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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구두당』은 안데르센 동화와 그림 형제 동화 등을 입체적으로 변주한 여덟 편의 단편집이다. 기존 동화의 원형을 갖고 있지만 판타지의 경계는 시대의 문제의식을 통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밝고 희망적인 것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며 시종일관 어둡고 절망적이다. 어쩌면 동화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우리들의 태도에서부터 작가는 이의를 제기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 측면에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부분도, 상식적인 선에서 엄격한 규율로 새롭게 묘사된다. 그런 이유에서 동화를 객관적인 잣대로 비춰 본다면 전혀 다른 맥락을 타게 된다.
누군가가 성냥을 필요로 한다 함은 불을 붙여 밝힐 등잔과 기름이 있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선 저녁 식사로 끓일 수프에 넣을 시든 채소와 반 조각의 고기가 있음을 암시하기도 하니, 얼마 안 되는 식량과 재산을 힘세고 못된 이들에게 약탈 당할 가능성도 따라서 높아지는 셈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가 종교적인 것에 위배된다면 「빨간 구두당」에서는 전체주의 사회에 나타난 속성을 패러디한다. 「빨간 구두」는 원전 자체가 잔혹동화로 기억되는 몇 안 되는 동화중 하나다. 기존 모티프로 쓰인 「빨간 구두당」에서 소녀의 발목이 잘리는 것은 일치하지만 무채색만 있는 도시에서 빨간 구두를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아픈 현실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색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소녀와 함께 춤을 추면서 '빨강구두당'을 결속하고, 그들이 '빨강'이라고 발음했을 때 위험한 금기어는 폭발음에 가까운 광기로 일상이 전환된다.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에는, 남자의 보조 역할이나 소유물에 지나지 않던 여성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여준다. 제 아무리 똑똑한 여자라도 학문의 기회가 적었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펼칠만한 토양이 없었다. 참정권의 기회 역시 전무했던 시대였으니 말로 무엇하랴. 「화갑소녀전」에는, 힘을 만드는 공장에서 자신의 몸이 소모품이 되어야 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무력해진다. 삼성전자를 겨냥해서 나온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생각난 건 나 뿐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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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었던 우리는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 작가들이 변주해놓은 글들을 즐긴다. 오히려 기대하기까지 한다. 하나의 동화와 동화속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변주된 글을 읽노라면 작가의 생각 조각들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화가 어떻게 변주되던지 우리는 글 속에서 동화를 찾고 동화같은 삶을 꿈꾸기도 한다. 물론 우리의 상상일 뿐이지만. 동화는 우리들의 판타지이므로 우리는 오늘도 동화속 판타지를 찾아 헤매는지도 모른다.
구병모의 작품을 꽤 읽었다. 작가가 처음 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부터 『그것은 나만이 아니기를』, 『파과』등등 인터넷 서점에서 작가의 책들을 골라보니 한 권 빼놓고는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그만큼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로서 작가의 나쁜 동화 변주곡은 꼭 읽어야 할 소설로 간주 되었다. 더군다나 동화의 변주곡이라잖나. 『파란 아이』에서 잠시 만난 「화갑소녀전」에서 느낄 수 있었듯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읽으며 이런 식의 소설도 괜찮겠다 싶었었다.
『빨간구두당』은 그림형제나 안데르센, 유럽이나 러시아 민담 등을 참고로 하여 다채롭게 변주한 새로운 형태의 소설이다. 청소년과 성인이 함께 읽어도 무방한 소설로 고전 동화의 내용과 현 시대와의 상황을 조화롭게 쓴 소설이었다. 작가의 판타지적 글이 뛰어났고 이 책에서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빨간구두당」은 제목에서부터 알다시피 안데르센의 『빨간구두』를 새롭게 쓴 글이다. 한 마을에 흰색이나 검은색 혹은 회색 빛깔의 옷만 입고 다니는 곳에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가 나타났다. 죽어가는 늙은 신부가 빨강색을 한번 보고자 해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를 데려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팔다리를 움직여 춤을 추는 처녀는 멈출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처녀를 마녀로 몰아 빨간 구두를 신은 발을 잘랐고 빨간 구두를 신은 자른 발은 여전히 춤을 추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춤을 추는 빨간 구두를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을 빨간구두당이라고 불렀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잔혹한 동화다. 동화가 원래 잔혹한 내용을 품고 있었고, 어린이들에게 맞게 순화되어 나온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잔혹했다. 춤을 추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고 마녀로 몰아 처녀의 발을 자르다니. 물론 이 동화를 처음 읽었을때 춤을 추는 것을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했을때 발을 자를수 밖에 없었겠구나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다시 읽는 동화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잔혹동화였다. 많은 동화들이 그랬다.
