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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초록의 표지가 독자를 반긴다. 마치 '당신의 눈과 마음을 어루만져 드릴게요' 속삭이는 듯했다. 제목 또한 신비로웠다. 어떻게 시공간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이야기는 '나'와 가족이 아스라한 종소리와 함께 오래된 단독주택에 처음 발을 디디던 순간에서 시작한다. 대문이 열리자 다른 시공간으로 이어진 것 같은 통로가 보이고 좁은 통로를 지나면 온갖 식물들이 제멋대로 자라난 길 끝에 중문이 있다. 중문을 열면 이 세상과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장소가 펼쳐진다. 담장을 따라 서로 뒤엉킨 잡목들과 부풀어 오른 풀더미는 비밀을 품고 있는 듯했다.
1층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들려오는 인기척에 2층의 가족들은 귀를 쫑긋 세운다. 처음엔 귀신이나 요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백발의 할머니와 마주치기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는 자기가 이 집의 주인이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주인이 따로 있다고 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어느 집이든 보이지 않는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 베일을 벗기듯 서서히 이들의 사정이 드러난다. 아들의 사업 실패로 오갈 데가 없어진 할머니는 전기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1층에서 손주 둘 과 유령처럼 숨어살고 있었다. 2층 가족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겪은 아버지가 귀농을 결정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2층 주택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는 1층과 2층 가족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준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위로도 있다. 동생 준은 아버지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서 1층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엄마는 서백자 할머니의 형편을 듣고 작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나'는 어떨까? 화자인 '나' 역시 수능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가족의 붕괴를 겪어야 했다. 낯선 공간에서 새롭게 마주한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복잡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작가는 사람에게서 받는 위로, 공간에게서 받는 위로, 시간이 흐르면서 저절로 사그라드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공간과 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위로가 되어주던 자연, 공간,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 인물들의 사연 역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것처럼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낸다. 어쩌면 10대 청소년의 마음이 이 책과 닮은 것 같다. 혼란스러운 한편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상태로 겪을 만큼 겪어야 한 뼘 자랄 수 있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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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함을 가지고 2층집을 바라보는 아이들, 또 궁금함을 가지고 2층집에서 밖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표지에 있다. 표지를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숨겨져 있을까? 독자도 궁금함과 호기심을 가지고 첫 장을 펼치게 된다. 고등학생인 주인공 '나', 엄마, 동생과 시세보다 좀 싸고 좋은 조건의 집 2층으로 세를 들어 이사가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아빠는 20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에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사고를 내게 된다. 그 사고로 퇴직을 하게 된 아빠는 '속았다'라는 말을 하며 장원으로 가 버렸다. 아빠는 모든 식구가 함께 장원으로 가기를 원했지만 엄마와 나는 나의 입시를 이유로 이곳에 남았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자신들의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그것을 인정하는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주인공 나와 동생은 장원에 있을 때는 장원이 좋고, 도시에 있을 때는 도시가 좋았다. 그러나 스스로의 결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간을 동생 준은 '시공간을 달리'하여 장원과 이곳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청소년기에 있는 준의 눈으로 당시의 준과 주인공, 엄마의 갈등과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이사온 집 1층은 비어있다고 했는데, 동생 말에 의하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불을 켜지도 않고, 살금살금 걸으며 숨어살고 있다고 했다. 얼마 후 동생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집의 사연을 알게 된다. 평생 이집에서 살았던 할머니는 아들이 이집을 다른사람에게 팔고 나갔는데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게다가 이 집 근처에는 먼저 간 남편이 심어둔, 숨겨둔 산삼이 있다. 할머니는 군대에 간 첫 손주가 올 때까지 이것을 지켜야 한다. 아들이 키우지 못하는 손주들을 키우며 이곳에 숨어 살고 있다. 2층에 사는 주인공의 가족과 1층에 숨어 살고 있는 할머니의 가족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것, 이를 작가는 시공간이 얽혀 있다. 사건의 지평선을 넘었다. 시공간이 우리를 어루만져 준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눈으로 생각으로 충분이 펼쳐질 수 있는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공감한다. 아픈 시기를 넘기기 위해 다양한 상상을 통해 자신을 어루만지는 능력을 발휘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소설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어른으로써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나'와 동생이 시공간을 나누고 연결하려고 하는 행동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 현실적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없고 헤쳐나갈 수도 없을 때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독단적인 결정에 대응할 수 없기에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기기 위한 결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들은 독단적인 아버지마저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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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표지가 참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숲 속에 자리잡은 주황색 지붕의 두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잘린 듯한 느낌의 책 표지가 어떤 내용인지 마구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이 책은 창비에서 출판되었고 작가는 박영란님이다. '마음이 쓰이는 곳에 내 소설도 머물고 있다'라는 문구가 뭔가 이 책과 연관되는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사람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뭔가 공간이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기에.
