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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서 중국은 항미원조를 구호로 의용병을 파견합니다. 자신들은 정식 참전 국가가 아니란 것이지요.
이러한 중국의 6.25에 참전한 경험을 다룬 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참 독특한 시각과 분석입니다.
중국은 만든 한국전쟁에 관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서 이 전쟁에 대한 중국의 시각을 다루고 있습니다. 신생 중국이 강대국 미국과 싸워서 38선까지 밀어내는 선전을 거뒀지만 이 전쟁을 다루는 문화작품에서는 기묘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외교 문제를 고려해서 영화나 드라마의 시야가 뒤바뀌거나 아예 만들어진 작품도 공개가 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마오에 대한 비판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요즘 다시 재평가 받는 펑더화이 원수 조차도 마오에 의해서 숙청을 당한 부분은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항미원조를 내세운 한국전쟁을 다루는 중국의 상황은 미국에 대한 외교적 상황이 결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대미외교가 좋을때는 다루기를 회피하고 대립이 격화되었을때는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기에 최근 중국내에서 한국전쟁을 다루는 영화가 많습니다.
저자는 이런 영화들의 내용도 분석하고 있는데 흥미로왔던 점은 장진호에 대해서 미국이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서사로 미화하고 있다면 중국은 비슷한 방법으로 자신의 승리를 극대화해서 대항하려고 드는 점입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서편에 있떤 미 해병 1사단의 분전은 알려져 있지만 동편에 7사단 31연대전투단이 궤멸된 것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점에서 자신의 승리를 포장하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중국의 관점을 영화를 통해서 현재의 모습과 영화 내용을 통해서 당시의 모습을 추적하는 내용이 신선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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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의 한국전쟁 1950년 6·25사변 또는 한국전쟁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UN군의 참전으로 전황을 역전하고 통일을 앞두고 있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끝내지 못하고 휴전에 이른 전쟁으로 기억된다. 동시에 우리 민족 간의 최대의 비극이고 분단으로 인한 피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해전술, 1·4 후퇴 등 단편적으로만 기억되는 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의 활동이 한국전쟁 대부분을 차지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950년 10월 25일부터 2년 9개월 동안, 한반도에 들어온 중국인민지원군의 수는 연인원 240만을 넘었고, 최대 규모가 주둔했던 1953년 5월경에는 135만에 달했다. 한국전쟁 대부분이 사실상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단골 구호였던 반공·멸공 논리의 배경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흐릿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이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모습은 어떨까? 항미원조.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운 전쟁. 중국인들이 부르는 한국전쟁의 명칭이다. 중국인들의 항미원조전쟁 속의 한국 역시 극히 희미하다. 중국 현대사에서 항미원조전쟁은 여러 이유로 억눌려왔다. 그러다 최근 미·중 대결 국면을 계기로 중국 내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금기가 일거에 걷히면서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70년 가까이 지속된 미·중의 적대적 공조 체제와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중소 갈등, 이 두 요소가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정치적 금기가 되는 과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이다. 이 두 요소가 인민공사, 대약진,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굴곡과 뒤얽히면서, 항미원조전쟁은 오랫동안 중국 대중들로부터 기억의 유배상태였다. 저자는 2장에서 오랜 금기와 망각의 상태에 방치되었던 항미원조전쟁이 2000년대 들어 귀환하는 과정을 2000~2010년대 작품들을 통해 살펴본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 영화를 통해 항미원조전쟁이 중국 대중에게 귀환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 작품들은 국가의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주입에 의한 회고가 아니고, 오랫동안 이 전쟁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애도할 길이 막혀있던 기층의 목소리와 시선이 묻어있는 이야기들이다.
