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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즈음, 2부로 나뉜 소설의 각 부의 intro와 outro에서 화자의 역할을 하는 현자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뒤엉킨 애정이 서로를 엮고, 끝없이 영향을 끼치는 인생을 원한다.’ 전체적으로 소설을 요약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애정에는 이성애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애정도, 그리고 동성간의 우정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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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쉽지 않다. 가까운 사이엔 지켜야 할 소소한 것들이 많고, 낯선 사이엔 갖춰야 할 예의가 많다.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의 세심한 배려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해서 우리는 종종 그들에게 받은 상처를 타인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한다. 같은 공간을 나누고,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해도 온라인에서 만난 익명의 존재보다 더 적은 말을 나누는 게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까. 어쩌면 내 감정에 공감해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름이 바로 타인인지도 모른다.
‘내게 중요한 사람은 둘이다. 남편 강수와 아들 완주. 난 그외에 더 값진 것을 갖기에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다. 물건을 고를 때는 신중하고, 버릴 때는 신속하다. 사람에 관해서는, 복잡한 생각을 오래하기 싫어하는 타입이다.’ p. 8
기준영의 『와일드 펀치』의 시작은 어떤 결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건 사람에 관해서 화자인 ‘현자’에게 중요한 사람이 더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소설은 카페를 운영하는 현자와 강수 부부에게 반갑고도 불편한 손님이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들은 각각 부부의 어린 시절 친구라 할 수 있는 미라와 태경이다. 그들은 당분간 현자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한 때, 친한 사이였지만 현재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이다. 태경은 이혼과 사업 실패, 사랑하는 이로의 배신으로 자살까지 시도했고 미라는 동거남의 폭력으로 상처받은 심신이었다. 현자 부부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새로운 관계로 인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점차 서로의 상처를 꺼내놓고 조금씩 위로를 받는다.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크기의 상처를 껴안고 살기에 다른 이의 아픔엔 무관했던 그들은 이상한(?)동거를 통해 몰랐던 서로의 마음을 알아간다. 현자네 가족 3명으로 시작했지만 미라와 태경의 등장과 미라를 통해 알게 된 우영과 그의 병든 엄마까지 7명이 한 집에 모여든다.
소설은 좀 독특하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전개되는 방식이나 인물의 심리를 주변의 상황을 묘사하고 해설하는 표현이나 대화 방법이 그렇다. 특별한 사건 없이 환경을 설명하는 부분은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낯선 타인에서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미라와 태경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듯한 대화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의 대화 모습도 다르지 않다.
“자기, 손은 이제 어때요?” “거의 나았네요.” “그럼 다른 것도 괜찮아지겠죠.” “아니, 정말 힘들어요.” “하나 정돈 내가 받아줄게요. 어디 말해봐요.” “내가 아무 짝에도, 아무한테도 쓸모가 없는 거 같아서 돌겠어요.” “안 받을래요. 그런 건 나 혼자 못 받아요.” “손 나았으면 나 팔베개해줘요.” “네, 그럴게요.” p. 233
기준영은 소설을 통해 소통을 외치지만 정작 진정한 소통의 갈증으로 목말라 하는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을 보여준다. 타인이었던 다양한 인물들이 이층집에 살게 되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는다. 그는 어떤 우연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인연과 그들이 건넨 따뜻한 위로를 놓진 적이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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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다가서다 보면 이따금 실수라는 것을 하게 된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건 드러나기 마련인 상처들. 재주가 좋아 건드리지 않고 뛰어넘을 수 있다면 참 좋을 진데, 그마저도 상대의 일부이기에 우린 서로에게 또 다른 상채기를 낼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혜에 눈을 뜰 수 있을 때 관계는 성숙할 수 있다. 반대로 그 과정이 너무 모질고도 몹쓸 게 느껴져 회피한다면 결국 자기 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과도 같은 필연이 소설에선 연속된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한 부부에겐 축하의 마음보다 지루함의 흔적이 더욱 짙었다. 그런 그들을 찾아온 것은 나름의 아픔을 가진 인물들. 그들에게 집을 맡긴 채 유유히 길을 떠나는 부부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모든 인물의 상태는 극에 달한 상황이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남성과 여성, 존재감 없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부터의 독립된 삶을 영위하지만 그것이 독립인지는 모호한 어머니 밑에서 상처 받는 소년 그리고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잊어가는 여성. 