이 책의 첫 문장이다. "눈을 감고 소리를 떠올려 본다. 미세한 입자들이 마주치는 소리. 이른 아침 알싸한 공기 속에서 안개와 꽃향기가 서로 부딪는 소리. 멀리서 오는 종소리 같은, 가까이서 오는 쇳소리 같은. 소리가 나를 그곳으로 이끌어 준다. 처음 그 집에 발을 들이던 날, 그 순간으로." 이렇게 소리와 공간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특이한 문장 때문에 처음부터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남매와 엄마가 함께 이사온 이 집은 식물들이 가득한 곳이고 2층인 집이다. 2층에 이 가족이 살기로 하고 1층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남동생인 준이 이 곳에 몰래 숨어 살고 있는 가족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귀신인가 했었는데, 귀신은 아니고 끝까지 신비한 느낌은 남기는 걸로 봐서는 사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되기도 한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살고 있고, 할머니의 손자라는 사람이 뒤에 합류하게 된다. 이 가족들은 원래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인데 사정상 숨어 살고 있었다. 두 가족 모두 뭔가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가면서 환상적이리만큼 이상한 뒷산의 공간에 다녀오고 하면서 2층에 이사온 이 가족들의 문제도 해결되어 간다. 세상에 속았다며 시골로 내려간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따라 갈 수 없다며 도시에서의 삶을 고집한 어머니와 대학을 위해 따라남은 나, 그리고 고민중인 남동생. 결국 이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 알게 되고 원하는 삶을 위해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속았다'라는 말. 열심히 살던 아버지가 사고로 다치고 퇴직하게 되자 아파트 절반 이상은 대출금이었던 상황에서 결국 아버지는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세상이 자기를 속였다고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살다보면 정말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어서인지 뭔가 마음에 남았다. 내 나름대로는 여러 어려움들을 해결해 보려고 정말 열심히, 성실히 살아도 결국 원래 가진 사람들보다는 못한 경우, 내가 뛰었던 것이 결국 제자리걸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이런 경우가 아닐까 했다. 요즘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해서일까 아무튼 공감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이 느끼는 이 분위기는 온 가족에게 전염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느낌을 참 많이 풍긴다.
아무튼 우울하기 그지 없던 이 가족들이 원래 살던 할머니 가족과 만나면서 새로운 공간(뒷산)에 다녀오고 꿩도 만나고 하면서 변화하게 된다. 이 부분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할머니는 인생을 두고 너무 아름다운 꿈은 꾸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인생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계획안 대로 이루어지는 게 아름다운 인생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불쑥 물었다. '그럼 어떤 게 아름다운 건데요?' 마치 아버지를 향해 왜 속았어요?라고 묻는 투였다. 할머니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달렸지...'
