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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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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읽고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로, 일찌감치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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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읽고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로, 일찌감치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그녀의 작품이 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소설가가 왜 굳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새롭고도 위태한 도전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805월 광주는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광주 태생으로서의 한강은,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녀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에 담아내려 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책을 읽으니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은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을 달리 하여 805월의 광주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 평상시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이를 재조명한다. 무엇보다도, 현장감 있는 묘사와 살아있는 듯한 표현은 책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이 뚜렷하면서도 가슴이 아린 것들로 가득하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41년전 광주의 봄을, 작가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자에게 박진감과 감동,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명저를 남겼다. 나라를 위해 두렵고도 장엄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하나둘씩 쓰러지던 시민들의 존재만 잊지 않는다면, 이 책은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귀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17.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문단을 읽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한번도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이것은 열사들이 목숨바쳐 지켜내려한 나라가 결국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은숙 누나의 명쾌한 대답이다.

17.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명징한 표현에는 작가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듯했다. ‘은숙 누나가 말했듯이, 당시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권력욕에 눈이 먼 장교의 졸개들이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군인들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애국열사들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더욱 부각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76.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웠다.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그 순간 억센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유인물을 뺏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냈다.

학생들의 강한 민주화 요구에도 사복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탄압하였다. 이 장면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며, 문득 KBS 대화의 희열 2이라는 토크쇼 8화에서 80서울의 봄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밝히던 유시민 작가가 생각났다.

근데 11시 반쯤인가 됐는데 라디오에서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딱 발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왔구나. 이제는 덮치겠구나. 이제는 도망가야 해.’ 그래서 우리가 한 대엿 명 정도 있었는데, 남자들, ‘, 도망가자. 이제 여기도 들어올 거야.’ 그러고 문을 타 여니까 밖에서 쇠사슬을 뜯고 있는 거야. (중략) 근데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중략) ‘여기도 왔어요,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고 끊고 나오는데 딱 잡혔지. (중략) 그냥 이단 옆차기 바로 날아오고, 권총 딱 대고. ‘너 누구야. 이름 뭐야.’ 그냥 유시민이라 그랬지, 뭐라 그래.”

이 소설과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는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일이 전라남도 광주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졌던 것이 805월이었다.

제가 스무살 때 학생운동 이런 걸 하고, 유인물을 뿌리러 다니고, 데모를 하고, 이렇게 시작했을 때, 저는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중략) 그때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면 못 해.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근데 왜 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면, 너무 못나 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중략) 못 이길 거 같은데, ‘에이 못 이겨.’ 그러고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 거야. (중략) 세상을 이렇게 해서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한다고요. 나를 지키려고요. 내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비천하다, 비겁하다 이런 느낌을 안 가지고 살고 싶은 거지. 아니, 내 책임이 아니에요, 유신 체제 이런 거. 나는 그냥 그런 세상에 왔을 뿐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근데, 그냥 가면 그런 감정을 계속 느낄 거 같애, 자기 비하의 감정을.”

군부독재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에 쓰여진 대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변모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공을 민주화 운동에 몸소 뛰어드셨던 분들께 돌린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 이유

 

114.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중략) /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9년간 학교에서 배운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 정권이 10.26 사태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 이듬해 1980518일 광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197912.12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의 주도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참극이다. 이 말만 들으면 80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잘 요약해 놓은 듯하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광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제공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다면, ‘19805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봉기한 민주화 운동으로, 이때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대한 민중의 한 지체로서 참여했으며, 이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시민 불복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소설의 본문을 통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한 개인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개인은 어찌 보면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일지라도, 그들이 모여 하나가 되었을 때 창조해내는 시너지 효과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정의를 례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사회의 변혁이나 개혁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 그렇기에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렇기에 위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더러 있다. 가령, 한강이 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감히 추측컨대,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나 생활 속 행동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한강이라는 사람이 805월 고향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또 그 비극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미약하면서도 강인했는지를 알리고 싶었기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무거운 시대극으로만 치부되어 고리타분하고 읽기 힘든 책이 될 수도 있었으나,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과 묘사력은 이 책을 논픽션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례로, 2검은 숨에서 는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혼이 되어 묘사한다.

57.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이 장면에서 한강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상상력에 감동받았다. 죽은 육의 살아있는 령이 자신의 주검을 빠져나와 그것을 보면서 본인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보통 소설의 전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 앞서 2문단과 3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근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였고, 개인이 섣불리 하기 어려운 행동을 민중 속에서는 그들 각자가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생생히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그러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광주의 모습과 개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퍽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플 정도였다.

평소에 당신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이 소설은 당신을 푹 빠지게 만들만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시대극으로서도, 소설 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에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표현이 다소 거칠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소설의 사실성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어린 새에서 라고 불리는 주인공 동호는 군인의 총에 맞아 중학교 3학년 16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임에 틀림없다. 2검은 숨에서 서술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요절한 청년으로 불쌍히 여겨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광주의 민주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누구보다도 강한 양심과 행동력을 갖추었던, 우리나라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그런 그들이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한 줄기의 빛이 되어’.

g********k 2021.10.02. 신고 공감 10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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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에 구천을 떠돌지 않게[소년이 온다]
"억울함에 구천을 떠돌지 않게[소년이 온다]" 내용보기
소설은 몰입이 잘 되는 장르다. 감정이입이 잘 된다. 그렇다보니 문학 작품 중 어둡거나 폭력적인 분위기의 작품은 꺼리는 편이다. 되도록이면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작품, 따스함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작품을 편식하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다룬 작품이나 범죄 관련 작품은 피하곤 했다. 읽지 않겠다, 라는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막상 다음 책을 골라 들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억울함에 구천을 떠돌지 않게[소년이 온다]" 내용보기

소설은 몰입이 잘 되는 장르다. 감정이입이 잘 된다. 그렇다보니 문학 작품 중 어둡거나 폭력적인 분위기의 작품은 꺼리는 편이다. 되도록이면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작품, 따스함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작품을 편식하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다룬 작품이나 범죄 관련 작품은 피하곤 했다. 읽지 않겠다, 라는 의지를 가진 것은 아니다. 막상 다음 책을 골라 들어야 하는 시점이 오면 어느새 내 손에는 밝고 경쾌할 듯해 보이는 책이 잡혀있다. 특히 사실을 기반으로 한 역사 소설은 어두운 시절을 배경으로 할수록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 싫어 더욱 피하고 싶다. 이것도 외면이라면 외면일 수 있겠다.

