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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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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집이 망했다. 중학생 때였다. 대학 정문 앞 대로변에 있던 부모님의 가게가 정문이 보이지도 않는 골목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결국 1년도 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전화기도, 집의 불도 끄고 살았다. 이사를 전전하다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컨테이너로 이사를 갔다. 비닐하우스에 가려져 그곳에 아무도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곳. 왜 그렇게 ‘스위트 홈’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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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집이 망했다. 중학생 때였다. 대학 정문 앞 대로변에 있던 부모님의 가게가 정문이 보이지도 않는 골목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결국 1년도 채 안 되어 문을 닫았다. 전화기도, 집의 불도 끄고 살았다. 이사를 전전하다 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컨테이너로 이사를 갔다. 비닐하우스에 가려져 그곳에 아무도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곳. 왜 그렇게 ‘스위트 홈’을 외치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2008년, 촛불을 들고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걸 보았다. 살던 집이 허물어져 터전을 돌려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거리로 나갔다. 울부짖는 사람들과 경찰이 내 몸보다 큰 방패를 들고 있는 곳에 그냥 무작정 서있었다. 어쩌다 만나게 된 어른들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어요? 어린 친구가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다. 왜 가게 됐을까?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곳의 일상이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으면 고통을 알지 못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경험하고 고통을 체험했다. 그래서 연대하고 싶었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이 될 무렵까지 현장을 왔다 갔다했다. 똑같이 생활하던 어느 날 아침이 밝고 학교를 가는 버스 안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삶의 터전을 잃고, 일하다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하루. 하지만 다음 날의 해가 뜨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았던 듯 세상을 산다. 누군가의 죽음을 아무도 모른다. 너무나도 소름 돋았다. 그러다 이내 마음이 잠잠해졌다. 아무리 외쳐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일상은 한결 같이 돌아간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관심을 가지던 것을 전부 끊었다. 

  그새 많은 일이 있었다. 2015년 메르스가 터지고, 2018년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 많은 사건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을 보며 나를 검열하던 수많은 시선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절망 뿐이던 세상에서 사람들과 연대하는 법을 배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우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히 동질감을 느꼈다. 상대방에게는 악의 없는 한마디이지만 그 말에 상처받고 고민하던 시간들. 그리고 무수히 나에게 질문하던 나날들. 2007년에서 16년이 지난 지금, 내 환경은 사실 그떄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다만 이제는 좋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며 조금 나은 미래를 위한 고민을 한다.

c*****5 2023.03.2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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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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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 그려지는 내용과는 많이 달라서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진짜 공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 힘들어 하면 그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는 그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좀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자체에 자신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닐지... 피해주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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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 그려지는 내용과는 많이 달라서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진짜 공감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우리가 아는 누군가 힘들어 하면 그 사람을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는 그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좀 들여다 봐야 할 것 같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자체에 자신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닐지...
피해주지 않고 다른 이들을 돕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좋은 일이지만 자칫 내 생각이 모자라 상대방을 힘들게 할 수 있기에.
공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200쪽 분량이지만 여러 주제를 다루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힘 있는 내용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0 2023.04.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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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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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 이길보라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구입하게 된 책이다. 당신은 고통에 공감할 줄 압니까? 과연 그럴까! 고통에 공감한다는 '공감'의 뒷면에는 고통은 불행한 일이며 그 불행을 나눔으로써 타인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고통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는 시각에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은 동정이나 베풂의 수준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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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 이길보라

 

제목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구입하게 된 책이다.

당신은 고통에 공감할 줄 압니까? 과연 그럴까!

고통에 공감한다는 '공감'의 뒷면에는 고통은 불행한 일이며 그 불행을 나눔으로써 타인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고통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는 시각에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은 동정이나 베풂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이 책의 작가 이길보라 님는 농인 부모 이상국과 길경희 사이에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그녀는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 아래서 자라면서 고통이 부정적인 의미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녀는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배웠다고 한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저자.