상감령은 한국전쟁에서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북한의 김화군 오성상 남쪽의 537 및 598고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전의 현장이다. 불과 3.7제곱킬로미터의 작은 산지에서 43일간 피아 10만 명이 싸워 3~4만 명의 희생을 초래한 혈투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 『상감령』이 1953년 쓰였고, 1956년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영화 「상감령」은 1964년에 나온 영화 「영웅아녀」와 더불어 항미원조전쟁을 그린 양대 정전(正傳)으로 기억된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항미원조 서사는 건국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미중 대결 기류를 타고 국가주의와 애국주의가 고양되는 악성 환경은 오랫동안 냉궁에 유폐되었던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이 가정과 극장, 인터넷 스트리밍 등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지난 세기 국민국가의 역사의 불편한 퍼즐 조각이었던 항미원조는 이제 국가의 기초를 놓은 ‘입국지전(立國之戰)’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제3장 ‘승리한 전쟁’의 안과 밖> 중에서 개혁·개방 시대에도 숨죽인 외교를 펼쳐야 했던 1980년대에는 덩샤오핑이 제창한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가 외교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1990년대 중국 외교가에선 ‘책임대국론(責任大國論)’이 제기됐다. 97년 장쩌민 국가주석은 “대국으로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다”고 선언했다. 덩샤오핑의 오랜 도광양회 기조에서 벗어나 ‘필요한 역할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로의 변신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시진핑 이후 더욱 팽창한다. 시 주석은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선언하며, 공동부유, 인류 운명공동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다룰 것을 주창하였다. 시 주석의 외교정책을 전량외교라 칭하는데, 전랑 외교는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력과 보복 등 공세적인 외교를 지향하는 중국의 외교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중국의 인기 영화 제목인 '전랑(戰狼·늑대 전사라는 뜻)'에 빗대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을 지칭한다.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전쟁을 복수의 당사자들이 함께 반추하는 것, 각자의 현재에서 자기고발을 각오하는 것, 각자의 어둠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과거의 (어쩌면 현재도 그러한) ‘적’과 대화할 길이 열릴 것이며, 진정으로 종전을 논할 정동적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미 역사화되었다고 생각했던 냉전이 부단히 현재로 살아 돌아오는 지금, 지연시켜온 냉전의 극복을 진정으로 재사유하는 길이기도 하다. -<제3장 03 스포트라이트가 밝힌 것과 덮은 것> 중에서
국제 협력을 통한 평화와 인권의 확대는 영원한 과제로만 남을 운명인가. 세계는 다시 새로운 냉전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힘 빠진 미국과 힘을 키운 중국의 갈등은 결국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전 세계는 혼돈과 충격에 빠지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가장 큰 충격과 피해를 보는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중국의 강경하고 급격한 변화와 그 대응이 필요한 지금, 그 원인과 배경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연구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항미원조 #백지운 #창비 #한국전쟁 #함께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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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만 알고 있는 상태로 읽어서 그런지 조금 어려웠지만 항미원조에 대한 중국의 인식, 당시 중국의 내부 상황, 항미원조 드라마 & 영화 소개로 글이 이루어져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한 줄 평 : 중국은 왜 계속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선택을 하는 걸까? 입니다..?? 책을 읽으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으면서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요. 제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됐지만 뭐 전 지도자가 아니니까요.. 평소에 홍위병이나 小粉? 같은 사람들(조직적으로 비윤리적인 행동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아니 뭐 저렇게까지 자기네 나라를 좋아할까 싶었는데 마오쩌둥 지폐나 초등학교 때부터 받는 교육을 보니까 세뇌될 거 같더라고요.. 아무래도 국가적인 정책이 애국주의, 중화사상인 것 같습니다.. 한편 한국도 조직적으로 댓글을 다는 세력이 있으니,, 특히 태극기 부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중국의 小粉?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게 아닌 것처럼 중국인 모두가 저렇지 않으니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봐야 겠어요.. 총평 : 한 번쯤 읽어보면 좋다! 새로운 시각에서 6.25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 특히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저의 동년배들 (20대 친구들)이 많이 읽어서 아직 우리는 휴전 중이고, 전쟁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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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전쟁 #백지운 #창비 ?? 