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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죽음이란. 다시는 못 본다는 것.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대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것. 우리 아이와 어제 저녁에 있었던 일을 동료들과 화제로 삼지 못한다는 것. 오늘 저녁 뭘 먹을지 묻지 못하는 것. 저녁 내내 귓가에 들리는 남매의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밥 제대 안 먹고 논다고 잔소리할 수 없는 것. 내 손을 꼭 잡는 그 손의 압력을 느낄 수 없는 것. 25년쯤 후 결혼식장에서 사위에게 건네줄 손이 없는 것. 가슴팍에 끌어올려 안았을 때 온몸을 다해 안기는 감촉을 느낄 수 없는 것. 내 몸통을 다리로 감는 가벼운 조임을 느낄 수 없는 것. 예전 앨범을 보며 그때를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 사랑한다고, 꿈에서 만나자는 밤인사를 듣지 못하는 것. 초등학교에서 메고 다닐 새 가방과, 새 신발을 살 필요가 없어지는 것.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려고 퇴근을 서두를 필요가 없어지는 것. 좋은 아빠가 되려고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으로 살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일곱 살, 다섯 살 짜리가 없어진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죽겠다. 지난번 코로나 자가격리 2주를 하는 동안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둘째의 젓가락을 보며 김광균의 <은수저>가 떠올라 눈물이 왈칵 났는데. 자식이 죽는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감을 느낀 그 속은...... 역설적이게도 그 사람들이 미쳐버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사람이 수백 명이었기 때문일까. 이런 초현실적인 슬픔 앞에서 나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만, 너무 안 됐고, 속상해서 터지는 눈물같은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당장 내일 보지 못한대도 내가 아이에게 이렇게 행동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려 한다. 그럼 영어, 한글 공부가 아니라, 얼굴 한 번 더 보고 눈 한번 더 맞추고 귀찮은 티 덜 내고 화는 누르고 좋은 말과 공감의 말이 더 나가게 된다. 존재 자체가 고맙고 귀해진다. 미래에 아이가 제 갈 길을 찾는 것은 그의 몫이다. 나는 그저 나를 위해서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귀하게 여겨주려 노력할 따름이다. 학교에 가서는, 점점 잊혀져가는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 내고 감정을 증폭시켜 자라나는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가슴에 각인시키려 한다. 진상 규명을 위한 목소리에 기계적으로 동감을 강요하기 전에 - 사랑했었는지도 잘 몰랐고 알았어도 잘 표현하지 못했던 -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최대한 공감하게끔 하려 한다. 적어도 그럼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간같지 않은 말을 내뱉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럼 그 사람들이 새로운 상처를 받는 대신 자신이 지금 안고 있는 상처의 치유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올해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읽으며 나는 나와 내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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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끝까지 읽는 게 참 힘들다.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거라면 주저하지 않고 덮으면 그만인데, 꼭 들어야 할 이야기라면 달라진다. 이미 이 내용으로 발행된 책이 여러 권일 테지만, 매번 접할 때마다 감정이 일렁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좀 무뎌지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그게 아니었나 보다. 누군가는 그날의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누구 말처럼 그 날은 사고 당사자나 관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기억할 만한 날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다. 늦은 아침을 먹다가 놀란 건 당연하고, 저게 정말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계속 TV 뉴스를 보던 기억이 난다. 저런 일이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고 하는 놀람은 계속됐다. 내 가족이 타고 있던 것도 아닌데, 종일 슬픔의 순간을 공유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희생자는 너무 많았다. 한 가정의 아들이자 딸, 누군가의 동생이자 언니 오빠, 아내이자 남편. 어디선가는 VIP 보고용으로 영상을 요구할 때, 누군가는 생사를 건 몸부림을 치고 있었던 거다. 그마저도 불가능해 결국 수장된 채로 아직 그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 3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난 세월호의 모습은 처참했다. 세월호의 외관이 저러할진대, 그 안의 많은 것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그건 언제쯤 이뤄질까. 지금도 뭍에서 자식의 흔적을 찾으려고 애가 타게 기다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그 안에까지 들릴 것 같다. 어서 나오라고, 엄마 아빠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늦게라도 좋으니 보고 싶다고... 그게 언제쯤 이뤄질지 모르겠다. 간절한 바람으로 어서 빨리 엄마 아빠 곁으로 오기를 같이 기다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매순간 형제자매를 그리워해요. 매일 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동생이고 언니고 형이고 아우인 그 아이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기억하곤 해요. 그런데 세상은 자꾸 잊으라고, 그만하라고. 그리움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는데 그만하라고만 해요. (330페이지)