어느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는다. 일부러 불행의 씨앗을 도드라져 보이게끔 그려낸 탓일지도. 하지만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소설 속 공간은 우리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다. 다른 듯 닮은꼴을 하고 있는 세상. 이를 깨닫고 나면 등장인물들의 상처는 곧 내 상처가 되고 그들의 아픔은 곧 내 아픔이 된다. 상처는 완벽히 치유되질 않는다. 그저 조심조심,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불안감이었다. 그와 같은 불안감은 상대의 특정 반응에 대한 직접적인 응대를 허락지 않는다. 엄연히 존재하는 아픔이 겉으로 드러났을 때 그들은 그 아픔 앞에서 차라리 침묵함으로써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한다. 그것이 현명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따갑더라도 소독약을 뿌려가며 적극적인 치료에 나서는 것이 아픔을 줄이는 지름길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기에. 하지만 그와 같은 배려가 유효한 까닭은 아픔을 지닌 이 역시 열린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부부의 집이 손님에게 열린 공간이듯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 마음을 세상을 향해 활짝 열었다. 심드렁해 보이는 태도마저도 그래서 냉소보다는 무심한 척 구는 연기마냥 느껴진다. 그 순간을 비껴감으로써 상대가 덜 아프길 바라는 마음에서 택한 배려.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언어는 와일드(wild) 했지만 그 안엔 가시가 없었다.
집중이 어려웠다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들이 저마다 너무도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탓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도 다양한 종류의 상처. 하나하나 일일이 집중하다 보면 어느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르고 있는지, 어느 순간부턴가 그 흐름을 놓쳐 버리고야 만다. 어찌 보면 중심된 이야기 자체가 존재치 않는 것도 같다. 오히려 인물들이 서로 다름 속에서 작으나마 공통점을 발견하고 나름의 전개를 생성해내듯 독자 된 입장에서도 이 중심 없는 이야기를 산만하게 읽어내고 일말의 공감이라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독서가 더디다면 당신 안에 상처와 조우했기 때문이리라.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듯 당신 역시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그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인정받길 희망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언젠가는 당신을 왜곡 없이 받아줄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당신에게 당신의 삶이 이야기의 중심인 것처럼 이야기의 중심 이야기는 없으면서 동시에 여럿 존재한다. 현자와 강수 부부에겐 그들 부부가 중심이고, 미라, 태경, 우영에게도 그들 각자가 제 이야기의 중심인 셈이다. 색다름이 처음부터 익숙함이길 바라는 것은 그저 내 욕심일 것이다. 참으로 난해했던 그 이야기가 왜 그리도 포근하면서도 서러웠던지, 아마도 욕심을 내려놓지 않아서, 아마도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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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면서 남 같고 남이면서도 가족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났다. '와일드 펀치'는 5번째 창비장편소설의 수상작으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독과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절제된 감성과 개성적인 문체를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시종일관 너무나 무관심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인물들로 인해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카페를 운영하는 강수와 그의 아내 현자... 두사람의 결혼기념일에 강수는 아끼는 동생 태경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온다. 현자 역시 과거의 아는 동생 미라가 찾아온다. 네 사람의 기묘한 동거는 전혀 스스럼 없이 시작된다. 집주인 강수와 현자는 타인인 태경과 미라에게 집을 맡겨 놓고 아무렇지 않게 여행을 떠나고 주인 없는 집에 남은 두남녀는 서로에 대해 서서히 관심을 가지게 된다.
열 아홉 살의 소년 우영은 정착하지 못하는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엄마와 살고 있다. 자신의 상처만 생각하는 엄마는 아들 우영이 동네 깡패들에게 맞고 와도 그 상처를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만 가득할 뿐이다.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는 네 사람과 우영이 서로가 낯선 타인이지만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가족처럼 위로를 받게 된다. 강수와 현자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지만 서로의 상처를 끌어 안지 못하고 둥둥 떠다닐때 오히려 태경과 미라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처럼 때때로 우리는 타인에게서 위로 받고 용기를 얻게 된다.
책은 일일이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하게 지나치듯 스토리가 흘러가고 있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들 모두는 한집에서 살면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과하지 않게 오히려 무심하게 전개되는 스토리는 기존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