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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창비/2016.12.12.
‘언강이숨트는새벽’님의 YES블로그에서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서평을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뜻밖에 책을 보내와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뿐 아니라 두루두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답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재주가 아니라 묻고 또 묻는 것이 이번 생의 이유라고 여긴다. 지은 책으로 <단속하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등과, 함께 쓴 책이 여러 권 있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내용은 3부로 되어있다.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 : 싸그리 망해버려라, 자기를 돌볼 수 없는 나, 자아탐닉에서 자기 파괴로/ 리셋을 부르는 세상 : 좋은 삶이 불가능한 국가,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 각자도생, 공도동망의 정치/ 리셋을 넘어서 : 다시 존엄과 안전에 대하여, 다시 리셋에서 전환으로, 다시 함께하는 삶으로, 리셋너머, 평등과 민주주의 등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서 왜 역사에 절망하며 역사 자체를 리셋하고 싶게 되었는지, 그 정념은 또 어떻게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다시 역사로 귀환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할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혁명과 리셋은 불신의 산물이며 혁명가들은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예로 IS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슬람의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나라를 ‘칼리프’의 국가라 부른다. 이슬람이 탄생한 그때의 국가가 바로 자신들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이다(p.31).” 그래서 ‘원점’인 자신들은 절대 선이고 서구를 포함한 바깥은 전부 악이며 파괴되어야할 존재들이라 말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무기력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기인한 ‘과격한 무기력’이다.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방탕과 타락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무기력이다. 이 무기력은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반역사적인 종말론적 급진주의와 매우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과격한 무기력이다.(p.20)”와 같이 우리 사회가 화난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서 우리가 터득해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며하는 기술’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맞은 IMF 때 친척에 의한 안전망이 무너졌으며, 세월호, 강남역 살인 사건 등으로 사회적 안전망의 핵심인 국가 안전망이 무너졌다. 이는 모두 관료주의에서 오는 병폐의 일환이다.
“배우는 자만이 살아 있으며 삶을 도모할 수 있다. 배우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죽은 상태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사람은 늘 배운다.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늘 바뀌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삶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배움은 필수적이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삶은 중단된다(p.153).” 세월호 사건을 개인적 불행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메르스 사태는 우연히 재수 없게 1년 뒤에 벌어진 별개의 사건일 뿐이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연속성이 없다. 두 사건을 연속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니 역시 위정자들이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사회를 리셋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애사를 기획하는 것도, 사회 안으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에 화가 나 있다. “사회 한쪽에서는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그들의 정치와 담론은 배제된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와 담론, 나아가 사회운동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점점 더 자신이 주변화 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억울함이 쌓이고, 해소되지 못한 억울한 감정 때문에 피해에 민감해진다(P.168).”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시대와 사회가 구제불능이라고 인식하며 완전히 뒤엎어 역사 자체를 리셋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그 첫 번째가 정치이고 두 번째가 지식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정치를 불신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해왔던 말들은 사기였고 무의미했으며 무력했음을 경험상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 기만하고 있는 이 정치의 세계를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p.176)” 트럼프와 투테르테는 반정치의 정치가 어떻게 정치권에 진입하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그 반정치의 정념이 기득권층에 대한 원한과 복수라는 것 역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원한을 복수로 풀고 싶을 때 대리인이 될 만한 사람이 나타나자 정치적으로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허탈한 허무주의일 뿐이다. 새로운 세력 역시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11월 12일 서울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 ‘동료시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청소년들, 여성들, 성소수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 날을 기억하는 것이 리셋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기초라고 생각한다(p.210).” 그 자리에 선 모두가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으며 평등하게 나라의 변화에 힘을 보탠 동료 시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들의 말이 경청할 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박수다. 그러므로 박수는 일종의 서약이다. 우리 모두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기에 서로 존중받아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길 여러 차례 반복되며 절망하여 반정치적인 의식이 강해졌다. 기득권층에 의해 점차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을 인식하며 나타난 현상이 세상을 리셋하고 싶은 열망이다. 그러나 리셋은 현실을 파괴하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기에 과격으로 흘러 더 큰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우리 모두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기에 서로 인정해주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 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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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존엄이 있어 평등하다. 인간 모두가 존엄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평등이 강조되어야 한다. 인간이 지향하는 평등이 경제적, 정치적 권리의 평등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존엄이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211 ‘자유’라는 이름하에 욕망의 노예가 되는 영혼의 타락이야말로 서구가 자신들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11월 12일 우리가 광장에서 경험한 것이 바로 이 말하는 존재로서 우리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이다. 여성이 말을 했고, 청소년이 말을 했고 장애인이 말을 했고, 성소수자가 말을 했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 박수는 인정이다. 그들의 말이 경청할 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박수다. 그러므로 박수는 일종의 서약이다. 그러므로 박수를 친 자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앞으로도 내가 그들을 동료 시민으로 대할 것인지 아닌지 말이다. p.213 나는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협력과 존엄, 광장에서 점이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기꺼이 점으로 협력하자. 그러나 광장에 나란히 점으로 있던 다른 이의 얼굴을 기억하자. 그 얼굴이 가진 나와 평등한 존엄, 나와 평등한 목소리의 힘을 기억하자. 삶의 전 영역에 드리워진 히드라처럼 증식하는 왕의 목을 치자. 만약 내가 왕이라면 기꺼이 내 목을 치자. 그래서 삶의 전 영역에서 ‘동료시민’으로 서로 만나자. 민주주의가 실패한 곳에서 우리다시 만나자.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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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국인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두 권이 “냉소 사회”: http://blog.yes24.com/document/9205015 와 이 책이다. 아래 소개하는 북토크 내용이 곧 책 내용이기에 리뷰에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책 중반부까지를 읽고 북토크에 참석했는데, 질문하고 답변 듣고 나서 나머지 부분을 읽고 있으려니 책에서 다 설명해주신 내용이다. 요즘 여러 경로로 2017년을 지치지 않고 잘 살기 위한 힘을 얻는다. 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선생님께서 간곡히 부탁하신 대로 ‘자기배려!!’해야겠다. 올해도 별 수 있나, 괜찮다며 웃어야지. 원한이나 복수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리셋이 아니라 구축을 지향하며.