 

그런 내가, 한강의 신작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5.18을 배경으로 한 소설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 소설의 출간 소식을 접하자 마자 구매를 했다. 정확한 이유는 없다. 그래야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 마음 깊은 곳의 부채감이 아주 조금이라도 상쇄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왜 부채감을 갖고 있는가.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졌다는 것이 양심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5.18을 다룬 소설 『꽃의 나라』(한창훈)를 읽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분노를 기억한다. 전혀 반대 지역에 사는, 역사의 흐름 선상에서 나의 인생이 조금도 겹치는 부분이 없는 사건이건만, 해마다 5월이 되면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마치 내 손으로 그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숨어버리고 싶고 부끄러웠으며 아팠다. 쉬쉬하던 5.18을 어느 정도 양지로 끌어올렸을 만큼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해의 광주는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아직도 이 사건을 북한의 공작에 의한 좌파 세력의 폭도때문이었다고 하는 말이 들린다.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나기보다 심장이 쿵 내려 앉는 것 같다. 누가 들을새라 입을 먼저 막아버리고 싶다. 그때의 광주를 지나온 사람들이 듣게 될까봐 가슴이 콩콩 뛴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로 돌아와서, 이 소설을 읽다 심호흡을 위해 책을 몇 번씩 덮었다. 안 그러면 머릿 속으로 훤히 그려지는 장면에 압도되어 총알이 내 머리를 관통하고 칼집이 내 뱃속을 휘저어 내장이 쏟아질 것 같았다.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아 피를 콸콸 쏟아내고 발가벗긴 내 몸이 그들의 손에 유린되는 것 같았다. 일곱 명이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들 각자의 이야기는 돌고 돌아 결국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1. 너에게 가자.(동호)

정대가 온다. 소년이 온다. 또다른 소년에게로. 동호는 정대의 죽음을 목격했다. 정대의 손을 놓치고 혼자 도망쳤다는 죄책감에 동호는 열여섯 까까머리 중학생임에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시민군의 허드렛일을 돕고 실려오는 시신들의 신상을 정리한다. 실은 정대를 기다린다. 그리고 정대 누나 정미를 기다린다. 사춘기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첫 사랑, 정미 누나는 어디로 갔을까. 정대는 어디로 갔을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광주는 지금, 피바다다. 광주 시민은 과녘이다. 공수부대는 무차별적이며 가차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라는 왜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가. 심지어 임산부에게도 총을 쏘았을까. 왜 죽였을까?

 

2. 왜 죽였지,(정대)

넋이 되었지만 형체도 없는 몸뚱아리지만, 왜 죽였을까. '너에게 가자' 하는 순간 한꺼번에 숨들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 너는 죽었다. 너도...... 죽었다.

 

3. 다만 너를 기억했다.(은숙)

불 하나 켜지지 않는 캄캄한 도시에서 울려퍼진 총성은, 너를 떠올리게 했다. 난간을 붙들고 떨고 있던 까까머리 동호. 너를 챙겼어야 했다. 은숙은 고작 세 살 어린 동호를 평생 짊어지고 살아간다. 끝까지 그곳에 남지 않았음을, 지금 혼자 살아있음이 죄스럽다. 은숙의 삶은 장례식이 되었다.

 

4.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시민군)

양심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죽음은 각오했지만 내 손으로 남을 죽이진 못했다. 그들이 시민을 죽이던 군인이었음에도, 나에게 총이 있었음에도, 성큼성큼 다가오는 군인들을 향해, 결국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쐈다. 그것도 시민군들 중 가장 어린 중고등학생을 향해, 그것도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일렬로 걸어오는 아이들을 향해. 살아있다는 것이 이렇게 치욕이 될 줄은.

 

5.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선주)

그때 동호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더라면, 왜 아직 나에게 살아있는지 확인하러 오지 않을텐데. 학살과 고문 이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다. 선주는 껍데기만 남았다. 계엄군이 들이닥칠 것이라던 마지막 저항의 밤에 트럭을 타고 메가폰으로 '불을 켜주십시오, 함께 나와 싸워주십시오.'를 외쳤다. 그리고, 이후의 삶은 고통 그 자체가 되었다. 몸을 증오한다. 도망간다. 더 안전한 곳으로. 그런데 자꾸만 따라온다. "누구야, 누가 오는거야."  

소.년.이. 온.다.

 

6. 엄마 저쪽으로 가,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꽃 핀 쪽으로(엄마)

동호의 유언이다. 막둥이 동호. 그늘을 싫어했던 동호. 내 손을 이끌고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다며. 그런 우리 막둥이가. 죽었다. 몇 십년이 지나 할머니가 되었지만 얼마 전엔 동호의 뒷 모습을 보았다. 동호 따라 나섰건만 이름이 안불러진다. 바로 뒤에서 부르면 분명이 돌아볼 우리 막둥인데. 결국, 막둥이는 사라졌다.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7.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윤)

동호의 둘째 형님의 부탁이다. 윤은 유년의 열 살을 보낸 그 집을 떠올린다. 윤의 집은 동호네에게 팔렸다. 그리고 윤은 3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았다. 그런데 열살 때를 기억한다. 서울집에서 어른들이 나직나직 나누던 그 해의 광주 이야기를. 그리고 몰래 보았다. 광주의 이야기가 담긴 참혹한 사진들을. 그리고 쓰기로 했다. 80년 5월 광주에 대해. 그때의 기억을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기억을 나눠달라고 했다. 남은 삶을 장례식 치루듯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날의 광주를 말해달라고 읍소했다. 윤은 어느새 80년 광주 현장에 갇혔다. 군인들이 자신을 쫓아오고 총검을 휘두른다. 다행히 꿈이다. 꿈이었다. 2013년에 1980년 광주를 드나든다. 고통이 손가락 끝에서 심장을 조여온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213p)