동화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프로 한 「화갑소녀전」은 또 얼마나 슬펐던가. 성냥을 팔았던 소녀가 몸을 녹이기 위해 화광 공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했던 경비원과 비서, 공장장이 어린 소녀를 어떻게 했는지 보면 현재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순무」에서는 죽은 괴한을 땅에 묻었다가 거대한 사람모양의 순무를 캐 왕에게 바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성경속 구절과 로마신화 속 인물을 예로 들어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고통스러운 삶을 이야기했다. 진실은 어둠속으로 달아나고 전달자에 의해 임의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단편 소설들 중에서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은 「헤르메스의 붕대」라는 소설이었다. 그림 형제의 「유리병 속의 작은 도깨비」의 동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입구가 코르크 마개로 덮인 유리병을 숲속에서 발견하고 병에서 무언가를 꺼내주게 되었다. 그에게서 한 장의 거즈를 받았고, 거즈의 왼쪽 부분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은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고, 몸을 문지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고열, 내상, 각종 염증을 몸 밖으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그에게 진료소의 의사는 그에게 어떤 의심을 했던가.
그녀는 바람이 한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 빗줄기의 속삭임을 들었고, 흩날리는 눈발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한 알의 주근깨만 한 초파리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도 그것이 다음 순간 어느 자리에 가 앉을 것이며 따라서 언제 일격필살이 가능할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한들, 그것이 내일 먹을 곡식을 여물게 하는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181페이지,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 중에서)
다시한번 작가의 이야기의 변주에 놀랐고, 작가의 글에 압도되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우리가 꿈꾸었던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는 것이고,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성들을 글로 만날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는 거. 작가 구병모의 나쁜 동화의 변주곡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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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구병모는, 국내 단편들은 어딘지 답답하고 가독성도 떨어지고, 어렵다는 편견을 깬 작가다. 가독성과 문학적 깊이가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쉽게 읽혀도 마음을 오랫동안 흔들어놓는 작품이 있고, 여러 번 읽어서 어렵게 해독한 문장도 쉬이 휘발해 버리는 서사가 있다. 띄엄띄엄 읽어서 한국 문학의 흐름을 제대로 잘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최근 읽은 몇몇 수상집 단편과 비교해보면 일단 과도한 자의식이나 지식의 나열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기묘한 세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세계를 다루는데, 그 세계에 현실보다도 더욱 불편한 리얼리티가 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풍자로 읽어내고 말 수는 없는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과 풍부한 서사를 제공한다. 어릴 때부터 주워듣고 읽어온 서양의 동화들은 활자화되기 이전부터 이동네 저동네로 구전되어졌다. 시대와 시대, 공간과 공간 사이를 실어나르는 동안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고, 변형되고, 일부는 잘려나가면서 생명력을 가졌다. 우리가 동화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은 활자화될 때의 장소와 시간에서 스템프처럼 찍어낸, 죽은 이야기들이다. 활자의 탄생이 인류에게 무한한 지식의 확장이라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제시했지만, 이야기의 생명력으로 따지자면 활자는 이야기를 획일적으로 동결시켜 죽였다. 빨간구두 이야기가 계속 구전되어 산넘고 물건너 너른 사막과 시베리아를 지나고 바다건너 우리나라까지 구전되어왔다면 그것은 어떤 이야기가 되어 우리의 토속 민담이 되었을까. 호랑이가 물고간다는 전설은 있지만 빨간 구두 신겨진 발이 춤추는 것을 멈추기 위해 발을 잘라낸다는 잔인한 이야기는 무언가 다른, 우리 선조들이 이야기로서 받아들일만한 다른 변주로 바뀌었을 것이다. 신데렐라형의 이야기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은 콩쥐팥쥐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민담들은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서로 영향받았을 거 같다. 구병모의 사인본을 받았는데, 거기에는 "닫힌 이야기에 갇히지 않고, 구병모", 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우리가 언젠가는 듣거나 읽어서 알고 있던 많은 종류의 동화들은 대개 해피하게 끝을 맺는다. 위기에 빠진 공주는 왕자와 만나 결혼하고, 못된 계모들은 천벌을 받고, 저주받은 마법은 풀린다. 불행하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 왕자를 사랑한 인어공주는 한마디 항변도 못한채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성냥을 팔던 소녀는 추운 겨울에 남의 집 창문 앞에서 시린손을 성냥불로 녹이면서 죽어간다. 이렇게 닫겨진 이야기의 문을 다시 열고, 활자 이래로 박제되어 있던 이야기의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것이 이 책이다. 빨간구두당은 색을 잃은 세계에 어느날 찾아온 빨간색에 관한 스토리이다. 색을 잃은 세계에 색깔은 전설이다. 까마득한 윗 대의 선조, 증조부의 증조부의 증조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색이라는 개념에 대해 현재 세대는 완벽하게 무지하다. 