1/9 녹색당 주최 부글부글부글 북토크: 엄기호 신간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바탕으로 엄기호 선생님, 페미니스트 권김현영 선생님 대담(아래 내용은 두 분의 발언이 섞여 있음) @스페이스 노아
0. 엄기호 선생님, 울산 출신 45세. 나는 그분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이번에야 실물을 처음 뵈었다.
1. 요즘 촛불집회를 보면서 ‘과연 잘 될까?’ 불안감 크다. 죽 쒀서 개 주었던 경험들이 떠올라서. 87년 이후 우리 민주주의는 투표소와 광장에 멈춰 있다고 생각함. 특히 요즘 학교를 ‘아무 공간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요즘임.
2. 요즘 우리는 학교, 가정, 직장 등 공적인 공간에서 연기한다. 권력이 주는 모욕과 수치로 인해 존엄성과 공공성(feat. 하승수)을 잃고 있다.
3. 전문적 지식을 사유화한다(공유하지 않음). 대표적으로 의사, 검사, 교수... 그러나 공부란 공공성이 가능한 분야다. (현 정권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강남역 살인, 구의역 죽음, 경주 지진과 원전 문제 등에서 드러난 각종 위험을 북토크 내내 언급하셔서 인상 깊었음) 아래 내용은 세밀한 통치와 눈치 보는 문화(feat. 푸코, 안전 영토 인구에 대한 세밀한 통치를 추구하지만 그마저도 왜곡된 방향으로 과도함) 관련 요즘 연구 중인 나의 관심 분야라 옮겨둠.
4. 보통 울증 상태인 사람들이 정치는 조증 쪽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예를 들어 트럼프 당선). 누군가 사이다 발언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 그리고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이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행태의 문제점은 지성(논리, 일관성)을 사용하기를 귀찮아한다는 점이다. 위험하다.
5. 요즘 ‘그릿’이 유행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할 수 있는 만큼에서 더 노력하기를 요구한다.
6. 권력은 고통 가진 자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접근한다(예를 들어 ‘양성평등’ 논의의 한계와 문제점/ 젠더 이퀄리즘). 개념이란 정교한 이론 구조 속에서 논의하며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유사 개념을 선호하고 쉽게 끌어와 장사에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들은 반지성주의로, 엘리트주의를 가진 자들은 반민주주의로 빠지곤 해서 문제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치, 분권화, 직접 참여가 필요하다.
7. 정의란 무엇인가(어떻게 싸울 것인가?). 공정함과 다르다. 공정함을 추구하는 부류는 시스템을 신뢰한다(경쟁, 서열, 숫자, 세밀, 평가 등의 맥락으로 가게 된다고 이해함). 1) 그러나 세월호 사건 이후 존엄함이나 안전에 대해 재인식하게 되었다. 재난은 우리 집단적 운명을 보여주었다. 시스템을 불신하게 되었다. 기득권이 사유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주주의+지성’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 맥락에서) 학교에서 교육주체의 안전이란 가르치고 배우는 게 안전해야 하고, 이를 확보해 달라고 주장해야 한다. 배우려면 모르는 상황에서 질문하기 안전해야 한다. 배우기 위한 활동에 대한 시도에 있어서 편안해야 한다.
2) 인간의 활동이 안전한 사회란, 학교로 보자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활동적 삶’(feat. 아렌트)이 가능한 기반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시민적 안전이다. 그러므로 (소극적, 주체가 개인임) 권리-> (적극적) 자유 담론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청소년 역시 정치 결사 자유 및 토론 자유 확보가 필요하다. 청소년이 미성숙하다며 18세 투표권을 반대하지만 사실 성인도 독립적이거나 이성적이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 결사와 의논(곁)이 필요하다.
