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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쯤 믿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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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소설을 읽고나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주란처럼 몇 개의 문장만으로 마음 속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을 일어내고 싶은 욕구가 인다. 욕망하는 것만으로 쉽게 될 일이 아니지만. 내 안을 일렁이게 하는 문장들이 좋다. 언제 어떤 일로 들어앉았는지도 가뭇한 감정들, 별것도 아닌 채 마음을 가득 채운 것들, 때때로 나를 흔드는 날것의 것들, 그럼에도 살게 하는, 살아 있게 하는
"나를 반쯤 믿는 용기" 내용보기

이주란 소설을 읽고나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주란처럼 몇 개의 문장만으로 마음 속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을 일어내고 싶은 욕구가 인다. 욕망하는 것만으로 쉽게 될 일이 아니지만.

내 안을 일렁이게 하는 문장들이 좋다. 언제 어떤 일로 들어앉았는지도 가뭇한 감정들, 별것도 아닌 채 마음을 가득 채운 것들, 때때로 나를 흔드는 날것의 것들, 그럼에도 살게 하는, 살아 있게 하는 것들. . .

소설의 연장인 듯한 우다영의 발문까지 천천히 아껴 읽었다.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받은 듯 황홀하다. 어느날 놓였던 술상 위의 작은 불상을 함께 바라본 듯 그러다 눈물 없는 슬픔을 나눈 듯 고요해진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면서, 모듬전에 막걸리를 먹으면서도 가난한 어머니를 떠올리는 기주. 슬픔을 토로하는 대신 가만히 두는 기주와 이주란의 문장 덕에 기어이 슬퍼지고 만다.

소설은 친구들과 원경 앞에서 버럭 화를 냈던 기주의 오래 전 기억과 그 기억을 일깨우는 원경의 메시지로 시작한다. 상황을 피하는 쪽이, 이해받길 저버리는 쪽이 편한 기주에게, 오랫동안 되도록 뭘 하지 않으려 애쓰는 기주에게 2년6개월 만에 온 원경의 메시지이다. 어찌 지내냐는 인사 대신 요즘은 어디서 지내냐는 메시지에 기주는 당시의 수치 모욕 절망을 떠올린다.

넘치게 즐겁거나 행복한 건 아니지만 지금의 삶 또한 나쁘지 않다 느꼈던 기주를 '갑자기' 흔드는 감정들에 느닷없이 엄마를 보러 옛집을 찾아간다. 고물을 줍고 와서 담배를 피며 어린 아이들을 보고 웃기도 하는 엄마를 기주는 멀리서 바라보다가 돌아온다. 엄마의 웃음을 떠올리며 우리도 잘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깨닫는다. 술과 폭력으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상처만 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이웃 아주머니 말대로 '그런 집에서 태어난 죄'가 아니었다면 기주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터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하필 여름 옷을 다 빨아버려 기모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가 개똥에 미끄러져 옷을 버린 정과장처럼 삶에는 '하필'이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일들이 넘친다. 하필 그날, 하필 그때, 하필 나한테, 하필 그런 일이. . .

엄마를 (멀리서나마) 보고 오고 원경을 만나러 갈 마음을 먹고 별로 가깝지 않은 정과장에게 동행 부탁을 한 기주는 그 '하필'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 용기를 낸다. 화해일 수도 있고 못다한 말을 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그저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 얼굴만 보고 오려는 것일 수도 있으나 기주로서는 줄곧 자신을 흔들던 두려움에 마주할 용기를 낸 여정이다.

정과장의 유튜브 촬영 덕에 1박 2일이 된 여정. 그러나 원경의 카페에 원경은 없었다. 낯선 이의 손도 오래 잡아주는 어머니의 다정함과 원경과 꼭닮은 동생이 건네준 따뜻한 커피. 무언가는 얻어 돌아오는 길이었으니 기주가 걱정한 대로 외롭지는 않았다. 그러니 됐다. 기주는 자신의 마음을 반은 믿어보기로 한다. 반만 믿는 게 아니라 반쯤 믿는 거다.

'해피'한 거 딱히 없어도 해피 엔드 맞다. 원경은 못 만났지만 결코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직장 동료 정과장과의 동행이 의외이면서 따듯하다. 삶은 목표한 바를 달성해내는 치밀함이 아니라 다소 황당하고 엉뚱한 우연으로 채워지는 거겠지. 돌아가신 윗집 할아버지를 위해 자꾸 무언가를 갖다 놓는 기주처럼 쓸모 없어 보이는 엉뚱한 다정함으로 세상에 온기를 채우는 사람들이 좋다. 나도 막막 더더 다정하고 싶다.

'가는 길은 두렵고 돌아오는 길은 외로울 것 같아서',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해서,
'생각만 해도 지겨운' 것이라,
'나에 대해 솔직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두려웠'기에…
그래서 미루어둔 감정들과 잊고 있던 일들을 잠시 꺼내고 붙잡아 골똘히 바라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주란 고유의 뭉근한 슬픔과 온기가 담백하고 정갈하다.


<책 속으로>

원경이 아닌 누구였더라도 꼭 서로의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어떨 때는 그냥 덮고 넘어가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유쾌하지 않을 이야기를 굳이 다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사실 나는 서로를 가장 가깝게 여겼던 우리를 멀어지게 만든 마음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 같다. 12p

사실 나는 의미라는 단어가 조금 두렵다. 요즘의 내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까지 헤아릴 다정함이랄지 용기가 없다.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다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나도 다정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바다를 건널 일이 있을까. 25p

내게는 누군가를 잃는 것보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나에 대해 솔직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더 두려웠다. 상대가 이해해줄지 아닐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는 걸까.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지만 사실 진짜 대답을 듣고 싶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30p

적막한 기분이 들어 티브이를 틀었다. 뉴스에서는 곧 다가올 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다리고 누 군가는 두려워하는 비. 공존하기 어려운 것들을 바랄수록 인생은 고단해질 것이다. 나는 고단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므로 되도록 무엇인가를 바라고 싶지 않다. 41p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거예요.
네?
난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네.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 학교를 다시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섰다. 71p

가끔은 차라리 내가 어머니고 어머니가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모르는 어머니의 인생을 여러 버전으로 추측해보곤 했는데, 역시 내게 여분의 사랑까지 줄 힘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어머니에게 조금만 더 사랑해달라는 식으로 했던 행동들이 죄책감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어머니로서는 최선을 다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로웠잖아. 그래,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오가는 것이지. 79p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가보고 싶다. 할머니가 살아 계신 지 어머니가 살아 계신지 한번 보고 오고 싶다. 누가 어떻게 보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안 되는 걸 바란 대가로 괴로워하면서 살고 있는지 몰래 보고 오고 싶다. 어머니를 보고 난 뒤의 나의 표정을, 세배 커 보이는 확대 거울로 한번 보고 싶다. 80p

나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을까. 기쁨이나 슬픔은 그렇지 않은데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오래되고 깊은 마음들은 왜 꼭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했는지 잘 모르겠다. 1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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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것이두렵다는생각이들때
#두려움을마주할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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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1 2023.11.0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