색이 없이 흑백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단 능력은 그들이 식별해낼 수 있는 흑백의 색만큼이나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한 무지라는 질서 속에 찾아온 빨간구두를 신은 춤추는 처녀는 마을을 찢어놓는다. 빨간 구두를 신은 처녀는 춤을 멈추지 못하고, 빨간 구두의 빨간 색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빨간 구두가 보이면서 빨간 색을 가진 물건을 식별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렇게 마을은 빨간색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다. 빨간구두가 보이는 사람들, 그들은 빨간구두당이다. 그것이 이 책의 제목이고, 첫번째 이야기의 제목이다. 여기에 포함된 단편은 빨간구두당을 포함해서, 개구리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기슭과 노수부, 카이사르의 순무, 헤르메스의 붕대, 엘제는 녹아 없어지다. 거위지기가 본것, 화감소녀전의 총 9개다. 빨간구두당은 안델센의 빨간구두의 변주이고, 개구리왕 또는 강철의 하인리히는 그림형제의 동명 동화의 변주인 것 같다. 새뮤얼 콜리지의 노수부의 노래, 그림형제의 영리한 엘제, 거위지기 아가씨, 성냥팔이 소녀 등이 그림형제의 동일 제목의 민담 동화에서 따왔으나, 내용은 수많은 설화와 전래동화들을 다채롭게 변형하고 윤색하고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전혀 새로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최근 민음사에서 주최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구병모의 전작 소설집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단편 소설 한편 한편 내에 넘치도록 많은 양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이런 저런 동화와 전설에서 가져왔지만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서사의 뼈대와 혈관이 되어 이야기를 완성한다. 동화속의 모티브들은 처연하며 아름답고 스토리의 힘은 강렬하지만, 그것의 은밀한 내면은 현재 우리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시끄럽고 화려하고 잔인한 환상의 세계 속에서 현질을 소환하는 것. 그 조용한 성찰. 그것이 구병모 소설의 특징이자 책을 쥐고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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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해 본적 없다. 어린 아이의 순수함. 미래는 불행보다는 행복이라는 꿈(?)아닌 꿈에 상처 받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인생이란 핑크 빛 장미로만 물들 수 없는 것. 세상이라는 거친 풍파 속에서, 어린 시절의 동심은 점점 사라지고 만다. 공주와 왕자가 만나 결혼하면 과연 행복하기만 할까? 어른이 되어 결혼이란 걸 해보니, 결혼이란...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자유로움 끝 구속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동화의 성인 버전 혹은, 동화의 다른 이야기를 좋아했었다. 때론 마음 속 의문을 시원하게 해결해주기도 하고, 때론 나대신 복수를 해 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런 종류의 동화들이 많이 등장해서 일까? 이젠 적잖은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동화를 비틀어 놓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만났던 구병모 작가의 ‘빨간 구두당’. 8편의 단편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매력적인 소설들이다. 다른 색깔을 보면 처벌이 되는 상황을 그린 ‘빨간 구두당’, 동화 속 개구리 왕자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이야기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평범한 사람들의 결말을 비틀어 버린 ‘기슭과 노수부’, 좋은 것, 큰 것을 황제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린 ‘카이사르의 순무’,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거즈를 소유한 자의 이야기 ‘헤르메스의 붕대’, 일이 아닌 머리를 쓰는 여자가 못내 못마땅한 남편 가족으로 인해 아픔을 겪는 ‘엘제는 녹고 없어지다’, 공주를 흠모한 거위지기의 이야기 ‘거위지지가 본 것’, 파란 아이란 책에서 소개 되고 있는 ‘화갑 소녀전’. 읽는 동안 유쾌하고, 즐겁게 읽은 것은 아니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많이 생각하면서 읽었다. 8편의 동화를 읽으면서 그래도 좋았던 것은 ‘엘제는 녹고 없어지다’이다.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 여자이기에 당연하게 받아 들였을까? 여자는 당연하게 아이를 낳고 농사일을 하고, 남편의 부모에게 말대꾸도 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타박을 받는 여자. 물론 나 역시도 시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말대꾸나 말대답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게 당연해서가 아니라, 혹 그랬을 때, 우리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근심 때문이기도 하다. 농사일을 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뇌(?)를 움직이는 게 행복한 여자를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 온 외계인처럼 그녀를 대하게 된다. 그녀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녹아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기슭과 노수부’는 묘한 매력을 느낀다. 주인공에게는 불행이든 행복이든 결말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결말도 소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나도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결말을 가지고 내 인생을 만들어 나가게 될까? 내 인생이 동화가 아니기에 극적이거나, 굴곡이 많은 인생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한다. 평범하지만 나만의 결말을 소유하겠다고. 그건 내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 동화는 동화일 뿐 동화 그 이상으로 비틀지 말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은 동화의 다른 면을 봐도 좋을 것 같다. 