8. 리셋은 무엇을 뜻하는가? 혁명과는 다르다. 모든 게 의미 없으므로 갈아엎자는 뜻이다. 역사적으로는 몰역사, 탈역사, 종말론에 가깝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모욕 속에서도 배움이 있고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같이 겪는 사람에게 ‘묻기’, 세상과 유의미한 관계 맺기가 필요하다(이는 sns에서의 관계와는 다름, sns에서는 참여가 아니라 세팅에 가까움). 듀이 식으로 말하면 try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겪어야 한다. 여기에서 성장이 일어난다. 세상에 참여하면서 세상의 볼안정성, 불완전성을 ‘경험’해야 한다. - 생태교육 역시 천문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간을 우위에 두지 말고 인간의 보잘것 없음을 가르쳐야 한다(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이해함). 천문적 시각으로 보면 겸손을 배울 수 있다.
9. <질의응답> 포스트잇을 주고 글로 써 내도록 했는데 두 번째 질문으로 채택되어 답변해주심: 교사(이자 공무원)인데 이번 책에서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교육주체가 느낀 감정을 서술해주신 부분에서 매우 공감함, 학교에서 학생이나 교사는 ‘가만히 있어라’, ‘조용히 해라’를 요구받으며 발언권이 거의 없는 상황임, ‘조심’을 말씀하셨지만 약자 쪽에서만 눈치 봐야 하는지 답답+ 발언하기 피로하고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에서 말씀하신 ‘연대’가 어려움.
-> 기득권은 조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가 오히려 눈치보면서 발언해야 한다며 억울해하는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조심, 절제는 “나를 배려하는 방식”이다(엄기호샘 본인의 전문분야이자 관심사임). 굴욕을 감수하는 태도인데, 굴욕을 힘들어하면 자기파괴로 가게 된다. 그들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배려하는 태도를 갖자! 나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매우 중요하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
->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다. 한국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자기배려하고 나 보호하는 법을 너무 모른다. 엄기호샘 생각에는 자기배려가 가장 중요하고 꼭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나의 사생활보호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그 부분을 침해당한다면 참을 수 없다. 다른 부분은 감수한다(할 수 있다). -> ‘감수’하기는 나를 돌보는 전략으로서만 사용한다. 그걸(굴욕이나 모욕?) 감수하지 않겠다면 싸움이 된다. 예를 들어 교사의 ‘조심’함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교장이랑 싸우지 말고 “네”라고 대답해두되 결정적 순간에서 (결사를 만들어) 미친 듯이 싸워라. -> 자기배려(아마도 푸코 맥락이라고 이해함)의 기예에서 ‘사라지는 기예’가 필요하다. 나를 보호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어떤 씬에서는 사라져야할 필요도 있다. 약자와의 관계에서 내 쪽이 힘이 있을 때는 ‘조심’하고 강자와의 관계에서는 ‘감수’하라. 그게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10. 활동적 삶(아렌트) 어떻게 살 것인가?(결사의 자유 말할 수 있는 조직 만들기) - 지금, 통치 권력이 ‘어버버’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다. 여러 결사가 태어나는 기회여야 한다. - 한국에 전문가 자율성이 너무 없다. 내부규율이 외부보다 더 강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의 온상이 된다. 우리 지역의 최순실 찾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예산 들여다보기’를 할 수 있는데, ‘우리 지역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우리 스스로 토론하고 원칙을 세팅한다.
11. 혁명1? 혁명2? - 혁명2에서는 내가 다른 존재로 환원되지 않고 ‘보편적 개인’으로 인식되어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이야기가 ‘경청’할 만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중요하다. 나와 같지 않은 경험을 듣고 배우기,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이야기로 경청하기가 필요하다.
- ‘변위’: 협력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 소크라테스처럼 ‘달리 말하면’ 방식을 사용한다. 들은 이야기를 되돌려 말해준다. 이는 화자 이야기이면서 청자 이야기가 된다. 둘째, “그럼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새로운 제안)?”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변위(feat. 세넷)는 비판(옳고 그름 지적)이나 공감(단순한 맞장구)과는 달리 배울 게 있는 이야기로 돌아온다. 사유, 성장, 배움이 가능해진다. - 우리는 개인 아니면 국가밖에 없어서 문제이다. “사회적인 것”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면 대화가 재미있어 진다.
12. 우리 안의 최순실, 우리 안의 파시즘 논의??(내부 문제로 치환하려는 시도 위험하지 않나) - 모든 문제를 심리학(병리학)화하는 논의는 위험하므로 경계 필요하다. 왜냐하면 제도를 문제시할 수 없게 되고, 모든 문제를 윤리화(다들 집에 가서 반성해야 하는 상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의 정치화(feat. 벤야민)’가 필요하다. 욕망과 제도를 구분해야 하고, 도덕주의로 가지 말아야 한다.(162-164쪽 참고)
- 전략적으로 ‘제도가 어떻게 괴물을 만드나’에 대해 드러낼 필요가 있다. 또한 괴물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제도 만드는 방법이 필요하다(바우만, 세넷).
