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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잔인한 최후가 담긴 상자. 『택배 왔어요』
"노년의 잔인한 최후가 담긴 상자. 『택배 왔어요』" 내용보기
새벽, 택배가 배송된다고 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 묵직하게 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택배 기사는 없고 김치냉장고가 들어갈 정도로 큰 종이상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집안으로 들여와 열어보니 웬 노인이 잠들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노인을 택배로 배달? 보낸 곳은 분실노인센터. 송장에 적혀있는 발송지 번호로 전화해본다. 주소도 맞고
"노년의 잔인한 최후가 담긴 상자. 『택배 왔어요』" 내용보기

 

 

새벽, 택배가 배송된다고 하기에는 좀 이른 시간. 묵직하게 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택배 기사는 없고 김치냉장고가 들어갈 정도로 큰 종이상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집안으로 들여와 열어보니 웬 노인이 잠들어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노인을 택배로 배달? 보낸 곳은 분실노인센터. 송장에 적혀있는 발송지 번호로 전화해본다. 주소도 맞고 수신인도 맞댄다. 잘못 배달된 게 아니다. 그럼 택배 상자 안에 있는 이 노인은 누구?

 

이런 일이 실제 벌어졌다면 믿을 텐가? 믿기지 않겠지만, 믿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이 나오는 게 현실이라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노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어가기만 하는 상태에서 곧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여기, 가족에게서 밀려난 노인들을 보관하는 곳이 있다. 분실노인센터. 분실노인센터로 들어오는 노인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하지만 노인들을 수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연고자가 확인되지 않은 노인들은 그곳에 있다가 방치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연고지가 확인되면 연고자에게 택배로 노인을 발송한다. 그중 대부분은 반송되기도 하는 게 또 다른 현실. 아무도 노인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왜? 이유는 많겠지. 서로가 함께한 시간 동안 새겨진 관계의 문제이거나, 모실 형편이 안 된다는 경제적 문제이거나, 시쳇말로 배은망덕한 자식이거나. 그럼 오늘 아침 택배를 받은 정승일은 무슨 이유로 자기에게 도착한 어머니를 반송한 것일까.

 

승일은 일어나서 골프채를 옆에 세워 두고 숨을 골랐다. 불편하고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 건 누구 탓인가? 탓을 돌릴 누군가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더 짜증이 밀려왔다. 따지려 들면 형도 어머니도 친척들도 사회도 모두 한통속인 것 같았다. 자신을 배려해 주지 않는 얄궂은 패거리로 느껴졌다. (48~49페이지)

 

내 눈이 삐딱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을 두고 '어떻게 부모를 그리 대할 수 있느냐'라는 생각보다, 승일과 승일의 어머니가 어떤 관계였느냐가 궁금했다. 도대체 승일에게 어머니는 어떤 기억을 남겨줬기에 택배로 배송된 어머니를 거부하고 반송해야만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 그들의 속내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이해와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각자의 처한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시간에서 쌓였을 서운함과 울분.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데, 덜 아픈 손가락이나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승일의 화를 알 것 같다는 거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반송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그런 상황,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놓은 현실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가 없는 답답함을 말하고 싶은 거다. 그렇게 배송과 반송의 핑퐁게임이 시작되고, 그사이에 일어난 일들과 결과는 참혹했다. 그게 이 현실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결과였다고 콕콕 찌르는 것 같아서...

 

단순히 한 가정의 일이 아니다. 승일과 승일의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싸움만도 아니다. 큰 그림을 그려보면 '유기'라는 표현을 써도 어울리는 상황인 노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집어냈다. 소설의 설정이지만 실제 그런 배송업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몸을 감싸 안을 정도다. 소개 글에서 언급한 현대판 고려장. 내용만 보면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이게 한 개인만의 문제일까? 이런 일이 승일에게만 벌어지는 건 아닐 거다. 지금 어느 집에서, 누군가도 겪어가고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 과정을 빼놓고 결과만 말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현실이다. 노인도 힘들고 젊은 사람도 힘들다. 나이는 먹고 늙어 가는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 젊은 사람들은 신뢰가 사라진 관계에서 증세를 걱정한다. 결국, 부모도 힘들고 자식도 힘든 거다. 어머니를 반송했다고 승일을 탓할 수도 없고, 큰애가 잘되어야 한다고 형에게 많은 것을 몰방한 어머니만 탓할 수도 없다. 감정의 서운함과 원망과는 별개로, 국가와 개인이 함께 풀어야 할 거대한 숙제 같은 거다. 언제쯤 다 풀릴지 알 수는 없겠지만.

 

아픈 것보다는 답답함이 가슴을 가득 채운 이야기다. 무대 위에서 오른 것을 소설화한 형식이기에 눈앞에서 보이는 생생한 상연보다 그 감정이 덜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의미가 덜하지는 않았을 거다. 모르는 현상도 아니고, 남의 일도 아니기에 씁쓸한 여운만을 남기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한다. 결국, 이것 말고 다른 결말은 없었던 걸까 싶은 안타까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또 누군가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만 같은 서글픔에 가슴이 싸해진다.

"택배 왔습니다! 택배요! 택배 왔어요!"

 

 

n******i 2015.07.05. 신고 공감 2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