한국전쟁을 부르는 중국의 공식 명칭은 '항미원조전쟁'이다. 이 책은 중국의 공식 혼 반공식 서사에서 한국전쟁이 어떻게 기억되고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p117 증언과 기록, 기억이 천차만별인 전장에 어떤 재현 방식이 실상을 가장 진실하게 담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과 시선으로 당시의 비극적 순간과 감응하여 그것을 현재로 불러오느냐이다. ??p167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열아홉살 소녀의 모습에서 오히려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영리하게도 작가는 혁명적 낙관주의라는 갑옷에 감춰진 슬픔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p287 '압록강을 건너'는 70년 전 미군과의 격렬했던 결사항전의 기억들을 복원해냈다. 필경 그것은 미중 대결이라는 현재의 정세적 요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2년 9개월 동안 수백만이 참전하고 수십만이 목숨을 읽은 국가 대재난의 기억을 불러내는 일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국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서사의 내용을 통제한다고 한들, 공적 서사의 얇은 표층 아래 도도하게 흐르는 기층 서사의 물살을 과연 어디까지 걸러낼 수 있을까. ??p355 '금강천'의 백미는 주선율의 화려한 파사드 뒤에 숨겨진 이면 세계에 대한 생생한 포착에 있다. (...) 관 후가 자신의 기량을 한껏 펼쳤던 영화 '팔백'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미시적 세계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위대한 순간은 영웅이 아니라 수많은 이름 없는 소인물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 부끄럽게도 항미원조전쟁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어떤 나라의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6.25전쟁>이 다양하게 표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는게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미국에 대항해서 북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라는 뜻으로 <항미원조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중국군이 개입하기 시작한 1950년 10월부터 종전까지를 표현하고 그전인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에 중국군이 개입하긴 전은 조선전쟁이라고 따로 표현한다. 2년 9개월 동안 중공군이 투입된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한국전쟁 대부분이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중공군에 대한 기록은 지워지고 희미해져 있다.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이자 병참부사령관이었던 홍 쉐즈의 항미원조전쟁 회고록, 38선의 여병, 항미원조, 북위 38선 등의 다양한 책,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표현된 한국전쟁은 우리가 겪은 전쟁과 그들이 겪은 전쟁이 같은 시간대에 일어난 전쟁이 맞나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작가님은 책 내용, 영화의 대사, 드라마의 한 장면들을 이 책에 그대로 실었다. 그 부분이 의미하는 바와 왜 냉궁에 유폐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신다. 반대편의 시점에서 그려진 한국전쟁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시선, 목소리를 내는 기층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모든 문화 활동은 감시받고 제재받고 있는 중국이어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의 시선을 곳곳에 숨겨두는 것에 능한 바로 그들이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말하지 못했던 목소리를 찾아내고 알려주는 것을 시도한 것이 바로 작가님이셨다. 완전하지는 못해도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 시도를 할 때 이 전쟁은 끝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항미원조 #백지운 #창비 #중국인들의한국전쟁 #그들이말하는한국전쟁 #불편한진실 #숨겨진진실 #625전쟁 #한국전쟁 #책소개 #책추천 #도서협찬 #서평후기 #완독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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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인 국가에서 산다는 사실도, 인류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300년 남짓 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대개 잊고 태평하게 산다. 기록을 보면 한국 전쟁 중에도 최전선의 상황과 달리 후방의 일상은 태평했다고 한다.
과학의 시선으로 보면 당연한 생존 방식 - 일개미는 일하고, 여왕개미는 알 낳고 전투 개미만 싸우는 - 이 인간 사회의 양상으로 해석하면 괴이해지는 괴리가 생긴다. 문화와 사회에는 가치 평가와 의미 판단이 개입하니까.
오래 전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통해 돌도끼와 왕조사를 제외한 한국 근현대사를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꾸준히 공부를 이어나가진 못했지만 역사란 과거의 기록만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서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배운다.
이 책은 미스터리와 비밀을 밝히듯 새롭게 배운 내용이, 시점이, 판단이 특히 많았다. 6.25에서 한국전쟁으로 바뀐 한국 내에서의 호명이 아닌, 중국의 공식 명칭 항미원조로 만난 전쟁의 서사였다.