14. 오늘 가장 남기고 싶은 말은 '세상이 망하든 말든 내가 중요'하다. 자기배려해야 한다(아무래도 내가 질문을 잘 한 듯). 이는 나르시스트와 다르다. 할 수 없는 것까지 하다가 망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원한과 복수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기배려하면 리셋이 아니라 구축하는 언어가 가능해지고, 이 지점이 모든 실천의 시작이다.
영광스럽게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창비에서 이렇게 좋은 책을 출간해주고 녹색당에서 북토크 자리를 마련해주어 엄청 공부가 되었다.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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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엄기호 창비/2016.12.12. sanbaram ‘언강이숨트는새벽’님의 YES블로그에서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서평을 읽고,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는데 뜻밖에 책을 보내와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뿐 아니라 두루두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답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재주가 아니라 묻고 또 묻는 것이 이번 생의 이유라고 여긴다. 지은 책으로 <단속하회>,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등과, 함께 쓴 책이 여러 권 있다.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내용은 3부로 되어있다.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 : 싸그리 망해버려라, 자기를 돌볼 수 없는 나, 자아탐닉에서 자기 파괴로/ 리셋을 부르는 세상 : 좋은 삶이 불가능한 국가,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 각자도생, 공도동망의 정치/ 리셋을 넘어서 : 다시 존엄과 안전에 대하여, 다시 리셋에서 전환으로, 다시 함께하는 삶으로, 리셋너머, 평등과 민주주의 등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서 왜 역사에 절망하며 역사 자체를 리셋하고 싶게 되었는지, 그 정념은 또 어떻게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다시 역사로 귀환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할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혁명과 리셋은 불신의 산물이며 혁명가들은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예로 IS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슬람의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나라를 ‘칼리프’의 국가라 부른다. 이슬람이 탄생한 그때의 국가가 바로 자신들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이다(p.31).” 그래서 ‘원점’인 자신들은 절대 선이고 서구를 포함한 바깥은 전부 악이며 파괴되어야할 존재들이라 말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무기력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기인한 ‘과격한 무기력’이다.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방탕과 타락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무기력이다. 이 무기력은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반역사적인 종말론적 급진주의와 매우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과격한 무기력이다.(p.20)”와 같이 우리 사회가 화난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서 우리가 터득해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며하는 기술’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맞은 IMF 때 친척에 의한 안전망이 무너졌으며, 세월호, 강남역 살인 사건 등으로 사회적 안전망의 핵심인 국가 안전망이 무너졌다. 이는 모두 관료주의에서 오는 병폐의 일환이다. “배우는 자만이 살아 있으며 삶을 도모할 수 있다. 배우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죽은 상태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사람은 늘 배운다.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늘 바뀌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삶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배움은 필수적이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삶은 중단된다(p.153).” 세월호 사건을 개인적 불행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메르스 사태는 우연히 재수 없게 1년 뒤에 벌어진 별개의 사건일 뿐이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연속성이 없다. 두 사건을 연속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니 역시 위정자들이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사회를 리셋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애사를 기획하는 것도, 사회 안으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에 화가 나 있다. “사회 한쪽에서는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그들의 정치와 담론은 배제된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와 담론, 나아가 사회운동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점점 더 자신이 주변화 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억울함이 쌓이고, 해소되지 못한 억울한 감정 때문에 피해에 민감해진다(P.168).”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시대와 사회가 구제불능이라고 인식하며 완전히 뒤엎어 역사 자체를 리셋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그 첫 번째가 정치이고 두 번째가 지식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정치를 불신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해왔던 말들은 사기였고 무의미했으며 무력했음을 경험상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 기만하고 있는 이 정치의 세계를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p.176)” 트럼프와 투테르테는 반정치의 정치가 어떻게 정치권에 진입하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그 반정치의 정념이 기득권층에 대한 원한과 복수라는 것 역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원한을 복수로 풀고 싶을 때 대리인이 될 만한 사람이 나타나자 정치적으로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허탈한 허무주의일 뿐이다. 새로운 세력 역시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11월 12일 서울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 ‘동료시민’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청소년들, 여성들, 성소수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노동자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나는 이 날을 기억하는 것이 리셋을 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기초라고 생각한다(p.210).” 그 자리에 선 모두가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으며 평등하게 나라의 변화에 힘을 보탠 동료 시민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광장에 모인 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들의 말이 경청할 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박수다. 그러므로 박수는 일종의 서약이다. 우리 모두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기에 서로 존중받아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길 여러 차례 반복되며 절망하여 반정치적인 의식이 강해졌다. 기득권층에 의해 점차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을 인식하며 나타난 현상이 세상을 리셋하고 싶은 열망이다. 그러나 리셋은 현실을 파괴하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기에 과격으로 흘러 더 큰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우리 모두 동등한 힘과 목소리를 가졌기에 서로 인정해주고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살아 날 수 있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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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ㅡ 2장 , 자기를 돌볼 수 없는 나
[ 끊임없는 자책의 이유 ]
그는 이 시공간이 매우 깨지기 쉬운 곳이라는 걸 안다 . 무엇보다 벽장 안은 어린아이에게는 비밀의 공간이지만 부모는 아이가 그곳에 숨어 있다는 것을 ' 안다 ' . 어린아이일 때 그는 부모가 그 공간에 숨어 있다는 것을 ' 모른다 ' 고 생각했지만 , 이미 어른이 된 그는 다른 어른들이 그 공간에 자신이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것뿐이며 사실은 ' 알고 있다 ' 는 것을 ' 안다 ' . 그렇기에 양말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안과 밖을 뒤집어 세계를 밖으로 만들어놓긴 했지만 다시 그 양말을 뒤집는 순간 그는 세계 ' 안 ' 으로 뱉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는 결국 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 그 결과 그는 그 안에 숨어서 '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 에 대해 후회하게 된다 . 그에게 후회와 자책은 필연이다 .
