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카하마 교시, 조선
조선은, 식민지 조선을 그린 일본인 작가 최초의 소설 작품이다. 교시의 조선을 통해 1910년, 암울했던 식민지 조선의 풍경과 그 풍경 속에 공존했던 일본인과 조선인 삶의 모습을 일본인 작가의 시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다카하마 교시의 조선이라는 책은 일본문학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널리 읽히고 연구되어야 할 중요한 작품이라는 옮긴이의 말에 깊이 공감이 간다.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과 조선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카하마 교시는 사실 대단히 유명한 인물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유명한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바로 교시가 주재하는 잡지에 연재되어 큰 호평을 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소세키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또 교시는 하이쿠 문학 장르의 대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의외로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 그의 작품이 애지중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부부가 시모노세키항에서 부산으로 떠나면서 시작된다.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부산에 도착해서 처음 본 조선인에 대해 부부의 느낌 내지 인상은 키 큰 흰옷의 입은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담뱃대를 물고 있는 모습, 하급 스모 선수처럼 머리에 띠를 두른 모습 등이다. 부부는 부산에서 서너 시간 만에 대구에 도착한다.
오늘 아침에는 서대문에 장이 열렸다고 하여 흰 조선옷을 입은 남자도 여자도 시골길을 줄줄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남자는 모두 물건을 등에 지고 여자는 모두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친구 이렇게 말했다. “이 장은 한 달에 한 번 서는데 옛날부터 유명하다네.”(25면)
친구는 맥주를 땄다. 셋은 밥공기로 마셨다.(27면) 결국 아내는 안내를 받아 근처의 미장원으로 갔다.(41면)
어느 날 한인 거리를 걷고 있는데, 조선인의 작은 가게가 죽 늘어선 가운데, 문득 한 가에 앞에 일본인 아이와 조선인 아이가 일본말 반 조선말 반으로 말하며 노는 것을 발견했다.(50면)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고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그렇게 지루하고 따분하던 역사 공부가 어느 순간부터 재밌어지고 알면 알수록 더욱 자세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정확하게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조선은 분명 과거 속의 역사지만, 들여다 보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그 속에는 현재의 삶과 미래의 거울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과 100여년 전의 조선, 식민지 시대의 조선은 어떤 모습, 어떤 세상이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부벽루라고 하는 이름은 절벽 몇 길 위에 대동강의 푸른물을 밟고 떠 있는 것처럼 서 있다고 하는 의미일 것이다. “주의하시지 않으면 빈대가 달라붙습니다.”라고 말하고 지국장은 미소를 지었다. “박쥐에 빈대가 있나요?”, “있고 말고요. 이 부벽루에는 아까도 말한 대로 한인이 자주 주연(酒宴)을…” 아내는 한인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대마다 안타깝다는 듯이 홍상을 보았다.……“왠지 이곳은 묘한 냄새가 나네요”하고 아내는 돌로 쌓여진 누위를 돌아보았다. 나도 아까부터 그 냄새를 맡고 있었으나 단지 경치에 눈을 빼앗기고 있어 그것을 말할 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군. 뭔가 냄새가 나는군.”… 코에 익숙지 않은 이 냄새는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불쾌한 냄새였다.(206~207면)
을밀대나 영명사, 부벽부에 관한 내용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인용한 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보고, 듣고, 느낀 소감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사실 구한말, 식민지시대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를 한 적이 없다. 근근히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본 게 전부다.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 동 시대에 살면서, 조선으로 건너와 조선 땅 이곳 저곳을 다니거나 머물면서 혹은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소감을 쓴 글이 궁금했다. 