다 각도로 생각하는 힘. 이것도 동화를 읽는 즐거움이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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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책의 내용을 살짝 비틀어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이야기가 재밌고 좋아한다. 동화 속 이야기는 우리가 예쁘게만 느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시대상을 갖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병모 작가님이 이번에 어둡고 위험한 '나쁜 동화'의 마력 속으로 초대한다는 글을 보며 내가 기다리던 책이란 생각이 들어 선택한 '빨간구두당'... 동화를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 책이다. 제목에 나온 '빨간구두당'은 빨간구두를 새롭게 구성한 이야기로 색 없는 세계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처녀로 인해 사람들은 경악하고 만다. 색이라곤 검정, 흰색, 회색이 전부였던 곳에 빨간구두를 신고 춤을 추는 처녀... 빨강이란 색깔에 대한 정확한 이해도를 갖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춤을 추는 처녀를 통해 빨강 색이 사람들의 머리, 가슴에 커다랗게 자리 잡는다. 많은 사람들과 춤을 추며 결코 쉬지 못하는 빨간 구두의 처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살짝 다르게 처녀는 재판을 받게 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여 마녀로 고발당해 화형을 당한다. 헌데 처녀의 발에서 떨어져 나온 빨간 구두는 계속해서 춤을 추며 이 구두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르쳐 '빨간구두당'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섬뜩하다. 빨간 구두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데 사람들이 보여주는 맹목적인 행동과 이를 저지하려는 자들의 모습이 그냥 재미로 웃어넘길 수 없다. 어떤 이유나 목적도 없이 어쩌면 생각자체도 없이 따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섬뜩함이 느껴진다. 못 생긴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한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는 개구리 왕자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는 하인 하인리히가 스토리를 풀어간다. 솔직히 개구리 왕자의 변신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공주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지만 다양한 모습에 공주들에게 다가가도록 권한 하인리히와 이를 따르는 개구리 왕자의 이야기는 많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야기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엄청난 크기의 순무에 대한 이야기도 씁쓸하지만 흥미롭게 읽었으며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지저분하고 낡은 헝겊에 얽힌 '헤르메스의 붕대' 역시 재밌게 읽었다. 성냥팔이 소녀를 각색한 '화갑소녀전'은 증서를 받기 위해 화광 공장을 찾는 소녀가 이중 통행세를 내면서까지 일하지만 결국 증서를 받는 사람들은 소녀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솔직히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많이 화가 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던 이야기다. 이중통행세 안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범죄의 모습을 담고 있어 불편했다. 이외 '거위지기가 본 것'도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기존에 알려진 동화들을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라 구병모 작가의 기존 책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술술 넘어가는 이야기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게 되는 요소들을 담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현재 우리의 사회상을 담아내고 있어 자꾸만 생각을 이끌어 내는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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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주로 읽었던 동화.. 그런 동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옛날 옛적으로 시작해야하고, 멋진 왕자와 공주가 나와야하고 그들은 일종의 고난을 겪어야하고 (그 고난의 중심에는 마녀, 마귀가 있었다) 그 고난을 잘 극복하고 (왕자의 용감함이나 공주의 희생 또는 맘 좋은 마술사의 도움등등) 결국에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로 끝이나야한다는 그런 선입견.. 날이 어둑해지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읽었던 동화가 바라던 대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이나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책을 덮었던 .. 그런 기억이난다. 초등학교때 학교만 다녀오면 가방을 집어 던지고 골목으로 뛰어 나가 밥 때나 되야 들어오는 우리들 (고만고만한 여자 형제들이 많았다)을 집에 있게 하고 싶으셨는지 엄마는 큰 맘 먹고 집으로 오시는 월부책 아저씨에게 계몽사문학전집 50권짜리를 턱하니 월부로 들여놓으셨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주황색표지의 양장본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계획은 반은 성공한 듯 했다. 일단 책을 읽게 되는 날은 밖에 뛰어나가기 보다는 해 지는 것도 모르고 책을 읽었으니까.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새로 알게 된 왕자, 공주님도 많았고 왜 그리 못된 마녀들도 많고 넘어야하는 고난과 역경들은 왜 그리 버라이어티했는지.. 정말 읽고 또 읽고를 몇 번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는 그래야아먄 했다. 착한 사람은 행복한 결말을 만나야하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아야만 했다. 그래야지 앞으로 나도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맘을 먹게 될테니까..