바깥에 믿고 의지할 수있는 것이 사라진 시대에 남은 것은 이 두가지뿐이다 . 하나는 화를 내면서 소진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책하면서 후회하는 것이다 . 전자는 신뢰할 수 있는 바깥이 없는 상태에서 신뢰를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환한 사람이며 , 후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상실한 사람이다 .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바깥의 붕괴와 자기파괴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일은 자기를 잃는 것이고 , 가장 피곤한 일은 자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
ㅡ본문 50 / 51 쪽에서 ㅡ 엄기호 /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 창비
쉽게 말하면 산타의 존재가 벽장인거고 , 세상의 신뢰인 셈이랄까 ... 아직은 계속 어떤 이유에 대한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이라 성급히 결론을 말할 순 없지만 , 지독한 회색주의자의 자아 성찰 일기를 몰래 (공공연히) 읽는 듯해서 , 뜨끔했었다 .
이렇게 많은 관심과 공감은 , 우리 사회가 어떤 과부하로 부팅이나 버퍼링이 심각한 상태임을 , 그걸 보는 컴퓨터의 주인으로 더는 이 상황을 기다릴 수 없어 전원의 리셋버튼을 누르고 초기화를 바란다는 심정을 절절하게 (또는 냉정을 가장한 채) 읽는다 .
사실 수두룩하게 많은 내가 페이지 마다 있어서 , 내 일기를 누가 본 거니 ? 묻고 싶었다 . 명쾌 , 유쾌 , 통쾌 할 수 없을 게 분명한 이 글 의 끝 , 왜 ? 자기가 결국은 스스로 답을 찾고 내야할 테니까 ...... 사회적 모색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내 안의 벽장을 해제하는 일이될것 같아서 ...무너지고 , 바닥을 다시 치고 딛어야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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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폐성향의 청년이 있다 . 그의 이름은 한두운이다 .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면 조금씩 말문을 열고 , 엄청난 식탐이 있어 주의를 해야하고 , 틱장애처럼 어떤 알지못할 상황에서 아무에게나 무차별로 반복적인 침을 뱉는다 . 그는 아주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다니고 가끔씩 자신의 얼굴을 때리기에 상처를 방지하기 위한 헤드기어를 착용해야 한다는 자폐청년 . 일일 아르바이트로 시간당 만원이라는 제안에 솔깃해 자폐청년 돌보미를 나섰다가 그와 함께 선릉을 산책하며 놀라게되는 또 한사람 . 그는 이 한두운이란 존재 때문에 하루종일 인내심을 시험당하기도 하고 악의 심연과도 같은 방관의 마음을 스스로 심판하게 되는 시간을 겪는다 . 이 얘긴 물론 소설이다 . 정용준작가의 「 선릉산책 」이라는 ......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 를 읽으며 내내 , 우리는 모두 한두운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이 많은 원망의 아우성이 저 광화문의 광장뿐 아니라 sns 의 공간에서도 차고 넘친다는 말엔 한두운이 맘에 안차는 어떤 이유로 자기 머릴 마구 가격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 누군가에게 심각한 절망의 상황임에도 그게 뭐 문제냐라는 듯 드러누워 때를 쓰며 , 누군가의 어떤 말 한마디에 우르르 모여 광기를 부리는 모습은 돌연 침을 뱉는 모습과도 연결이 되서 나는 그 일일 알바생의 심정으로 이 책을 겨우 끝낸 것 같다 .
사실 리셋을 외치는 분위기를 나는 극도로 무서워한다 . 잘 알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또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이기도하다 . 가능함 이것저것 만져보다가 정말 돌이킬 수 없어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면 돌아오는 말 , 리셋버튼을 눌러 ! 해결은 일단 되지만 내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풀지는 못한 채로 그냥 꺼졌다 켜지는 작지만 거대한 세상 .
