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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考古學)’. 인터넷에서 찾은 정의는 “인간이 남긴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하는 학문”(<두산백과>)이라고 되어 있다. 인류의 과거를 탐구하는 역사학이지만, 특히 ‘인간이 남긴 물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남긴 물질’이라는 것은 보통 유물, 유적, 유구 등으로 부르니 고고학은 바로 그 유물, 유적, 유구를 통해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그 유물, 유적, 유구를 찾아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는 모습은 멋있다(강인욱 교수는 이 책 《테라 인코그니타》에서 그 전형이랄 수 있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고고학자를 언급하면서 제국주의적 시각에 대해서 비판한다). 멋있는 모습이야 그 고된 작업을 떠올리면 금방 사라지지만 우리가 살아온 과거에 대해 지워지고 잊혀질지도 모르는 것들을 작은 유물을 통해서 메우고,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주는 고고학은 매력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언뜻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조가 남긴 것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그리 풍부하게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흔할 것이고, 그 의미가 명확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어느 지방에서 발견된 동굴 벽화에 대한 해석이 얼마나 다양한가. 그중 어느 것이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해서 그게 과연 옳은 해석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고고학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또는 고고학이 설명하는 과거가 현재에 어떻게 잇닿아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면, 어떤 유물이 나왔을 때 신기하다고 여기지만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발굴이 되고(혹은 발굴 이후에 보도가 되고), 그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면서 선전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무심하게 넘어가지만 결국은 그게 정말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든가, 일본의 역사왜곡을 보면 비로소 느낄 수가 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이없어하거나(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비분강개하지만 사실은 그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고, 우리가 그런다고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 바로 그때 그에 대해서 우리의 연구, 학문이 필요한 것이다.
강인욱 교수의 《테라 인코그니타》는 그런 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미지의 땅’이라는 뜻이 제목에서부터 관심을 갖게 만든다. 미개한 민족, 즉 오랑캐로 치부되어온 이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상황을 제시하고 있고(문명과 미개는 얼마나 자의적인가), 새로이 발견된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서 고대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으며(시베리아의 아틀란티스, 겨울왕국, 편두(偏頭)에 얽힌 이야기, 티베트고원의 고대왕국, 황금의 나라, 마야 문명의 비밀 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고대의 역사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공자의 출신, 기자조선의 실재 여부, 고조선의 모피에 얽힌 고대 교역, 상투를 튼 고조선인, 흉노와 온돌, 신라인과의 관계 등등). 그리고 앞에서도 연급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 대한 왜곡 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비로 전체적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점층적으로 구성된 책은 아니지만(연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그래도 역사, 특히 고고학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갖추고 교정하는 데는 이만한 책도 없을지 싶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그 연구의 결과를 해석하는 데 있어,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 함의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민족의 과거를 과대포장해서 지나치게 나아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주변국들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이 과거의 역사를 해석하고, 선전하는 것이 오늘날의 지정학적 위치, 흐름과 연결된다는 것도 이해해야 한다. 고대사는 과거의 역사이지만, 그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현대사, 현재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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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한다는 건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상반된 두 가지의 의미가 깃든 미지의 세계에 대해 예로부터 인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질 즐겨왔다. 많은 분야 중 저자가 주목한 건 역사였다. 