원래 인생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그 마음대로 안 되는 인생 속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하며, 그 고민 속에서 옆에 있는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항상 뭔가의 결과를 내 놓아야 인정받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 과정들. 그 과정들 속에서의 수많은 선택들이 만들어가는 인생을 간과하는 우리들에게 뻥하면서 정신차리라고 공을 날려주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 과정 자체가 행복한지 모르고 매일 아이가 혼자 뭔가를 하기를 바랬던 시기의 어리석음을 이제야 깨닫는 걸 보면 인간은 언제나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제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보니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었음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 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아무튼 이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이 책이 선택한 공간에 대한 묘사는 정말 매력적이다. 읽는 내내 뭔가 환상의 세계에서 함께 헤매는 듯한 느낌도 주면서 꿈을 꾼듯한 생각도 들게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공간 전체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의 이 책. 앞으로도 아마 이 작가의 책을 찾아볼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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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제목은 과학소설 같은데 표지는 초록초록 너무나 서정적인 청소년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중학생 소녀와 그의 남동생 누나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의 사정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루아침에 아빠와 떨어져 살게 된 가족 갑자기 고향에 내려가 살겠다는 아빠의 결정에, 아이들의 학업을 포기할 수 없는 엄마가 동생과 자신을 데리고 서울살이를 계속한다. 그래서 새로 이사가게 된 집, 낮은 월세에도 불과하고 큰 평수의 숲속의 대저택인 이 집에 살게 되면서 두 남매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다. 분명히 비어있다고 들었던 1층 주인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행동이 그리 정상적이지 않다. 동생은 계속 이들이 다른 차원에서 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신 같은 존재라고 되네이고, 주인공은 이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웬지 모를 불안감과 호기심에 이들을 계속 살피게 되고, 그 와중에 자신의 학교생활과 혼자 남매를 공부시키고 집안살림을 해 나가는 엄마도 도와야한다. 소설은 현대 생활에서 중산층에 들지 못한 가정들의 많은 어려움과 청소년 시기 특유의 넘치는 젊은 에너지와 그만큼 또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 두려움등을 여러가지 자잘하고 사소 해 보이는 대화와 사건들을 통해 잘 전달한다. 청소년 소설을 진짜 좋아해서 많이 읽는편인 내가 읽으면서 와 이 이야기 꽤 신선하다라고 느겼던 소설이다. 항상 믿고 보는 창비의 청소년 소설 여름이 생각나는 표지의 소설을 늦가을에 만나서 택배 받은지 하루만에 다 읽었는데 서평은 이제야 쓰는 나의 이 게으름. 그래도 이 겨울, 점점 추워지는데 초록색 표지 책장에 끼워놓고 마음 허할 때 가끔씩 꺼내보고 싶은 소설이 생겨 좋다. 추천한다. |
누군가가 살던 자리. 거처를 옮길 때 드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전에 살던 람들은 어떤 분이었을까? 누군가의 희로애락이 담긴 공간에 대한 상상을 펼쳐봅니다. 1층에 누군가가 살고 있어, 2층으로 이사 온 가족들이 1층의 또 다른 가족들을 발견합니다. 소설 [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 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누군가가 살던 자리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원래 집주인이었어, 라고 말하는 1층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쌍둥이 손주 자작과 종려. 2층에 이사를 오게 된 나와 준은 그들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됩니다. 귀신이 있는 집이라는 소문까지 났던 2층 집에서 1층 할머니네 이야기를 모두 비밀로 합니다.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대하자고. 엄마는 이미 할머니의 존재에 대해 알았지만 모른척합니다.
