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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린의 한문 희곡’이라는 수식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세기 초의 일제 강점기에 한문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분명하게 희곡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내용과 구성이 무대에 올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음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작자 자신에 의해 한문으로 창작된 <만강홍>이란 작품을 한글로 다시 펴내면서 제목을 <영산홍>으로 바꿔 출간하기도 했다고 한다. ‘20세기 초 한문 희곡 자료의 해제 및 역주’를 염두에 두고 출간한 이 책에는, 한문으로 된 원작은 물론 현대어로 번역된 원고와 함께 한글로 재창작된 <영산홍>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이 작자인 이종린(1883~1950)은 한학자로 활동하다가, 경술국치(1910)를 거치면서 천도교에 입교하면서 문학과 언론에 종사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전개되면서 언론활동으로 인해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1930년대 후반에는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만강홍>(1914)이라는 작품은 내용이나 구성으로 보아, 고전소설과 신소설의 영향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한문으로 작품을 창작하여 발표한 후, 이를 다시 한글로 옮겨 출판했다는 점에서 작자가 대중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울긋불긋하게 채색한 그림이 있는 표지인 이른바 '딱지본'으로 출간되었다는 점도 이 작품이 상업적 의도로 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우선 제목인 <만강홍(滿江紅)>은 강에 붉은 빛이 가득함이라는 의미 외에, 중국에서 전래되던 곡조 이름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품의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면서, 흔히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상징되는 변함없는 마음을 ‘붉음(紅)’의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또한 이 작품을 한글로 재창작하면서 그 제목을 <영산홍(映山紅)>으로 바꿨다고 하는데, 이 역시 ‘붉음(紅)’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작품은 여성 주인공인 만강홍과 그의 몸종인 녹란 그리고 상대역 남성으로 이사남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밖에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결국 만강홍과 이사남의 결연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몸종이었던 녹란이 주인인 만강홍과 함께 이사남의 결연 상대가 되어 ‘세 사람의 혼인’으로 귀결된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하겠다.
주인공 만강홍으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산소에 갔다가 한강에서 배를 타고 오는 도중 험한 날씨로 인해 표류하여, 어언도라는 섬에 도착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뱃멀미를 하는 만강홍에게 약을 제공하고, 표류한 배가 도착한 어언도에서도 죽을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다시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이사남의 행위는 두 사람의 결연으로 이끌기 위한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표류 이전에도 서로 가까운 곳에 살며 이사남이 오래전부터 만강홍을 지켜봤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표류한 이후 어려움에 처한 만강홍과 녹란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 사랑하는 이와 결연을 맺을 것이라는 현몽 모티프는 고전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치라고 하겠다. 더욱이 어언도의 도적들로부터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내 그것을 이겨내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강홍과 녹란이 이사남과 결연을 맺는 결말이 자못 상투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한문 원작에서는 희곡으로서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지만, 한글로 재창작한 작품에서는 희곡적 장치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더욱이 각종 고사나 한시 등을 통해 인물의 정서를 표출하는 방식이 전기소설과 같은 전형적인 한문소설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도 아직 고전소설의 영향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렇지만 동일한 작가에 의해 동일한 작품이 제목을 달리하면서 한문과 한글로 창작되었고, 그것이 당대 독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상세한 후속 연구가 요청된다고 하겠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 https://cafe.daum.net/Allwithbooks )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