 

 

이 소설을 읽으며 나에게 전해질 고통의 강도에 대해 미리 상상했다. 믿고 싶지 않을 사실들에게 대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미리 마음을 단련하고 소설 읽기에 임하고 싶었다. 초연한 마음으로 80년 광주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읽어내려가리라 다짐했었다. 실은 자신 없었다. 그리고 한 두 장 넘기지도 못한 채 단단히 먹었던 마음들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미 고통의 서막은 시작되고 있었고 차라리 아파하고 미안해하고 힘들어 해버리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끝까지 읽어나갔다. 이 소설은 소년을 중심에 놓고 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을 서술해나간다. 그 점이 독자를 더 힘들게 할 것 같다. 그 어린 것들이 총을 들고 벌벌 떨면서도 나서야 했던 여러 사연들의 사열은 소영웅주의도 아니었고 과잉 공명심의 발로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한강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문체는 아마도 시적일 것 같다. 이야기 중심의 서사라기 보다 심리적 표현에 치중한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심리학서 느낌이 강하다. 그러면서 큰 줄기의 서사가 힘이 있다. 비록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이 소설을 읽음으써 일말의 부채감을 내려놓는다. 나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나라도 그렇게 했을까. 인간의 잔학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더 이상 알기 싫다. 이미 역사 속 한 마디에 있는 5. 18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기에. 그러나 우리는 고작, 이런 소설을 읽으며 느낄 비현실적인 고통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이러한 책을 사서 읽는 것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 잘했어. 읽기 잘 했어. 그리고, 절대 잊지마. 그날의 광주를.

 

 



YES마니아 : 로얄 g********s 2014.06.26. 신고 공감 87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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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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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표지의 아름다운 꽃들과 감수성 넘치는 제목 때문에 소나기 같은 성장소설인가 했다. 크게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한강작가의 저작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첫 장을 펴자마자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슬픈 기억을 담담히 묘사한다. 내가 동호였다면, 내가 그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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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서점에서 이 책을 접했을 때, 표지의 아름다운 꽃들과 감수성 넘치는 제목 때문에 소나기 같은 성장소설인가 했다. 크게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한강작가의 저작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첫 장을 펴자마자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은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슬픈 기억을 담담히 묘사한다. 내가 동호였다면, 내가 그곳의 시민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 여러 차례 반문해 보았지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잊지 말아야 할 슬픈 역사를 문학의 형태로 남겨주신 작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부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공유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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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사람들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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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내려오면서 한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를 가지고 왔다. 기차 안에서도 오후 시간 카페에서도 숙소에서도 이 책을 읽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데 ‘작가’는 정말 글을 쓰는 게 다르구나를 느끼며 문체에 감탄하며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다.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플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소설을 읽으며 계엄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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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내려오면서 한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를 가지고 왔다. 기차 안에서도 오후 시간 카페에서도 숙소에서도 이 책을 읽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데 ‘작가’는 정말 글을 쓰는 게 다르구나를 느끼며 문체에 감탄하며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다.

 5.18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플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으나 소설을 읽으며 계엄군의 잔인성에 인상이 찌푸려질 때가 많았다. 그들이 인간의 생명을 짓누르면서 보이는 무던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매 장이 인상깊었지만 그 중에서 나의 마음 속에 가장 남은 문장은 책 95쪽에 있는 다음 문장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이 무엇인가.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질문이다.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잘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그저 오늘 사랑하는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싶고 재밌는 프로를 보면서 웃고 싶고 단 과일을 먹고 싶고 자녀의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 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자라나는 것을 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통의 일상을 함께 하고 싶은 것. 그것이 인간이 하고 싶고 보고 싶은 것 아닌가. 내가 그렇다면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그런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고 싶다면, 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내가 살고 싶다면, 내가 죽기 싫다면, 내가 총에 의해, 칼에 의해 죽고 싶지 않다면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인간인 다른 사람들을 마치 다른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그들은 죽어도 되는 것처럼, 고문받고 찢기고 베이고 피가 나도 그리고 그 피가 멈추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상대방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처럼.

매 장이 슬펐지만 마지막 6장을 읽을 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여수의 한 책방에서, 조용한 그 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 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직 자녀가 없지만, 그래서 그 아픔을 미처 함께 헤아릴 수 없음에 송구한 마음 뿐이지만 자녀를 가져본 적도 없는 내가 생각해도 마음이 미어졌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는 그 슬픔. 살아있는 동안 날마다 가슴에 자녀를 묻어야 하는 그 아픔, 후회, 눈물. 꽃 피는 쪽으로 걷자고 하던 그 예쁜 아이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음에 나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이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볼 때 상대방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기억하고 싶다. 내가 받고 싶은 따뜻함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싶고 내가 받고 싶은 존중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싶다. 상대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니까.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방도 원할테니까.

그리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권력, 명예, 내 욕망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다. 사람의 생명이다. 나의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쳐야 한다면, 내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맞다. 내가 내려놓아서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다면, 죽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내려놓으면 된다. 그러면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생명이 고귀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도 고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총칼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신 수많은 분들의 희생과 아픔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게 해주신 그 모든 발걸음에, 그 희생에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g********1 2024.11.01. 신고 공감 59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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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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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그곳에 남았을까    친구를 찾아 나선 중학생 소년이 있다. 시체가 안치된 곳이면 어김없이 들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소년은 도청 민원 봉사실에 들렀다. 그곳 복도에 죽은 이들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었기에 이들은 병원이 아니라 민원 봉사실 복도에 누워 있는 것일까? 중학교 3학년이라는 열여섯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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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년이 온다』

 

 

 

소년은 왜 그곳에 남았을까 

 

친구를 찾아 나선 중학생 소년이 있다. 시체가 안치된 곳이면 어김없이 들렀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 소년은 도청 민원 봉사실에 들렀다. 그곳 복도에 죽은 이들이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었기에 이들은 병원이 아니라 민원 봉사실 복도에 누워 있는 것일까? 중학교 3학년이라는 열여섯 소년은 왜 이런 곳에서 (죽은) 친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피비린내가 봉사실 복도를 덮고 있다. 복도 벽을 따라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누워 있다. 소년은 친구를 찾기 위해 그 사람들(사실은 시체인)을 들여다본다. 차근차근 살피고 싶은데 오래 들여다볼 수가 없다. 저리 끔찍한 모습을 한 존재가 한때는 숨을 쉬고 말을 하는 생명이었다니.

