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集은,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故 신경림 시인의 유고 시집이다. 그래서일까,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라는 말이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게 다가와 울린다. 그가 남긴 겸손하고 아름다운, 더욱 숭고한 언어들을 다시 접할 수 있어 참 좋다. 생의 마지막까지 지켜낸 한결같은 시인의 불꽃을 볼 수 있어 더 좋다.
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 - <고추잠자리> 전문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려 있는 ‘고추잠자리’는 시인의 한평생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 같다. 당신이 살아온 삶은, 현실은 흙먼지 가득했는데, 이만큼 걸어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니, 어쩌면 그걸 알 수 있어 흐뭇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니 당신의 어깨에 꽃잎으로 붙어 있을 터. 어둠과 꽃잎이 상징적으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으면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 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 늙은이가 아름답다
돋는 해를 향해 활짝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 햇빛이 싫어 굴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라서 더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살아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전문
무엇보다 ‘아직 살아 있어, 오직 살아 있어 아름답다’라는 말이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 문장이 지닌 울림이 금세라도 마음속으로 쳐들어와 자리 잡을 것처럼 벅차고 터질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우리 곁에 비문碑文처럼 서 있는, 어쩌면 위로이자 격려가 된다. 솔개가, 비탈길을 오르는 늙은이가, 나팔꽃이, 지는 해가 아름답다는 데는 쉬 공감이 되는데, 다만 솔개나 박쥐는 시인의 눈으로만 보이는 거여서, 그리고 굼벵이는 시인의 마음이어야 아름다워서 언뜻 고개 저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살아 있는 것은 날짐승이든 벌레든 길짐승이든 늙은이든 다 아름답단다. 솔개는 훨훨 날지만 그래서 아름답고, 굼벵이는 겨우겨우 땅을 기면서 살지만 그래서 아름답고, 사슴은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지만 그래서 아름답다고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그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고 보는, 시인의 여유 있는 마음이 그대로 스며오는 듯하다. 작고 하찮은 것을 끌어안는 따뜻한 시선과 굽힘 없는 시적 태도를 다시금 떠올려 잠시 나지막한 시선을 담아두게 한다.
씨앗처럼 우리는 곳곳에서 왔다 (중략)
햇살이 찬란히 빛나는 어느 봄날 제법 익었다고 알았을 때 마침내 우리는 다투어 달려 나갔다 (중략)
여름이 오고 다시 겨울이 가고 이렇게 세월은 흐르는 동안 우리는 땅에 튼튼히 뿌리박은 고목이 되었다 철따라 꽃과 잎과 열매를 자랑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눈비를 맞받아 이겨내면서 (중략)
이제 우리들 모두 여기 나무처럼 서 있다 빨간 열매로 열린 우리들의 삶 되돌아보면서 씨앗으로 모였던 옛날을 그리면서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中에서
시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길 위를 걸었다. 씨앗처럼 곳곳에서 오면서, 혹은 병상에서도 길과 사람들을 생각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렇게 지친 이웃을 위하기도 하는 시인의 탁월한 시선을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찾아낸다. 끝내 삶을 긍정했던 시인의 태도는 존재에 대한 겸허하고 단단한 고백이다. 시인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밝은 눈으로 시를 썼다. 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이고, 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는 그의 시적 통찰은,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발견하고 지켜온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뒷이야기] 시인이 떠난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이번 시집은, 신경림 시인이 생전에 펴낸 ‘사진관 집 이층’ 이후 11년 만이란다. 그사이 잡지나 신문 등에 소개된 시는 물론, 발표하지 못한 유작까지 모았으며 총 60편의 작품을 도종환 시인이 엮어냈다고 한다. 이번 시집을 통해 우리 시대 가장 낮은 곳에서 좋은 시를 쓴 시인이‘ 남긴 깊은 생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고 소개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경림 시인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라고 도종환 시인은 덧붙인다. |
|
학교다닐 때 교과서에 실려 참 많이 밑줄치며 외우고 분석했던 시인 중의 한명이 신경림 시인이었는데 시간이 한참 흘러 이제는 그 시인이 남긴 시집을 직접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신경림 시인의 타계 소식에 마음이 아팠는데 시인이 남겨놓은 마지막 시집을 모아 이렇게 한권의 마지막 시집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한번 읽고 스쳐가는 시집이 아닌 오래오래 아껴 읽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