정복자 일본인의 눈에 비친 식민지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것이 오로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이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이 책은 사실적인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전문학술서적이 아닌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이야기라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책 중간중간 삽화 또한 인상적이었다. 2015년은 광복 70년 되는 해이다. 70년 전 8월 15일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였을 것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100년 전 일본인(다카하마 교시)이 직접 쓴 <조선>이라는 책을 통해 백 년 전 일본인과 조선인의 모습은 물론 양국인의 교류 양상, 당시의 풍습, 건물, 풍경, 도구, 언어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
|
조선 여행, 백 년 전으로 이 책의 성격, 그리고 줄거리 이 책의 줄거리에는 그럴듯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나 - 문학자(26쪽), 세상의 진보에 뒤처진 문학자(62쪽) - 와 그의 부인이 일본 시모노세끼를 출발하여 부산으로 와, 조선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니 이야기라고 할만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것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여행기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나의 판단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평자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이 소설이 단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저열한 식민지 여행기라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면 역자는 굳이 본서를 번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350쪽) 그래서 해설자는 이 글 속에서 여러 가지를 찾아내고 있다. ‘연애소설’로서 오후데와 ‘나’와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한다. 여러 면에서 이 책은 살펴볼 거리가 많이 있다.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당시 조선의 모습 <줄줄이 걸어다니는 키 큰 흰옷의 사람은 모두 조선인이었다.>(16쪽) <한사람 한사람 모두 담뱃대를 물고 있군> (16쪽) <창 밖을 오가는 산천은 나무가 없는 산이나 제방이 없는 강이었다.> <산은 남벌된 채로 버려져 있고 강은 수시로 범람하여 위치를 바꾸었다.> (31쪽) <조선인은 밤에는 언제까지나 깨어있고 아침에는 언제까지나 늦잠을 잔다고 들었다.> (80쪽) 그리고 특이한 기록으로, 기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내지에서 보지 못했던 광궤식의 큰 기차가 - 이것도 식민지적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오로지 실용 일변도의 거의 장식이 없는, 예를 들면 앞을 장식한 천도 없고 옆으로 늘어뜨린 장식도 없는 단지 장대한 철갑같은 기차가 .....>(31-32쪽) 기차에 대한 서술은 또 등장한다. < 장식없는 실용 일방의, 그 자체가 하나의 무기처럼 커다란 기차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북으로 북으로 달려갔다.>(179쪽) 이런 표현을 볼 때에 ‘나’의 눈에 당시 조선에서 운행되는 기차는 그렇게 낯설게 보였나 보다. 일본의 것과는 매우 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일본이 당시 조선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에 놓아준 기차는 그저 실용적인 - 일본의 침략을 효율적으로 감행하기 위한 - 용도임을 알 수 있다. 당시 학문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대한 언급,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관리 이외의 사람이 되기 위해 학문을 하는 자는 없습니까?” “지금 현재 있어도 매우 소수일 것입니다.” “만약 일본 사회와 같은 경로를 간다고 한다면 조만간에 실업을 지향하여 학문을 하는 자도 생기게 되겠지요.” (128쪽)
홍상과 ‘나’의 대화 중 일부이다. 모든 백성이 가진 희망이 최우선으로 관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을 대화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만큼 학문의 용도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말이겠다. 실용적인 학문은 쓰임새가 없었고, 오직 과거를 통해 관리가 되는 것만이 학문의 목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 백년 전 당시의 사건들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기회도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보면 아이 장난 같다고 생각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건 일이었고, 당시 사람들에게는 정말 식은 죽 먹기였던 일이 나중에 보면 청사에 기록될 대사업이 되기도 하네.>(147쪽) <개인의 이해득실을 잊고 생각해보면 세상이라는 것은 재미있어. 적이라든가 아군이라든가 하는 것도 제비를 뽑아 임시로 역할을 정하는 것 같네.>(147쪽) 역사를 상기시키는 장면들 민비 - 명성왕후를 말한다 - 묘로 가는 길...