하지만 어른이 되서 만나게 된 세상은 동화 속의 세상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읽히기 위해 이야기를 좀 더 아름답게 만들었다는 것을..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이야기의 곳곳에는 잔혹하고 너무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이 들어있었지만 그것을 따지기 보다는 그저 못된 사람들 벌을 받는 것이고 마녀들의 장난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렇게 읽었던 동화의 열린이야기..
책을 펼치니 맨 앞에는 작가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열린 이야기의 미로에서..." 과연 그 이야기들의 미로에서 우리는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그 안에서 헤매게 될 것인지..그 미로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본다.
총 8개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있다. 모티브가 된 동화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성냥팔이 소녀>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 또는 강철의 하인리히><유리병 속의 작은 도깨비><영리한 엘제><거위지기 아가씨> 새뮤얼 콜리지 <노수부의 노래> 러시아 민담 <커다란 순무>등 이다.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그 동화가 주는 교훈이나 결론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였는지 원작을 모티브로 한 각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원작이 주는 교훈이나 결말을 어떻게 연결을 시켜야하나.. 하는 약간의 강박관념을 가지고 책을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런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이야기들이 술술 읽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모든 이야기들은 내가 어린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일종의 선입견을 모두 깨드리고 있다. 뭔가 얻으면 그것을 지키거나 더 갖게 위해서 욕심을 부리고 그 욕심때문에 결국은 불행지고 말았던 사람들.. 하지만 여기서는 얻은 것을 적당히 활용하며 그 이후의 삶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모색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헤르메스의 붕대), 아무런 잘못이 없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론때문에 가족이 풍지박산이 나도 그 원인에 대한 징벌이 우선이 아니라 그 의도를 헤아리는 것 보다 결과를 받아들여야한다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해준다 (카이사르의 순무) 마지 지옥의 강을 건너는 듯 강을 건너는 수부에게 듣는 이야기도 그 자리를 누구에게 얼른 내어주고 그 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수부가 들려줄 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빨간구두당>과 <화갑소녀전>에서는 비틀어지고 냉정한 현실을 풍자한다. 오로지 흑과 백으로만 모든 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빨강이라는 구두를 신은 여인의 등장으로 그들은 빨강을 추앙한다. 그 규모가 너무 커지자 그것을 진압하기에 이르렀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추앙했던 빨간구두당을 부인한다. 세상은 다시 흑과 백의 회색으로 물들었고 더 이상 타오르는 불꽃, 연인의 두 뺨과 입술, 서로에 대한 분노등을 볼 수 없게 되었다. <화갑소녀전>은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브로 한 듯 한데 마지막으로 소녀가 그은 성냥의 불꽃 뒤에 보여지는 세계가 너무도 비극적이지만 어찌보면 현실의 단면인 듯 보여진다. 그외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와 <거위지기가 본 것>은 이야기의 화자가 바뀌면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각도에서 좀 더 색다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살아오면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화속의 세상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하나 둘 씩 배우게 된다.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할머니가 이야기 해주시던 옛날이야기.. 매일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또 재미있고 새롭다. 이야기를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고 그 잠 속에서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만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때 그렇게 믿었던 아름다운 세상속에서 살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세상은 그야말로 이야기속에나 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그 환상의 막이 점점 엷어지고 결국에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듯 하다.
