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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와 군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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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에서 1960년대를 규정짓는 것은 5.16군사쿠데타이다. 이는 비단 1960년대 뿐만 아니라 박정희가 철권을 휘둘렀던 유신독재시기는 물론,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사회를 배회하는 망령이 되었다. 권력욕에 눈이 먼 그들은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전 사회를 병영화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고, 그 여파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 짙게 베어있다.     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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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사에서 1960년대를 규정짓는 것은 5.16군사쿠데타이다. 이는 비단 1960년대 뿐만 아니라 박정희가 철권을 휘둘렀던 유신독재시기는 물론,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사회를 배회하는 망령이 되었다. 권력욕에 눈이 먼 그들은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전 사회를 병영화시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했고, 그 여파는 지금도 사회 곳곳에 짙게 베어있다.

 

  1960년대는 독재에 마침표를 찍는 4.19혁명으로 시작되었다. 흔히 4.19혁명은 학생들로부터 시작하여 학생들에 의해 혁명으로 발전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이런 학생들에 가려진 또 다른 주인공들이 있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이른바 도시빈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땅에서 도시빈민들이 형성된 것은 해방 후 타지에서 돌아온 귀환동포, 전쟁 중 월남한 피난민들, 그리고 농촌정책의 실패와 도시의 팽창에 따른 이촌향도 대열에 휩쓸린 사람들이었다. 도시로 몰려온 그들이 마주한 것은 당장 잘 곳과 먹을 것 이었다. 자연히 판잣집을 짓고, 일용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3.15부정선거 규탄시위나 4.19 시위 때 학생들을 도와 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피해자는 대부분이 이들 도시빈민이었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말 일 게다. 그럼에도 이들이 잊혀간 것은 이들의 과격한 행동을 파괴와 혼란으로 바라본 학생, 지식인 그리고 언론의 인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호응이 없었다면 결정적 위력을 가진 거대한 힘이 되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그 후에도 도시빈민은 계속 증가했다고 한다. 서울은 수시로 도시빈민 이주정책을 실시했고 그때마다 그들은 변두리로 밀려났다. 급기야 경기도 광주에 인공도시를 계획했지만 완공도 하기 전에 철거민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일어난 광주 철거민봉기는 이미 이때부터 잉태되고 있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는 삶의 터전을 잃고 변두리로 내몰리는 도시빈민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도 우리사회를 배회하는 망령들이 뿌린 씨앗이다.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이 맨 먼저 시작한 것은 통행금지였다. 미군정 때부터 시행되던 야간통행금지가 시간이 유동적이었다면, 1962 6월부터 시행된 통행금지는 자정부터 새벽4시까지 고정되어 실시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 사라지기까지 20년간 이 땅의 사람들을 옥죄는 도구가 되었다. 자정이 가까워오면 여기저기서 뛰는 발자국소리들, 곧이어 울리는 호각소리, 먼 과거의 일처럼 생각되어지지만 아직도 기억 속에서는 선명하기만 하다.

 

  가난한 자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죄악시하는 조국근대화의 깃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4.19혁명으로 탄생한 민주공화국을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으로 변화시킨 강력한 주문이기도 했다. 대학은 미완의 혁명 이후 변혁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의 한일협정 반대투쟁은 박정희 정권과 대항세력간에 치러질 긴 대립의 서막이기도 했다. 군사정권은 학생들의 데모와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며 대학생들을 내부의 적으로 규정해 나갔다. 군사정권의 독재체제가 강고해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각종 서적의 양산시대이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와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는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기 시작했고, 사상계의 영향을 받은 종합지들이 창간되었다. 가히 잡지의 번성시대였다. 그것은 이시기 지식과 교양의 획득이 주로 잡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사상계는 군부의 민정이양 번복을 계기로 군부독재세력과 날을 세우기 시작했고, 정권은 세무사찰 등을 통해 압력을 가했다. 또한 1960년대는 선데이서울로 대표되는 황색 저널리즘 주간지가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권력의 지원을 받는 이들 주간지와의 경쟁으로 경영이 악화된 사상계는 학생과 지식인들의 무한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 오적 필화사건으로 폐간된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열정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을 통해 지펴지기도 했다. 또한 1960년대는 영화가 모든 계층과 세대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대중문화로 자리잡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은 기업화 정책으로 소수의 영화사들이 제작을 장악하도록 지원하였다. 그것이 통제와 관리에 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영화산업은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하여 전시영화나 반공영화의 제작에 열을 올린다.

 

  1964 8, 한국군이 월남에 파병되었다. 처음은 의료부대였지만 곧 전투부대로 확대되었다. 한국군의 월남파병은 미국의 요구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 아니라 한국 정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사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비대해진 한국군 감축에 대한 요구를 무마하고 경제적 혜택을 빌미로 서방의 다른 나라들이 다 파병을 거부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군이 파월되어 있는 동안 베트남과 한국은 동일한 전장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에서 일상의 일부가 되었으며, 박정희는 베트남과 한국이 전방과 후방으로써 일체감을 갖도록 조성하였다. 당연히 한국사회의 군사화, 병영화가 가속화되었다. 징병제가 강화되고,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으며, 주민등록제도가 실시되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교련교육이 실시되었고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다. 이중 주민등록제도는 징병제와 더불어 한국사회가 병영사회로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감시와 통제시스템이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주민등록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제도로 우리사회가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또한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지금의 장년세대의 의식을 체제순응적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에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아직도 머리 속에는 그대로 박혀있다. 나도 내가 왜 태어났는지를 모르는데 국가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참내~

 

  이 무렵 북한과 동아시아는 어떠했을까? 1960년대 북한은 인민민주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체제로의 이행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고투하던 시기라고 한다. 1950년대 말 천리마운동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북한 공산당은 1960년대에 들어서자 사회주의 사회의 완성과 공산주의사회로의 진입을 위한 인민의식개조에 중점을 둔 천리마작업반운동을 전개했다. 이로써 북한의 인민들은 집단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근로인민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그러나 중,소와의 관계변화로 인한 대내외적 고립과 남북간 군사갈등의 고조로 인해 채택한 군사-경제 병진노선으로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렸다. 그 결과 체제의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내외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북한은 오직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체제유지가 강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일본은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특수에 힘입어 고도의 경제성장을 구가하며 미국, 소련에 이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혼란 속으로 빠져든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창비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조건과 행위가 맛 물리며 역사가 창조되는 공간으로서의 생활문화영역, 일상의 생활문화를 통해 시대의 특성을 불어넣는 인간들의 행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주체의 등장과 변화를 풍부하게 보여주고자 하는데 기획의도'가 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세분하여 생활문화사를 중심으로 한국현대사를 성찰하고 있는 셈이다.

 

  1960년대라면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시기이다. 먼 과거의 일처럼 생각되어지지만 불과 50년 전의 일이다. 나 역시 박정희가 아니면 나라가 망하는 걸로 알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의 현대사를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생활문화를 통해 다시 한번 알아가면서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본다. 작금의 사태에서 나타나는 반동적인 것들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그들이 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지 알 것도 같다.

k*****1 2017.02.15. 신고 공감 6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