[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 에서 돋보이는 인물은 동생 준입니다. 과학을 좋아하는 준은 블랙홀에 대해서, 시공간을 넘어서는 개념에 대해서, 사건의 지평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종려, 자작, 장희 형과 함께 꿩을 보러 산에 갔을 때 느꼈던 무언가를 준은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1층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던 시공간을 준은 잊지 않고 싶어합니다. 할머니도, 종려, 자작, 그리고 장희 형도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나 기특하고 예쁘더군요. 누나에게 집은 잘 있지? 라고 묻는 안부도 어쩌면 모두의 안부를 묻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과정도 작가의 의도가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할머니의 손주인 자작과 종려, 쌍둥이의 이름이 너무나도 독특했습니다. 자작나무, 종려나무를 뜻하는 이름일텐데 이름이 곧 계절을 품고, 산을 품고, 자연을 품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시공간을 어루만지다는 제목은 어떤 의미일까요? 사건의 지평선(블랙홀의 가장 자리에 있는 경계선으로, 안에서 끌어당기는 중력이 빛의 속도보다 빨라서 무엇도 빠져나올 수 없는)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봅니다. 어루만진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으로 어떤 나무가 어떤 계절이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지, 어느 구석이 어떤 풀이 자라고 작은 동물들이 어떤 길로 오가는지,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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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고를 당한 후 농촌으로 내려가 버린 후 '나'는 엄마, 동생과 함께 미스터리한 집으로 이사를 온다. 1층은 분명 비어있다고 했지만 종소리가 들리고, 정원이 가꾸어지고, 작물이 키워진다. 동생의 이야기처럼 귀신이 사는 집인 것일까? <시공간을 어루만지면>(2023, 창비)은 '나'가 이사를 오면서 위로를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사 올 때의 '나'는 불안정한 상태였다. 곧 수능을 앞둔 예민한 시기였고, 아버지의 돌연한 귀농으로 가족은 붕괴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미스터리한 집과, 미스터리했던 1층 사람들과 점차 정서적으로 교감을 하게 되고 안정을 찾는다. 혼자 있던 나는 집 주변의 풍경과 소리를 보면서 동생이 왜 이 집의 안부를 계속 묻는지 찾아낸다. "그 모든 것이 혼자 겁먹은 채 집에 남아 있던 동생을 어루만져 주었을 것이다."(150쪽) 동생은 일찍 집에 들어와서 비교적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다른 집보다 더 햇빛이 들지 않는 집에서 동생은 무서웠을 것이다. 1층 사람들과 집 주변의 동물들, 식물들은 이런 동생을 위로해 주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많은 위로를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위로는 가족들과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귀농한 후 '나'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하지만 1층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집을 떠날 때가 되면서 아버지를 이해한다. "아버지를 가장 많이 속인 건 아버지 자신이라는 걸 인정하는 말.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지평선을 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155쪽) '나'의 부모님은 평생을 '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살기'를 본인들의 꿈으로 믿으며 일했다. 어느 순간 이 꿈이 본인들의 진정한 꿈이 아닌 사회에 넓게 퍼져버린 전염된 꿈이라는 걸 깨닫고 지평선을 넘어 자신의 꿈을 찾아갔다. '나'는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들여다봤다. 사실은 '나'가 장원을 멀리한 건 장원이 미워서가 아니라 갑자기 모든 걸 혼자 결정해 버린 아버지가 미워서였다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바로 보고,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마주 볼 수 있다는 것을. 흔히 '집' 하면 안정된 공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한다. 밖에서 상처를 받아도 집에서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이라는 시공간 전체가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이 단순한 시공간의 물리적 실체를 넘어서 다가오게 한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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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곳은 누군가가 살던 자리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이 무너진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는 다시 시작한다.” 지키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이 집을,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을, 가족을,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간을 이 공간을 지키다. 