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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명랑한 밤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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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선옥 작가의 작품을 읽은 건 얼마 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장편소설이 처음 인 것 같다. 그녀의 다른 작품을 읽은 것 같기도 하지만 선뜻 떠오르는 게 없는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이번엔 [명랑한 밤길]이란 12편의 단편들이 실린 그의 소설집을 읽었다. 처음엔 눈치를 채지 못했는데 한참 읽다 보니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전부 여자다. 그것도 다들 가슴속에 아픔을 간직하고 살고 있는 상처 받은 여자들이다. 작가는 그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녀가 독자에게 말하고 싶어한 것들을 생각해 보지만 그냥 가슴이 저려올 뿐이다. 그녀들의 삶 이란 게 바로 우리 이웃들의 삶은 아닐까? 혹 나의 삶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편과 이혼하고 친정부모와 중학생 딸아이와 함께 사는 주인공의 일상사를 그린 [꽃 진 자리]에서는 일상에 찌들 린 삶 속에서도 내면의 즐거움을 잃지 않으려는 그녀의 안타까움을 느낀다. [도넛과 토마토]에서 요구르트 배달을 하는 문희는 작가가 꿈이다. 그녀가 도시락을 먹는 공원은 노숙자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어느 날 공원에 토마토 밭이 생긴다. 공원관리자는 그 밭을 없애지만 자고 나면 또 생긴다. 문희는 어렸을 적 고구마 밭에서 발견한 토마토를 생각하며, 그 토마토들이 노숙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전 남편의 처한테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온다. 그녀는 필리핀 여자로 전남편이 죽자 애 하나 데리고 살며 살아갈 방법을 모르고 문희에게 메 달린다. 그녀의 이름이 도넛이란다. [명랑한 밤길]에서 간호조무사인 주인공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어설픈 사랑을 해보지만 그녀는 단순히 유희의 대상일 뿐이다.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던 밤길, 뒤를 따라오는 낯선 남자들이 무서워 정미소에 숨는다. 그녀가 있는 줄 모르고 외국인 노동자들인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서 주인공은 명랑하게 집으로 온다. 그런데 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나는 걸까 부부교사인 주인공의 시댁의 명절날 모습은 흡사 전쟁터이다. 전쟁의 도화선은 동서와 형님이다. 아이하나 딸린채 아이하나 있는 남편의 동생과 재혼한 동서는 융화 되지를 못한다. 그 동서를 시어머니와 맏며느리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나마 살고 있는데, 홀로사는 친정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온다. 왈칵 눈물이 솟는다. 아버지는 달을보고 울지 말랜다. 여긴 비가 오는데.. 비오는 날에도 달은 빗속에 숨어있다는 [비오는 달밤]은 그렇게 가슴을 저미게 한다. [79년의 아이]는 미혼모였던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89년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지만 그녀가 미혼모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혼을 했고, 지금 남편과 재혼을 하여 99년생 아이를 낳아서 살고 있다. TV에서 해외 입양아 이야기가 나오면 79년의 아이를 떠올리며 술을 마시지만 그녀는 오늘도 딸아이를 맞으러 대문을 나선다. 99년의 아이를 재워두고, 89년의 아이를 맞으러 나가서, 79년의 아이를 만나기를 기대하며. 그날 밤도 바람은 차가웠다고 한다. 공선옥 작가의 소설들은 불편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그녀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무언가 가슴속에 맺히는 게 있다. 다들 상처받고 소외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들을 상처받고 소외 받는 사람들, 그 자체로 놔두지를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 그들보다 더한 사람들 혹은 그들과 같은 사람들을 보 다듬는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을 읽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작품속 주인공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나의 삶을, 그리고 이웃의 삶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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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24일에 명랑한 밤길을 다른 책들과 주문했다. Tea & Book 이벤트 도서로 아마도 수프리모커피를 덤으로 받았었지 싶다. 명랑한 밤길은 단편모음집으로 그 중 하나이다.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왜 이런 제목을 붙이고 싶어했을까 하는 답은 금방 나온다.