이 책은 세월호 참사 이후 두 번째 봄을 맞이하여, 세월호 유가족 육성을 담은 기록이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은 11명이라고 한다.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단원고 학생,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단원고 학생의 형제자매 이야기다. 사고 당시 십 대였던, 이십 대 초반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목소리다. 온몸으로 겪어냈다는 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들려온다. 어린 나이에 형제자매를 잃는다는 게 뭔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하면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그런 사람, 그런 순간이 있지 않겠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게 생각하면 이들의 이야기에 저절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고 당시 순간의 일들, 오보에 안심하며 가졌던 희망, 불안함이 들고 온 소식, 이해할 수 없는 절차와 방식의 태도들에 좌절하며 보냈던 시간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들은 '생존학생' 혹은 '유가족'이라 불렸다. 어떻게 슬픔을 견디며 지내왔을까.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통된 말이 나온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라고 했다. 가족에게는 더 아프고 슬플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까 봐 하지 못했던 말들이 가득하다.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순간이 많기에, 그들이 다 말하지 못한 이유에 슬픔이나 불편함만이 있을 수는 없을 거다. 어디 털어놓을 수 없던 속내를 시간이 조금 지나니, 누군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물으니 대답할 수 있었다. 형식적인 위로가 아니라,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같은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이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 인터뷰이도 인터뷰어도 모두 바라는 건 하나다. 사람들이 함께 기억해주기를, 잊지 말아주기를...
세월호 이후에 저는, 어… 그냥 삶이 나눠진 것 같아요. 친구들을 잃었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도 생겼고 배운 것도 성장한 것도 많아서, 더 나쁜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그렇다고 그 친구들이 없는 삶을 더 좋은 삶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그래서 전환? 그냥 삶이 다른 거. (315페이지)
어떤 때는 '이해할 것 같다, 잘 알 것 같다'는 말이 위로가 된다. 공감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마음을 나눈다. 그게 어느 순간 힘이 된다는 걸 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같은 경험으로 공유하는 슬픔과는 다르다는 거다. 기쁨보다는 같은 슬픔을 겪은 사이에서 생기는 유대감이 있다. 같은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슬픔을 언제 어떻게 겪었느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한없는 마음을 보내다가도, 내가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싶어 감히 말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았다. 그저 공통으로 겪은 '슬픔', 소중한 사람의 '부재', 견뎌내야 할 '고통'. 대개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당사자의 아픔만큼 다가가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 책을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히 잊힐 기억도 아니기에 더 그렇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하여 나온 책이나 소식들은 어른들의 눈과 입을 통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 뒤에, 옆에 있던 10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뒤로, 10대의 당사자가 품은 생각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 이 책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가족, 생존자인 10대들의 마음을 듣는 좋은 기회를 열어준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고,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기에 더 들어야 할 마음들이다.
세월호가 수면 위로 올라왔으니, 이제 또 다른 시작일지 모른다. 밝혀야 할 것들, 찾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잃어버린 친구들, 되찾아야 할 일상,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내일을 기다릴 희망, 아픔과 추억을 간직할 기억들, 진심으로 들어야 할 누군가의 마음, 상처 회복과 배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그 날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이 이들의 마음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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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의>라는 책을 통해 고전을 얕게 나마 접하고 있다. 고전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것이 무엇일까를 계속 묻게 된다. 그러던 차에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지인이 빌려주어 읽게 되었다. 마침 푸르른 4월이다. 4년 전 4월에도 푸르른 날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 나이가 되기까지 많은 사건 사고 소식을 뉴스를 접했지만, 이렇게 명확히도 그 날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 나는 날은 드문 것 같다. 그리고 뉴스를 그리도 많이 의심했던 날도 없었던 것 같다. 앞선 질문에 지금 내가 소소하게 나마 찾은 대한 답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그것을 행하는 내공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 고전을 읽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것같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 삶이 살아가기 괜찮아질테니까. 416세월호참사의 유가족들,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읽으면서도 계속 질문을 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우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목소리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일이 제일 우선이었을텐데. 4년이 지난 지금 이 봄이 그들에게 따뜻할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많은 가공없이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계속 붉어진다. 중간중간 사진들이 나올 때는 더 하다. 이 따뜻한 봄 한 없이 찬란하게 빛났을 그들일텐데.. 제발 더 이상 생존자라고, 유족이라고 그 이름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길 바란다. p.102 저 혼자서 사람들 사이에서 받는 상처가..뭐랄까..여러 사람에게 쌓인 게 있으니까 한번 올 때마다 더 크게 받아요. 그게 좀 무뎌지면 좋겠어요. p.278 아프지 말고, 힘들지 말고, 행복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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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인 둘째는 감수성이 남다르다. 친구들이 발랄한 걸그룹의 노래를 찬양하듯 불러대지만 욘 석의 플레이리스트엔 슬픈 발라드가 그득하다.아무래도 조용한 사춘기가 시작된 모양이다. 그런 아이가 사달라고 부탁한 책이다. 아이가 먼저 읽고 다음에 내가 읽었다. 예상대로 슬펐다. 부끄럽고 화가 나고 안타깝고... 내가 느끼는걸 아이도 느꼈을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어른에게 내가 분노와 수치스러움을 느꼈다면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다시 봄이 올거라고 아이에게 얘기 해줄 수 있을까? 주말에 아이들과 <터널>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받아들여야 할 어들들만의 계산방법을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걱정이다 |