 

교복을 입은 누나가 손이 너무 모자라다며 소년에게 도움을 청한다. 천을 잘라 복도에 누운 사람들, 그러니까 시체들을 덮는 일이다. 여고 3학년인 은숙, 양장점 미싱사인 선주와 한 조가 되어 소년은 총에 맞고, 칼에 찔려 몸 곳곳이 허물어진 시체들을 수습했다. 죽은 이들의 성별과 나이, 입은 옷과 신발 등을 장부에 기록하고 하나하나 번호를 매겼다. 이 기록을 보고 사람들은 실종된 가족들을 찾았다. 시신을 찾은 가족들이 간단하게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과정까지 소년은 장부에 기록했다.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을 태극기로 감싸고 그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가족들이 소년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바로 나라가 아니던가.

 

은숙이 소년의 물음에 답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17) 권력을 잡기 위해 시민들을 죽인 군인들은 결코 나라가 아니라고 은숙은 말한다. 그럼 나라는 무엇일까? 당연히 국민들을 지키는 게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군인들을 보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을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군인들에게 맞선 시민들은 따라서 나라와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못된 권력자와 맞서 싸우는 게 된다. 그러니 죽은 이들의 몸을 태극기로 감싸고, 뜨거운 마음으로 애국가를 부를 수밖에.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시신들은 이제 상무관으로 모여졌다. 말없이 누워 있는 그들을 보며 소년은 임종한 순간의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소년은 그때 분명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빠져 나가는 어린 새 같은 것을 보았다. 지금 이곳에 누워 있는 저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어린 새가 빠져 나갔을까? 원래대로라면 소년은 지난주에 중간고사를 봐야 했다. 시험을 마친 일요일에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인 정대와 배드민턴을 쳤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보고, 친구와 더불어 운동을 해야 할 소년은 왜 시신들이 널려 있는 이곳에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는 사회를 살고 있어서일까? 소년이 그런 사회를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누가 소년을 이런 끔찍한 상황에 빠뜨린 것일까?

 

계엄군이 오늘 밤 도청을 습격할 것이라는 소식이 도청에 퍼졌다. 은숙은 소년에게 집에 가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도청에 남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시간을 산 날보다 살 날이 많이 남은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다. 도청에 남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도청에 남았다. 친구를 찾아 길을 나선 소년 또한 도청에 남았다. 소년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광장에서 마지막으로 정대를 보았다. 소년과 정대는 손을 맞잡고 뛰다가 귀를 찢는 총소리에 놀라 뒤돌아 뛰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는 총을 맞았다. 그런 정대를 놔두고 소년은 계속 달렸다. 빌딩 옥상에서 총을 쏴대는 저격수가 무서워 소년은 정대에게 가지 못했다.

 

그날 밤, 소년의 집에 세 들어 살던 정대는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정대 누나인 정미도 돌아오지 않았다. 공장에 다니는 정미는 동생을 대학 보낸 후에 자신 또한 대학에 가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년이 정대를 찾아 나선 게.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지만, 끝내 소년은 친구를 찾지 못했다. 그 대신 소년은 죽은 이들이 모인 곳에서 묵묵히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도청을 찾아와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 손을 뿌리치고 끝내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워지는 곳에 남았다. 소년은 엄마에게 여섯 시가 되면 도청의 문이 닫힌다고 했다. 문이 닫히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했다. 엄마는 안심을 하고 집으로 갔다. 엄마와 소년이 만난 마지막 날이었다.

 

소년은 왜 이 날 도청에 남았을까? 소년은 그날 죽은 이가 정대가 아니라 형들이었다고 해도, 아버지였다고 해도, 엄마였다고 해도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였다고 해도 역시 달아났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생명의 본능이니까.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45)라고 거듭 다짐한다. 저격수의 총에 맞는 게 두려워 친구를 외면한 그 상황을 가슴 깊이 묻은 채 소년은 죽음이 도사린 도청에 끝까지 남았다. 자신까지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소년은 꿋꿋이 도청에 남았다. 죽음으로 양심을 지킨 이 소년의 결단에 그 누가 가타부타 말을 할 수 있을까 

 

열여섯 소년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외쳤다. 친구가 왜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어야 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왜 시민들을 향해 총을 쐈는지 소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상무관에 놓인 저 끔찍한 주검들을 볼 때마다 소년은 가슴이 한없이 미어진다.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소년을 도청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엄마 또한 소년을 도청 밖에 있는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도 소년은 도청에 남았다. 이것만이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친구의 죽음을 외면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이 소설의 2장인 검은 숨에서 소년이 찾는 친구(정대)의 행방을 밝히고 있다. 총에 맞아 죽은 정대는 어딘지도 모를 곳에 버려졌다. 수많은 시체들이 탑을 이룬 곳에서 정대는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51)라고 묻는다. 그는 한편으로 자신을 죽인 이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 그들의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 왜 자기를 총으로 쏘았느냐고, 왜 자기를 죽였느냐고 묻고 싶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이 아이의 깊은 슬픔을 그 누가 치유할 수 있을까? 죽은 이는 말이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살아 있는 우리가 그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어떻게 해야 죽은 이들이 내뱉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말을 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를 기억하지 않으면 죽는 자는 결코 말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 날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죽은 이들의 한을 풀려면 산 자들이 똑똑히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어떻게 그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까? 산 자는 어떻게든 그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거기서 벗어나려 할수록 죽은 이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자기들을 기억해 달라고 한사코 매달린다.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

 