어른이 되서 다시 읽는 동화.,, 여전히 그 동화가 권선징악의 결말과 아름다운 세상뿐이라면 아마 흥.. 하며 코웃음을 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듯 열린 이야기의 미로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어도 그것이 익숙하며 재미로 느껴지게 되는 듯 하다. 다른 느낌의 동화들이었지만 역시 동화는 재미있다..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를 읽으면서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와 재미를 좀 색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작가가 주는 믿음 또한 이 책을 선뜻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역시나.. 하는 맘의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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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얼굴이 아주 하얀 공주가 살았습니다. 눈처럼 고운 피부의 공주는 스노화이트라 불리웠지요. 빨간구두를 좋아하던 그녀는 아주 마음씨 나쁜 계모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계모는 스노화이트를 데리고 숲속에 피크닉을 가서 공주만 놓고 돌아왔더랩니다. 길을 잃은 공주는 자신이 두고 온 조약돌을 따라서 길을 가다보니 과자집을 발견했고 그곳으로 들어갔지요. 맛있게 먹고 있던 그녀에게 나타난 것은 마녀. 스머프를 끓여먹으려는 가가멜처럼 마녀는 스노화이트를 잡아 먹을 생각을 합니다. 빨간망토를 뒤집어 쓰고 도망친 그녀는 언젠가 부터 자신이 신고있던 빨간 구두의 뒤축을 세번 탕탕 쳐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요.
동화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는 아닐지라도 워낙 유명한 동화들이라 전 세계 아이들이 다 줄거리는 알고 있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예전에도 몇번 한 적이 있다. 이야기는 어떤 동화를 섞느냐에 따라서 매번 달라지곤 하지만 말이다.
나는 단지있는 이야기들을 연결해서 갖다 붙이기만 했지만 구병모 작가는 이야기의 기본틀을 가지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변모시켜 놓았다. 이른바 변주동화집이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악기에서 변주란 기본적인 음악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연주하는 사람의 생각대로 음을 바꾸거나 박자를 틀거나 하는 식이다. 이것은 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인 골격 즉 뼈대는 유지하고 있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제목인 '빨간구두당'을 비롯하여 실린 여덟편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한 변주이야기이다. 제목에서도 보드시 빨간구두당은 안데르센의 빨간구두이야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것도 빨간구두라는 것을 확 띄게 드러내주기라도 하듯이 빨간구두가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은 그저 흑백사회로 설정해두었다.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빨간색, 가령 피라 할지라도 다른 것보다 조금더 진한 회색으로 보일뿐 이 세상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빨강이라는 색은, 아니 다른 색조차도 존재하지않는다.
그런데 빨간구두가 나타났다. 미친듯이 밤낮없이 춤을 추어대는 빨간구두.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빨간색으로 인식을 한다. 물론 빨간색으로 여전히 보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단지 하나의 빨간구두때문에 사회가 소란이 생겼다. 분리가 되고 나뉘어졌으며 분란이 생겼다.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당을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빨간구두당이다. 제목이 의미하는바를 그제야 이해한다.
지금 한국에 실제로 존재하는 당만해도 몇개가 있다. 작은 나라에 무슨 당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당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한후 권력을 잡겠다고 정치권으로 나서고 있다. 사름들에게 당이란 어떤 존재일까.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이길 좋아하고 그렇게 모여서 모임을 만들고 동호회를 만들곤 하지만 당이라는 것은 그런 일반적인 사모임보다는 조금은 공식적인 모임이다.