' 판을 갈아 엎어야 돼 .' , ' 전쟁이 일어나서 이런 세상 싸그리 망해야하는건데 . ' 하는 말들을 접하면 정말이지 막장까지 와서 속수무책인건가 ! 나는 이렇게나 무기력한가 ! 체감하게 되니까 절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 그래서 어떤 대안이 있을까 묻고 싶어서 또 대안이 있다면 듣고 싶어서 책을 청해 읽었다 . 왜 이런 사회의 현상이 만연한가를 참 오래 곰곰 살피고 글을 썼구나 하는 마음은 들었다 . 사소하다면 사소한 타인들의 말을 얼마나 살폈다는 건지 알게되기도 하고 , 미쳐 내가 깨닫지 못한 부분들을 알게도 해주었다 . 하지만 역시 그래도 ! 그래서 ? 하는 내 질문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다 . 왜냐면 장마다 현재의 불온한 사회가 있고 그게 지금의 이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는 걸 아니까 . 지나간 통증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통증이어서 이 책 한 권이 마치 거대한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것만 같았달까 ...... 그래서 나는 밥을 먹었음에도 밥을 더 달라고 내 식탐을 멈추게하는 상대에게 때를 쓰듯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그 알바생이 중도에 포기를 하고 , 내가 책을 읽기를 중도에 멈추고 말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어떤 세상 . 알바생은 한두운이 엄청난 복서(?) 라는 걸 알게되고 , 그가 선릉에서 나비와 풀과 자신은 모르는 무수한 나무를 각각 이름 붙여줄 만큼 해박하단 사실을 알게된 건 공간도 공간이지만 , 어쨌든 그와 함께 했기에 가능한 세계였다 . 나는 여기서 우리를 끝없이 대화의 장으로 불러 모으는 엄기호를 만난다 . 비판과 절대적 답을 다른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이 묻고 질문을 되돌려주며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을 , 공동의 노력으로 공통의 것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의지 . 그 것만이 경청의 존중의 자기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이 된다는 것도 읽는다 .
이제 멈추지말고 , 지우지 말고 물어야겠다 . 아무리 작은 소리라도 피하지말고 , 같이 도모할 어떤 의미를 찾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겠다는 그런 마음에 책을 덮었다 . 부패는 불평등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것들 속에서 좀더 좋은 쪽으로 움직인 단 한걸음을 무시하는 것이야 말로 리셋이 아니고 뭔가 싶어졌고 , 리셋을 누르기 전 내가 한 이런 저런 손질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 적어도 그 문제를 직접해결은 못했지만 이런 저런 행동이 답은 아니었다는 경험을 알게되는 것 ,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는데 이 시스템이 계속 안되네 라고 말할 수 있어 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되겠다고 말이다 .
분노를 막 끓여서 몰아가다가 어느 순간 탁 ,하며 놓게 되는 그런 소설을 읽은 냥 얼얼한 감각의 세계였다고 기억하면서 ...다음 이 작가분의 이야기도 기다려봐야겠다 .
" 모욕과 무시가 만연하다보니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 그렇다면 무시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 " ㅡ본문 115 쪽 에서 ㅡ
(이 리뷰는 도서출판 창비에서 제공된 도서로 작성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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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작가님의 신작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분으로, 나는 그 분의 저작들을 통해 내가 해석할 수 없어서 더욱 답답하게 여겨왔던 삶의 모습들을 명징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현장 실습 시절, 지도받는 학부생의 입장에서 나의 존엄이 무시되었다고 느꼈음에도 대처할 수 없었을 때 『단속사회』를 읽으면서 많은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해왔고 이 사회에서의 맺고 끊음을 어떻게 정의해오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공부 중독』, 『노오력의 배신』 등은 분명 다른 책들에서는 어렵게 다루고 있을 개념과 용어들을 실생활과 가깝게 풀어내어 내가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에 재미있었다.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개념이 제시된 원문을 읽었다면 받아들이지 못했을 내용들을 습득하고 또한 현 시대의 사람들을 함께 읽어내는 내용도 습득할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이에 대한 감수성을 보유하고 있어, 그 주장은 이해 관계와 얽힌 것이 아닌 아닌 옳음에 가까운 원칙을 위해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더욱 타당하게 느껴졌다. 이번 책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는 좌절과 분노로 억압된 동시대인들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기저에 존재하는 사회 제도적 위치와 내면을 분석하고 있었다. 특히 박근혜 정권에서 일어났던 참담한 일들을 설명하며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들을 짚어내는 부분들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속 시원하게(다른 한편으로는 배로 답답하게) 읽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괴물이 된 사람들이었는데, 극한으로 내몰린 생존 전투에서 평소 느껴왔던 박탈감이 작용하는 구조를 제시하여 그들의 동기를 분석하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패륜적인 참람한 말을 뱉는 사람들의 동기는 알겠으나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무지함에 기인한 것이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은 원문의 개념들을 사회 현상에 적용하여 살펴보고, 이를 저자 개인의 주장에 덧붙이는 근거들로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고전들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읽어봤던 책들도 나와 반가웠는데 그때의 독서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내용들을 이번 독서를 통해 얻어갈 수 있었다. 특히 한병철의 『피로 사회』의 개념들은 여러 번 언급되며 다양하게 다루어지고 있어서 한국 사회의 현상들을 통해『피로 사회』를 분석해보는 느낌도 들었다. 한편으로 아쉬웠던 점은 학교에 대한 내용이었다. 엄기호 사회학자는 교사들과 많은 소통을 하고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라는 책도 출판하여 교직 사회와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시하기도 했었다. 