내게 공선옥이라는 이름은 처음이었다. 신문의 신간소개에서 먼저 읽었다. 미리보기를 하다 내 구미을 끌어당겼지 싶다. 책을 고르는 내 방법은 신간이면 이벤트가 있는지, 제 돈 다 주고 사도 될만치 의미가 있는지, 인간적인 감동이 있는지,제목과 책표지는 근사한지, 특히 미리보기를 통한 글내용을 약간만 읽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풀이방식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이런 내 예상이 빗나갈 땐 괜한 배신감을 느낀다.
우울했다. 구질구질한 내용들, 지지리 궁상맞은 얘기들, 한결같이 우울이 엄습하는 저럴래야 저럴 수는 없는 상황들, 진저리치는 가난 속에서 끝을 알 수 없고 지레 지치는 이야기들, 저런 상황이라면 저리 될 수 밖에 없겠구나를 떠올리는 이야기들. 숨겨놓고 가능한 한 무슨 일이 있어도 꺼내놓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들 등등
그러나 놀라웠다. 구질구질함은 구수함으로 다가왔다. 지지리 궁상은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찢어지는 가난속에도 미약하나마 웃음은 있었다. 그 안에서의 최선이며 서글픈 유쾌한 명랑함이 있었다. 꿋꿋이 사는 것만이 삶에 대한 희망에 대한 복수인 듯 책장은 잘도 넘어간다.
이후로 행복한만찬 이란 책도 구입했는데 아직이다. 행복하게 가지고만 있다. 여동생이 나와 같은 느낌으로 공유하고 대화할 수 있었음에 행복감이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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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소설은 불편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선옥의 소설들은 아프다. 이 불편함과 아픔의 이유는 무엇인가. 공선옥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약자이며 답답하다. 그 현실을 묵묵히 감내하는 모습은 청승맞기까지 하다. 91년도에 등단한 공선옥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성작가들과는 현저히 다른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동시대의 여성작가들이 제도에 발빠르게 적응한 독신여성을 그리거나, 일탈적인 행위(불륜, 가출, 유희적 사랑)을 그리며 새로운 여성상을 창출해 나갔지만 공선옥이 그리는 여성들은 그러지 않는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유희적이고 가벼운 삶을 추구하며 현실에 대한 이탈을 꿈꾸었지만 공선옥은 현실, 더 정확하게는 삶 그 자체에 함몰된 여성과 제도과 관습이 가하는 비가시적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그렸다. 이번 소설집 「명랑한 밤길」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가 외롭고 아픈 사람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병에 걸린 노모와 양아치 같은 딸년과 같이 사는 이혼한 국어교사(「꽃 진 자리」), 남편이 죽었지만 마음놓고 울지도 못하는 여자(「영희는 언제 우는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도시에서 온 ‘글쓰는 남자’에게 버림받는 시골병원의 간호조무사(「명랑한 밤길」), 물난리에 남편을 잃고 홀로 서게 되는 여인(「아무도 모르는 가을」).
