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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조해진,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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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모른다. 나인투식스 생활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 바뀐 건 책을 읽는 횟수. 예전에는 이틀에 한 권꼴로 읽었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한 권 읽기도 힘든 주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에는 책을 완독하는 걸로 정했다. 유일하게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으로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박명수 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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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모른다. 나인투식스 생활을 할 줄이야. 그러면서 바뀐 건 책을 읽는 횟수. 예전에는 이틀에 한 권꼴로 읽었었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한 권 정도. 한 권 읽기도 힘든 주가 있기도 하다. 그래도 주말에는 책을 완독하는 걸로 정했다. 유일하게 집에서 안 나갈 수 있는 시간이니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으로 위험한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나는 박명수 말대로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어요다.

 

11월의 첫째 주는 어땠더라. 금목서 향기가 나는 천변을 부지런히 걸었다. 출퇴근을 걸어서 한다.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버스를 못 타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 싫어서. 걷는다. 집으로 들어갈 때 워치에 만보를 걸어 축하한다고 찍히는 문구를 보는 게 즐거움이다. 만보라니. 만보를 걸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니. 기준점을 어디에 두냐에 따르지만 이걸로만 보자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실감을 느낄 수 있다. 하루에 만 보 걷기.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유독 오래 읽었다. 책에서 소개한 영화를 한 편씩 보느라. 전부는 보지 못했고 글을 읽다가 마음이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봤다. 총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내 마음이 마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 마음이 있기나 한 걸까 의문이 들 때. 마음이 있지만 그건 돌이 아닐까 멀리 차버리면 날아갈 정도로 하찮게 느껴질 때.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

 

숨겨져 있던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사라지지도 날아가지도 않은 채 내가 다시 발견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책의 표현대로 영화를 본다는 건 영화 자체만을 보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던 날의 기억과 함께 한다. 영화를 보러 가야지 계획하고 가는 것도. 영화관 앞을 지나가다 시간이 맞아서 우연히 들어가는 것도. 다 괜찮다. 영화를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이 영화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해 하면서 보는 것도.

 

전문적인 영화 리뷰 책은 아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는. 그래서 더 좋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볍게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일상에 스며든 어떤 영화 한 편을 서로에게 소개한다. 오늘 영화 한 편을 봤는데 혹시 보셨나요? 과거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는 하루네요. 하는 식으로 책은 흘러간다. 9시에서 6시까지의 사회적 자아가 왕성하게 활동한 나머지 6시 이후에도 좀처럼 나로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6시 이후의 시간들.

 

빨리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예전에 봤던 영화도 괜찮고 책에서 두 작가가 보면서 감동했던 영화를 한 편씩 보는 것도 좋다. 그래서일까. 책의 뒤에는 '동시 상영 중인 영화 목록'이 친절하게 딸려 있다. 의욕 없음을 넘어서 무기력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무 생활자', '출퇴근러'인을 위한 약 처방전처럼. 의외로 나 영화 많이 봤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으며 안도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였구나.

 

문화생활을 누리는 게 아니라 간절하게 문화생활을 하고 싶어 했던 시간에 한 일이라고는 책 읽기와 영화 보기였다. 어떤 때는 개봉 중인 영화를 전부 봤던 한 주가 있었다. 구체적인 할 일이 없어서 봤던 영화를 또 보러 가기도 했다. 책은 특이하게도 보지 않은 영화라도 위화감이 들지 않도록 소개해 준다. 서로가 가진 일상의 안전함과 편안함을 바라는 두 작가의 다정한 마음 때문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소설가와 시인의 우정은 이어진다. 친한 관계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에 조해진과 김현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글 읽기와 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다가 본 영화 세 편의 이야기.

 

《패딩턴》. 사랑스럽고 따뜻한 이 영화를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지금에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페루에서 영국으로 밀항한 곰이라니. 마멀레이드 잼을 좋아하고 말하는 곰이라니. 인간 가족과 허물없이 살게 되어 다행한 곰의 이야기. 공손하고 예의 바른 패딩턴. 내가 제일로 여기는 가치는 존댓말과 예의 바름이다. 인간도 하지 못하는 일을 말하는 곰 패딩턴은 한다. 먼저 인사를 하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한다.

 

《생일》.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영화가 개봉했을 때. 차마 볼 수 없으리라고 여겼다. 보지 못하겠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전도연은 최고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영화 설정이고 연기였을 텐데. 전도연은 한다. 그저 하는 게 아닌 감당해낸다. 영화 밖의 현실을. 엄마, 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들은 배우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들은 모여서 애도를 한다.