적어도 3년 간 진행된 전쟁에 관여한 모든 국가 - 미국, 소련, 중국, 그 외 전 세계 20여 개 국 - 의 의 서사들이 모여야, 왜 한국 내전이 3차 세계 대전으로 번질 뻔한 국제전이었는지 전체 풍경에 가까운 사실이 나올 것이다. 또한 현재 한반도의 정세와 외교가 왜 첨예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도.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분단과 동족상잔, 이산가족 등에 집중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까지 한반도의 휴전선은 동아시아 냉전 체제의 휴전선이기도 했다. 그 대가로 한반도와 한국인들은 세계의 최강 세력들이 대결을 펼친 사회, 경제, 이데올로기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체험하며 살았다.
“전쟁이란 결국 정치를 위해 벌이는 쇼에 불과하며 전쟁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평범한 백성들이다.”
중요한 질문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을까. 중국인에게 이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중국은 왜 이렇게나 치열하게 직접 참전을 하고 전력을 쏟았을까, 무엇을 위해 싸웠을까. 항미원조에 대한 발언은 왜 중국에서 금기였을까.
“드러내놓고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모호한 레드라인이 숨겨져 있어, 건드리기도 쉽지 않지만 잘못 건드렸다간 고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아주 많은 한국인들이 읽은 삼국지의 내용은 상식과 교양처럼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다. 그에 비해 73년 전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이 책을 읽고 나면 ‘한반도에서 발발한 미국과 중국 전쟁’처럼 보이는 이 전쟁에 대해서는 자료도, 책도, 논의도, 대화도 부족하다.
중공군, 인해전술로 기억되던 전쟁의 실상에 있었던 중국 병사들을 만나며, 역사의 단편이란 얼마나 부족한 오해인지 절감했다. 안다고 생각한 완전히 이질적인 역사를 배우는 시간은 충격적이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아팠다.
명분이 무엇이건,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 갈등을 야기하고 고조하는 누구든 나와 우리 모두의 적으로, 전쟁 미치광이로 여길 것이다. 지구 상 어디의 전쟁이라도 모두 사라진 그런 지구에서 잠시라도 살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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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의 표지를 정말 과감하게 선택하셨다. 정말 중국스러운 그림과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한 《항미원조》. 곧있어 6월이면 한국전쟁 기념일이 있고,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이란 소제목은 몇 년전, 뉴스로 보았던 중국의 한국전쟁관련 영화 수입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 내용이 무척 궁금해 서평단 신청을 했다. 책은 말그대로 흥미로웠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이야기라고나 할까? 내가 아는 한국 전쟁의 중국의 모습은 "인해전술" 딱 하나다. 중공군이 물밀듯이 내려왔다, 이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뭔가 한방먹은 기분이다. 우리만큼 중국에게도 한국전쟁은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수십년간 사라졌다가 다시금 미국과의 관계에 의해 중요해졌다. 사실 사료가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생소한 일이었지만, 미디어를 홍보의 수단으로 삼고 관리하는 중국 정부이므로 그 행간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정부의 의도도 알 수 있다는 것 또한 신기했다. 책에 나온 드라마와 영화는 유튜브에서 대부분 무료로 볼 수가 있다는 점도 당황스럽다. (그렇게 홍보하는 것인가?) 그래서 중국어로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조금씩 보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 편에 선 연합군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젊은 군인들도 남의 땅에서 희생을 했다. 책에 의하면, 조선 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이건 좀 서운하다. 우리는 아주 그 옛날부터 중국을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조선반도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구나, 하는 점이... 중국에서 잠시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영화로 중국어를 공부하는 수업이 있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1학기 내도록 , "항일전쟁"에 대한 영화를 보았던 것같다. 