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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던 사람들은 간혹 때를 놓쳐 열차를 타고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 칸이 있었던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발전되어 점점 빠른 속도로 달리는 열차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KTX 열차에는 식당 칸을 발견할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열차의 ‘식당 칸’이라는 용어조차도 낯설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시집의 표제작인 ‘식당 칸은 없다’라는 작품을 통해 시인은 그 시절 식당 칸을 달고 달리던 열차를 회상하며 작품을 창작하면서, 그로 인해 환기되는 ‘음식’과 ‘맛’에 대한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시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처럼 / 맛은 사라진다’고 서술하지만, 작품을 통해 실상 맛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자의 입맛이 변한 것일 뿐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기억하면서, 마치 기차의 칸을 옮겨 다니는 것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하여 과거와는 다른 현재의 상황을 형상화하면서, 우리의 삶이 지속되듯이 ‘KTX는 달리고, 식당 칸은 없다’고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 시인인 것이 고맙다.”라는 한 줄의 표현으로 제시된 ‘시인의 말’을 통해서, 자신이 여전히 시를 쓰고 있음에 감사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 탓일까?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나에게는 좀처럼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시인 자신의 과거를 통해 소환된 고향의 모습이 형상화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대부분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추억들로 형상화된 작품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시절 시인의 개인적 추억들은 독자들에게 낯선 내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또한 불교 혹은 사찰과 관련된 작품들 역시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지극히 관념적인 표현에 얹힌 작품들이 같은 시인의 이전 시들과 달리 낯설게 느껴졌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전체 4부로 나누어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시인의 일상과 주변의 자연에 기대어 창작된 3부의 작품들이 조금은 익숙하게 다가왔다고 하겠다. 아마도 시인에게 시를 창작하는 과정은 ‘말’이라는 작품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그립다는 말 참 하릴없는 말’처럼 여겨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때로는 ‘내가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 지나는 개울에 / 몸을 담그고 / 정수리만 겨우 내놓은 들’(‘잠긴 들’ 부분)을 바라보기도 하고, ‘호두나무 잎사귀가 있는 저녁’의 풍경을 형상화하는 모습은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창작한 작품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시집에 수록된 많은 작품이 시인 자신의 추억 혹은 관념에 깊이 빠져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에, 그의 시를 익숙하게 접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작품들의 경우 대체로 이해하기 힘들었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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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도나 윤회나 소멸이나 생성 같은 말들을 다 두고서라도, 사람살이... 사람 안에서 피어오르는 온갖 것들... 이렇게 그립고 아리고 따뜻하고 먹먹한 것들을 시인은 잔잔하게 마주한다. 조용히 쓰다듬는다. 그 눈길과 손길 사이의 시간이 시에 묻어 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야단스럽지도 적막하지도 않은, 시의 말들이 솟아나고 사라지는 그 시간을 가만히 함께 느껴보는 맛이 좋다. 시인이 여전히 시인이어서 고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