오늘날처럼 전 세계가 시공을 초월해 하나의 생활권이 된 건 꽤나 최근의 일이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고 알려 들지도 않았던 시절, 인류는 부족함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알았어도 숱한 상상력을 동원해 채워 넣고는 했다.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거주하는 땅, 식인 풍습을 지닌 인종이 드글거리는 세계 등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0%에 가까운 모습들이 그렇게 탄생했으며, 심지어 무척 오랫동안 기정사실인양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테라 인코그니타(Terra Incognita)를 읽으며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온갖 상상력을 다 만났지 싶다. 타인을 그리고 타 문명을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돈독히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고는 했다. 구석기 시대는 물론 열 손가락을 꼽아 헤아릴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마땅하지만, 그렇다 하여 그 시절을 곧 무(無)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문명은커녕 모두가 헐벗고 살았으며 본능에만 충실했을 것이라는 식의 설명은 무지의 산물과도 같다. 상대적으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현대사회가 발달해 온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보았다. 오늘날의 인류보다 앞서 존재했던 종들이 지구에서 버티어 온 세월과 견준다면 오늘날 인류는 걸음마를 시작도 못했다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 리 없다. 나름의 적응력으로 환경에 적응했으며, 더 나아가 개간 등을 통해 인류에 꼭 맞는 옷과도 같이 주변을 만들었다. 지금의 시선에서는 미개함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곤 하는 식인 풍습도 알고 보면 망자를 기리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생각보다 차이가 많지 않았다. 역사 속 많은 호기심 어린 주제들이 저자에 의해 다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의 사고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으니, 북방의 이름조차 낯선 유목민족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특히 느끼는 바가 컸다. 일례로, 흉노라 하였을 때 나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건 유랑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들로부터 자유를 읽어내기보단 머물 집 하나 제대로 짓지 못하는 무능력을 우선 읽어낸 셈이다. 그들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문명을 구가했으며, 우리의 역사에서 일방적으로 배척당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당당한 무역의 상대이자 동경의 대상처럼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부여씨 계통의 고구려, 백제와 달리 독자적이면서도 강고한 정체성 구축의 과제를 지녔던 신라 사회에 흉노가 미친 영향은 상상 이상이었다. 편두머리라 하여 무척 어린시절에 개입해야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머리 형태가 귀족 계층임을 증명하는 증거로써 여겨졌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금이 마치 발에 채이듯 널린 황금의 나라를 갈망하는 인류의 마음이 거대한 폭력을 부른 사례도 잦았다. 자본주의의 태동이 부른 변화로 거론되곤 하는 유럽 제국주의의 움직임에도 알고 보면 개개인의 물적 욕심이 깃든 결과였다. 1990년대 이후로는 스스로를 황금의 나라 등으로 수식하기 시작한 세력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자국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을지는 모르나 그 과정에서 문화재가 훼손되는 등의 사례가 빈발했음은 안타까울 뿐이다. 인류에 의해 행해진 수많은 역사 왜곡은 역사가 바늘 하나 꽂기 힘을 정도로 촘촘했더라면 빚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각국이 지닌 권력이 동일했어도 마찬가지. 조금 더 힘을 쥔 이들이 자신에게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 애쓰는 동안 역사는 뒤틀려 거의 창조되다시피 했다. 약탈자가 위대한 탐섬가나 역사학자 등으로 수식됐고, 위대한 자국을 부각시키기 위한 도구로 특정 문명이 다루어지기도 했다. 전적으로 피해자라 우리 스스로는 믿고 있으나, 의도 여부를 떠나 우리 또한 손에 쥔 조금의 권력을 통해 현재와 미래, 더 나아가 과거까지 우리 편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를 되돌아보게 됐다. 방대한 문명과의 만남이 단숨에 이루어졌다. 난 아직 아는 거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알지 못하는 세계가 선사하는 유혹은 상당했다. 이번 독서는 미지의 영역에 발을 디디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지피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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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미지의 땅)'라는 발음도 어려운 책 제목과 반대로 책의 내용은 입에 착 달라붙는다. 저자의 전문분야인 고고학을 기반으로 한반도와 유라시아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다.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 하거나 익숙한 주제를 선별하여 쉽게 쓴 덕에 읽기에도 편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고대 유물과 고고학자, 영화 속 주인공들을 연결하여 서술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대중적 글쓰기의 내공도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들은 모 신문사에 연재된 칼럼들이었다. 한 편 한 편을 정성들여 썼다는 얘기다.