광주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사는 게 된다. 3일곱 개의 뺨에 나오는 은숙이 그렇고, 5밤의 눈동자에 나오는 선주가 그렇다. 그들은 소년과 더불어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했지만 소년과 함께 죽지는 못했다. 어린 아이가 죽은 자리에서 그들은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그들은 뼈저리게 느낀다. 소년이 죽은 자리에서 그들도 죽어야 했다. 그러면 살아서 겪는 이 아픔을 저 멀리로 내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은 살아남았다. 몸만 살아남은 게 아니다. 기억도 살아남았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 끔찍한 기억이 곧 삶이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인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근무하는 은숙은 서적을 검열하는 사내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았다. 요철이 없는 얼굴에 입술이 얇은 사내는 수배 중인 번역자가 어디에 있는지 대라고 했다. 은숙은 보름 전 교정지를 보여주기 위해 번역자를 만났을 뿐이다. 사내는 이를 빌미 삼아 은숙의 뺨을 일곱 대나 때린다. 그녀는 뺨을 때린 사내에게 맞서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어찌 하면 이 순간을 잊을까 생각한다. 다음 날, 부풀어 오른 뺨을 목도리로 가리고 은숙은 출간 예정인 희곡집을 받기 위해 검열과에 들른다. 가제본 여기저기에 먹줄이 그어져 있다. 먹줄이 그어진 부분을 빼면 책으로 낼 수도 없을뿐더러 공연을 할 수도 없다.

 

광주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세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죽은 자는 여전히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고, 산 자 또한 여전히 깊은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살고 있다. 열아홉 살의 여름이 오기 전만 해도 그녀는 사과처럼 볼이 붉은 삶을 살았다. 끔찍한 여름을 보낸 후 은숙은 이십 대의 청춘을 즐기기보다 어서 빨리 늙기를 바랐다. 늙어서 그 여름에 일어난 기억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었다. 빨리 늙기를 소망하는 여자에게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흐른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아픔은 도무지 가라앉지를 않는다. 사내에게 맞은 뺨이야 시간이 흐르면 아물 테지만, 그 여름 이후로 텅 비어버린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채워질 줄 모른다.

 

은숙은 말한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87). 그날 밤 열한 시 경 희생자를 파악하고 시신 관리를 총괄하는 ()진수가 총을 맨 채로 여자들이 모인 방을 찾았다. 그는 여자들을 향해 세 명만 남아달라고 했다. 아침까지 가두방송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죽는 게 두렵기도 했다. 끔찍하게 죽은 이들을 많이 봤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남기로 한 세 여자 중에는 같이 시신을 수습하던 선주도 있었다. 진수는 도청을 나서 집으로 가는 여자들을 향해 사람들이 나오도록 해달라고 외쳤다. 도청 앞에 시민들이 꽉 차면 군인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전남대 부속병원의 한 병실에서 은숙은 메가폰을 쥔 여자의 가냘픈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라고도 외쳤다. 그 소리가 지나간 자리를 수천 사람이 내딛는 군홧발 소리가 지나갔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은숙은 귀를 막지도, 눈을 감지도, 고개를 젓지도, 신음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녀는 다만 같이 나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난 동호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온몸을 떨면서 동호에게 말했다. 지금 나가야 살 수 있다고. 그렇게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 날 이후 은숙은 죽은 이들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라는 연극 속 대사가 곧 그 날 이후 그녀가 살아온 삶이었다. 장례식으로서 삶이란 무엇일까? 죽은 이와 사는 삶 말고 달리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연극 무대에 오른 소년을 보고서도 동호를 떠올릴 만큼 그녀는 그 날의 현장에 깊이 매여 있다. 죽은 자를 애도해야 산 자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 법이다. 자기 삶을 장례식으로 삼은 여자가 어떻게 마음 편히 죽은 자를 저승으로 보낼 수 있을까? 그녀는 죽은 자를 가슴에 품음으로써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살아남은 게 끔찍한 비극이 되는 상황이 참으로 애달프지 않은가.

 

은숙만 그런 게 아니다. 4쇠와 피에 나오는 또한 살아남은 자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힘겹게 생을 붙들고 있다. 도청에서 살아남은 는 곧바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105) 몸 속 깊이 체험했다. 21조로 나오는 한 끼 식사를 상대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도청에서 함께 싸운 동지(김진수)를 외면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김진수는 자살을 했다. ‘는 광주의 그 현장을 증언해 달라는 연구자에게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외친다. 추체험은 체험이 아니라는 것. 온몸을 파고드는 그 지독한 아픔은 오로지 그것을 겪어본 이들만 알 수 있다는 것.

 

는 스무 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집으로 보낸다는 지도부의 지침을 바로 그들 자신이 거부했다고 고백한다. 살 날이 많이 남은 그들은 왜 죽음의 광장에 남은 것일까? ‘는 양심을 이야기한다. 양심이란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116)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죽기 위해 도청에 남은 게 아니다.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 느낌을 실천하기 위해 그들은 도청에 남아 기꺼이 죽음을 맞았다. 계엄군이 도청에 다다를 즈음 김진수는 어린 학생들을 향해 항복하라고 외쳤다. 총을 버리고 살아남으라고 외쳤다. 자신은 목숨을 걸면서도 다른 이는 살라고 외치는 이 숭고한 마음이 양심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고문자는 무엇보다 사람들 마음 깊이 자리한 양심을 깨뜨리려고 했다. 식판에 담긴 한줌의 식사를 나눠 먹으면서 와 김진수는 짐승처럼 싸우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아야 했다. 식욕만큼 강렬한 욕망이 어디에 있을까? 실제로 어떤 이들은 더 많이 먹으려고 으르렁대기도 했다. 이 장면을 본 고문자가 얼굴에 득의의 미소를 짓는 순간, 한 아이가 그들 사이에 몸을 밀어 넣으며 , 우리는…… , 죽을 가, 각오를 했었잖아요.(119)라고 더듬대며 말했다. 고문자는 양심을 말하는 이들을 짐승으로 만들려고 했다. 한 줌의 음식 앞에서 그들이 외치는 양심이 덧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바랐다.