그 뿐인가. 폐경을 앞둔 중년 여인이 된 전교조 출신 국어교사(「폐경전야」), 79년도에 버린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99년도에 낳은 아이를 재우고, 89년도에 낳은 아이를 마중 나가는 여인(「79년생의 아이」) 등 공선옥의 소설에는 유독 사랑에 실패하고 곤궁한 현실 때문에 안정적인 삶에서 비켜난 여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입이 없는 존재’ 들이다.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의 무관심과 폭력, 빈곤한 삶에 대해서 저항할 힘이 없는 존재들. 90년대 이후 가시적인 민주화가 이룩되고 산업화가 완성단계에 이르는 과도기에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에게 있어서 희망이란 요원해 보인다. 사회의 상징폭력은 견고하며, 오히려 사랑과 가족은 그녀들에게 ‘짐’으로 존재한다. 이혼한 남편은 계속해서 돈을 요구하고, 새롭게 만난 남자는 딸려 있는 자식은 배제한 채 여자만을 요구(「별이 총총한 언덕」)하는 식이다. 가난이라는 물질적인 조건의 결핍 외에도 사랑마저 자신을 배반한 풍경 속에서 공선옥이 그리는 여인들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한번이라도 먹고 싶은 것을 먹어보고, 갖고 싶은 것을 가져봐야 꿈을 꾸지.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도 모르는데 어떻게 꿈을 꿔?” (72쪽) 이런 아픈 삶들에게 위안과 희망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가난을 전혀 미화하지 않은 채로 그려지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삶. 그것을 바라보며 점차 불편해지고 아파오는 마음으로 되묻게 된다. “그녀들은 어떤 위안으로 삶을 지속하는가? 왜 그런 삶을 계속해서 그리는가?” 공선옥은 도저히 출구가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위안을 발견해 나가는지를 그린다. 공선옥의 소설이 밑바닥에 다가서는 삶들을 그리면서도 여전히 삶을 긍정하는 희망의 전언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거기에 기인하지 않을까.
도시에서 온 남자와 꿈같은 연애에 빠지지만 끝내 버림받는 「명랑한 밤길」의 주인공은 남자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무서운’ 밤길을 걷는다. “내가 비에 젖어 걸을 때, 뒤에서 누군가도 비에 젖어 걸어오고 있었다. (…중략…) 나에게 융단폭격 같은 말폭격을 퍼부어대던 남자가 무섭고 칠흑 같은 밤이 무섭고 내 뒤에 오는 누군가가 무서웠다.”(122쪽) 그러나, 남자에게 버림 받은 뒤 돌아오는 밤길에서 목격한 두 명의 외국인의 대화를 듣고 ‘나’의 ‘무서운 밤길’은 ‘명랑한 밤길’로 뒤바뀐다. “싸부딘, 난 한국에서 슬플 때 노래했어, 한국 발라드야. 사장이 막 욕해. 나 여기, 심장 막 뛰어. 손가락 막 떨려. 눈물 막 흘러. 그럼 노래했어. 사랑 못했어. 억울했어. 그러면 또 노래했어. 그러면 잠이 왔어. 그러면 꿈 속에서 달을 봤어, 크고 아름다운 네팔 달이야.”(124쪽) 낯선 누군가도 자신처럼 슬퍼하며,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달을 바라보며 아픈 삶을 지나간다는 사실. ‘나’는 나직하게 유행가를 부르며 “뚜벅뚜벅, 명랑하게” 밤길을 걷는다.
「명랑한 밤길」의 ‘나’가 느끼는 위안의 방식은 여러 작품에서 거듭된다. 「도넛과 토마토」의 문희는 자신과 이혼한 남편이 사망한 뒤에 마주친 남편의 새로운 처인 외국인 여자 ‘도넛’을 만나면서 자신보다 대책 없는 삶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도넛’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낯 모르던 고단한 인생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있듯이, 도넛에게도 그럴 날이 온다면” 이라는 소박한 읊조림을 내뱉는 문희. 노숙자들이 일군 토마토밭을 갈아엎는 공원직원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의 의미에 과한 글을 쓰던 문희의 글쓰기와 ‘도넛’에게서 느끼는 연민이 중첩되면서 소설은 고통을 바라보는 연민이 희망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전환은 ‘외국인, 노숙자’라는 타자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딸이라는 가족 내에서의 관계에서도 빛을 발한다.