외국인인 우리에게 왜 그런 영화를 보여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수업시간에 잠시 "항미원조"라는 말을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미국에 저항하고, 조선을 돕는 전쟁이라 당시에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중국에게 미국은 쳐부수어야 할 적이었다가, 실질적으로 승리라고도 볼 수 없는 (그러나 중국입장에서는 승리했다고 말하는) 전쟁이라 관련된 이들의 공적이 사라졌다가 다시금 20년전 조금씩 흐물거리며 나타나 10년전부터는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내가 얼마나 한국 전쟁에 대한 정보가 없는가, 중국의 참전에 대해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모르고 있는가를 새삼스럽게 알게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중국의 모습에 새삼스럽게 놀랍고 무섭다. 책을 읽으며 책에 나온 영화를 하나 보았다. <나의 전쟁> 지금의 우크라이나 전쟁이 생각났다.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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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기에 한창 좋아했던 모 아이돌이 생각났다. 드라마 출연으로 좋아하던 중국인 배우이자 아이돌이었으나, 항미원조-동북공정 등의 불미스러운 일로 한국 내에서도 이미지와 여론이 좋지 않아졌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이 생각하는 6.25와 우리들의 6.25, 미국의 6.25, 북한의 6.25마저 다르다. 단지 내가 느꼈던 것은 중국,북한과 남한,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에서 죽어갔음에도 정치인들은 이를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정치에 이용한다는 점, 그 점이 참 껄끄러웠다는 점이었다. 예민하고 감수성이 많다, 적다 그걸 다 따지지 않고서도 당장 그 전쟁에서 우리 가족중 누군가가 죽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필요할때 꺼내쓰는 용도로 6.25를 사용해왔다. 우리는 늦게 태어나서 전쟁을 모른다. 전쟁이 어떤 의미인지 직접 겪은 사람들보다 백배 천배 더 모른다. 누군가는 늦게 태어난 것이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의견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늦게 태어났다고 전쟁의 위험이 아예 싹 전멸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도발, 방조 등으로 우리 사회는 너무나 지쳐왔다. 어쩌면 그것은 정치인들이 단지 전쟁을 수단으로서, 전단과 이데올로기 전파에 사용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과 믿음에 과도하게 무심했을지 모른다. 내가 해야하는 것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그 어떤 문제라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나, 너, 우리 그 뿐만이 아닌 그 사이에 연결되는 연결고리 하나하나까지 보아야 비로소 단 1%라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책이다. 항미원조, 6.25, 빨갱이..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전쟁은 아직 우리들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직 우리 곁에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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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렬 대통령의 방미를 놓고 날선 반응을 보인다. 미국 의회합동연설에서 #장진호전투 발언으로 중국에서는 #항미원조 드라마 #압록강을건너 재방으로 자국민에게 입장을 표명했다. 우리에게는 6.25전쟁, 한국전쟁으로 내전과 같은 성격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짙었다. 면밀히 들여다보면 냉전시대의 서막 가운데 국제전쟁이었고, 각국의 격변 시기를 모두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을 #항미원조 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한 항거였고, 제국주의에 대항 명분으로 참여한 전쟁이라고 명명한다. #백지운 저자가 바라본 중국의 항미원조는 단순히 한 가지로 해석되지 않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0주년 당시만 하더라도 냉전의 단순구도였지만 중국의 경제적 성장, 미국과 화해 모드로 데당트 시기를 거치면서 항미원조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한다. 30만명에 이르는 수많은 희생을 가져온 전쟁 참여였지만 항일전쟁, 국공내전과 같이 수 많은 전쟁 이야기가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항미원조와 관련된 영상 제작은 몇 편에 불과했다. 이 시각이 재차 변화된 것은 2010년 즈음, 미국과 중국은 냉전과 달리 세계 패권을 두고 마주하게 된다. 중국 내에서 미국을 의식하여 직접 언급하지 않았던 #항미원조_를 시 주석이 발언하면서 분위기는 변화한다. 중미 혹은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될수록 자국민에게 #항미원조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 외교, 경제 분야에서 민감하기에 #중국인들의한국전쟁 #항미원조 글을 통해 중국의 시각을 읽어볼 필요를 느낀다. ■ 20주년에는 '항미원조' 없이 '부조작전' 혹은 '부조참전'으로 대체되었다. ....중략.... '조선으로 건너가 전쟁을 전재하다' '조선으로 건너가 전쟁에 참여하다'라는 뜻이다. '항미원조 입조작전'에 담겨 있던 뚜렷한 정치적 의미와 주동적 어감이 중립적이고 수동적인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33p) □ 중국의 정치·사상적 대응 차원에서 적극적인 대항 의미를 둔 #항미원조 대신에 '부조참전' 등으로 대체한 것이다. 