 

밥 앞에서 양심이 무너지려는 찰나 한 아이(이름이 김영재이다)죽을 각오를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는 김진수의 공허한 눈과 마주쳤다. 영재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외삼촌의 목공소에서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두 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이 되었다. 도청을 사수하는 마지막 새벽 외사촌형은 죽었고 영재는 잡혀서 이곳까지 들어왔다. 외사촌이 죽은 이야기를 하면서는 울지 않던 아이가 지금 뭐가 가장 먹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눈물을 흘렸다. 카스테라가 먹고 싶다던 아이는 이후 십 년 동안 여섯 차례 손목을 그었다. 사람을 죽일 뻔했다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처지가 되었다. ‘는 영재의 얘기를 김진수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그 김진수마저도 자살을 했다.

 

김진수는 사진 한 장을 남겼다. 피투성이 도청 앞마당에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널려 있는 사진이었다. 연구자는 에게 김진수가 이 사진을 남긴 이유를 묻는다. ‘는 무슨 권리로 자신에게 그것을 묻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는 연구자를 향해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거냐고?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이냐고?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동족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던가.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은 더 많은 포상금을 타기 위해 가차 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 죄 없는 시민들이 죽어간 자리에서 살인을 명령한 권력자들은 떵떵거리며 잘 살았다.

 

는 말한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이라는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135)라고. 그리고 묻는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같은 쪽)라고. 날마다 싸우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인가? 오로지 죽음으로만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이 사람에게 당신은 또 어떤 말을 들려줄 것인가? 살아남아서 슬픈 사람들이 던지는 이 질문을 그저 망연히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으로 서글프기만 하다.

 

 

 

o*****s 2020.09.11. 신고 공감 2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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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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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많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잡아 본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많은’이라는 형용사에 묻히기에는 한 명, 한 명, 안타까운 죽음. 내가 뭘 했다고 죽어. 여기서 잔일 거든 거밖에 없는데.     (p. 30)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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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많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 다시 마음을 잡아 본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많은’이라는 형용사에 묻히기에는 한 명, 한 명, 안타까운 죽음.

 

내가 뭘 했다고 죽어. 여기서 잔일 거든 거밖에 없는데.     (p. 30)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p. 51)

 

소년이 온다. 한강은 소년이 자신에게 오게 된 과정을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에서 알리고 있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곳의 바닥이 파헤쳐지기 전에 왔어야 했다. 공사 중인 도청 건물 바깥으로 가림막이 설치되기 전에 왔어야 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은행나무들의 상당수가 뽑혀나가고, 백오십년 된 회화나무가 말라 죽기 전에 왔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왔다. 어쩔 수 없다.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해가 질 때까지 여기 있을 것이다. 소년의 얼굴이 또렷해질 때까지.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안 보이는 마룻장 위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어른어른 비칠 때까지.     (p. 200)

 

소년은 2인칭 주어로 처음 등장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1인칭 주어인 엄마의 청자로 나온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만나면 우리가 된다. 한강은 1980년 5월 광주 사건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날 총을 들었던 선주는 자신을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스스로가 용감하지도, 강하지도 않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p. 175) 하지만 선주는 용감했고, 강했다. 그러니 성희 언니의 말대로 희생자가 되어선 안 된다.(p. 175) 우리들을 희생자라고 부르도록 놔둬선 안 돼.(p. 175) 그러나 기억은 그들을 좀먹는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겁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 134)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또 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p. 135)

 

감히 1980년 5월 광주 사건을 우리의 이야기로 귀결하고는, 좌불안석이다. 어찌 그들의 아픔을 헤아릴수 있겠는가.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p. 207)

 

광주는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된다. 살해자는 여전히 광주를 ‘빨갱이’ 같은 틀에 가두어 그럴 만해서 그랬다, 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장에 아직도 속는다. 만약 자신이, 자신의 가족, 친구가 광주에 있었다면 속을까. 더이상 속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는 게 어떨까. 소년의 방문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다시는 소년이 이와 같은 죽음을 맞이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게 된다. 그러니 속지 않을 수밖에.

 

e******i 2019.02.08. 신고 공감 2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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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시대의 양심을. - 소년이 온다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시대의 양심을. - 소년이 온다" 내용보기
요즘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다. 영화를 보면 첫 시작 인트로의 임팩트가 전체 영화의 흐름을 좌우한다. 소설은 내겐 다름 느낌이다. 사실 자주 본다고 할 수가 없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고구려, 계속 나오는 담덕, 사람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하는 가끔 야속한 김훈의 소설이 최근에 본 것 같다. 읽으며 상상해 보는 것이 너무 잘 맞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가끔 도전하는 세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시대의 양심을. - 소년이 온다" 내용보기

 요즘 볼만한 영화가 많지 않다. 영화를 보면 첫 시작 인트로의 임팩트가 전체 영화의 흐름을 좌우한다. 소설은 내겐 다름 느낌이다. 사실 자주 본다고 할 수가 없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고구려, 계속 나오는 담덕, 사람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하는 가끔 야속한 김훈의 소설이 최근에 본 것 같다. 읽으며 상상해 보는 것이 너무 잘 맞으면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가끔 도전하는 세계문학이란 것도 수준이 일천해서 인지.. 이 책을 보고 나면 읽다가 덮어두었던 윌든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이 책은 오래전 무슨 내용일까? 호기심이 잠시 있었다.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 10년이 넘게 지났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밋밋한 그림을 설명하는 것처럼, 건조한 글 속에서 아주 입체적인 실루엣을 담아낸 첫 단락을 여러 번 읽게 된다. 공기 속 보이지 않은 물방울들이 세상의 보석처럼 터져 나오듯, 다양한 형상의 인간 속에 침전된 진실과 양심이 세상으로 터져 나오는 듯한 순간처럼 다가온다.