| 이책은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희생자의 친구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인터뷰식으로 담은 책이다. 정말 이 책을 읽고나서 나의 생각이 변하게 된것 같다. 책을 읽기 전 평소의 나는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동정하는 눈빛으로만 봐왔고 동정하는 생각밖에 없었던것 같다. 그치만 그런 동정하는 눈빛대신 웃으면 웃으시네 우시면 우시네 하고 담담하게 행동하는게 더 좋을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담담한 눈빛 대신 세월호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는일 한가지라도 하는것이 훨씬 그분들에게 더 위로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이책은 읽어볼까가 아닌 당연히 읽어야지!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좋을것같다. 이책을 통해 나뿐만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모두 416을 잊지 않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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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세월호의 생존학생이나 유가족 형제자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구나... .청소년들의 속내를 직접 들어볼 기회가 잘 없는데 이런 기록활동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권하고 싶다. 또한 사고는 그저 사람들의 뇌리에 하나의 사건으로 남겨지거나 혹은 잊혀질지 몰라도 그것과 관련된 사람은 여전히 고통의 시간 속에 남아있다는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타인의 상처와 아픔들에 진정 귀기울이고 공감할 줄 아는 사회라면 이런 이해할 수없는 일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런 기록활동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
![]()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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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기록단에 따르면 이 책에서 생존학생이라는 표현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싶었단다. 이제 단원고를 졸업하고 새 길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에서 생존한 10대들을 한꺼번에 이르는 명칭으로 이를 대체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한다.
생존학생들은 사건 직후부터 당시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학생도 있고,
한편 이들은,
그래서,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고통과 피해의 서사로만 축소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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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들에게
단지 책을 읽고 쓰는 것이 뭐라고, 아프다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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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잃은 아이의 서러운 울음과 자식 잃은 부모의 깊이 모를 한숨을 비난하는 건 폭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만 슬퍼하라”며 호통을 친다.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님에도 억누르라 주문한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차갑게 반응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공감을 형성하기는커녕 “보상금을 많이 받아 좋겠다”는 식의 말도 망설임 없이 내뱉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돈으로 모든 걸 판단했던가! 충분히 긴 시간이란 없다. 아픔은 시간이 멎지 않는 이상 영원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상처란 극복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마치 내 일부인 듯 덧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보듬어야 하는 법이다. 세월호로 소중한 이와 이별했던 이들은 보듬을 기회조차도 부여 받지 못했다. 누구의 슬픔이 더 큰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겠지만, 많은 이들 중에서도 우리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존재가 있다면 당시 형제, 자매, 친구를 잃은 이들이지 싶다. 부모의 슬픔에 대해서는 언론 등을 통해 누누이 접했다. 믿건 믿지 않건, 부모는 자녀를 잃었기 때문에 슬퍼하고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럽다고 여겨져 왔다. 허나 아직 성인이 되지 아니 한 이들은 달랐다. 우선 그들은 자율적으로 제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존재처럼 치부됐다. 그들 또한 아플 수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죽은 형제의 몫까지 수행할 것을, 부모를 위해 단단한 모습을 보일 것을 주문했다. 슬퍼도 드러내놓고 슬퍼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면서 그들은 강한 존재가 되어 갔다. 실제로는 강하지 않으면서도.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로 제 삶이 나뉘었음을 고백했다. 다시 예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일부는 여전히 혼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살아 있기에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는 듯했다. 서글프게도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잠시 조연이 되기로 결심한 듯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주변의 요구에 그들은 부응하고 있었다. 