미중 관계에서 두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적개심을 적당히 서로 숨겨두었던 것이다. 이는 물론 상층 서사이다. 전쟁의 참극을 몸소 경험하고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기층 서사와는 다른 방향인 것이다. ■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 (44p) ■ 2000년대에 귀환한 항미원조전쟁 담론에 '인민전쟁'의 이념이 사라진 근본 원인은 '인민'의 지위가 축소되고 '당의 영도'가 우선하는 중국공산당 사상체계의 변화에 있다. 그렇게 보면, 항미원조라는 냉전시대의 상징적 구호가 그 이념적 핵심을 탈각한 채 '신냉전'이라 불리는 첨예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돌아오는 지금의 상황은 매우 역설적이다. ...중략...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군중노선이고 인민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유격대 혁명의 유산이기도 한 '인민전쟁'의 이념은 '사회주의 현대화'로 노선을 전환한 신시기 이후 중국공산당의 사상체계에 더는 존립할 수 없었다. (211p) □ #항미원조_를 가져와 미중 대립 구도에서 유용한 카드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내밀하게 바라보았을 때, 본래적 의미를 벗어나 중국은 이를 활용하고 있다. ■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서상에서 '압록강을 건너'는 단연 기념비적 작품이다. ...중략.... 항미원조전쟁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관점과 방향이 투영된 공적 서시이기도 하다. ...중략....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허구이지만 실제 역사적 전거를 가지고 있다. 허구성을 가미한 개인 서상의 층위는 공적 서사 위주의 이야기 전개가 가져올 경직성을 완화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247-249p) ■ 장진호 전투란 1950년 11월 25일에서 12월 24일까지 2차전역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싸움을 말한다. ..중략.. 군우리, 삼소리, 청천강 등 2차전역의 승전지는 모두 서부전선에 집중되었으며.....중략....서부전선이 양지라면 동부전선은 음지였다. 서부전선에서 거둔 승리의 흥분과 대조적으로, 동부전선의 서술은 지원군이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희생에 대한 숙연함으로 감싸여 있다. (302-304p) □ 윤 대통령의 #장진호전투 언급이 중국을 자극하였다는 기사 배경은 위와 같다. 중국으로서는 실책이자 아픔이고 희생의 역사인 것이다. ■ 우리는 항미원조전쟁이 미중 대결이라는 작금의 첨예한 정치적 장으로 소환되는 현상 그 자체보다, 그 소환의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버리고 온 것이 무엇이냐에 주목해야 한다. (341p) ■ 영화 '금강천'이 보여준 것처럼, 주선율 사이사이 숨겨 둔 하위선율로부터 전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과 목소리가 비집고 나올 가능성을 전연 배제해선 안 된다. 설령 미약할지언정, 소인물의 시선으로 거대서사에 각인된 역사의 현장을 부단히 반추하면서 철갑처럼 단단한 공적 서사에 미세한 균열을 낸 시도 자체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영웅적인 희생'보다 '살아남는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반전의 메시지가 중국인의 감수성과 문법으로 항미원조 서사에 자생하여, 한국과 북한, 미국을 포함하여 이 불행한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당사자들에게 모종의 울림을 전하는 작품으로 탄생하는 날을 기대해본다. (364-365p)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도서협찬 #항미원조 #한국전쟁 #중국인바라보는한국전쟁 #창비 #백지운 #미중구도 #냉전 #신냉전 #중국 #미국 #윤석렬미합동연설 #장진호전투 #압록강을건너 #한중외교 #한미외교 #한미일외교 #외교 #서평 #중국문화 #인문학 #인문학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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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책을 지원 받았습니다. 오늘자 뉴스에 ‘중국, 압도적 친미 정책, 보복 직면할 것’이라는 내용을 봤다. 또 향후 30년간 중국은 미국을 넘어설 수 없고, 미국은 중국을 망하게 할 수 없다. 소모전만 가열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최전선이 한반도가 될 것이다. 라는 짧은 영상도 봤다. 이 시점에 이 책은 마치 물 위에 조용히 떠 있는 백조가 물 아래로 맹렬하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6.25는 어릴 적 tv 프로그램에서 오래도록 방영했던 드라마로 기억되는 전쟁이다. 학교에서 배웠다. 남침, 불과 며칠만에 서울 함락, 낙동강 전투, 연합군 참전, 북진. 압록강을 눈앞에, 중공군 참전, 인해전술, 휴전선 부근에서 치열하게 전투, 내가 기억하는 6.25이다.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고, 피난민들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면서 컸다. 조금 더 지나서는 국제 관계가 보이기 시작했고, 누가 경제적 이득을 얻었는지, 전쟁의 배경은 무엇인지 조금씩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상대였던 중국의 시각에서 바라볼 생각은 못했다. 