그런만큼 교사에 대한 이해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들 중 내 개인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다. 학교라는 것은 텍스트처럼 단절된 맥락이 아닌 다양한 감정과 관계들이 얽힌 복합적인 구조체다. 더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들을 던져준 것은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지만 때로 그 제기 방식은 현재의 문제점을 부각하여 마치 현재의 상황이 그 원인과 책임을 더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정체된' 학교 구조(와 교사)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다. 왜 학교라는 주체는 이렇게 광범위하게 인용되며 가상의 상황으로 수없이 설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떠올릴 때가 종종 있다. 모든 사람들이 모두 겪는 과정이 학창 시절이며, 그 학창 시절은 인생에 있어 첫 번째로 자기 중심성과 타자에 부딪치게 되는 과정이기에 그 당시 느낀 불편함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교육의 수요자적인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 교육 전반을 판단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한 몫할 것이다. 그러나 교육을 실행하는 입장과 수요자의 입장은 다르며 수요자의 입장에서 교육 활동 전반을 바라보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감정적인 소모에 그치게 되는 위험성이 수반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학교와 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여러 내용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도움이 되는 부분들도 많이 있었고 더 생각해보게 하여 도움을 받은 내용들도 많았다. 게다가 몇몇 작가들처럼 학창 시절을 토대로 무조건적인 비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다양한 주체들의 입장을 살펴보고 들어보는 경험을 통하여 저자의 개인적인 분석이 덧대어진 것이었으므로 좀더 설득력 있었고 타당하게 느껴졌다.
현재의 여러 가지 모습, 다양한 사건들의 맥락을 살펴보는 것에 있어서 이 책은 내가 읽었던 다른 여타의 책들 중 가장 좋았다. 주석에 인용된 책들을 밝히고 있었으나 인용된 책이나 그 개념들이 무척 흥미로워서, 따로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책에서 인용된 책들과 추천 문헌들을 함께 실어주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을 정도였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 주목하여 여러 가지 키워드들을 설명하였으나 그 내용들이 분절적이고 좀 더 폭넓게 다루기에는 이 책의 내용이 적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부족하다 느끼는 부분은 이 책을 다시 읽고 관련 분야 책을 찾아봄으로써 나의 해석을 덧붙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만나서 기분이 좋았고 두어두고 읽으며 나의 이해를 좀 더 확장해 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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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ㅡ 리셋을 부르는 세상 .
ㅡ2장 ,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
[태초에 ' 아니오' 가 있었다 ]
이 모욕의 고리를 끊는 것은 주는 것을 받지 않는 것이다 . ' 아니오 ' 라고 말하는 것이다 . 그러한 예는 불교의 경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불교 초기 경전인 『 빠알리경전 』에 나오는 이야기다 . 부처가 죽림정사에 계실 때 브라만인 악꼬사까가 자기 가문의 한 브라만이 부처에게 출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를 찾아와서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 그 욕을 듣고 부처는 악꼬사까에게 당신의 집에 친구나 동료들이 방문하러 오는지를 물었다 . 그가 그렇다고 하자 부처는 그들에게 다과나 음식을 대접하는지를 물었다 . 어떤 때는 대접한다고 하자 만일 그들이 그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냐고 또 물었다 . 그가 자기가 대접한 이들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부처는 악꼬사까에게 당신이 준 욕을 내가 받지 않았으니 그 욕은 모두 당신의 것이라고 답했다 .
그러나 모욕의 사슬이 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 아니오 ' 대신 ' 예 ' 라고 말해야 한다 . ' 아니오 ' 는 세상을 부정하고 세상과 불화하는 언어가 아닌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과 불화하는 대답이어야 한다 . 손님의 진상 짓이 아니라 그것을 참지 못한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 그 진상 짓조차 참을 수 있을 때 서비스 산업에서 일하고 성공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이 생기기 때문이다 . ' 아니오 ' 가 사라지면서 같이 사라진 것이 근대적 주체의 존엄이다 .
ㅡ본문 104 / 105 쪽에서 ㅡ
어쩌다 모욕을 자신보다 약자인 세계에 전달하는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었는지 , 한탄스럽다 . 갑질이라고도 하는 진상 차원의 일이 대체 자신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듯 행동하게 된걸까 ... 주어도 받지 않으면 된다는 부처의 말이 오래 생각이 나서 , 옮겨본다 .
#창비톡#책읽는당#12월선정도서미션#엄기호#나는세상을리셋하고싶습니다#창비#12월3주차문장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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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ㅡ3장 , 자아탐닉에서 자기파괴로
[자기에게 취하다 ]
따라서 세계와 그 사이의 분열을 확인하고 확증하는 그의 진술이 사실은 자신의 분열을 기만하기 위한 , 자신의 괴물됨을 감추기위한 말이라면 사태는 정반대가 된다 . 그는 이 진술을 통해 자신의 분열에 대해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 것일까 ? 그가 감추려고 하는 것은 하나다 . 자신이 함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을 마치 잃어버린 것처럼 , 혹은 잃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기만한다는 사실이다 . 단적으로 말해 그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 한번도 세상을 연민해보지 못했다는 것 , 그 괴물스러운 자신의 분열을 감추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공통 받고 있다고 위장한다 . 그에게 세계의 불화는 자신의 ' 관심 / 연민 없음 ' 을 감추는 알리바이가 된다 .