 

《걷기왕》. 멀미 때문은 아니지만 다행히 일하는 곳이 가까워 왕복 한 시간을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만복이는 4살 때부터 시작된 선천성 멀미 증후군 때문에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어서 학교에 간다. 지각은 다반사. 당이 떨어져 담임과 면담할 때 사탕을 폭풍 흡입한다. 상상력이 과도한 담임이 가정 면담을 오고 집으로 걸어가는 만복이를 보고 육상부에 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뛰지 않아도 좋아. 멈추고 싶으면 멈춰. 영화는 할 수 없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준다.

 

단 한 장의 책도 읽을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옆으로 누워 영화 한 편을 때리는 것도 좋지. 당분간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의 영화 목록에 줄을 그어가면서 6시 이후의 나를 달래줘야지. 오랜만에 시를 생각했다. 김현은 추신의 자리에 오늘 쓴 시를 조해진에게 보낸다.

 

주말 이틀은 왜 이틀뿐일까 사흘이거나 나흘이어도 좋을 텐데 빨간색으로 가득 찬 한 장의 달력을 갖고 싶어 내가 울 때 네가 그걸 가지고 온다면 나는 기쁠 거야 일어나 앉아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오로라를 보러 가는 일도 어렵지 않겠지 쓰지 않은 머그컵을 꺼내는 일부터 할 거야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한 시절 영화를 보면서 살아낼 수 있었다. 불 꺼진 상영관에 들어가 앉은 내 곁으로 어제의 기억과 추억이 될 오늘이 찾아온다. 다음에 개봉될 영화의 예고편이 끝나면 영화는 시작된다. 잠깐의 어둠 뒤에.

 

 

 

 

s*****m 2021.11.07.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영화를 보고 쓴 편지들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영화를 보고 쓴 편지들" 내용보기
한 달에 두세 번은 갔던 영화관에, 팬데믹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두 시간 넘게 마스크 쓰고 답답한 상태로 호흡할 생각을 하면 단념하게 된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단순하고 흔한 취미가, 어쩌다 이렇게 어렵고 귀한 여가 활동이 된 것일까.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함께 쓴 책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는 내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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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세 번은 갔던 영화관에, 팬데믹 이후로는 한 달에 한 번도 못 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도 두 시간 넘게 마스크 쓰고 답답한 상태로 호흡할 생각을 하면 단념하게 된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는 단순하고 흔한 취미가, 어쩌다 이렇게 어렵고 귀한 여가 활동이 된 것일까.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이 함께 쓴 책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를 읽는 내내 하루빨리 팬데믹이 끝나서 예전처럼 자유롭게 영화관을 드나들 수 있게 되기를 소망했다. 

 

이 책의 1부는 조해진과 김현이 서로에게 쓴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생 영화로 차이밍량의 <애정만세>와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를 든 조해진은 추상미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김보라의 <벌새> 등을 보고 느낀 감상을 나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면서 저자는 탈북자가 나오는 자신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떠올린다. 영화와 소설은 모두 허구지만, 실재하는 인간이 나오고 현실의 문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다른 장르의 창작물을 보면서 자신의 일을 생각한 점이 작가로서 프로답고 인간으로서도 미덥다고 느꼈다. 

 

누구와도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고른 김현은, 전업 작가인 조해진과 다르게 직장에 다니며 출퇴근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새로운 영화를 언급하기보다는 조해진이 본 영화에 대해 코멘트하거나 과거에 본 영화를 주로 소개한다. 그중에는 <일일시호일> 같은 계절감이 풍부한 영화들도 있고, <굿바이 마이 프렌드>나 <천장지구>처럼 한 시절을 풍미한 옛날 영화들도 있다. 