빨간구두당이 추구하는 이념은 또 어떤 것일까. 그리고 과연 그 빨간구두당은 어덯게 지지세력을 구축할수 있을까.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저마다 다 다르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백인백색이라고 했던가. 빨간구두이야기를 읽은 당신은 어떻게 느낄지 그것이 또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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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구병모가 직접 규정하고 있는 바, "옛 이야기의 변주"(p288)임에 틀림없는 이 소설집은, '옛 이야기의 변주' 같은 것도 창작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라든가, '옛 이야기의 변주'까지도 그 작가의 창작물이라 할 수 있는걸까요? 와 같은, 혹여 제기될 수 있을 물음들에 대해 --- 이건, "제대로 된 관찰자"1의 역할을 하는 작가로서, 그 치열하게 관찰한/된 바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까지 확장된 해석, 그리고 그 기막히도록 멋진 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창작이라 불리울 충분한 자격이 있는 이야기들이기에, 단 한 치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그러니까 구병모의 이 '변주들'은, 흡사 '말이 승리할 확률의 추정 뿐 아니라 승리하는 이유까지' 모두를 완벽하게 담고 있는 예측 모델과도 같습니다~라 대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제 '개인적 확신'은, 이 책 속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내용',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작가의 --- 흡사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글이 아닌가 싶게, 집요하게 끝까지 파고 들어가, 발기발기 찢어버리고 만듯한, '해석'으로부터의 감동이 한 축, 그리고
어느 작품의 어느 구절이라 콕 찝어낼 순 없으나, 분명 (역시나 제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준, 또한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이문열의 작품들 어느 곳에선가 분명 만나보았었던 어느 구절의 느낌과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라는, 예의 '문장의 스타일'이라는 '형식'에 있어서마저, 이 작가 구병모가 제 마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바닥부터 천정까지 통째로 사로잡았다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문장들이라는, 또 다른 한 축으로부터 기인되고 있지요. ……………………………………………………… 우리에게 <분홍신>이란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2, 한 소녀가 분홍색 신을 가지기 원했고, 드디어 그것을 신게 된 소녀는 그 신을 신은 후 춤추기를 멈출 수 없었었다는, 간단한 스토리의 동화에 대해, 교사 박현희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동화중 하나라 꼽고 있으며3, 이 이야기를 가리켜 '일반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다라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가지는 것에 잘못이다 아니다를 결정짓는 것이 중요하다라기 보다는4, 그러한 욕망을 가졌을 때의 결과로 너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춰야하는 형벌을 받을 수도 있다라는 걸, 즉 --- 가해지는 제재에 대해, 그것의 정당성에 의문을 갖기보다는, 그것을 따르지 않았을 때 주어지는 불이익을 먼저 떠올리게끔, 은연 중에 우리를 세뇌시킨다5라는 거지요. 얼핏,
작가 구병모 또한 그러한 선천적 세뇌에 대한 방향으로, 이 동화를 해석하고 있다,라 생각해볼 수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6... 만, 아 물론, <학교-학원-학원-학원>의 스케쥴에 대해 '원래 삶이란 이런 것'이라 알고 있다는 강남 아이들에 대한 은유라고 볼 여지도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는...
(이 또한 교육의 산물일) 우리의 선입견이 이끄는 바로서의 '공산주의', 혹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 등으로도 해석되어질 수 있겠는, 작가 구병모의 이 변주는 예의, 주제 사라마구를 떠올리게 해주는7다음 구절을 통해,
이 세상에서, 정의(justice)가 불의라는 것을 이겨내기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결과적으로 이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라 전 생각했습니다. 이 '이겨내기 쉽지 않음'을 향해 '기회주의'8란 단어를 빌어 개인, 그리고 그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며, 혹여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발생되는, 행여 그것까지를 '기회주의'란 단어로 불러도 되는가에 대한 고민마저 필요없다 할지라도, 과연
위와 같은 (비참한? 최소한의?) 바람(願)까지를 비난할 수 있는 것일지, "현실은 언제든 꿈에 젖어도 되는 것이었고, 꿈이 증발한 자리를 예상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p170)이란 개인적 감정의 up-and-down은 그냥 나 스스로 즐기게/괴로워하게 좀 내버려 두면 안되겠니,라 항변하고 싶은데, 문득!