이미 다른 곳으로 이장되었으므로 유해는 이곳에 없습니다. (156쪽) 모란대(198쪽), 을밀대(203쪽), 모란봉,기자릉(200쪽), 부벽루(204쪽), 능라도(206쪽) 등등 이 작가의 마음을 관통하는 모순된 생각 이 소설을 이끌고 있는 작가의 마음에는 아무래도 두 가지 모순된 생각이 담겨있는 듯하다. 해설자는 이것을 이렇게 정리해 놓았다. <‘나’는 망국의 국민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동시에 북으로 뻗어가는 훌륭한 국가의 한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침략자로서의 반성이 부족한 ‘나’의 한계라고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와 집단의 대세를 초월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355쪽) 조선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들 그래서 그런 모순된 생각 중 한쪽에 있는 조선인을 생각하는 듯한 발언이 몇 개 보인다. <......조선인은 우리 두 일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소담 집에서도 먼저 놀러와 있던 그들은 우리 때문에 떠났다. 나는 그것에 대해 결코 승리를 자랑하려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남의 화원에 발을 들여 놓은 기분으로 쓸 데 없는 행위였던 것을 후회했다. 그들 조선인은 그들 조선인으로서 각각 유쾌한 자신의 세상을 만들게 하라>(102쪽) <‘기생 배!’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거듭 애틋하게 생각했다. 실제의 이 기생 배와 내 공상의 기생 배 사이에는 너무도 먼 거리가 있었다. 물과 기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들과 우리 일본인 사이는 도저히 융화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는 듯했다.>(325쪽) 이 책에서 찾아볼 의미들 그러한 것과는 별개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다른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조선을 외국인- 특히 조선을 침략한 일본인- 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 관점과 그 당시의 풍물을 살펴 볼 수 있다는데 더 의의가 있다. 해설자도 이 점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는 말하길, 이 책은 “일본문학계에서의 평가에 관계없이 우리 근대의 풍경을 그린 장편 <조선>은 반드시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널리 읽히고 연구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작품”(349쪽)이라고 한다.
사족, 소설적 표현 - 재미있는 표현 <오후데는 손짓과 눈빛으로 소담에게 맥주를 강요했으나, 소담도 손짓과 눈빛으로 그것을 사양했다.> (151 쪽) 이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자, 어떠한 정경이 떠오르는지? 문학자라 소개된 ‘나’의 소설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
|
조선시대를 말하거나 그 시기의 조선 사회를 풍미하는 책들은 무수히 많기도 하지만 정작 식민지 시절을 사관에 치우친 경향이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자료나 책 역시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식민지 조선을 그린 일본인 작가의 최초 소설이라는 문구에 더욱 마음이 끌리고 몸이 달았다.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고 있지만 식민지 시기의 조선사회의 풍경을 짐작 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표현되고 있어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키 큰 힌옷 입은 사람' '담배를 물고있는 모습' 산천에 나무가 없거나 제방이 없는 강' '밤에는 늦도록 깨어있고 아침에는 늦잠자는' 등의 당시 모습들을 피력하고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적인 것들을 제외하고나면 사람들에 대한 모습은 잘못된 모습을 보거나 오히려 믿을 수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정도로 비춰지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나'와 홍상의 대화들은 당시의 사회적 변화가 가져온 상황에서 백성들의 희망이 단절된 모습을 보게되는데 학문을 하는데 있어 관리 이외의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자는 있는지 없는지를 묻고 있다고 해도 이미 과거제의 폐지로 인해 실용적인 학문으로의 전환이 되지 못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할것임을 느끼기에 족하다 할것이다. 저자의 눈에 비친 조선의 비감함이 우리가 몸소 느끼는 비감함으로 인식되지 않을뿐만 아니라 어쩌면 승자의 유유자적한 비웃음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를 편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건 그들과 우리의 문제를 시대와 집단의 대세를 벗어나지 못한 사실이라고 치부 하는데서 확연히 느낄 수 있겠다. 일본인 작가의 식민지 조선을 그린 관점을 통해 그 당시 조선의 풍물과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 볼 수 있다는 의의를 제외한다면 그리 달갑지 않은 '은근한 과시'를 느끼게 되는 책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