저자 이길보라 님은 이 책에서 상실과 결여가 삶을 다른 방식으로 긍정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접근할지 탐구한다.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과 불편함을 비장애인 중심 사회 환경에서 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

비장애인이 비슷한 경험은 해도 장애인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잘 알 수는 없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함께 살면서 오로지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하는 가족은 어린 나이에도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미리 알아버리는 애어른이 된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 의문을 품고 차별에 질문하고 저항하기 위해서는 언어가 필요했다

세상을 읽어내고 자신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았을 때 그녀는 불쌍한 장애인의 딸이 아닌 코다(농인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음성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저자는 얼굴 표정과 손을 움직여 말하는 부모를 경유하여 이 사회를 바라본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게 되었다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들리지 않는 게 뭐 어때서! 말 못 하는 게 뭐 어때서! 대신 우리는 수어로 말해, 눈으로 세상을 읽어!

장애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앞을 볼 수 없고,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다리를 쓸 수 없는 것이 왜 가여운 것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결여와 손상에만 초점이 맞춰지는지 궁금했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삶을 보이는 것만 보는 단순함을 떠나 그들의 세계를 확장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을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자는 끊임없이 확장해나가는 사실의 세계를, 사실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이야기를 그로 인해 넓어질 우리들의 세계를.. 글로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글쓰기는 장애를 결여와 손상이 아니라 또 다른 감각을 상상하는 출발점으로 만들 수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은 혐오의 말들을 마주할 때면 절망하다가도, 투쟁의 역사를 만들어온 이들을 보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동정이 공감이 될 수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은 없다.

그냥 다름만 있을 뿐이다.

m****8 2023.07.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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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리뷰]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리뷰]" 내용보기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모든 결정은 비장애인들의 몫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공간을 구성하고 규칙을 만들 때 장애인들을 철저히 소외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농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겟대학이 있다. 이 학교는 농인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 답게 공간의 구성과 규칙이 다르다. 먼저 공간의 구성을 보면, 갤로겟 대학은 사방이 막혀 앞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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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모든 결정은 비장애인들의 몫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공간을 구성하고 규칙을 만들 때 장애인들을 철저히 소외시킨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컨대, 농인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갤로겟대학이 있다. 이 학교는 농인들을 위해 세워진 학교 답게 공간의 구성과 규칙이 다르다. 먼저 공간의 구성을 보면, 갤로겟 대학은 사방이 막혀 앞을 볼 수 없는 폐쇄형 엘리베이터가 아니다. 어디쯤 왔는지 확인 할 수 있도록 유리창으로 마감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뿐만 아니라 건물 외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건물 안과 밖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수어로 대화 할 수 있다. 내부는 열린 홀 구조로 설계되어 1층과 2층, 3층에 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수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아야 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걷다보면 전봇대에 부딪치거나 계단 턱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계단이나 턱, 전봇대 등에 색깔을 더해 공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보음이 울리는 것이 아니라 학교 곳곳에 설치 된 비상등이 깜빡인다. 문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노크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밖에 설치된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강의실 내부에 설치된 등이 깜빡거리며 주의를 환기한다. 강의실 의자는 앞을 향해 일자형으로 놓여있지 않고 서로의 얼굴과 표정 수어를 볼 수 있도록 동그랗게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규칙은 어떨까? 갤로뎃 대학은 농인 반, 청인 반이 다닌다고 한다. 하지만 수어가 대학의 공용어인 만큼 언제 어디서나 수어만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음성전화가 오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받을 수 없다. 숨어서 받거나 영상통화 혹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농인 앞에서 음성 통화를 하는 것은 농인을 소외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교의 모든 구성원은 수어에 능숙하다고 한다. (학교 모든 구성원에는 학생, 교수, 교직원 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도 포함된다. )

이곳에서 농인과 청인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여기서 소외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각장애인’이다. 이들은 갤로뎃 대학의 규칙 대로 라면 학교에 입학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설사 입학을 하더라도 비상상황시 알아차릴 수 없다. 이건 또 다른 차별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갤로뎃 대학의 이야기를 ‘견고하고 완전한 때로는 불완전한’ 이란 챕터 안에 심어두었다. 여기서 불완전함은 나의 아쉬움으로 해석하려 한다. 물론 작가가 말한 ‘불완전함’은 그 의도가 아니라고 판단되지만…그 역시도 나의 생각일 것이다.

무엇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 걸까. 농인을 말 못하는 장애인이 아닌 

‘목소리가 다른 사람’으로 호칭하는 사회는 상상해 본다.

                                                                                                               p.41

 

누군가에게는 상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본값이다.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안타까움은 비장애인 중심의 관점일 수도 있다.