열 다섯 살에 ‘나’의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주며 “나는 너 낳고 미역국도 한그릇 먹지 못했다”(224쪽)고 말하는 「지독한 우정」의 어머니. 남편 없이 ‘나’를 키우며 힙겹게 살아가던 어머니가 어떤 병든 ‘아저씨’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어머니의 전화통화를 듣던 ‘나’는 자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아이와 자신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아저씨의 말에 어머니가 흔들리고 있음 알게 된다. ‘나’는 자신이 어머니의 사랑에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서려는데 그 ‘아이’는 ‘나’가 아닌 어머니가 새롭게 임신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남자친구와의 여행을 포기하고 시장에 가서 미역을 산다. ‘나’를 낳고 미역국 한번 못 얻어 먹어본 어머니를 위하여. 시장에 가기 전 ‘나’는 어머니에게 메모를 남겨 놓는다.
‘엄마, 제 동생 낳아주세요. 그래도 이번 아이는 사랑해서 생긴 아이잖아요. 제가 보기에 이젠 사랑이 아닌 것이 확실하지만요.’(237쪽) ‘나’는 “비리고 짜고 쓰고 그러고도 달콤한 듯한 냄새”가 풍기는 건어물 가게에서 미역을 사면서 그것이 바로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오면서 맺은 “우정의 냄새”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녀만이 살아왔던 아픈 시간들이 어머니의 새로운 사랑과 동생의 임신을 통해서 ‘우정의 시간’으로 환치되는 순간, 아픔은 희망이 생성되는 거름으로 환치된다.
공선옥의 소설에 대해서 “고통을 고통으로 위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공선옥의 소설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서 존재한다”라고 말한 이명원의 평가에 동의한다. 고통어린 삶을 위로하는 방식은 탈주나 전복, 위악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응시하는 소박한 삶의 진정성이 아니겠는가. 이 당연한 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에, 아픈 자들을 바라보지만 이해하지는 않으려는, 자신의 안락이 우위인 사람들에게 공선옥의 소설은 불편하고, 아플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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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공선옥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땐 공선옥 글의 참맛을 알지 못했다. 그게 너무나 후회가 될 만큼 이 작품집은 정말 보글보글 잘 지진 시골 된장찌개 맛 같다. 지지고 볶는 우리네 삶이 건더기 째, 진하고 못 생긴 된장 그 모습 그대로 들어있다. 가끔은 지겹고도 지겨운 악다구니까지도. 그런 게 우리의 삶이 아니겠는가.
공선옥의 이 글에는 사치와 허영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 작품집에선 삶이 애잔하게 묻어나기도 하고 또 우리네 삶의 진한 슬픔의 냄새가 곳곳에서 풍겨져 나온다. 이런 게 삶의 연륜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운명으로 짝지어진 가족 구성원들의 정(情)과 일상, 그리고 심지어는 심한 투쟁까지도 우리 일상을 어찌나 구성지고 찰지게 잘 표현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깔끔하고 단아한 글맛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공선옥의 글에는 우리의 구질구질한 일상이 지겹도록(!) 더 잘 표현되어 있다.
명랑한 밤길을 비롯 모두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작품집은 읽으면 읽을수록 대도시의 뒷골목 어느 한 지붕 낮은 담장 안에서 흘러나올 만한 얘기, 읍내 어느 한 귀퉁이에서 벌어질만한 얘기, 한적한 곳에서 낯모르게 벌어질만한 자잘한 일상 얘기 등이 들어있다. 숭악하게 째리고 소리 지르는 노인부터 되바라질 대로 되바라진 소녀까지 이기적이고 평범한 우리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나는, 생각만 해도 심란한 집으로 재깍재깍 귀가하고 싶진 않았다. 도대체가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을 가지고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사는 집으로 칼같이 퇴근해준다는 것 자체가 굴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저 그들, 돈 벌어다주는 사람의 노고 같은 거야 제 알 바 아니라는 듯 안하무인으로 주는 돈은 잘도 받아먹는 사람들한테, 그나마 싫은 소리 안하고 돈 벌어다주는 것으로 내 의무는 다한 거다,라고 나를 두둔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래도 가족에 대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이 여전히 따스하게 흐르고 있다.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숨 쉬고 있기에 어쩌면 우리의 삶은 정말 살아볼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울어야 할, 울고 싶은 아버지는 딸에게 울지 말라고 달랜다.