 어린 시절 길이 막히고 요란한 뉴스를 이야기하던 늦은 밤 어른들의 이야기, 전국체전인지 불타오르는 도시 이것이 광주가 아닌 주변 도시에서 들을 수 있는 전부 거나 전쟁이 났다는 풍문정도가 아닐까? 뻐거머리가 온다고 전교생이 북한처럼 도로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고,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을 봤다는 기억정도에서 내겐 단절이 된다. 그러다 청문회에서 뻐거머리에게 명패를 던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대학시절 참상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곳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했던 시간의 공백은 길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잊히고, 누군가에겐 두려움과 공포로 움츠려 들고, 누군가는 존재의 상실을 남긴 것이다. 또 누군가는 열심히 지우고 가리고 자신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더욱 분주한 나날이 아니었을까? 


 그 일을 만든 사람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사라지고 기득권으로 아직도 존재한다. 세상을 보는 간단한 기준인 권력과 부로만 볼 수도 없고, 그런 접근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인간에게 각인된 것들은 두고두고 세상에 남기 때문이다. 아프지만 그것이 이 땅의 문명이 남긴 하나의 자국이다.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아무도 모르게 새벽처럼 다가온 참상,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국가라는 존재가 백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만행, 이런 일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믿고 맡기고 믿음대로 해야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가 문제를 만든다. 민주주의가 허술하지만 그렇다고 더 좋은 제도를 만들기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반대와 거부가 많은 것은 아닐까? 세상은 그렇게 지옥이 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언젠가는 끝가지 희망을 놓지 않으며 진실과 양심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죽어 본 적도 없고, 지옥에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참상과 사람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핏빛 한이 터져 오르는 것만으로도 지옥이 지나갔음을 짐작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80년 광주와 30년이 넘은 시간 속에 한과 양심을 품고 살아온 이야기를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주고 있다. 그보단 그 다양한 시선을 하나의 사건과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엇으로 꿰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무겁고 또 한 편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구나 감사하게 된다. 그 시대와 현장을 건너온 사람들이 잊히지 않고, 또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무가 이 땅의 양심이 아닐까 한다.


 이런 진실과 양심에 지탄을 가하는 것이 곧 지옥을 만든 사람과 동업자 거나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이런 자들이 역적과 무엇이 다른가? 아주 오래전 보았던 '꽃잎',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용서하는 것은 큰 용기를 요구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흉악한 사건을 일으킨 위정자들은 용서의 그늘에 들기까지 아주 엄격해야 한다. 역적을 공소시효 없이 멸해야 한다고 생각하듯,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위협하는 자들을 나는 이 땅의 국민이라고 해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사람을 배신하고 속이고 죽이는 자들에게 양심을 기대하긴 참 요원한 일이다. 저승이 있다면 전부 지옥행 Fast-track을 태워도 시원치 않으나 인간은 또 확인하고 확인하고 더디다. 이것 또한 인간의 모습일 뿐이다.


#한강 #소년이온다 #광주항쟁 #꽃잎 #화려한휴가 #독서 #경축 #노벨문학상 #한국의영예_작가의영예 #khori


YES마니아 : 로얄 k***i 2024.11.10.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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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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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읊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데 어느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으나 작가는 왜 소년이 온다고 하였을까.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미가 본인의 책으로 재탄생할 것이기에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의 표현을 쓴 것일까. 아님 아직도 반성하지않는 괴물들을 보며, 시대에 의해 사람이 희생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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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시선으로 읊어가는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은데 어느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소년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났으나 작가는 왜 소년이 온다고 하였을까. 한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미가 본인의 책으로 재탄생할 것이기에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의 표현을 쓴 것일까. 아님 아직도 반성하지않는 괴물들을 보며, 시대에 의해 사람이 희생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 것일까. 
YES마니아 : 플래티넘 s*****l 2024.09.25.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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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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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1980.5.18.  오월이면 봄이여야 하는데 거리는 십이월 어느날처럼 춥고 황량했다. 무섭도록 고요했다.  <본문p 204>  처음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쉽게 손에 잡을 수 가없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내  감정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광주 민주항쟁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감정을 추수릴 수 없어 리뷰를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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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년이 온다.

 '1980.5.18.

  오월이면 봄이여야 하는데 거리는 십이월 어느날처럼 춥고 황량했다. 무섭도록 고요했다.

 <본문p 204>

 

 처음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쉽게 손에 잡을 수 가없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내  감정을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광주 민주항쟁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다 읽고도 한동안 감정을 추수릴 수 없어 리뷰를 쓸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음식을 먹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난 역사는 순간순간 잊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은 역사도 있는 것이다. 광주 민주항쟁이 그렇다. 작사 한강은 이 글을 쓰며 어떤 생각으로 어떤 감정을 가슴에 담았을까?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10대들의 아이들 그들을 향해 총을 쏠 수 있었을까? 자식을 품안에 가슴 깊은 속에 묻어야만  했던 동호의 어머니. 그녀의 삶을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책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슬픔을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직접 안 겪어 봤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이 새삼 가슴 깊게 느껴지는 말이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쉽게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었다.

 

<본문 p17>

 네가 이해할 수없었던 한 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짥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 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는 듯이.

<본문 p51>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을 단단해졌어. 눈도 빰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 왜 그들을 죽어야만 했을까? 무엇 때문에. -----

 

<본문 p89>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죽음을 피하고 싶었다.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에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입을 벌리고 몸에 구멍이 뚫린 채, 반투명한 창자를 쏟아내며 숨이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

 

한강 작가가 던지는 메세지

<본문 p114 ~ 116>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향해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와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그날 도청에 남은 어린 친구들도 아마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겁니다. 그 양심의 보석을 죽음과 맞바꿔도 좋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본문 p155> 우린 싸움도 못하고 무기도 없는데

 

<본문 184 ~185>

 제발 들어가게 해주소, 하고 나는 빌었어야.

 우리 막내 불러라도 주소. 잠깐만 나와보라고 해주소.

 보다 못한 느이 작은형이 직접 들어가서 동생을 찾겼다고 한게 시민군 하나가 드러더라이.

 지금 들어가면 못 나옵니다. 저 안에는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느이 작은형이 알것다고, 일단 들어가게만 해달라고 언성을 놓일 적에 내가 말을 막았다이.