강인욱 교수의 전작 중 '유라시아 역사기행'을 오래 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내 서평을 되집어보니 무척 박하다. 글의 스타일 보다 그 안에 숨겨진 작가의 속내를 파헤쳐보려는 미숙한 독자의 욕심 때문이었으리라. 또한 한참 불붙은 고대사 논쟁에 대한 어설픈 아마추어의 치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번 독서를 마치고 보니 그때와 또 다르다. 그의 논점도 묘하게 바뀐 듯 하지만 무엇보다 독서에 임하는 내 자신이 바뀌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좀 빠졌다고 해야 하나. 대중적 역사서를 쓰는 학자들에 대한 공경심이 높아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부와 명예를 떠나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 역사책을 쓰는 학자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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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 문명이 싹트다 : 고고학이 밝힌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인간의 지혜를 발휘해 적자생존의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한편 문명이라고 하면 토기를 사용하여 마을을 일군 신석기 시대를 거쳐 거대한 신전과 도시를 세우고, 글자를 사용한 5000년 전의 4대 문명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의 문명은 갑작스러운 발명품이 아니다. 문명의 맹아는 후기구석기시대 현생인류가 등장하고 그들이 천천히 걸어온 과정에서 싹튼 것으로, 이것이 발현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4대 문명이다. 최근 우리의 선입견을 깨부수는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1만 5천년 전의 대형 신전 괴베클리 테페 유적 (터키 남부)과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2만년 전의 토기가 대표적이다. 악마의 자손이라 불리던 사람들 : 서양사에는 중세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는 4~6세기에 강력한 기마문화를 가진 훈족이 유럽을 침략하면서 연쇄적으로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 민족의 활동에서 유래하였다. 유라시아 고고학에서는 이 시기를 ‘민족의 대이동’이라 부른다. 게르만족이 아니라 유라시아 동쪽 흉노에서 시작한, 유라시아 전체를 뒤흔든 변혁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후 신라에서는 북방계의 화려한 황금과 고분이 등장했으며, 유라시아 각 지역에서는 흉노의 후예를 자처한 다양한 나라가 생겨났다. 이들은 발달한 철제 무기와 기마술로 동쪽으로는 만주, 서쪽으로는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의 역사를 바꾸었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자기모순 : 전통적으로 자신들이 섬나라의 주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반도계 문화는 도래인이 기록에 등장하는 고훈시대 (3세기 중반~7세기 말)보다 약 1000년이나 앞선 시기에 이미 일본으로 진출했다. 약2700년 전 남한에서 쌀농사를 짓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쌀농사에 유리한 규슈로 이동하면서 일본에 한반도계 청동기문화가 빠르게 전파되었다 (야요이 문화). 이 문화는 일본열도를 따라 동쪽으로 확산되어 동북쪽 아오모리현까지 전래되었고, 일본 전역은 금세 한반도발 쌀농사 문화로 뒤덮였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의 기원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인들은 천황의 만세일계를 외치며 순혈의 단일민족임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야요이 이전 조몬시대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자기 부정의 역사는 아이누인과 오키나와인에 대한 강력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
|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교과서, 문제집등의 문자로만 접한다. 거기서 더 발전해도 사진과 동영상정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에 대해 글쓴이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전부라 착각하기 쉬운 현실이다. 가령 중국의 역사에는 거의 서술하지 않는 고구려와 주변 국들의 관계, 생활방식의 공유는 엄연히 살아있는 역사임에도 많은이들의 관심을 얻지못하고 있다. 고고학은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수있고, 역사를 접하는 최초의 순간이다. 밖에 나가기 힘든 요즘 책 으로나마 역사의 생생한 순간을 접하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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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제목. 누군가에게 언급된적이 있던가. 책 홍보에 귀가 얇은 내가 본적이 있는 작가던가. 뭐 어때, 일단 역사에 관해서는 책장 넘기기가 힘들정도만 아니면 다 흥미롭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 아마 꽤 알려진 작가인지 글이 좋고 흡인력이 있다. 덕분에 항상 역사책을 읽을때 잡히지 않았던 유라시아의 유목민족에 대한 개념도 어느정도 정립이 되었다. 찾아 읽어지고 싶어진 언급된 책들도 바로 리스트에 올라가고. 이런 유희의 독서를 계속 할 수 있다면 코로나 방콕도 그리 힘들지 않을텐데. 아무래도 에세이 형식의 글 모음으로 (신문에 연재되었던 글들이라고 한다)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감질나게 생략적으로 설명되는 부분들이 있지만, 고고학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
| 서점에서 우연히 강인욱 교수의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발견한 이후 강 교수의 저작을 관심있게 사모으고 있다.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제목은 시베리아 전공자로서 북아시아 지역이 미지의 땅임을 강조하기 위함이겠지만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다소 낯선 제목인 것 같다. 강인욱이란 저자명에 책을 덥썩 잡았지만. 역시나 짧은 단문 에세이로 이어지는 본문은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저자가 서문에 썼듯 고고학자가 맞이한 연구년의 생각을 대중적으로 잘 풀어낸 흥미로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