‘우냐? 울지 마라 악아, 울지 마. 애비 혼자도 추석 잘 쇤다. 울지 마. 악아, 시방 달 뜬다. 울지 말고 달 보거라 이. 달 보고 울지 마라, 악아. 영석이도 하루종일 울다가 이제 달 보고 안 운다. 너도 달 보거라. 달 보고 울지 마라.’
아, 우리 인생은 왜 이렇게 슬픈 거냐 말이다.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 싸하고 눈물이 절로 흐르는 거냐고. 왜 우리는 이렇게 나만 중요한 걸까. 왜 정상인(!)은 불륜도 사랑이라면서, 병신이 사랑해서 육갑하면 안 되냐고.
“응, 웬 병신들이 지들도 사람이라고 육갑을 하고 있대나 뭐래나. 나 원 참, 둘이 보듬고 와들와들 떨고 있드만.”
‘사랑, 그까짓 게 다 뭐야, 사랑 없으면 어때……’라고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아픈 건 정작 사랑 때문이리라. 사랑은 그래도 이렇게 힘들고 슬픈 일상에 작은 빛이고 삶에 대한 희망 같은 거니까. 이렇듯 장애아 엄마가 하는 사랑을 지켜보며 딸은 때론 기가 막히고 때론 지긋지긋하다. 그러면서도 그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준비하는 딸, 이런 지겹고 질긴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지독한 우정’인지도 모른다고 공선옥은 그리고 있다.
어쩌면 가족이란 건 떼어낼 수 없는 수족과 같아서 몸에 달려 있고 붙어 있을 땐 잘 모르고 함부로 대하다가 어느 한 기관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이 치유해야 하면서도 그 과정 동안 지독히 미워하고 투쟁하는 관계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비뚤어진 관계는 다시 제자리로 돌리기가 힘들다. 무능력하면 무책임하게까지 되는 지독한 소용돌이 속에 갇혀 버리는 가장, 그 가장을 어찌 할 수 없는 가족의 엄마.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다 내다버리자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결국은 또 다시 원점. 이게 바로 공선옥이 부끄러워하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우리의 남루한 살림살이인 것이다.
공선옥,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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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씨의 글을 처음 읽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우리네 사는 모습을 엿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극적이지 않고, '착한'이야기들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술술~ 읽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말그대로 술술 끝까지 쉼 없이 읽어내려갔습니다. 단편 하나하나가 착하고 맛깔스러웠습니다. 처음 읽었지만, 지금껏 읽었던 어느 작가님보다- 글투가 너무너무 맛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어르신 같은 말투. 글을 읽고 있지만 귀에서 들리는 것과 같은 책이었습니다.
어머니께도 추천해드렸는데 아직 읽지는 않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보다는 어리신 나이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들 어머니의 소녀시절, 그리고 지금의 사랑이 묻어나는 책인 것 같습니다.
다정하고 다정하게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외로워하지 않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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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연륜과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공선옥이란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불편해지는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그래서 한동안 외면 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통해 만나는 그녀의 투박한 말투와 읽는 내내 채무감처럼 느껴야 하는 기분을 애써 만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명랑한 밤길 역시 밝은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자꾸만 웃음이 나오고, 재미있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싱글맘이기도 하고, 연애에 서투른 자이고, 신불자이기도 하고, 가난하고,서로에게 모진 말도 거침 없이 내뱉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처절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겹고,사람냄새 나는 것처럼 느껴진건 무슨 이유였을까? 소설이 담아 내고 있는 우울함을 극복하려 애써 명랑하게 살아 보리라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일까?
명랑한 밤길이란 제목만 들여 본다면 굉장히 내용적으로도 굉장히 유쾌한 소설이라 생각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공선옥 아니던가!