나까지 슬퍼하면 부모님이 정말 힘들어 하실 거야. 무뚝뚝한 제 성격을 바꾸어 애교 많은 아이의 역할을 자처한 이도 있었다. 심지어 자신의 언니 오빠가 하지 못한 졸업을 대신하겠다며 단원고로의 진학을 결심하기도 했다. 죽은 형제 자매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들이라고 어이 모르겠는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이 떠난 이를 대체할 수 없음을.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이를 여기며 받아들였다. 근데 괜찮은 척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괜찮지 않았다. 사건을 직접 겪은 이들은 혼자 있을 때면 악몽에 시달렸고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왜 모두가 떠났는데 나만 이 세상에 홀로 남았는지 싶어 이유모를 죄책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어른들이 준비한 상담 프로그램이 마냥 효과적이진 못했다. 일부는 세월호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해 묻는 이들에게 부담을 느꼈기에 상담에 참여치 않았다. 털어놓는 게 제일 좋은 치유법이라고 들었지만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이를 적용해선 곤란했다. 배려는 개개인이 지닌 욕구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부응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진정한 배려다. 정책을 마련할 때 정부는 조금 더 세심해질 필요가 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들을 위해 최고의 혜택을 제공했다는 식의 자화자찬이, 필요 이상의 과도한 기회를 그들에게 주어졌다는 식의 냉소가 이어졌던 건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개개인의 마음속에 남을 앙금은 물론이거니와 사회가 끝끝내 안고 가야 할 갈등 역시 한없이 거대해 보였다. 이는 불신이었다. 아무도 지켜내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신, 개개인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사회에 대한 불신, 슬픔 앞에서도 경쟁을 떠올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불신. 과연 다시 봄이 오긴 할까? 요 며칠, 낮이면 달아오른 세상이 여름을 연상시켰다. 이미 반팔 옷을 꺼내 입은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얼어붙은 마음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큰일이다.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고자 하지도 않고 있는 진실이 한겨울 매서운 바람처럼 우릴 때리고 있다. 그 바람과 함께 은은하게 들려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이제는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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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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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은 활자로 읽기만 해도.. 2년전인데..여전히 떨리고 생생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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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나누면 같이 슬퍼져서 ㅠㅠ 그냥 힘들어도 나만 힘들고 말지..
너 어디 학교니?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숨기게 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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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 어른이 되자.
유가족이 되기 싫어도 평생 유가족이잖아요. 끝까지 같이 싸워주지는 못하더라도 가만히 있으라고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TV에서 '세월'이라는 말만 들어도 막 벌렁벌렁해요
침묵하는 사람들. 그렇게 안 살기로 다짐했어요.
꽃은 절망 속이 아니라 꽃밭에 있어야죠. 나는 꽃이 아니라 절망을 정화하는 미생물이 되고 싶어요.
'아, 내가 얘기하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는 가십거리구나.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다.' 그때부터 입을 다문 거죠.
부모님에게도, 같은 형제 자매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어요. 유가족 형제 자매의 이야기와 생존 학생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야기 하네요. 비록 그들을 직접 찾아가서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고 함께 해준다면 이제 막 어른이 된, 그리고 앞으로 어른이 될 아이들의 미래가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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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세월호 사건이 3주기가 된다. 그리고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오고 있다.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여 육성이 기록된 책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처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생생하다. 그리고 또 생존학생들과 형제자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세월호 사건을 잊지 않게 해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세월호 생존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갈 때 '특별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눈치가 보이고 막상 입학을 하고 났을 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안에 있던 학생들은 내 동생과 같은 나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도 그들의 아픔을 알지만 같은 수험새으로서 '특별전형'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무리 정원 외여도, 다른 힘든 일을 겪은 학생들도 똑같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집단 트라우마는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같은 학교 친구들의 반 이상이 죽음을 맞이했고, 별이 되었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졸업을 하고 나서도 그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을 읽고 그 아이들이 가졌던 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 3주기로 yes24에서 열흘 동안 e-book 무료배포를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