나도 역시, 위와 같은 사회적 세뇌의 결과물만을 생각해낼 수 있을 뿐이며, 이러한 세뇌의 확장은 이내,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고 일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늠하는 데 중요9"(p268)하지 않을까란 (나 스스로의 혹은 타인의) 의문에 대해 "노동 생산으로 먹고살아야 할 사람에게 감수성이라니, 그처럼 터무니없는 사치와 낭비라니"(pp191~192)와 같은 자기검열 내지는 비판을 스스럼 없이 가하게 되고, 그리하여 결국엔 "던져져도 파열음을 낼 줄 모르는 돌, 파문을 일으킬 줄 모르는 수면과 같은"(p100) 삶을, 마치 가장 이상적(ideal)인 상태의 삶으로 믿어버리곤, 급기야 그 믿음을, 그게 가능하다면, 나 뿐만이 아닌 타인, 완전한 타인 및 나의 후손들에게까지 강요까지 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란 게,
나 스스로 이걸 더 이상, '체념'이 아닌 '당연'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란 건 참... ………………………………………………………
우리는, 자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수단으로 사용되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 몸과 마음은 당신께 바치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살아왔습니다"(pp53~54)와 같은 선서가, 더 이상은 강요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 내가 왕자이고 당신이 공주가 아닌 한, 그리하여 세상이 나/우리를 주변, 가장자리, 지렛대 중 하나로/일 뿐이라 간주한다면, 그런 선서는 명시적으로만 강요되지 않을 뿐, 마치 농부에게 주어진 "땅에 묶이고 땅을 부치는 보편적 삶의 필연성과 유한성"(pp181~182)과도 같이 살다가, "그러고 나니 이제 나란 사람은 줄 것도 별로 남지 않았구나 싶답니다"10와 같은 깨달음으로 한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까지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라 전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처럼, 여기에 실려있는 8편의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우울합니다. 이 우울함이, 본연의 스토리로부터 기인된다라기 보다는, 물론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뭔가 --- 작가 구병모의 글이, 작가의 문체가, 어쩌면 작가의 생각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란 생각을, 연이어 읽어 본 3 편의 책들로부터 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 작가의 이런 우울함에, 오랫만인 사정(ejaculation) 후의 노곤함과도 같이 완전히, 녹아져 버렸고 말이죠. ※ 읽어본, 작가 구병모의 다른 작품 :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파과」 ※ 기존 동화의 '새로운 해석' : 「백설공주는 왜 자꾸 문을 열어 줄까」 ·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지금 이 블로그에 와있는 당신에게마저 여하한 구실로라도 '나를 아는' 이란 형용사를 붙여 --- 꼭 한번 읽어보시라 말하고 싶은 책들의 제목 앞에 ★표시를 붙입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표시이겠지만 가끔은, 타인의 주관을 한번쯤 믿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 금연 76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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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롭게 읽었어요.동화라는 생각은 하지않았죠ㅡ.. 어릴적에 읽은 원작도 무시무시 했어요..이해할 수없는 것들로 가득했으니까요..온통 부조리로 가득하고 해석해보면 의미심장한 것들 투성이였어요. 어른이 쓴 것이라서 그렇다고 저는 생각했던것 같아요. 어른들의 텍스트를 교묘하게 숨겨놓은것이 동화라고 말예요. 그래서 .압축본이 아닌 원작은 아이가 조금 크면 여러번 반복해 읽기를 했음 하고 바라는 편이고요. 강요할순 없지만...얼마나 많은것들을 끄집어 낼수있는지..궁금하니까 빨간 구두당은 ㅡ이 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죠. 아프고도 슬픈 현실적 우화예요. 고맙게 잘 읽었어요.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응원놓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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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의 하인리히 개구리왕자 온갖 동화의 믹스버전 단 한 편의 동화로 뽑아낼 총량 이 문제 였을지... 구구절절 길게 늘여낸 다면 어땠을까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이런 저런 상상력은 역시 있어 봄직한 상상이고 써봄직하여 재미있었다 왕자의 쪽에서가 아니라 하인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 얼마전에 여행길에서 친구에게 백마탄 왕자님 이야기를 해주는데 사실 백마탄 왕자님 은 이름이 백 마탄 이라고. 또 사실은 백마탄 과 왕자님 두명인데 사람들은 곧잘 한 명과 한 마리 로 인식하곤 한다고 더 기막힌건 백 마탄이 진짜고 왕 자님은 하인 이란 설정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깔깔 대고 웃었었더랬다. 나야 이름을 가지고 장난 친 것에 불과하지만... 소설에서 구병모 작가는 진짜로 해냈다. 기괴하고 일그러진 동화같으나 동화아닌 이야기. 개구리 왕자는 아마도 진심으로 그랬더래도 그런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하인리히도 없애야 했을것이고 딴에는 자존심 ㅡ에 기스난 걸 그런식으로 모르척 외면한 것이 아닐런지 ㅡ 공주의 언행 따위 ㅡ나중에 어떡게든 해주면 된다 ㅡ 생각하고 말이다 ㅡ 처음이 어떻든 간에 ...불쌍한 하인리히 ..아니 ,그럴 운명 였다니 별 수 없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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