                                                                                                             p.47

도서는 농인에 대해서만 다루지 않는다. ‘시어터포올’이라는 일본의 배급사이자 플랫폼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해서도 언급된다. 책에 따르면, 시어터포올(THEATRE for ALL)은 모두를 위한 극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영화, 연극, 퍼포먼스와 같은 콘텐츠, 토론회 등의 행사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자막과 통역 기능을 더해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음성언어로 자막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시각적인 이미지와 내용을 해설하는 화면해설, 자막, 수어통역 영상, 음악을 비롯한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전달하는 전체 자막이 포함된다고 한다.

영화 『하얀 새』는 시어터포올에서의 배급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작품인데, 이 영화는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은 미술관에서 작품을 어떻게 감상할까?”

영화『하얀 새』 주인공 겐지는 20년 동안 미술작품을 감상해온 시각장애인이다. 영화는 그가 밥을 해먹고, 공과금을 내고, 장을 보는 것처럼 미술관 가는 일 역시 평범한 일과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그가 미술관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당혹스러워 한다.

”시각장애인이 미술작품을 관람한다고?” ”보이지가 않잖아? 작품을 만질 수도 없는데?”

그가 원하는건 작품을 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어로 작품을 감상하길 원했다. 요청에 따라 작품을 언어로 옮겨 줄 해설자가 붙었다.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의 확장으로 삶을 살아가는 그가 관람객이 되자 미술관의 공간은 낯설게 보고 새롭게 듣기를 촉진한다.

책에 따르면, 영화 『하얀 새』가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말하고, 듣고,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다름을 어떻게 마주할 것 인가’ 에 대한 것이다. 이를 통해 책의 문구를 빌려 생각해본다.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듣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다르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p.83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 대하여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는 이따금씩 뉴스를 통해 접하거나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하나의 시위가 있다. 바로 ‘장애인 이동권에 따른 지하철 시위’ 다.

과거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막고 있는 지하철에 수술 집도를 해야하는 의사가 있을 수도 있고, 면접이나 시험을 치뤄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 저렇게 까지 해야할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하지만 언젠가 부터 그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바뀐 건, 김원영 작가님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서였다.

“버스는 대중교통이잖아, 장애인은 대중이 아니야?”

”…”

”대중교통이면 휠체어를 탄 사람이든 목발을 짚은 사람이든

모두 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거 아닐까?”

                                     김원영『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p.217

 

‘주류’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요구를 할 때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원래 여기서는 이렇게 해”라고 말하면 그만인 경우가 많다.

                                     김원영『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p.200

 

‘이동’이 왜 국가가 노력할 수 있으면 하고 못 해도 그만인 문제인지,

결국 돈이 있으면 도와주고 없으면 안 도와줘도

괜찮은 선행이나 복지의 대상일 뿐인지 의문을 품었다.

거대한 계단, 횡단보도의 높은 턱, 무심한 관료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나의 사지를 붙잡아 침대위에 묶어놓았고,

내 몸과 마음은 그토록 나를 배제하는 환경과 사람들의 무관심에 ‘공격’ 당했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 이동의 어려움을 국가 등이 제공하는

사회복지나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김원영『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p.220~221

김원영 작가님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은 뒤, 나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마주할 때면, “기본권을 침해하지 말아 달라”는 외침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때때로 너무 힘든 날이면, 빨리 쉬고 싶은 마음에 불편함이 스며들때도 있다. 그러나 피로가 좀 풀리면 다시금 생각해본다. 자유를 침해 당한 분들에게 나의 불편을 비교 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들의 시위를 비난하는 나를 포함한 우리는 어쩌면 ‘시위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을 마주하기 싫은 분리 욕망’을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으로 넘어오면, 2017년 9월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학교의 이름은 서진학교로, 2020년 3월 개교하지만, 2017년 무릎을 꿇으며 호소했던 어머니들 중 몇몇은 투쟁이 길어지면서 자녀들을 서진학교에 보내지 못한다.

 

집 앞에서 장애인을 보고 싶지 않다고 악을 쓰는 주민들 앞에서

특수학교 설립운동 당사자는 말한다.