 

이 책의 2부에는 서로가 아닌 모모라는 이름의 허구의 독자를 상대로 쓴 편지들이 실려 있다. 대상은 바뀌어도 '영화를 보고 편지를 쓴다'는 설정은 그대로라서 읽기에 무리가 없다.

j****y 2022.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간은 아름답니?
"인간은 아름답니?" 내용보기
#당신의자리는비워둘게요 #조해진 #김현 #창비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의 다정한 응답『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영화와 편지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_p.005 영화는 편지처럼 편지는 영화처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와 이유를 댓글로
"인간은 아름답니?" 내용보기
#당신의자리는비워둘게요 #조해진 #김현 #창비

영화가 끝나고 도착한 편지들
소설가 조해진과 시인 김현의 다정한 응답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
영화와 편지는 어쩌면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응답일지도 모릅니다.
(...중략...)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_p.005 영화는 편지처럼 편지는 영화처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와 이유를 댓글로 남기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저자 사인본을 선물 받았다. "우리의 삶이 상영되는 허공의 영화관에서..." 조해진 소설가의 가지런한 손글씨와 "싱거운 사람이 되기로 해요."라고 쓴 김현 시인의 담백한 사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책 속에는 잃어버린 시절과 마음을 찾아가는 길 위에 상영된 영화와 다정한 편지가 들어있었다.

☆곧 영화가 시작됩니다. 늦지 말고 와주세요.
_p.180 시라는 선생님

1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해주세요'에는 소설가와 시인이 서로에게 쓴 편지를 묶었다. 겨울과 여름 사이의 계절 동안 주고받은 스무 통의 편지가 번갈아 날아든다. '머뭇거리는 우정'이라 표현한 우정의 기록은 서로에게 묻고, 듣고, 답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진다.

2부 '모모 님이라고 부를게요'에는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았다. 두 저자의 편지를 받게 될 모모 님의 좌석은 '달빛 열 공중전화 석'이다. 우리 각자의 장국영과 단짝 친구, 사랑과 연애편지, 영화와 시라는 선생님, 알다가도 모를 사람, 마음. 안부를 묻는 일에서 시작해 쉬이 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는 편지를 읽고 있으면 문득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눈이 녹으면 사람들은/다시 눈을 기다린단다
_p.025 겨울 예감

조해진 소설가의 "인간은 아름답니?"라는 질문에 김현 시인은 불현듯, 죽고 싶지만 소설은 쓰고 싶다는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났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에게 구십구 방울의 슬픔이 아니라 한 방울의 기쁨을 더 소중히 여기며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는 말과 그는 어떤 대답을 할까 하는 질문을 건넨다.

생의 스크린에는 영화처럼 다시 오지 않을 날들이 흘러간다. 오늘을 사는 이야기와 삶의 의문, 영화 그리고 글쓰기. 편지라는 형태로 일상을 주고받지만, 그 안에는 삶과 죽음, 사람, 사랑, 행복과 계절이 녹아들어 있다. 인간은 저마다 아름다움의 조각을 지니고 있다고 여기며 온기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쪽에 가까운 사람.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는 일을 통해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 두 사람이 응시한 시간이 담겨 있다.

☆응시하는 사람만이 대상의 심연에 닿지요.
_p.049 바라보는 마음

책을 읽으며 보고 싶은 영화가 여러 편 생겼다. 특히 '손가락을 움직여서, 씁니다'에 나온 김보라 감독의 <벌새>. 김현 시인이 '그 시절'에 관해 적어 보내며 예상했던 <벌새> 얘기를 답장으로 받았을 때 '통했구나' 느낀 순간, 오랜 의문이 풀렸다.
즐겨 듣는 <FM 영화음악 김세윤입니다>에서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 달라고 말할 때 들려주는 영화의 한 장면이 <벌새>라는 걸. 들을 때마다 어떤 영화의 어떤 장면인지 궁금했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답을 만났다.

☆이제 우리 저마다의 삶이 영사되는 허공의 영화관에서 만나요. 티켓도, 팝콘과 콜라도, 스크린과 푹신한 의자도 필요 없는 그 영화관의 제 옆자리는 당신을 위해 비어 있을 것입니다. _p.224

영상이 되어 눈 앞에 펼쳐지는 문장을 주고받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하다. '현아, 시인님, 너'와 '누나, 해진 누나, 소설가님'이라고 호칭이 달라질 때마다 존대의 표현과 말을 놓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글의 분위기가 다른 얼굴로 다가온다. 살면서 이름에 밝을 '현(炫)'을 쓰는 사람은 처음이라 반가웠다. 밝은 공통점도 있고 글에 스며든 다정함이 더해져 내게 온 편지를 펼친 느낌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를 펼쳐보며 설레고 행복했다. "시를 읽는 이들의 가슴속엔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읽고 나서 가슴속에 질문이 쌓인 걸 보니 편지가 아니라 시를 읽은 듯하다. 구체적인 형태의 행복을 주고받은 두 사람의 편지는 자꾸만 질문을 건넨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부치지 않을 편지를 쓰고 또 써본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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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e 2021.11.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