속았다. 복잡하게 얽힌 어른들의 말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가 닿을까? 말들이 속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며 안전하게 사건의 지평선을 넘어 가 닿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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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었다. 미약한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작은 방울 소리거나 녹슨 철 조각이 조심스럽게 서로 부딪는 소리 같았다. 나는 이 장면이 좋았다. 비슷한 공간에 살고 있는 다른 존재를 미세한 '소리'로 처음으로 감각하는 장면. 신비로웠다. 사람의 움직임이 공기중에 파장을 남기고 그 파장이 '내' 귀에까지 전달되어 '나'는 이 집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직 이 글의 장르가 무엇인지 몰라서 독자로서 나는 혹시 정령이나 요정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났으니까, 아주 작은 존재들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이야기가 그렇게 전개되지는 않았다. 이 소설 '시공간을 어루만지면'은 박영란이 쓴 청소년소설로 청소년 뿐 아니라 어른들도 누구나 산뜻하게 읽기 좋은 작품이다. 산뜻하게 금세 읽힌다고 해서 주제의식이 가벼운 것도 아니다. 마음에 꽤 큰 파장을 남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산 아래 구석, 2층집으로 전세살이를 하게 된 주인공 '나'의 가족. 얼마 지나지 않아 1층에 살고 있는 다른 가족의 정체를 알게 된다. 원래는 이 집의 주인이었으나 어떤 사정에서인지 지금은 몰래 들어와 살아가고 있는 서백자 할머니와 그 손주들이 그들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내몰려서 변두리로 구석으로 내몰렸다는 면에서 두 가족은 서로를 측은해하고 묵인하다가 보살피기에 이른다. 시간이라는 씨실과 공간이라는 날실의 교점, 바로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온 우주와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 여기로 오기 위해 너무나 애써왔다. 지금 내가 맡는 공기, 들리는 소리, 바람 한 줄기, 온도, 목소리, 빛 ...모든 것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유혹했다. 작가는 시공간에 바로 이런 생명성을 부여한다. 시공간이 우리의 만남과 상처와 기대와 헤어짐을 어루만지고 있다고말이다. 한 때 살았던 모든 것도 결국 원자가 되고 입자가 되어 흩어진다. 그 흩어진 입자가 우리 주변에 떠다닌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러한 입자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개체로 나뉘어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모두가 하나의 몸으로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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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지고 어두운 오래된 단독 주택. 1층으로 통하는 내부계단이 합판으로 덮혀 있는 2층. 아빠가 고향인 장원으로 갑자기 떠나자 서울에 남기로 한 엄마가 선택한 집에는 어떤 비밀과 사연이 있을까? 다소 의혹에 찬 시선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금은 비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요. 가끔 관리인이 오긴 옵니다.“
기척을 내지 않고 1층에 몰래 사는 할머니와 어린 쌍둥이 종려와 자작. 전기와 가스도 없이 집 뒤에 이어진 산으로 드나들며 주변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그들의 모습, 자신의 집이었던 곳에 몰래 기거하는 그들의 사연이 애처롭다. 갑작스런 생활의 변화로 각자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엄마와 누나와 준이도 그랬던 것 같다. 그들을 지켜보고 존중해주는 순수한 마음, 그런 열린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혼란스러운 시기를 흘려보내는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한 개의 입자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는 두 개의 길을 동시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사람도 최상의 자유에 도달하면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 수 있을까? 그것은 ‘마음은 여기 있고, 몸은 저기 있는 상태’와도 비슷하다는 준의 설명이 묘하게 설득력 있다. 표지와 더불어 이층집과 뒷산, 꿩들, 블랙홀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다. |
| 항상 시간과 공간이라는 요소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내게 제목이 참 와닿았다. 새로 이사를 간 그 공간 속, 그 시간의 모습들! 내용이 좀 난해한 측면은 있으되 얼마든지 상상이 가능한 사실의 재현! 장원으로 가버린 아빠! 결국 입시라는 얽매임 속에 서울에 남았던 나! 그 옛날 서울에서 홀로 미대입시를 향해 독학하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낯선 송파 고을 아래 이방이었던 나! 새벽을 가르며 매일 뛰며 몸을 가다듬던 내가 그 공간 속 이방인임을 끊이없이 떠올렸었다. 결국 장원이 아닌 대구로 다시금 내려갔던 나! 그 시절의 시공간이 아련히 오버랩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