나도 장애를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고,

당신들처럼 장애인과 특수학교 설립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고,

그런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게 되면서 이 문제는 나의 것이 되었다고,

당신과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p.90

서진학교를 언급한건, 설립과정에서 보여진 일들이 한국사회의 ‘분리욕망’을 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가양동 일대에는 영구 임대아파트가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이때 대규모 단지 아파트에 사는 부모들은 저소득층이 사는 임대아파트에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신들의 아이를 보낼 수 없다는 민원을 제기한다. 서울시 교육청의 승인으로 대단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다른 학교에 다니게 된다. 임대아파트 학생들이 다닌 G 초등학교는 70% 가량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이 대부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고령화와 저출산 등의 문제로 학생이 줄자 G초등학교는 폐교를 결정하게 된다. 이때 폐교 반대 운동을 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2015년 G학교는 폐교하고 만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때 G학교 폐교 반대 운동에 힘썼던 이들 조차도, 서진학교 설립 운동을 하는 장애학생 부모들과 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차별 받은 이들 조차도 차별과 분리를 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그들과 하나 다를게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다만 글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공감이란 무엇일까?”

우스갯 (?) 소리로 사람들은 말한다. 공감도 지능이 좋아야 한다. 머리가 나쁘면 공감할 줄 도 모른다. 그런데 우린 정말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도서에는 신체적 장애 뿐만 아니라, 디아스포라, 미등록이주노동자, 페미니스트, 동성애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공감은 가짜다.

공감하지 못하는것이 무지가 아니라, 공감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정말 무지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끝으로 하나 더 고백하자면 나는 도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많은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무엇을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때문에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 살짝 원망도 했다. 나의 이해를 탓해야 하는데, 괜히 작가님 탓을 살짝 했다. -이 부분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온전히 하지 못했기에 긴 내용이 두서없이 적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최대한 정리해보려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곱씹으며 읽어 볼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읽어보도록 해야겠다.

r**********2 2023.11.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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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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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인가. 장애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환경에서 불편함과 차별을 겪고 있다. 이건 고통과는 다른 것 같다. 고통이란 단어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정의도 다르고 감정적인 것 같다. 공감이란 표현도 쉽게 하지 못한다. 비슷한 경험은 해도 상대방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분명한 것은 사회 시스템 전체가 비장애인 위주로 되어 있고 이것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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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인가. 장애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 환경에서 불편함과 차별을 겪고 있다. 이건 고통과는 다른 것 같다. 고통이란 단어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정의도 다르고 감정적인 것 같다. 공감이란 표현도 쉽게 하지 못한다. 비슷한 경험은 해도 상대방이 느낀 감정과 생각을 내가 어찌 다 알겠는가!

분명한 것은 사회 시스템 전체가 비장애인 위주로 되어 있고 이것이 정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도 있지만 살다가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변화 가능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그게 나는 아닐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팽배하다.
장애 가진 이들까지 고려해서 나온 디자인과 설계는 비장애인에게도 쉽고 이용이 편하다. 돈 또는 시간이 더 든다는 이유로, 다른 중요한 것이 있다는 핑계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조급하게 만드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 다 함께 잘 사는 방법인지. '잘 살아보세' 외치며 경제산업화를 무기로 대기업에게 쏟아부었던 국가 예산이 결국 부패와 경영부실로 이어진 것을 역사가 말해준다. 차별로 소외되기 쉬운 이들까지 함께 나아갈 길을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당연히 여기는 사회는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장애부모의 자녀로서의 삶에 대한 내용은 <있지만 없는 아이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찍 부모의 통역자로 어른 역할을 해야만 하고 그 나이에 알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미리 알아버리는. 이것이 부모 개인의 무능으로 볼 수만은 없고 사회환경 시스템과 주변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한 부분임을 다시 확인이 되었다.

책의 후반부는 기후, 여성, 재일조선인에 관한 다큐영화에 대해 다룬다. 그 중 <디어 평양>과 <고독의 지리학>은 보고 싶었다. 소설 <파친코>를 통해 제일조선인의 역사와 삶을 알게 되었는데, <디어 평양> 다큐 속 실제 인물의 내러티브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고독의 지리학>은 아날로그 필름의 작업이라는 점이 매력적인 것 같다. 디지털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가 만나 콘텐츠가 무한으로 생산되는 요즘 시기에 섬에 들고 간 유한한 자원인 필름으로 담아낸 섬의 생태와 그 모든 걸 기록하는 이를 어떻게 담아냈는지 궁금해진다.
YES마니아 : 로얄 b*******h 2023.04.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