ㅡ 본문 69 / 70 쪽에서 ㅡ
엄기호 /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 / 창비
마구 확장하려는 자기기만과 나르시시즘을 붙잡아 둬야해서 꽤나 고생이었다 . 이 문장의 그는 " 나라도 될 수있고 , 한 기업이 될 수도 있고 , 어떤 단체로도 바꿀 수 있는 말인지라 , 개인의 나르시즘이 자신과 주변에만 국한된 영향을 미친다면 , 더 큰 덩어리의 기만과 분열은 확실히 큰 파장이 될 것이고 그것은 다시 한 개인의 나르시즘을 발생케하는 돌고 도는 순환의 고리가 된다는 것을 그려보게 되기에 ,
#창비톡#책읽는당#12월선정도서미션#엄기호#나는세상을리셋하고싶습니다#창비#12월2주차문장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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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의 내용은 3부로 되어있다. 리셋을 원하는 사람들 : 싸그리 망해버려라, 자기를 돌볼 수 없는 나, 자아탐닉에서 자기 파괴로/ 리셋을 부르는 세상 : 좋은 삶이 불가능한 국가, 모욕을 선물하는 사회, 각자도생, 공도동망의 정치/ 리셋을 넘어서 : 다시 존엄과 안전에 대하여, 다시 리셋에서 전환으로, 다시 함께하는 삶으로, 리셋너머, 평등과 민주주의 등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나는 우리가 역사를 믿는다면서 왜 역사에 절망하며 역사 자체를 리셋하고 싶게 되었는지, 그 정념은 또 어떻게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시켰는지, 그리고 다시 역사로 귀환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할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혁명과 리셋은 불신의 산물이며 혁명가들은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리셋은 철저한 파괴를 주장한다. 예로 IS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이 세상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슬람의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나라를 ‘칼리프’의 국가라 부른다. 이슬람이 탄생한 그때의 국가가 바로 자신들의 국가라고 말하는 것이다(p.31).” 그래서 ‘원점’인 자신들은 절대 선이고 서구를 포함한 바깥은 전부 악이며 파괴되어야할 존재들이라 말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무기력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기력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에 기인한 ‘과격한 무기력’이다.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방탕과 타락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 없이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무기력이다. 이 무기력은 기회가 주어지면 세상을 통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반역사적인 종말론적 급진주의와 매우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과격한 무기력이다.(p.20)”와 같이 우리 사회가 화난 상태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로는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들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에서 우리가 터득해야 했던 것이 내가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며하는 기술’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맞은 IMF 때 친척에 의한 안전망이 무너졌으며, 세월호, 강남역 살인 사건 등으로 사회적 안전망의 핵심인 국가 안전망이 무너졌다. 이는 모두 관료주의에서 오는 병폐의 일환이다. “배우는 자만이 살아 있으며 삶을 도모할 수 있다. 배우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게 아니라 사실은 죽은 상태다.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사람은 늘 배운다. 살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늘 바뀌기 때문이다.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삶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 배움은 필수적이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삶은 중단된다(p.153).” 세월호 사건을 개인적 불행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메르스 사태는 우연히 재수 없게 1년 뒤에 벌어진 별개의 사건일 뿐이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아무런 연속성이 없다. 두 사건을 연속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니 역시 위정자들이 배운 것이 없다. 그래서 이 사회를 리셋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애사를 기획하는 것도, 사회 안으로 진입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이렇게 변해버린 상황에 화가 나 있다. “사회 한쪽에서는 엘리트들의 기득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그들의 정치와 담론은 배제된 사람들의 감정과 삶을 설명하고 해결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을 뿐이다. 정치와 담론, 나아가 사회운동에서도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점점 더 자신이 주변화 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억울함이 쌓이고, 해소되지 못한 억울한 감정 때문에 피해에 민감해진다(P.168).”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시대와 사회가 구제불능이라고 인식하며 완전히 뒤엎어 역사 자체를 리셋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그 첫 번째가 정치이고 두 번째가 지식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정치를 불신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들이 해왔던 말들은 사기였고 무의미했으며 무력했음을 경험상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 기만하고 있는 이 정치의 세계를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를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p.176)” 트럼프와 투테르테는 반정치의 정치가 어떻게 정치권에 진입하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그 반정치의 정념이 기득권층에 대한 원한과 복수라는 것 역시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치와 사회에 대해 국민들이 원한을 복수로 풀고 싶을 때 대리인이 될 만한 사람이 나타나자 정치적으로 열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허탈한 허무주의일 뿐이다. 새로운 세력 역시 시간이 지나면 기득권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