 글자가 뭔지 알아? 용용자라든가 울창할울자 같은게 어려울 거 같지? 복잡하고 빽빽해 보이니까. 아니야. 그렇게 획 많은 글자들은 공간 잡기가 오히려 쉽다고. 제일 어려운 건 한일자하고 날일자 같은 거야. 사람인, 날생, 그런 단순한 단어가 제일 어려워요. 텅 빈 부분이 많을수록 어렵다고. 형태 잡고 공간 잡고 하는 데 도장장이 감각을 다 드러나거든. 인간들은 뭐 이런 글자를 만들어서 천사를 괴롭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사람인, 날생. 인생이 그렇게 어려운 글자라고. 어? _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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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겨울을 떠올리는 일을 좋아한다. 반대편의 계절을 생각하고 있으면 왜 가질 수도 없는 날씨를 좇고 있나 싶기도 하다. 지금은 다다를 수 없기에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눈송이들을 상상하고 있으면 겨울인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더위가 누그러지는 기분이 든다.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트로츠키와 야생란>을 읽으며 겨울을 떠올렸다. 한여름에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읽으니 '너'를 그리워하는 일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바흐의 연주를 들으며 책을 읽었는데 단정하고 담백한 바흐의 음악이 무척이나 어울리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떠올리고, 추억한다. 누군가는 이미 죽은 사람이기도 하고 옛 연인이기도 하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어릴 적 친구이기도 하다. 담담하고 건조한 이야기들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이미 떠나간 이들은 기억됨으로써 이 세계에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기묘한 분위기를 준다. 평범하게 흘러가는 삶 속의 세밀한 감정들이 아름답게 빛나는 소설이다. 이 감정들은 큰 울림으로 다가와 어딘가에 존재할 인물들을 기억하게 한다.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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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서 어떤 이야기들은 이제 죽고 없는 사람들을 추억하는 남겨진 이들에 대해 말하고, 또 어떤 이야기들은 실제 일어난 일인지 상상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그 경계 어딘가의 내용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인물의 대사에 따옴표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 죽은 이를 회상하는 것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니까. 또 덕분에 현실인지 꿈인지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이 몽롱~하게 느껴지는 효과도 커진 듯.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서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클레오가 파리의 옛 연인에게 품은 사랑은 죽음으로써 영원해졌고, 동시에 그의 죽음으로써 K의 사랑도 함께 영원해졌다. 사실 나도 영원이란 죽음을 뜻한다고 생각하기에, 영원한 사랑은 곧 죽은 사랑이고 사랑이 죽었다는 것은 괴롭지도 불타지도 아니한, 말 그대로 개념만이 남은 사후 혼의 무언가.. 가 아닐까, 하고 혼자 머릿속에서 굴려본 적이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존재가 생을 다 하더라도 그것은 혼의 사랑으로 언제까지나 남겨진 자 안에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굳이 애써서 흘려보내려 할 필요 없지 않을까.. 이미 일부인걸.
*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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