슬픔을 슬픈데로 툭 풀어 놓고..다시 명랑하게 그 슬픔을 내것으로 함께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선옥의 내공이..작가의 연륜이 굉장히 에너지 넘치게 느껴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울한 그들의 인생사를 들으며 내 입가에서 웃음이 나오고,재미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던 건 아마도 그 힘겨움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명랑하게 라고 생각 할 수 있는 그 마음을 느껴서 이지 않을까
아픔을 마주한 이야기를 웃으며 읽을 수 있게 해 준 그녀..정말 멋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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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도데체 어떤 책을 읽을까.... 당연히 궁금하다. 하물며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심히 궁금하야 옆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보는 마당에 나의 존경의 대상이자 다음세상에 한번 꿈꾸어 보고 싶은 작가라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을지는 궁금하고도 남을 일이다.
얼마전 홈에 이벤트로 마련되었던 작가들이 추천한 책을 정신없이 카트에 담아대다 유일하게 중복추천되었던 책!
공선옥, 죄송한 얘기지만 이름만 알고있던 작가였다. 소설집인줄도 모르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나 피부에 와닿는 우리들의 일상.... 단편들의 모음이지만 모든 여주인공들이 마치 동일인물인양 느껴진다. 그것이 장점이자 또 단점일수도 있겠지...?
왠만해선 그런생각 드는 책을 잘 못만나는데 이 책은 꼭 엄마에게 빌려드리고 싶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도 좋아하시겠지만 철없던 딸이 결혼해서 엄마와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글이라면 엄마도 공감하며 즐기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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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 없는 것을 보면서 어쩔 수 없어하는 것만큼 가슴이 미어지는 일이 있을까? 어쩔수 없어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품는 것은 나도 어쩔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 어쩔 수 없음으로 인해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나 있을 법한 이야기래서, 너무나 낯익어서 그래서 더 서글픈... 그래서 더 청승맞은 삶의 진실. 유명한 미드 Desperate house wife에서 나온 대사처럼, '누구나 집에 더러운 빨래감이 있는 법'일지 모르지만, 누구에게는 그 더러운 빨래감을 꼭꼭 숨길수나 있지만 누구에게는 만천하에 드러나는 더러운 빨래감 그 자체인 인생이 주어져 있을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아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랐다. 주일학교 교사시절 알게된 극빈층 소녀가장 Y양, 동갑인데도 꼬박꼬박 누나라고 불러주던 뇌성마비 S군, 신용불량자로 인해 사람마저 불량취급받던 S양과 L씨, 아이가 시끄럽다고 몽둥이를 들어 올라온 다혈질 9층 청년, 사건은 저희들이 만들어 놓고는 전직 파출소 소장의 직분을 악용하여 깡패들을 몰고 집으로 쳐들어온 9층 청년의 엄마(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윌리의 그 단발머리를 한...), 시아버지 장례식에 이래라 저래라 말많던 시댁의 먼 친척 아주머니, 하루가 멀다하고 우리집에 출석체크해주신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4살배기 S군 엄마인 K언니... 그러나 더 궁상맞고 더 처량한 인간들이 대부분의 주인공을 꿰차고 앉아 소설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특히, 그 놈의 IMF.. 이 괴물이 낳은 피해자들은 애석하고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IMF라는 불이 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폴폴 날리는 재로 인해 콜록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산불이 난 산이 생명력을 다시 가지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듯, 이 사람들에게도 회복을 위한 시간이 그토록 많이 필요한 것일까?
그럼에도 굴러가는 것이 인생이다고 작가는 말해주는 듯 싶다.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이 말이 주는 느낌은 '먹기위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먹는 것' 그 말장난이 주는 씁쓸한 차이점,그 느낌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먹기위해 살든, 살기위해 먹든 어찌됐건 점심밥을 먹었으니 오늘의 삶도 굴러가듯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