그저 남쪽의 연합군처럼 북한을 도와주러 참전했다고 생각했다. 항미원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 왜 지금일까? 불과 수십년 전 젊은 중국인들이 몰랐던 6.25가 왜 지금 온 중국인이 발끈할 정도로 관심사가 된 것인가? 미중 갈등이 첨예한 이 시기에. 중국과 소련의 갈등이 심할 때는 사라졌다가 힘을 키워 미국과 대치할 때는 부각되는 6.25는 계륵인가. 중국도 우리와 같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민족주의를 고취시킨다. 이 책은 6.25를 배경으로 하거나, 핵심내용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중국의 정치상황과 노림수를 보여준다. 우리 드라마와 같이 일반 사병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하여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보다 상층부인 군 수뇌부의 이야기를 다큐나 영화로 제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80년대까지가 그러했듯 검열이 심하다. 2021년 영화 장진호가 나오기 전까지 영화 ‘북위38도선’, 드라마 ‘항미원조’는 시작도 못해보고 좌초되었다. 중국의 국내정치권력자들의 힘의 쏠림과 중국에 유리하지 않은 국제정세가 그때그때 작동했나보다. 중국을 이끌어 가는 위대한 지도자를 마음속에 심어주기 위해 ‘펑 더화이 원수’를 제작하고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6.25의 전쟁 등급을 격상시킨다. 역사 고증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으나 중국정부의 목적을 위해 다루어지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중국이 세계의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 어느 곳까지 준비하는지 새삼 놀라고 섬뜩하다. 사실 오래지나지 않은 미래에 6.25가 중국지방지역에서 일어난 내전이라고 포장되어 드라마화 되는 지나친 상상도 해 보았다. 이 책에 따르면 6.25는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묻어 두고 싶은 전쟁이었다. 하지만 현재 중국 국민들은 6.25와 함께 항미감정을 고취시키고 있다. 바로 오늘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 분명 70년대가 아닌데, 연금술사에서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고 했는데. 바람 앞에 촛불이 자꾸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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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30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또는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을 중국에서는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한국전쟁에 남한과 북한의 전쟁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중국군이 남한과 북한을 도와 3년가량의 전쟁이 있었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 휴전에 조인을 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휴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대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미원조전쟁 우리는 당사자였던 전쟁이지만 전쟁이 발발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직접적인 개입으로 많은 병력을 투입했던 중국. 그들에게 '항미원조전쟁은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은 항미원조전쟁의 기억이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중국에서 억눌려왔다는 겁니다. 70년 가까이 지속된 미중의 적대적 공조 체제는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공적 공간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한 주요 원인이라 저자는 봅니다. 1950년대 말에 시작된 중소 갈등 역시 항미원조전쟁이 모호한 정치적 금기가 되는 과정에서 내밀하게 작용했습니다. 이 두 요소가 인민공사, 대약진, 문화대혁명, 그리고 개혁개방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굴곡과 뒤얽히면서, 항미원조전쟁은 오랫동안 중국 대중들로부터 기억의 유배 상태였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항미원조에서 미중전쟁으로 항미원조의 귀환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 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의미하며, 트럼프 정부의 무역 갈등에서 시작하여 바이든 정부에서 전면화된 미중 대결의 정치 공간으로 사라졌던 항미원조의 기억이 대대적으로 소환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로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에게도 의미가 큰 역사의 한 면이지만 중국의 역사에서도 항미원조전쟁은 그들의 시대사에 중요한 한 부분입니다. 최근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의 균형은 신냉전시대로 불릴 만큼 치열합니다. 중국 내에서 항미원조전쟁을 최근 들어 소환하는 이유는 국민들의 결집을 도모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