  그 아그가 기회를 봐서 제 발로 나올라는 것이여...... 분명히 나한테 약속을 했단게.

 사방이 너무 캄캄해서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이. 금방이라도 어둠속에서 군인들이 나타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내 손으로 느이 작은형 팔을 끌고, 내 발로 돌아서서 집으로 갔다이. 모두 다 죽어벌린 것맨이 캄캄한 거리를.사십분을 둘이 울면서 걸어 돌아갔다이.

  인자 나는 암컷도 알 수 없어야. 겁이 나서 얼굴이 파랗게 굳어있던 시민군들. 어리디어리던 그 자식들도 죽였으까이. 그리 허망하게 죽을 것을, 왜 끝까장 나를 안 들여보내줬으까이.

 

 <본문 p194>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펴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오월이 누군가에는 십이월인 계절. 가슴시린 2020년 1월 입니다.

 

j**********e 2020.01.04.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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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심에 관한 이야기 - [소년이 온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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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심에 관한 이야기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소년은 오지 않는다. 대개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이라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친구랑 놀 수도 있고 학원에 갔다올 수도 있을 테지만, 집에 도착하면 온종일 고된 몸과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저녁을 보내다 새로운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이토록 당연한 일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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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양심에 관한 이야기
                           <소년이 온다>를 읽고


  소년은 오지 않는다. 대개의 중학교 3학년 학생이라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는 길에 친구랑 놀 수도 있고 학원에 갔다올 수도 있을 테지만, 집에 도착하면 온종일 고된 몸과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저녁을 보내다 새로운 아침을 기다릴 것이다. 이토록 당연한 일이 소설 속 소년에게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소년(少年)'은 말 그대로 나이 들지 않고 작은 사람으로 남아 촛불처럼 흔들린다. 소년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여생을 마감하는 순간을 상상하자, 양초가 모두 녹아 없어져 그 불빛이 사그러드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도대체 소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없는 것인가? 
  한강 작가가 쓴 <소년이 온다>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나선다. 독자에게 이 소설은 총체적인 '사건'의 집합으로 읽힌다. 먼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사건(事件), 그러니까 권력에 눈먼 자들이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국민의 주권을 지키려는 자들을 억압하고 통제한 역사이다. 소년은 친구를 찾기 위해 상무관에서 시신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훗날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의 대사처럼, 소년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떨치지 못한 독자에게로 오는 소년을 제대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김진수의 죽음을 심리적으로 부검하고 있다는 선생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 말들을 녹취함으로써 김진수가 죽어간 과정을 복원할 수 있습니까? 그와 나의 경험이 비슷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혼자서 겪은 일들을 그 자신에게서 듣지 않는 한, 어떻게 그의 죽음이 부검될 수 있습니까?(108쪽)

  다음으로 소설은 소년을 비롯하여 각기 다른 인물들이 여러 시점으로 저마다의 사연들을 비춘다. 사건(私件), 즉 개인의 일이지만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라는 소용돌이 안에서 각자의 경험들은 비슷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가지를 뻗쳐나간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되어 누군가는 죽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 남았던 것이다. 망자들의 죽어가는 과정, 곧 삶을 완벽하게 복원할 순 없겠지만, 동시대를 겪은 자들의 증언이 꺾이고 으스러진 사지를 이어붙이는 접착력을 높이는 역할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사건들이 '모여' 사건(社件)을 이룬다. 이 세상은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시공간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날의 광주 역시 그러했다. 군사 독재에 맞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과 이들에게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른 군인들. 인두겁을 쓴 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들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데에 도시 하나를 통째로 고립시키고 언론을 차단하여 그 안에서 살던 사람들의 얼굴을 지우고 목소리를 음소거하는 야만을 저질렀다면, 두 세력의 충돌로 '놀란 새처럼 몸을 빠져나간 혼'들과 어딘가에서 타들어가며 '검은 연기를 숨처럼 뿜어내는 혼'들은 사건의 진실이 소멸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곁을 맴돌았다고 볼 수 있다.
  참척(慘慽)의 고통을 당한 소년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소년)의 교복을 갈아 입히는 장면이 내 머릿속에 맴돈다. 어머니는 차가운 쇠로 만들어진 총탄에 맞아 뜨거운 피를 모두 흘려 온기를 잃어버린 아들이 추울까봐 하복 대신 동복으로 손수 갈아 입힌다. 여기서 소년에게 입힌 옷이 마치 앞서의 사건들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만든 사건(絲件)처럼 느껴진다. 불현듯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독자가 그 옷을 입어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아무리 실을 끊고 그 실로 짜여진 옷을 불태워도 소년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란 믿음이 생긴다.
  아울러 사십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가 소년과 함께한 사람들에게 어째서 쏘지도 못할 총을 들고 그 현장에 남아 있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이내 독자의 오해였음을 소설(과 현실)의 작가가 일깨워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213쪽)."고 말한다.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받치는 행위의 숭고함 혹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의 마땅함, 어떤 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다(213쪽)."고 덧붙인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양심(良心)을 따를 텐가, 아니면 그것을 버릴 텐가 하는 양심(两心), 즉 두 가지 마음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 증언자들과 함께 무언의 동의를 표하는 망자들은 양심의 목소리에 따랐고, 학살자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소년이 다시 온다. 소년이 물어온다.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는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잔인한 인간에 대하여 독자 혼자서 얼기설기 기움질한 꼴이라도 괜찮으니 어떤 말이든 소년에게 전하고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길과 손길이 닿는다면 더 도톰하고 따스한 옷을 소년에게 입혀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다시 오는 소년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 더는 오래된 그날을 맞이하지 않도록 소년이 짊어지고 오는 그날의 무게를 모두가 나누어 지자. 어쩌면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간절히 바라며 흘린 소년의 피 덕분에 오늘의 내 가슴이 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사람들이 들려준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건네준 촛불에 내 삶을 밝혀 소년이 한사코 어머니의 손을 끌었던 환한 길로 걸어나가겠다고 마음 먹는다.


YES마니아 : 로얄 k*****o 2025.11.19. 신고 공감 6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